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63화
18장 수상한 움직임(2)
명색이 아이리스 길드의 2~3년 차 헌터인 팀원들은 상황 파악을 빠르게 했다.
이곳에 서 있는 사람 모두 지금 들고 엎어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돋보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김현 또한 김동수를 노려보곤 있지만, 크리방스를 잡기 위해 전투준비를 해야만 했다.
나는 김동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보며 생각했다.
‘순진했어.’
헌터들은 일반적인 사회와는 조금 달랐다.
군대와 같이, 기본적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에 높은 직책으로 올라갈수록 권한과 책임이 높아졌다.
팀장.
팀원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만큼 그 권한이 강했다. 그것은 테스트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팀장의 명령 한 번에 팀원 자체가 몰살될 수도 있었고, 상상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이번 몬스터를 정하는 것도 팀장의 권한이었다. 다른 팀원이 항의한다고 해도, 팀장의 결정이기에 심사위원에게 부정을 항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져가기 위해 다들 팀장을 맡고 싶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하나에 의해 임시로 팀장은 김동수가 되었고, 이후에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기에 임시는 확정으로 바뀌었다.
다른 팀원들은 거기서 더 생각했어야 했다.
김동수의 성격이라면, 언제든지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됐다.
“잘해보자고.”
내 앞에 있던 김동수가 말하며 마법을 준비했다.
2m 정도 되는 얼음 주먹이 나타나 크리방스의 얼굴을 쳤다. 강력한 한 방에 크리방스의 몸이 주춤거렸다.
김찬규와 한혁은 눈치껏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나도 몸을 날렸다.
다시 한번 얼음 주먹이 크리방스를 공격했고, 김찬규와 한혁은 다리 하나씩을 맡아 자신들의 무기를 휘둘렀다.
김찬규는 검으로.
한혁은 건틀릿으로.
그러나 분산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김찬규 쪽으로 붙어서 같이 공격했다. 물론 힘을 모두 끌어 쓴다면 부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김찬규를 띄워줄 필요는 없기 때문에 힘을 쏙 빼고 때리는 척만 했다.
크리방스는 우리가 공격의 기회를 놓치자마자 반격을 위해 움직였다. 나는 재빨리 뒤로 빠지며 김찬규에게 말했다.
“뒤로 빠지죠.”
우리 둘이 몸을 뒤로 빼고, 한혁이 크리방스의 어그로를 끌었다.
화염의 크리방스는 우리를 보며 입을 벌렸다.
드래곤 브레스처럼 뜨거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김현이 방어막을 걸어줬으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동수가 얼음막을 만들어 한혁과 김찬규, 그리고 나를 보호해 주었다.
속성상 김동수가 공격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마나를 소모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김동수는 자신의 평점을 올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김현이 했다면, 그 점수는 김현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금의 김현에게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만했다. 아니, 김동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반발심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평상심을 잃어버릴 만하지.’
10팀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앞서 우리와 똑같은 멤버로 5명 전원 합격이라는 기록을 만든 1팀을 따라 한다면, 못해도 절반 이상은 붙을 확률이 높았다.
공략 방법 또한 다를 것 없었다.
얼음 마법으로 강력한 한 방을 먹이고, 근접 헌터가 달라붙고, 화염 마법사가 보조 역할을 해주는 것.
시작부터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에 김현은 이미 멘탈이 나가 있었다.
김찬규와 한혁은 기회만 보이면 자신이 돋보이기에 급급해 협업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팀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나와 김동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내 주변으로 모인 팀원들에게 김동수가 말했다.
“너희 안 잡을 거냐?”
김현은 묵묵부답이었다.
김찬규와 한혁도 김현의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김동수가 레이드 몬스터를 바꿨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수였다.
하나 이것은 크리방스를 잡아야 끝나는 테스트이기 때문에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럼 나 혼자 잡는다.”
김동수가 내게 눈짓을 했고, 나는 화염의 크리방스를 향해 달려갔다.
내가 어그로를 끌고, 김동수가 큰 한 방을 먹이는 전략이었다.
