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75화
20장 넘어오시죠(3)
“뭐…… 라고?”
최정환의 입이 삐걱대었다. 차갑고 과묵했던 얼굴이 깨지고, 그 안에서 분노와 화로 가득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낯익은 얼굴이었다.
김동수에게 지시를 내리던 의문의 남자, 방수찬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길드 대표전에서도 심사위원으로 얼굴을 봤기에 인사를 했다.
방수찬은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최정환을 바라보았다.
“얘기 좀 하지.”
방수찬의 말에 최정환이 따라나섰다. 나는 앞으로 지나가는 최정환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정환이 나를 슬쩍 보더니 방수찬의 뒤를 따라갔다. 이런 타이밍에 방수찬이 나타났다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빠르게 포인트 상점을 열어 아이템을 구매했다.
[첩보원의 도청 장치를 구매하셨습니다.]
[첩보원의 도청 장치]
지정한 사람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지정자는 방수찬이었다.
이런 대낮에 몸을 숨기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제3의 눈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청 장치로도 충분했다.
나는 손에 나타난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 * *
옥상으로 올라온 최정환은 앞에 있는 방수찬을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기로 했던 자였다.
그래서 다른 길드를 버리고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온 것이었다.
동생을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서.
분명 방수찬을 비롯한 사미영은 치료제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약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치료제의 ‘치’자도 보이지 않았다.
방수찬은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최정환을 보며 말했다.
“동생 얘기는 들었다.”
“됐고. 치료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완성 직전이다.”
최정환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웠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치료제의 가능성이 저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완성 직전입니까?”
항상 치료제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개발 중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그나마 완성 직전이라고 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몫이다.”
최정환은 최대한 분노를 줄이며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
“한 번 더 발작이 일어난다면 죽는답니다. 완성 직전이 아니라 완성된 치료제가 당장 있어야 제 동생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선.
저들은 항상 말끝에 최선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최선을 다해 개발 중이다.
최선을 다해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이제는 더 이상 최선이라는 말에 속아 기다릴 수 없었다. 최정한은 주먹을 움켜쥐며 방수찬을 바라보았다.
“제 동생이 죽는다면, 지금까지 오갔던 얘기는 끝입니다.”
“그건 곤란하지. 지금까지 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데.”
방수찬은 품에 있던 조그마한 약병을 최정환에게 던졌다. 그것을 받아든 최정환에게 말했다.
“그거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다. 그 안에 치료제 개발을 마무리 지어보도록 하겠다.”
최정환은 손에 들린 약병을 바라보았다. 병의 악화를 늦추기 위해, 동생에게 먹이던 약이었다.
일주일.
방수찬의 말에 다시 한번 다 잡았던 마음이 흔들렸다.
던전 브레이크에서 부모님을 잃고 동생 혼자만 살아남았다. 그마저도 병에 걸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어떻게든 동생의 병을 치료하고 싶었다.
최정환은 방수찬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방수찬은 항상 이 약을 건네줄 때마다, 다른 무언가를 부탁했다. 이번에도 그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정환의 말에 방수찬이 웃었다.
“이번에 할 일은 간단하다. 일주일 뒤, 대표단에서 나와라.”
* * *
나는 이어폰을 빼고, 방금 들었던 내용에 대해서 빠르게 정리했다.
사미영 측에서는 채하나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주일 뒤라면, 길드 대항전 대표단 등록이 있을 예정이었다.
헌터 협회에 아이리스 길드에서 나갈 대표 명단을 올려야 했다. 한 번 올린 명단은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대표단 등록이 있고, 기초 테스트가 진행될 것이다. 거기까지 마쳐야 길드 대항전 예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런 중요한 타이밍에 빠진다는 것은 대표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정환뿐만 아니라 한소희, 박찬영까지 빠지게 되니 더욱 문제였다.
회유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워 있는 최정환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3년.’
최정환과 방수찬의 대화에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것도 아직 완성이 아닌 완성 직전, 사실상 개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대체 무슨 병이기에…….’
세상이 변하면서, 기존에 있던 질병과는 차원이 다른 병들이 나타났다.
치사율 99%에 가까운 병들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인간들에게 점령당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의술의 수준은 급격히 올라갔다. 거기다 웬만한 질병은 힐러의 치료로 간단하게 치료받을 수 있었다.
그 수가 적어 힐러에게 치료받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돈만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최정환의 동생이 걸린 병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불치병이라고는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아내지 못했다는 말은 조금 믿기 어려웠다.
1년 전 발병한 치사율 80%의 하디스 병도 반년 만에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수상해.’
무슨 거래와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면 최소한 병명 정도는 알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최정환은 동생의 병명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불치병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급 인력들과 함께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들을 우선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거기에 해당되지 못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다수를 살리기 위한 소수의 희생이었다.
최정환의 동생은 소수에 해당했다.
