# 7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77화
20장 넘어오시죠(5)
펑!
한소희의 라이트닝 볼트가 박찬영의 아이스 볼과 만나면서 허공에서 터졌다.
스파크가 솟구쳤고, 얼음 가루가 사르르 내려앉았다.
그 둘은 다시 마법을 사용하며 싸우고 있었다.
“막상막하네.”
옆에 앉아 있는 이찬혁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두 명을 바라보았다.
한소희와 박찬영.
확실히 둘 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끝을 보려면 아무래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나한테 둘의 결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누굴까.’
방수찬과 누군지 모를 여성과의 대화에서 나왔던 델타를 찾아야 했다.
알파와 감마.
이 둘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거기다 대표단이라고 했으니, 둘 중 한 명은 최정환이 분명했다.
지금 싸우고 있는 한소희와 박찬영 중 한 명은 방수찬을 따라 움직이고, 다른 한 명은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방수찬은 알파와 감마를 처리한다고 했다.
최정환은 내가 알고 있으니, 미연에 방지를 할 수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기 위해서, 정체를 알아내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최정환은 원하는 것이 뚜렷했다.
그렇기 때문에 채하나의 자료에도 그것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저 둘은 달랐다.
상세 프로필이 적혀 있었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파고들 만한 틈을 찾을 수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고.’
지금 물어본다는 것은 방수찬에게 ‘나 다 알아요’ 하고 광고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둘 중 한 명에게 붙어 다니는 것이었다. 방수찬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델타를 적어도 한 번쯤은 만날 것이었다.
그 장면을 포착하는 게 계획이었다.
펑!펑!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는 둘의 대결은 조금씩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끝이 났다.
“승자, 한소희.”
한소희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대련장 밑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최정환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항상 같은 장면이었다.
한소희가 최정환에게 웃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고, 최정환은 한소희가 하는 말을 들었다.
‘흐음…….’
얼핏 보면 한소희가 최정환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저런 미소는 오로지 최정환의 옆에서만 나타났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미소와는 달랐다.
최정환과 한소희가 팀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조금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박찬영으로 옮겨갔다.
생각이 많아 다양한 표정들이 얼굴 위로 드러났다.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주먹으로 머리를 가볍게 치고 있었다.
박찬영은 승부욕이 강했다. 거기에 자만심도 가지고 있었다.
첫날, 2군 전투 헌터에게 졌을 때, 가장 분노했던 것도 박찬영이었다. 자신이 2군 전투 헌터에게 진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다혈질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
한소희는 그래도 헌터 학교에서 안면이 있는 반면에, 박찬영은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길드 대표단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채하나의 자료에서 보긴 했지만, 정말 간단한 자료들만 적혀 있었다.
그런 것으로 보면, 현재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박찬영이었다.
‘일단은…….’
박찬영을 파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차피 둘 중 한 명이 델타였다. 박찬영에 대해서 조사한 뒤에, 그가 아니라면 델타는 자연스럽게 한소희가 될 것이다.
“자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렇게만 준비하면 이번 길드 대항전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만하겠는데?”
김찬익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최정환은 나와 만난 뒤에 대표단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남들과 소통을 거부하며, 솔로 플레이를 주로 했다.
그러나 오늘 단체전과 레이드 훈련에서 최정환의 바뀐 모습은 대표단을 놀라게 했다.
정말 짧은 단어이지만 대표단과 의사소통을 나눴다. 그 영향인지 한소희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4명이 열심히 하니 남은 박찬영 또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어제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선보였고, 훈련 코치들은 감탄을 토해냈다.
김찬익은 미소를 유지하며, 대표단을 향해 말했다.
“이제 대표 등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만큼 길드 대항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보자.”
“예!”
“알겠습니다!”
“네!”
“당연하죠.”
대표단의 대답과 함께 오늘 훈련은 끝이 났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찬혁이 옆에서 수화를 보냈다. 손을 동그랗게 모아 입안으로 털어 넣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오늘 하루쯤은 한잔하면서 여유를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나는 이찬혁에게 오케이 싸인을 보냈다.
“콜!”
* * *
최정환은 생각보다 빠르게 재료를 준비했다. 나는 재료를 건네받아 치료제를 만들었다.
시스템이 알아서 하니 내가 할 것은 따로 없었다. 조합서만 있으면 만들 수 있으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눈앞에 만들어진 5개의 약병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시간이라면 최정환은 병원에 있을 것이다.
약병을 건네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만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된다면, 한소희에 관한 것도 물어볼 예정이었다.
약병이 깨지지 않게 스티로폼에 하나씩 끼워 넣었다. 뽀드득 소리와 함께 약병이 안전하게 고정되었다.
부피가 크지 않은 박스에 집어넣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길드 차량을 끌 수 없으니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를 부르기 위해, 스마트폰을 켰다.
-흐으음…….
화면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앞에 두고 있는 책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책의 제목은 화면 상단에 나와 있었다.
[영혼을 다스리는 마법]
요새 발칸의 주 관심사는 스마트폰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가였다.
기존에 하던 게임은 랭킹 1위를 찍고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다른 게임도 손에 안 들어온다면서, 여러 가지의 책을 구매했다.
