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54화
16장 투기장 5층(5)
“뭘 봐.”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 바드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이를 갈며,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잡으려는 놈을 건드려?”
어설프게나마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것 같았다.
“죽게 내버려 뒀어야 했나 보네.”
“뭐라고?”
바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다는 듯 받아쳤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며 바드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부들거릴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처리해라. 그래야 돈이라도 좀 벌지 않겠어?”
오우거 족장은 잡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오우거들을 처리하기 위해 병사들과 용병들이 싸우고 있었다.
나는 바드를 무시하고서 다른 오우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는 바드를 두고 앞에 있는 오우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내 눈에 오우거들은 귀한 포인트였다.
남은 오우거들은 빠르게 정리되었고, 오늘 이뤄진 토벌은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며, 멜릭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우거 족장에 현상금이라도 걸렸습니까?”
“그럼. 오우거 서른 마리는 잡아야 할 돈이 한 놈의 목에 걸려 있지.”
메이슨의 지시하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챙겨, 영지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제 돌아갑시다.”
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놀라워했다. 하나같이 내가 오우거 족장을 잡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방제국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구만. 수련생임에도 오우거 족장을 한 방에 죽이다니. 동방제국에서 제일 강한 것 아닌가?”
옆에 걷던 멜릭도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멜릭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보다 강한 사람이 널리고 널렸습니다.”
“호오. 한번 가 보고 싶군.”
내말에 멜릭이 흥미를 동했다.
동방제국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현실에 가면 나보다 강한 사람들은 널렸으니까.
“꽤 충격이었나 보네.”
멜릭의 시선을 따라가자, 약간은 넋을 놓은 듯 걸어가고 있는 바드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최강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것을 완전히 부숴 버린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메이슨이 병사들을 데리고 먼저 내려갔다. 중간에 나와 눈을 마주쳤고,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앞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바드 용병단은 산 중턱이 자신들의 아지트라, 멜릭 용병단과 나는 메이슨을 뒤따라 영지로 내려갔다.
여관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자, 베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토벌에 대한 정산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베일은 자신이 준비한 돈주머니들을 용병들에게 넘겼다. 돈을 받은 용병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동시에 오늘 한잔하자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베일은 모든 용병에게 돈을 건넨 뒤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우거 토벌은 어떠셨습니까?”
“예. 힘든 건 딱히 없었습니다.”
베일이 조금 두툼한 돈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용병들이 받았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큰 주머니였다.
“오우거 족장을 잡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예.”
“그에 대한 정산입니다.”
나는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꽤나 무게가 나가는 양에 놀랐다. 주변에 있는 용병들이 부러움의 눈초리를 보냈다.
‘적당히 유세 좀 떨어볼까.’
이 많은 돈을 나 혼자 꿀꺽하기보다는 적당히 쓰는 것이 좋아 보였다. 여차하는 순간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내가 주머니를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늘 술값은 제가 쏘겠습니다.”
그 말에 용병들이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이름이 울려 퍼졌고, 나는 조금 이따 가자는 말을 한 뒤에 방으로 올라갔다.
주점을 가기에는 아직 시간이 빨랐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잠금 해제를 하니, 발칸은 여전히 썬베드에 누워 있었다.
-왔나.
-시련은 어때?
“수상한 놈들이 슬슬 보여. 아마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거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현혹되지 마라.
“현혹될 거라도 좀 보였으면 좋겠다. 아, 여기서 얻는 돈 같은 건 나중에 가져가는 거냐?”
-의미없다.
“역시.”
썬베드에서 일어난 발칸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이제 누워서 쉬는 것도 힘들다.
“음…….”
나는 고민을 하다, 예전에 잠깐 시간을 때우기 위해 깔았던 미니게임을 실행했다.
발칸의 모습이 사라지고, 게임이 실행되었다.
구슬을 날려 벽을 부수는 게임이었다. 벽에는 숫자가 적힌 만큼 때려야 하고, 위에 있는 구슬을 먹으면, 날아가는 구슬이 늘어났다.
최고기록은 453.
-호오. 신기하군.
구슬을 날리는 쪽에 조그마한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구슬 쏘는 기계 위에 앉아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구슬을 쏴서 벽돌 부수면 돼.”
똑똑.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갑옷을 입고 있는 메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며 진중한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성공적인 오우거 토벌로 인해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영주님께서 직접 참여하라는 지시를 보냈으니 꼭 와라.”
자신의 말을 마친 메이슨은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어제 일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영주라…….’
영주가 직접 참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축제에 나타난다는 것으로 보였다.
드디어, 비밀에 싸여 있던 영주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 * *
영지에 있는 광장으로 나가니, 영지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지민들은 음식들을 준비하고, 테이블을 세팅하기 바빴다. 광장은 호화롭지는 않지만, 꽤나 분위기 있어 보이게 바뀌었다.
영지에 소속된 기사들과 병사들은 미리 광장에 도착해 있었다. 일부는 경계 임무를 섰고, 일부는 영지민들이 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준비가 끝나갈 무렵, 용병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용병들이 나타나자 몇몇 영지민들이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이 보였다.
“와 있었군.”