크리방스의 앞까지 달려간 나는 왼쪽 다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돌들이 깨져 나가고, 크리방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동수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김동수는 김세아처럼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고, 김찬규와 한혁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단둘뿐임에도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니, 평가를 괜찮게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쿵!
크리방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주먹을 피했다. 지면에 부딪힌 크리방스의 주먹에서 화염이 퍼져 나왔다.
나는 지면을 박차며 화염을 피하고 앞으로 달렸다. 크리방스의 다리 사이를 지나면서 다시 한번 왼쪽 다리를 공격했다.
김찬규가 여러 번 공격했고, 내 힘도 적당히 실려서 그런지 크리방스가 주춤거렸다.
김세아 팀처럼 완전히 박살 낸 것은 아니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어그로는 확실하게 끌었고.’
크리방스의 시선과 양손은 이제 나를 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동수는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얼음막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화염의 크리방스가 양 주먹을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인해 주먹에 어린 불기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 주먹은 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챙!
나는 검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크리방스의 엄청난 힘으로 인해 내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주먹에선 피부가 타오를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강화된 육체와 마나를 끌어올려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정말 녹아내렸을 것이다.
“후우.”
참고 있던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김찬규와 한혁이 크리방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달려들어 잡는 것이 확실한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게 오던 주먹을 한혁이 막아섰다. 그러면서 어그로를 끌었고, 김찬규는 내가 부수지 않은 왼쪽 다리를 노렸다.
콰앙!
김찬규의 공격과 갑자기 터진 엄청난 폭발과 함께 크리방스의 왼쪽 다리에 금이 갔다. 김동수의 옆에 있던 김현이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속이 탔나 보네.’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김현은 캐스팅이 짧고 강한 마법들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크리방스의 몸에 적중하는 폭발들은 큰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크리방스의 화를 돋우며,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김동수의 마법은 아직 준비 중이었고, 김찬규와 한혁이 어그로를 끌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잔뜩 화가 난 크리방스는 김동수와 김현이 있는 쪽으로 무거운 몸을 옮겼다.
나는 크리방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김찬규나 한혁, 김현은 당황해서 인지, 포인트를 놓치고 있었다. 크리방스의 얼굴을 공격하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김동수의 몸에서 푸른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준비가 끝난다.
나는 검에 마나를 두르며 크리방스의 왼쪽 다리를 노렸다.
콰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크리방스의 자세가 무너졌다. 돌이 비산하며 왼쪽 다리가 두 쪽으로 부서졌다.
‘잘 차려준 밥상은 먹어야지.’
크리방스의 다리에는 커다란 금이 있었고,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쳤다면 부서졌을 것이다. 다른 팀원들이 그것을 놓쳤을 뿐이다.
이로써 내 점수는 확실하게 챙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리방스의 폭주가 일어났다. 김세아 팀이 겪었던 현상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팀원들을 비롯한 나는 크리방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때, 준비가 끝난 김동수가 마법을 사용했다.
촤라라라락!
김동수의 밑에서 마법진이 나타나고, 얼음 쇠사슬 수십 개가 크리방스를 향해 쇄도했다.
팔과 다리, 몸통을 엮은 쇠사슬이 점점 조여들면서 크리방스를 압박했다.
점점 파고드는 쇠사슬로 인해 크리방스의 몸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러나 저 마법은 저기까지가 한계였다.
김동수의 실력상, 크리방스를 죽이기까지의 마나가 부족했다. 중간에 얼음막까지 사용하여 더더욱 지속시간이 짧아졌을 것이다.
내 눈에 띄는 빨간 점.
그곳을 향해 달려가며, 지면을 박찼다.
공중으로 떠오른 몸을 이용해 크리방스의 빨간 점에 검을 찔러 넣었다.
쿠구구궁!
크리방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포기하고 축 처졌다.
그와 동시에 김동수의 마법이 사라졌다.
“10팀 레이드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을 끝으로 테스트가 종료되었다.
팀원들은 대련장 중심으로 모였고, 심사위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긴장감이 극에 오르는 시간.
김찬규와 한혁은 서로 잘했던 부분을 짚어주고 있었다.
