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72화
19장 시선의 차이(7)
내 검에 실린 마나가 마이런을 향해 쇄도했다.
콰가가가강!
마이런을 한 방에 베어내며, 이 상황을 끝낼 줄 알았던 내 회심의 공격이 빗나갔다.
엄한 바닥이 파여 나갔고, 마이런의 왼쪽 팔 부분의 옷자락이 날아가 있었다.
옷자락이 잘린 곳에는 마이런의 비쩍 마른 팔이 보였다. 리치와 같은 뼈만 있는 것이 아닌, 정상적인 팔이었다.
다만 마이런의 팔은 혈색이 없어 거무죽죽했다. 마치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정신적으로 죽어버린 좀비의 팔과 비슷했다.
“아까 죽였어야 했는데…….”
마이런의 입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검을 들고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누가 쉽게 죽어준대?”
“내 힘만 돌아온다면……. 네놈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일시적 패널티.
나도 메시지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이상 멍청하게 시간을 버리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
나는 다시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X자로 검을 휘두르자 마이런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속도 면에서 내 검이 아주 조금 빨랐다. 마이런이 걸치고 있는 후드가 잘려 나갔다.
완전히 잘려 나간 후드는 더 이상 마이런의 몸을 가려주지 못했다. 전신이 드러난 마이런의 몸은 먼저 드러났던 팔과 다를 게 없었다.
마이런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더니, 가슴 쪽에 생긴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내가 마이런에게 달려가는 순간, 마이런의 눈이 번쩍였다. 그와 함께 움직이는 마이런의 손과 함께 강력한 바람이 일었다.
재빠르게 바닥에 검을 꽂으며 마이런의 몸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을 버텨냈다.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에 분노한 마이런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하나 쥐어 들어 나를 향해 휘둘렀다.
챙!
나는 바닥에 꽂힌 검을 뽑아내며, 마이런의 공격을 막았다. 바닥에서 검을 뽑으며 흙이 튀어 마이런의 시야를 가렸다.
그 틈에 나는 주먹에 마나를 실어 마이런의 갈비뼈를 후려쳤다.
마이런의 신형이 절묘하게 내 주먹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며 뒤로 빠졌다.
나는 이번에 끝내기 위해 몸을 날리며 마나를 온몸에 퍼뜨렸다. 한층 더 빨라진 힘과 속도로 마이런을 몰아붙였다.
검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을 사용하며 마이런의 빈틈을 노렸다. 정신없을 정도로 몰아친 공격에 마이런이 점점 무너졌다.
삭!
내 공격으로 인해, 마이런의 왼쪽 팔이 잘렸다. 비명을 지른다거나, 고통에 몸을 떠는 행동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승기는 내 쪽으로 확실하게 넘어왔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이런을 향해 달렸다.
그때, 마이런이 바닥에 툭 떨어진 자신의 팔을 바라보더니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층에 도전하는 투사치고 강하구나……!”
“뭐?”
녀석의 말에 내 신형은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뭘 놀라지?”
“내 정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마이런이 자신의 잘린 팔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러더니 허공을 보며 크게 웃었다.
“이곳에 온 게 너뿐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물론 아닐 것이다.
이 탑을 오르는 투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한 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발칸에게 들은 여러 이야기에 의하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투사들이 투기장의 탑을 오르고 있었다.
이곳도 분명 많은 투사가 거쳐 가는 하나의 층일 뿐이었다. 시련을 완수하면 위로 올라가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곳이었다.
“놀란 눈을 보니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몇 가지 얘기해 주지.”
나는 잠시 공격을 멈추고, 마이런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투사다. 물론 지금은 시련에 실패해 이런 꼴을 하고 있지만.”
“실패는 곧 죽음 아닌가?”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 투기장의 법칙이었다. 가끔씩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결론적으로 시련의 실패는 죽음이었다.
마이런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저 위로 한참을 올라가게 되면, 여벌의 목숨이 하나 생긴다.”
여벌의 목숨이라, 마이런의 말하는 저 위라는 것이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난 여벌의 목숨값으로 이곳에서 시련에 도전하는 투사 천 명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딱 네놈만 죽인다면, 나는 그 즉시 저 위로 돌아갈 수 있다.”
마이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패널티로 제약되었던 힘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마이런은 자신의 힘을 느끼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위에 관한 말만 하면, 어쩜 이리 반응이 똑같은지. 더 이상 얘기해 줘봐야 필요도 없을 테니. 그냥 죽어라!”
마이런의 왼손에 생긴 검은 구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검을 고쳐 쥐고 아래서 위로 휘둘렀다.
검은 구체가 반으로 잘려 나가며, 내 뒤에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콰앙!
마이런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저항해 봤자 소용없다. 그냥 나를 만났다는 것을 원망해라.”
나는 품에 있던 체력과 마나 회복 포션을 마셨다. 체스만의 집무실에 있던 몇 없던 쓸 만한 아이템이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 사용하려고 아껴두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딱 적기였다.
최상급 포션이라 그런지, 단번에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검을 고쳐 쥐며, 나는 앞으로 걸었다.
정확히 마이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내 웃음을 본 마이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위에서 한 번 뒤져서 이런 곳까지 내려와 너보다 약한 놈들 죽이고 다니는 게 자랑거리냐?”
“뭐, 뭣?”
“그리고 별로 얘기한 것도 없으면서 뭐라도 알려준 것처럼 유세 떨지 마.”
마나를 몸에 가득 퍼뜨리며, 내가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파앗!
이형환위로 이동한 내 신형은 마이런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내 검이 마이런의 오른팔을 날렸다.
아주 짧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라 마이런이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방금 일어난 일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지, 마이런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렇게 침착한 거지?”
그건 발칸에게 이미 같은 내용을 들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부적인 내용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흐름에 대해서 들었다.
