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52화
16장 투기장 5층(3)
일단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곳에 온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 하늘에는 해가 떠 있었다.
‘일단 영지부터 돌아볼까.’
먼저, 대략적인 위치 같은 것을 파악하기 위해, 시야가 전체적으로 들어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해안가 쪽.
그곳에서 위를 쳐다보니, 대략적인 영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안가를 등지고 위를 보았을 때, 왼쪽으로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영주가 사는 곳으로 보이는 성이 있었다.
‘작네.’
그러나 내 상상과는 다르게 성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원래 저 크기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작아 보였다.
정면은 보이는 건물들은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특정 포인트만 기억한 뒤에 해안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라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길을 걸어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영지민들이 나를 보며 긴장하고,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외지인이라 그런가.’
길을 걷다 보니, 해가 사라지고 달이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영지민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나를 경계하지 않아, 뭘 물어봐도 잘 답해줄 것 같았다.
“여기 주점은 어디 있습니까?”
주점이라는 소리에 영지민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잠깐 주먹을 쥐었다가 풀고는 대답했다.
“저쪽으로 가면 있을 거요.”
영지민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주점을 찾은 것 하나로 영지민의 태도가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영지민이 알려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뒤로 영지민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용병 새끼들…….”
용병에 대해서 뭔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이곳에 오면서 느꼈던 영지민들의 시선이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외지인이 아니라, 용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외지인이나 용병이나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이상한데?’
베일도 그랬고, 메시지에도 분명히 나와 있었다.
이곳은 몬스터들과 해적의 침략으로 먹고살기 힘든 영지였다. 그걸 상당 부분 해소시켜 준 것이 용병들일 텐데, 그 남자의 반응은 많이 이상했다.
그냥 용병을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는 사이, 주점에 도착했고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다양한 음식 냄새와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는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귀엽게 생긴 여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메뉴를 모르기에 나는 현실에서 써먹던 주문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서 제일 많이 나가는 거로.”
“예.”
돈은 베일이 줬기에 충분했다.
나는 음식과 술이 나오길 기다리며, 귀를 열고 주변에서 나누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내 앞에 있는 일행에게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가 자신이 얻은 정보를 털어놓았다.
“오늘 던전 하나 나왔다더라.”
그의 말에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낀 남자가 술을 들이켜며 좋아했다.
“던전? 이거 또 한탕 할 수 있는 건가. 하하하”
그들을 보며, 민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난 빠지련다. 저번 던전 공략한 뒤에 죽은 놈들 생각 안 나냐?”
“아이고. 자식아. 이렇게 당길 수 있을 때 확 당길 생각을 해야지. 던전의 저주 같은 쓸데없는 소문을 믿을 때냐?”
검은 안대를 낀 남자가 민머리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럼에도 민머리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이 정도면 충분히 벌었다. 요새 분위기도 좋지 않고 난 몸 사리다 여기서 뜰 거다.”
새로운 던전의 발견.
용병들의 죽음.
그리고 던전의 저주.
나는 좀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 얘기 좀 자세히 들을 수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엔 나를 이상한 놈으로 쳐다보더니, 검은 수염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 힘깨나 쓰던 기사 양반 아닌가?”
왠지 낯이 익다 했더니, 아까의 전투 상황에서 오우거와 싸우던 용병들이었다.
“일단 와서 앉지.”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가?”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함께 싸웠다는 것 때문인지, 이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방금 전 나누었던 것에 대해 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물론 술값은 제가 쏘겠습니다.”
이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알지만, 공짜 술은 또 다르니까.
예상대로, 그들은 좋다면서 술과 안주를 팍팍 시켰다.
내가 시킨 것 또한 이쪽으로 가져오면서, 먹을거리들이 풍부해졌다.
나 또한, 거품이 가득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 던전의 저주라는 게 뭡니까?”
그 질문에 검은 안대를 쓴 남자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해 주었다.
“최근에 북쪽 산맥에서 던전 하나를 발견했고, 공략하는 데 성공했지. 근데 그 뒤로 이상한 일이 나타난 거야.”
“그게 뭐죠?”
“던전에 들어갔던 용병 한 명이 죽었어. 거기서 끝이었다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벌써 3명이나 죽었지 아마?”
검은 안대의 말에 민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3명이다.”
