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56화
16장 투기장 5층(7)
남은 시간 동안, 주변에 널린 몬스터를 잡으면서 포인트를 수급했다.
그리고 4시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광장으로 향했다.
분명 영주는 그곳에서 직접 바드에 대한 처형을 진행한다고 했다.
지면을 박차며, 바람을 가르고 앞으로 달렸다.
산 중턱에 있는 바드의 아지트가 보였다. 이제 얼추 다 와 갔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정도.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충분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려, 건물 위로 몸을 날렸다.
그러곤 저 멀리 보이는 광장을 향해 직선으로 몸을 날렸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전에는 튀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숨어다녔지만, 이제 그릴 필요는 없었다.
살인자를 찾았으니 이제 시련도 끝이었다.
광장의 끄트머리에 있는 건물 위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영지민들과 용병들이 모여 있을 뿐, 주인공은 도착하지 않았다.
밑으로 내려가, 영지민들의 틈 사이로 들어갔다.
“아직인가…….”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저 멀리에서부터 말소리와 함께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영주의 마차.
마차는 광장 정 중앙에 세워졌다. 그곳에서 영주가 내렸고, 뒤에 있는 말에서 바드가 내려졌다.
바드의 모습은 초췌했다.
볼은 훌쭉 들어갔고, 온몸에 구타에 대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래도 영주와 버금가는 강한 자인 바드가 저런 흔적을 가지게 된 것은 양팔에 달린 수갑 때문인 것 같았다.
푸른빛을 내는 수갑.
아마도 저게 무슨 작용을 해서 바드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옆에 있던 병사들에 의해 바드가 질질 끌리듯이 광장의 중심에 설치되어 있는 단두대로 올라갔다.
“크윽!”
나무의 움푹 파인 부분에 바드의 목을 올리듯 눕히고, 그 위로 다시 나무를 올렸다.
목이 고정되었고, 팔과 다리에는 쇠사슬을 추가로 달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주는 고귀한 걸음으로 단두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사가 자신이 들고 있던 검집을 건넸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든 영주는 검집을 기사에게 넘겼다. 날카로운 검신과 함께 빛이 반사되어 휘황찬란했다.
바드의 앞에선 영주가 입을 열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하냐.”
“큭큭큭…… 아주 X같은데. 심판관이라도 나타나서 내 억울함을 알아줬으면 좋겠네…….”
“심판관? 그런 분이 이런 촌구석 영지에 올 리가 없을 텐데…….”
그 뒤의 말은 영주가 조그맣게 얘기해서 듣지 못했지만, 입 모양이 아주 자세히 보였다.
-억울한 것을 풀어줄 사람이 없군.
영주는 다시 상체를 세워 영지민을 보 외쳤다.
“지금부터 살인자 바드에 대한 처벌을 내리겠다. 소중한 영지민을 네 명이나 죽였으며, 다른 용병단 3명 또한 죽였다.”
감정을 다듬은 영주는 아주 힘 있고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살인자 바드에게 사형을 내린다.”
그러곤 자신의 검을 들어 크게 내리그었다. 그때 영주의 표정은 마치 자신의 뜻대로 됐다는 듯 웃고 있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네.’
챙!
나는 이형환위로 단두대에 있는 바드에게 다가가 검을 들어 영주의 검을 막았다.
웅성웅성.
내 행동에 영지민들은 물론, 용병들 또한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영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때문에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
눈가가 파르르 덜리고, 반쯤 올라간 입꼬리가 영주의 심정을 알려주었다.
“뭐…… 하는 짓이냐. 살인자를 막다니.”
분노 가득해 보이는 목소리에, 나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영주 앞에 섰다.
“확신을 갖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이 살인자 새끼야.”
나는 영주를 향해 결투장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내 몸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빠른 확장과 함께 주위를 가득 채웠다.
순간, 허공에 뜨는 부유감이 들었다.
하얀빛이 사라지며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는 영주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몸은 허공 위에 떠 있었다. 밑에는 마법진처럼 생긴 커다란 원형 빛이 보였다.
그 밑으로 영지민들과, 단두대에 있는 바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밑에서 위로 고개를 들어, 나와 영주를 보고 있었다.
“시, 심판관이다!”
영지민 중 한 명이 외쳤다. 그 뒤로 하나둘 영지민들이 심판관을 외치며 환호를 했다.
영주의 말도 그렇고,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심판관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판관이라니. 대단한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영주의 존대.
그로 인해 심판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우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긴. 살인자를 처리하라는 명령 때문에 온 거지.”
“하하하.”
영주는 호탕한 척 웃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나라니. 심판관께서 뭘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결투장……. 무고한 사람에게 사용한다면 심판관 자격에 박탈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발뺌하려는 영주의 모습에 나는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적당히 해. 너라는 건 다 알고 온 거니까. 완벽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럴 거면 확실하게 증거를 지워 버렸어야지.”
“그게 뭡니까.”
“이 살인은 애초에 던전 공략 이후에 일어났어. 그렇다면 범인은 던전에 갔던 사람 중 한 명이겠지.”
던전 공략을 위해 들어갔던 것은 영주와 기사단, 바드를 비롯한 용병들이었다.
애초에 던전 이후라고 했을 때, 살인자는 이들 중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드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고, 용병들에 대한 죽음을 들었을 때는 바드라는 생각으로 많이 쏠려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용병들뿐이 아닌 영지민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무차별 살인이라 그런 줄 알았지만, 바드를 겪어본 이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차별 살인을 할 정도의 사람은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으니까.