김현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초반에 나간 멘탈이 후반에야 겨우 돌아온 모양이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스포트라이트는 나와 김동수 쪽으로 모두 쏠려 버렸다.
회의가 끝났는지 사미영이 마이크를 잡고 일어났다.
“발표하겠습니다. 10팀에서 다음 테스트를 받을 사람은…….”
잠깐의 정적.
사미영이 살며시 웃더니 합격자를 발표했다.
“김동수, 오유성입니다.”
계획대로였다.
* * *
50명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30명.
심사위원들이 나간 뒤에, 30명이 모여 다음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련장 중심으로 모인 30명을 대상으로,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다.
“다음 테스트는 단체전입니다.”
5 대 5로 붙어서 상대방 팀을 모두 쓰러뜨리는 경기였다. 이번 역시 5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필요했다.
“승자 팀에서는 네 명이 올라가게 되며, 패자 팀에서는 한 명만 올라가거나 아무도 못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김세아 팀을 제외한다면, 모두 5명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팀이 만들어져야 했다.
“테스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새로운 팀을 편성하겠습니다. 김세아, 최정환, 한서희, 김동수, 박찬규, 이종필.”
진행자가 6명의 이름을 불렀다.
“이들은 이번 레이드 테스트에서 고득점을 받은 6명입니다. 여러분은 순서대로 한 명씩 지목하여 팀을 꾸리시면 됩니다. 지목받은 사람은 거절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주어집니다. 그 뒤에는 지목된 팀으로 들어가야 하니 신중히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이종필 헌터부터 지목해 주시면 됩니다.”
키가 조금 작고 안경을 쓰고 있는 이종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생각외의 인물을 입에 담았다.
“이찬혁 헌터를 뽑겠습니다.”
옆을 보니, 이찬혁이 약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여기서 거절한 뒤에, 아무도 뽑지 않는다면 분명 김세아에게 뽑힐 것이다.
그러나 거절한 뒤에 다른 사람에게 뽑힐 수도 있었다.
잠깐의 고민을 마친 이찬혁이 거절 의사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이종필은 결국 다른 헌터를 데려갔고, 뒤이어 주르륵 자신들의 팀원을 고르기 시작했다.
자신과 호흡이 잘 맞거나.
조합을 보고 맞춘다거나.
강한 사람을 뽑는다거나.
팀장마다 뽑는 기준은 달랐다. 결국 김세아의 차례가 오면서, 이찬혁은 김세아의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두 번째 돌아온 순서에서 이종필은 또 예상외의 이름을 호명했다.
“오유성.”
이쯤 되자 뭔가 냄새가 났다.
나나 이찬혁이 2군 헌터이지만, 1군 헌터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게 다일 뿐, 다른 1군 헌터들에 비해 그렇게 메리트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종필이라는 자는 나나 이찬혁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수상해.’
권력 싸움이 있다는 가정하에 생각하자, 김세아의 팔다리를 자르려고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단체전은 레이드보다 더욱 팀의 단합력이 중요했다. 당연히 김세아와 이찬혁, 내가 팀을 먹는 것은 유리한 편이었다.
호흡을 길게 맞춰왔으니까.
그런 관점에서 이종필의 행동은 팔다리를 자르겠다는 심보로 보였다.
“거절하겠습니다.”
내가 거절하자 이종필은 결국 다른 헌터를 뽑았다.
박찬규가 다음 사람을 뽑았고, 김동수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최정환과 한소희도 다른 이름을 불렀고, 결국 나도 김세아의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김동수가 나를 뽑았다면 무조건 그 팀으로 들어가야 했다.
함께 하자고 했으면서도 나를 뽑지 않은 이유.
김동수는 내가 김세아의 뒤통수를 칠 역할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대전 상대는 테스트 당일 발표됩니다.”
진행자의 말을 끝으로 레이드 테스트가 모두 끝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고, 나 또한 김세아, 이찬혁과 함께 나갔다.
혹시나 모를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잘 헤엄쳐 나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띠링.
한민찬에게 부탁했던 것에 대한 메시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