-혹시나 네 정체를 아는 녀석이 있다면, 당황하지 말고 처리해라.
첫날 발칸이 나에게 해준 얘기였다. 그 당시에는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마이런이 자세한 내용을 말하면서 깨달았다.
내 정체를 아는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놀랍지도 않았다. 그럴 만한 내용도 없을뿐더러, 신기할 것도 없었다.
시간을 끈 것은 혹시나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지만 얻을 게 없었다.
‘끝내자.’
내 정체에 대해 내뱉는 순간, 마이런은 더 이상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메시지에 나왔던 권능.
아마도 녀석이 사용한 권능이, 마이런이 원래 가진 힘이었을 것이다. 그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본래의 가진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수호신을 죽였을 때도 그랬다. 엄청난 녀석이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한마디로 마이런의 패널티가 풀린다고 하더라도, 이 시련에서 내가 상대할 수준의 힘을 가진 것이라는 뜻이었다.
처음 느꼈던 일말의 두려움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 안 돼!”
마이런이 혼잣말을 했다. 그때 잘려 나간 양팔이 허공으로 뜨더니 마이런의 어깨에 다시 붙었다.
마이런은 자신의 양손을 움직이더니, 두 눈이 벌게져서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만 죽이면 끝이다…….”
나는 그런 마이런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서 죽는 건 너야.”
나를 향해 검은 구체를 난사하는 마이런을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내게 날아오던 모든 검은 구체가 내 검에 잘려 나가며 사방에서 터져나갔다.
퍼엉!
콰과과과광!
날리는 것으로는 끝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마이런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양손에서 점점 커지는 검은 구체의 크기가 내 몸만 하게 커졌다. 내 앞에 떨어지는 두 개의 검은 구체가 합쳐지더니,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허공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밑을 보니 내가 서 있던 곳 일대에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초토화되고 있었다.
마이런의 주위로 다시 한번 나타난 여러 개의 검은 구체가 허공에 있는 나를 향해 날아왔다.
서걱!
펑! 펑! 펑!
검은 구체를 베어내며, 내 몸은 마이런을 향해 빠르게 떨어졌다. 나는 검에 마나를 실어 휘둘렀다.
거대한 마나의 힘이 마이런을 향해 쇄도했다.
콰과과과과광!
지면에 거대한 흔적을 남기고, 사방으로 풍압이 터져 나갔다. 그 가운데에 반으로 잘린 마이런의 모습이 보였다.
뒤로 쓰러지는 마이런을 향해 다가갔다.
“너나 원망해라. 마지막 상대로 나를 만난 것을.”
마지막 천 번째였던 나를 죽이지 못한 마이런은 이제 진짜 죽음을 겪게 될 것이다.
털썩!
내 몸에 있던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며, 뒤로 쓰러졌다. 과도한 마나를 몸에 사용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후우…….”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구름. 마치 내가 올라야 하는 탑과 같았다.
아직 올라갈 곳이 많이 남았고, 어딘지 모를 위로 올라간다면 여벌의 목숨 정도는 하나 얻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먹통이었던 스마트폰에서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끝났나?
“빨리도 대답한다.”
중얼거리는 발칸의 목소리와 함께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시련의 끝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시련을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보상 : 80,000p
[귀환합니다.]
* * *
오늘은 아이리스 길드 대표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는 첫날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소집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나는 앞에 있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안에서 채하나의 허락이 떨어졌고,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번과 다를 바 없이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가서 앉았고, 채하나 차를 가지고 다가왔다.
“사미영에 대해서 더 얻은 정보 없어?”
“예.”
“그럼 우리 쪽에서 얻은 걸 알려 줄게.”
채하나가 서류 뭉치 중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 내용을 확인하며 채하나의 말을 들었다.
“사미영의 윗선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지만, 이미 사미영의 마수가 길드 곳곳에 퍼져 있어.”
채하나가 조사한 자료에는 많은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조사하기 시작한 초기였고, 사미영 쪽에서도 쉽게 정보를 얻지 못하게 조작이나 손을 써놨을 것이다.
서류에 적힌 내용은 현재 가지고 있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간단한 내용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작업을 해온 거군요.”
“그래. 진짜 너 아니었으면 꼼짝 못 하고 당했을 거야. 그건 정말 고맙다.”
채하나는 다른 서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 안에는 최정환, 한소희, 박찬영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맨 밑줄에는 그들의 특이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최정환의 경우에는 동생이 꽤나 골치 아픈 병에 걸려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미영 측에 있는 3명.
채하나가 나에게 이걸 건넨 이유는 알아채기 쉬웠다.
“회유하라는 겁니까?”
“위에서 움직이기엔 눈에 너무 띄어.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너에게 부탁하는 거야. 흘러가는 상황도 잘 알고 있으니까.”
“가만있지 않겠다는 거군요.”
고개를 끄덕인 채하나가 대답했다.
“반격을 준비해야지. 혹시나 사미영이 손을 쓰게 되면 그 세 명은 대표단에서 빠질 거야. 그럼 길드 대항전 성적은 엉망이 되겠지.”
“그 책임을 물겠군요.”
“그래. 사미영은 분명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을 거야. 그러면서 더욱 활개 치겠지. 회유하라는 건 변수를 최대한 제거하자는 의미야.”
“세 명 모두 데려와야 합니까?”
“그럼 좋고. 정 안 된다면 한 명 정도는 확실하게 데려왔으면 하는데.”
나는 채하나를 보며 물었다.
“제가 얻는 건 뭡니까?”
보상은 중요했다.
채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는 거라도 있어?”
“뭐든 얘기하면 들어주시는 겁니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에서라면.”
그거면 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임무 완수하고 뵙겠습니다. 소원은 그때 얘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