“처음 죽은 영지민. 네놈의 집사와 시녀.”
“제 집사와 시녀가 죽었다고 절 의심한 겁니까?”
“의심은 네가 당해서 죽인 거잖아.”
던전에 다녀온 뒤,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눈치챘으니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영주의 가장 최측근에서 보좌했기 때문에, 조금의 변화라도 금방 잡아냈을 것이다.
그것이 불안했던 지금의 영주는 최우선적으로 그 둘을 죽인 것이었다.
그러고서 영주는 용병들을 죽인 것이었다.
“막상 죽이니까. 네놈이 한 짓이 너무 티가 났지. 안 그래? 그래서 대타를 만들기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용병들을 죽인 거잖아.”
내 이야기가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지, 영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메이슨의 친우였던 기사를 죽이곤 일부러 바드와 메이슨의 사이에 불을 지폈던 거야. 그래야 나중에 메이슨을 죽였을 때 바드에게 이목이 확 쏠릴 테니까.”
“메이슨을 죽인 것은 명백히 바드였습니다. 그의 단검 또한 증거물로 나왔습니다.”
“뭐. 던전에서 잊어버린 걸 네놈이 주웠을 수도 있고. 중요한 건 이거야.”
나는 던전에서 주웠던 아이템을 들어 올렸다.
목걸이.
금으로 이루어진 목걸이의 끝에는 둥그런 모양의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이게 뭔 줄 알아?”
뭔지 몰라 눈알 굴리는 영주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걸 모른다는 것은 저 녀석은 영주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앞에 있는 녀석에게 설명해 주었다.
“영주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야. 그의 가족사진이 담겨 있지. 그 어느 순간에도 풀지 않고 항상 목에 걸고 다녀 영주와 친한 자들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
“큭큭큭…….”
영주가 자신의 배를 부여잡더니,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내가 영주가 아니면 뭐라는 거지?”
영주를 죽이고, 자신이 그 행세를 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기 힘들다는 몬스터.
“도플갱어.”
내가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일까, 영주, 아니, 도플갱어의 표정이 빠르게 썩어갔다.
그러곤 나를 죽이기 위해 검을 들고 빠르게 다가왔다.
챙!
나는 검을 들어 도플갱어의 공격을 막았다.
“왜 이제 슬슬 겁이 나나?”
“큭큭큭, 겁은 무슨……. 네놈을 죽이고 네놈이 가진 힘까지 내가 가질 것이다!”
단순히 용병들을 죽인 게 아니었다. 자신의 힘을 더욱 키우기 위해, 강한 놈들을 골라 죽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드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영주를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는 바드가 죽는다면, 무조건 자신이 의심받았을 테니까.
아무리 강한 도플갱어라고 해도 용병들과 기사단의 합공은 두려웠을 것이다.
그들에게 던전 또한 공략당했으니까.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
나는 검을 쳐내고, 몸을 회전시키며 빠르게 휘둘렀다. 몰아치는 검격에 도플갱어의 몸이 뒤로 밀렸다.
챙!
강한 내 검격으로 인해 도플갱어의 자세가 무너졌다. 여러 개의 빈틈 중 한 곳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다.
서걱!
내 검이 도플갱어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피가 튀기며 도플갱어가 주춤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던 도플갱어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도플갱어의 몸을 완전히 감싼 뒤, 빠르게 사라졌다.
그곳에는 영주의 모습이 아닌,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으로 변해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목소리까지 완전히 바뀌어 가녀린 여성의 음성이 나왔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았다.
이미 도플갱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내가 검을 들고 다가서자, 메이드복을 입은 도플갱어의 표정에서는 아쉬움이 드러났다.
“쳇. 안 통하는군.”
마무리를 짓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며,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빠르게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재빨리 몸을 움직이면서, 내 검을 막기 위해 도플갱어가 뒤늦게 검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내 검이 빨랐다.
“으아악!”
도플갱어의 팔 한쪽이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검은 연기가 일어났고, 이번에는 메이슨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광장에서 대화를 나눴던 모습을 봤던 것일까.
도플갱어는 메이슨의 모습을 한다면, 내가 쉽게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안 통한다니까.”
서걱!
도플갱어의 목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련을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보상 : 50,000p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 * *
대기실로 이동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직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 발칸이 나를 보며 물었다.
-끝났나?
“그래.”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 이번 시련에서 겪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또 다른 세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 2층을 패스하기 위해 여러 종족이 사는 곳도 가 보았다.
하지만 사람을 마주한 곳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던, 그들의 모습은 진짜였다. 그들은 살인자들에 대해 정말 두려워했고, 몬스터들로 인해 힘들어했다.
“발칸. 내가 처리한 푸란 마을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세상#%@이다. 그러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제일 중요한 부분들이 안 들리잖아.”
-어쩔 수 없다. 투기장의 특성상 네놈이 너무 낮은 층에 있어 정보가 풀리지 않는 거니까. 당분간은 위로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해라.
“그래. 근데 넌 어떻게 되는 거냐?”
발칸은 내 스마트폰에 귀속 각인 되어버렸다. 이곳에서 내가 귀환하게 된다면 발칸도 함께 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귀환합니다.]
* * *
띠링 띠링 띠링!
귀를 따갑게 하는 알람 소리에 눈이 확 떠졌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 잠금을 풀고, 알람 해제를 위한 버튼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반쯤 잠긴 눈을 다시 뜨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종을 치고 있는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따라온 거냐?”
-아마도?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