멜릭이 아는체하며 옆으로 다가왔다. 그 또한 몇몇 영지민의 표정을 봤는지, 씁쓸한 표정을 잠깐 지었다.
뒤이어 바드 용병단도 나타났다.
그리고 멜릭이 왔을 때는 그나마 양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에 따라 용병이라는 직업에 거부감을 가질 수는 있었다.
그러나 바드가 나타났을 때, 영지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감정은 적대감이었다.
영지민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바드는 그런 거 하나 신경 쓰지 않고 광장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하 용병들이 이곳저곳에서 준비된 음식과 술을 가져왔다.
그러곤 이 축제를 만든 주인이 나타나기도 전에 술과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또라이긴 한데…….’
현실에 있는 용병들도 막 나간다는 소리는 듣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내 눈에 바드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쿵! 쿵!
그때, 북소리가 들리며,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마차를 끄는 말은 딱 봐도 품종이 좋아 보였다.
몬스터 중에서는 말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것들도 있어 어쩔 수 없이 말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털에, 각 잡힌 근육.
말이 몰고 온 마차에서 사람이 한 명 내렸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으며, 풍기는 아우라가 일반 사람과 달랐다.
영주.
푸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얼굴을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영주라는 말에 중후하고, 나이가 좀 있는 그런 사람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주는 3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어 보였다.
마차에서 내린 영주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바람을 쐬니 좋구나.”
그러곤 영지민들과 용병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영지민들은 멀쩡한 영주의 모습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영지민들이 영주에 건강을 걱정할 수는 있지만, 저렇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영지민에게 사랑받는 영주.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직접 같이 참가해야 했지만, 병사들과 용병들이 훌륭하게 오우거를 토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로써 푸란 영지는 또 하나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감격한 것인지, 약간의 목이 잠기는 듯했지만 영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비록 이제 시작이겠지만 다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주라 그런지, 대중을 휘어잡는 솜씨가 상당했다. 이번에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또한 내가 누워 있는 동안의 이야기도 모두 들었다. 몸은 다 나았으니, 영지 내에서 끔찍한 일을 벌이고 다니는 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잡겠다.”
메이슨이 가져온 술잔을 들어 올리며 영주는 연설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니 오늘같이 즐거운 날에는 마시고 즐겨라.”
연설의 끝과 함께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즐기며 광장은 시끌벅적해졌다.
영주의 명령이지만, 용병들과 영지민들의 분위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용병은 용병끼리.
영지민과 기사단끼리.
따로따로 나뉘어 축제를 즐겼다. 그나마 베일이 데려온 용병 쪽이 영지민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앉아, 안주를 집어 먹으며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특히, 오늘 처음 본 영주 쪽에 포커싱을 두었다. 아직 몸이 완전하게 돌아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연설은 잘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들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때, 술을 꽤나 많이 마셔 얼굴이 붉어진 메이슨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어제는 미안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은 채, 메이슨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죽었던 기사는 나와 같이 이곳에서 자란 친구였다. 근데 그 친구의 여자가 용병에게 추행을 당했다.”
해안가에 있던 영지민의 태도.
그리고 지금과 같은 영지민들이 바드 용병단을 대하는 태도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친구는 사과를 받기 위해 바드 용병단에 찾아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드가 막아서니 힘으로는 밀어붙일 수 없었으니까.”
손에 있는 술을 들이켜고 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있던 던전에서 큰 공을 세웠고, 영주님의 명령하에 용병과 친구는 대결을 했다. 정당한 승리를 거뒀고, 용병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렸다.”
그 합당한 처벌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볍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 친구가 죽었다. 사용된 무기는 단검. 그래서 가장 단검을 잘 다루는 바드를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이로써, 어젯밤의 일이 모두 정리가 되었다.
“이해합니다.”
자신에게도 김세아나 이찬혁에게 끈끈한 정 같은 것이 생겨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동료들에게 추잡한 화가 끼쳤을 때 어떨지, 메이슨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맙네.”
메이슨이 잔을 내밀었다.
나도 잔을 내밀어서 잔을 부딪쳤다.
메이슨은 슬픈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왠지 눈빛이 슬퍼 보였다.
그때, 내 옆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드.
그 또한 술에 취해 있었다.
“네놈. 내가 건드리지 말라는 데 건드려? 죽고 싶냐!”
바드가 내 멱살을 잡아들려는 순간, 내가 몸을 살짝 뒤로 빼서 손을 피했다. 그러자 무게중심을 잃은 바드가 우스꽝스럽게 몸을 비틀거렸다.
“이 새끼가!”
또다시 나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메이슨이 내 앞을 막아서 주었다.
“뭐하는 짓이냐. 술 취했으면 애들 데리고 곱게 돌아가라.”
그 순간, 나를 향했던 핀트가 메이슨에게 맞춰지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주변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 둘을 때어놓았다.
바드 밑에 있는 용병들이 바드를 데리고 사라졌고.
병사들이 나타나 메이슨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 축제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자, 영지민과 용병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 * *
다음날, 나는 살인 사건이 또 일어났다는 말에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단검에 찔린 채 바닥에 쓰러진 메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는 피가 낭자했으며, 주위에는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이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