일반적으로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 영혼에 관련된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을뿐더러, 대부분 네크로멘서 계열의 흑마법을 사용했다.
“잘 안 풀리나 보네.”
내 말을 듣고서야 발칸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 정도로 발칸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뭐 나름 재미는 있다. 너는 찾았나?
“아직.”
박찬영에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특별하게 주의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나는 일단 택시를 부르는 어플을 켜고, 현재 위치와 도착지를 정한 뒤에 호출 버튼을 눌렀다.
-훈련은?
“하고 있지.”
최근에 스킬에도 포인트를 투자하면서 마나 운용 스킬의 등급을 올렸다.
스탯에 투자할 20만 포인트를 남겨놓고, 남은 포인트를 우선적으로 스킬에 투자했다.
가장 1순위가 마나 운용이었다.
그 덕에 지금 마나를 다루는 능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지금은 그 감각에 익숙해지고 있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나 탐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박찬영이 숙소 내부에서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다음 투기장까지 얼마나 남았나?
이번에는 조금 시간이 길었다. 지금부터 한 달 정도 뒤에나 투기장에 들어갔다.
그때쯤이면 길드 대항전 예선이 한참 진행 중일 때였다.
“이곳 시간으로 한 달 정도.”
-시간은 충분하군. 이제 슬슬 장비를 맞춰야 한다.
“장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저주받은 동굴에서 받은 검 하나와 아이리스 길드에서 기본으로 지급되는 가죽 갑옷이 끝이었다.
꽤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 다른 장비를 준비할 생각은 따로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게 되면 실력이 비슷한 구간이 나오게 된다. 그때가 되면 장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다.
“그런 것보다는 실력을 더 끌어올리는 게 좋지 않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당연하고. 네가 강해지는 만큼 좋은 검을 사용해야 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검도 지금은 아슬아슬하다. 아마 조만간 네 힘을 견디지 못할 때가 온다.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준비하는 거다.
처음 구매했던 검도 결국엔 날이 상했다. 검이란 도구이기 때문에 내구도가 존재했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검 또한 언젠가는 부러질 것이다. 발칸의 말에 의하면 내 힘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니, 그 시기는 더욱 빠를 것이다.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나는 포인트 상점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서 사는 아이템이 좋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포인트를 투자하기는 아까웠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좋은 검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침 채하나의 소원권도 있으니, 계획을 잘 짜보면 될 것 같았다.
“오케이.”
빵!
내가 있는 자리 앞에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앞자리에 올라탔다. 택시는 빠르게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주었다.
“감사합니다.”
택시비는 어플에서 자동으로 결제가 되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며 박스를 챙겼다.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다른 사람을 태우기 위해 병원을 빠져나갔다.
나는 입구로 걸어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퇴근 시간 때와 겹쳐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스를 사수하며 최정환의 동생이 있는 층에서 내렸다.
“후우…….”
모퉁이를 돌아 최이수의 명패가 달린 병실 앞에 섰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최이수는 자고 있었다.
드르륵!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동생의 침대 앞에서 앉아 있던 최정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자.”
최정환이 병실 밖으로 나오면서 문을 닫았다.
나는 최정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복도를 따라 끝에 다다르니,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문밖에는 카페와 함께 야외 테라스가 있었다. 테라스 밖으로는 병원의 자랑 중 하나인 야외 정원이 보였다. 중간중간 세워져 있는 알록달록한 등불과 함께 정원이 아름다워 보였다.
꽤나 많은 사람이 그곳을 이용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며, 가족이나 자신이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최정환도 그중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마실 겁니까?”
“내가 사지.”
“그럼 전 따듯한 밀크티를 마시겠습니다.”
우유에 홍차가 들어간 음료로 꽤 맛있다. 최정환은 주문을 하러 갔고, 나는 최정환을 기다리며 오른쪽에 보이는 정원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정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내가 가져온 치료제.
이것만 제대로 복용한다면, 최이수 또한 저 아이들 못지않게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탁!
“여기 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최정환이 건네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면서, 앞에 있는 박스를 최정환 쪽으로 밀었다.
최정환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 있는 약을 확인하고는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약간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벌써?”
“거기 번호 적혀 있습니다. 그 순서대로 매일 한 개씩 먹이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먹일 약은 보약과 비슷했다.
지금 당장 치료제를 먹인다고 해도 최이수의 몸이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쇠약해진 최이수의 체질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다음 카리나의 독을 변질시켰던 약 하나하나를 부수고 난 뒤에, 마지막 카리나의 독을 해독시키는 해독제를 먹이면 끝이다.
나는 이것을 그대로 최정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거면 동생분도 저렇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겁니다.”
최정환은 정원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눈가와 함께 최정환이 침을 삼켰다.
그러곤 나를 쳐다보며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괜한 뿌듯함과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를 살리고, 감사 인사를 받는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그 뒤로 분위기는 다시 어색해졌다.
나는 밀크티를 모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제 약을 모두 줬으니, 최이수에 관한 볼일은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최정환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최정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습니까?”
“그래.”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한소희 선배님과 사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