그런 동생을 위해 치료제를 개발해 준다니, 최정환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방금 전 대화만 들어봐도, 최정환이 동생을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런 약점 때문에 방수찬이 하는 말에 대한 빈틈을 찾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치료제는 없을 확률이 높아…….’
나는 포인트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했다.
[화타의 진단서를 구매하셨습니다.]
손에 나타난 양피지 한 장.
사용법은 평소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나는 최정환의 동생인 최이수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양피지에 올렸다.
그러자 하얀빛이 일어나더니, 양피지에 검은색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양피지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글씨가 채워졌다. 빛이 사라지고, 나는 양피지를 들어 적힌 글을 확인해 보았다.
적힌 글이 한글이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화타의 진단서]
이름 : 최이수
나이 : 15세
성별 : 남
병명 : 카리나의 독(변형), 약물중독
증상 : 처음에는 멀쩡하다가 서서히 미열과 함께 근육통, 오한, 식욕 감소가 일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를 잃고, 독에 의한 발작이 일어난다. 발작이 일어날수록 병이 몸을 빨리 잠식하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소견서 : 기존의 카리나 독이 약물과 만나 변형되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뒤 사망.
카리나의 독을 변형시키는 것은 꽤나 까다롭다. 아마도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약물에 손을 써서 변형시켰을 확률이 높다.
치료법 : 먼저 카리나 독을 제거해야 한다. 카리나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선…….
진단서의 내용은 꽤나 충격이었다.
카리나의 독은 워낙 유명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3년 전, 던전 브레이크에서 카리나라는 몬스터가 나타났다.
한 곳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터졌다. 그래서 더욱 크게 이슈화되었다.
카리나의 독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카리나의 독에 대한 해독제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5일.
해독제를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빠르게 완성된 해독제로 카리나의 독에 중독된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다.
‘변형이라…….’
최이수의 병명에는 카리나의 독이 변형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에 의한 약물로 인해 카리나의 독이 변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해독제는 아무런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 것이었다.
“하아…….”
누군가는 안 봐도 뻔했다.
사미영의 명령을 받은 방수찬의 짓일 것이다. 방금 전, 도청을 했을 때도 방수찬은 최정환에게 약을 건넸다.
‘미친 새끼들…….’
아직 어린아이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쓰레기라 생각하니, 욕지기가 치솟았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최정환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해지고, 평소의 과묵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조그마한 약병이 들려 있었다. 내 시선이 그곳으로 간 것을 느꼈는지, 최정환이 약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왜 아직도 있는 거지?”
“기다린다고 했던 말 기억 안 납니까?”
최정환은 나를 지나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생의 곁으로 가며 말했다.
“이제 가라.”
방수찬과 최정환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정말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동생의 병명도 몰랐을 거고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결국 최정환은 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엔 아깝다.’
최정환의 특성과 재능은 그런 식으로 사라지기엔 너무 아까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좋아 보였다.
지금 당장은 내가 강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의 마음에 새겨놓은 은혜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더욱이 최정환에게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니 더 그럴 것이다.
“그럼 제가 할 말만 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최정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말을 하던 최정환에게 쉽게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3년 전, 전국에서 일어난 카리나 던전 브레이크 사건.”
내 말에 최정환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동생분은 거기서 카리나의 독에 당했죠. 그리고 병원으로 호송되었습니다. 그런데 5일 뒤에 만들어진 해독제가 맞질 않았죠.”
최정환의 몸에서 살벌한 기세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나는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거기서 처음 방수찬을 만났을 겁니다. 맞죠?”
최정환의 살기가 가라앉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최정환이 내게 다가왔다.
살기는 가라앉았지만,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심각했다. 당장에라도 나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진단서의 내용과 대화의 흐름으로 유추를 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세세한 것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동생을 살리고 싶습니까?”
잠시 침묵하고 있던 최정환의 입이 열렸다.
“넌 살릴 수 있다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이제야 얘기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에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그러고는 카리나의 독과 해독제를 두 개씩 구매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 척, 두 가지를 꺼내며 최정환을 향해 말했다.
“카리나의 독과 해독제입니다.”
카리나의 독을 먼저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자 독이 몸 안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약간의 미열과 함께 온몸이 떨렸지만 참을 만했다.
“보시다시피 진짜입니다.”
내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다음에 해독제를 다시 입에 넣었다. 해독제의 효과는 빠르게 퍼졌다. 초기일수록 해독제의 효과는 빠르게 들었다.
나는 카리나의 독과 해독제를 최정환에게 건넸다.
“독을 마신 뒤, 아까 가지고 오셨던 약을 드셔보시고 해독제를 마시면 알게 될 겁니다.”
최정환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들었다. 나는 그를 보며 확신에 찬 말투로 이야기했다.
“방수찬이 선배님의 동생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