“그 죽은 용병들의 공통점이라고는 던전을 같이 들어갔다는 것 말고는 없었거든. 거기다 던전에 갔다 온 이후로 죽어 나갔으니 던전의 저주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지.”
술을 마신 검은 안대가 민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용병들 대부분이 쉬쉬하며 넘기는데 이 녀석처럼 그걸 믿는 놈들도 있지.”
“정말 저주 같은 것에 걸려 죽은 겁니까?”
내 질문에 수염이 긴 남자가 대답했다.
“뭐 무기에 당한 흔적은 없다고 들었네만 시체는 영지 기사단들이 빠르게 치워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네.”
민머리 남자가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냥 넘기기엔 이곳 분위기가 너무 흉흉해.”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말에, 이곳에 오기 전 영지민의 반응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이들이 알고 있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용병들과 영지민의 사이가 안 좋습니까?”
“나쁘진 않을 텐데.”
“몬스터도 처리해 주겠다, 이렇게 술도 소비하면서 돈도 쓰겠다 나쁠 이유는 딱히 없지.”
수염과 민머리가 자신의 의견을 내밀었다. 저것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생각해 본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대답은 검은 안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며칠 전 일 때문 아니야? 그 영지민 여자 건드린 거.”
생각보다 민감한 일인지, 볼륨이 줄어들었다. 검은 안대의 말은 가까이 앉은 사람이 아니면 듣기 힘들었다.
그의 말에 민머리와 수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해안가 쪽 사람들과는 조금 사이가 좋지 않아. 우린 아니지만 용병들이 꽤 사고를 쳤거든. 최근엔 좀 심각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내가 그것에 대해서 더 파고들려고 할 때, 주점 안으로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얼굴에 긴 흉터가 있는 강인한 인상의 남자 한 명을 중심으로 5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들을 보며, 내 주변에 있던 용병들은 입을 다물었다.
‘저들인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모르겠지만, 앞에 있는 용병들의 반응이 곧 대답이었다.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아마 그 때문에 이들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들은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갔지만, 용병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크흠.”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는 이미 끝난 것 같았다.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으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제가 술 한 번 더 사겠습니다.”
“좋지.”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다음에 봅시다.”
나는 인사를 마치고, 종업원에게 가서 계산을 마쳤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두컴컴했다.
거기다 바닷바람까지 불어,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달빛을 친구 삼아 숙소로 걸어갔다.
‘일단 사람이 죽은 건 확실하네.’
그 용병들이 메시지에 포함된다면, 2명의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이다.
용병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봐선, 이 정보는 영지민 쪽에서 얻어야 할 것 같았다.
“끄아아악!”
그때, 내가 가는 여관 방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렸다.
살인자를 발견한다면, 빠르게 이 층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기사가 보였다. 입에서 쿨럭거리며 피가 줄줄 흘렀다.
심장에 박힌 단검.
‘죽었다.’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죽은 기사 쪽으로 다가갔다.
“누구냐!”
어두운 공간에서 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땀을 흠뻑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아 이곳까지 달려온 것 같았다.
나는 한껏 경계하고 있는 기사에게 양손을 들며 말했다.
“비명 소리가 들려 와봤습니다.”
기사는 나를 경계하면서도, 바닥에 쓰러진 기사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다 이내, 죽은 것을 확인했는지 기사의 인상이 찌그러지며 나를 쳐다보았다.
“네놈 짓이냐.”
“이쪽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오던 길이었습니다.”
“신분증을 꺼내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자, 기사가 검을 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단 체포하겠다.”
기사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섣불리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차분히 생각하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지금 와서 기사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거야말로 이 시련을 망치는 지름길이었으니까.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오유성 님?”
뒤를 돌아보니 베일이 이쪽을 걸어오고 있었다. 기사도 베일은 잘 아는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베일은 이곳에서 일어난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곤 기사를 보며 말했다.
“메이슨? 무슨 일이야.”
“그쪽에 있는 남자 아는 사이냐?”
나를 가리키는 기사의 말에, 베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오다가 만난 은인이야. 이분이 아니었다면, 영지로 가져올 물건들은 하나도 없었을 거야.”
“신분증이 없던데.”
“동방제국에서 온 기사 수련생이라더군. 정 의심스러우다면 이분의 신분은 내가 보장하지.”
그제야, 기사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다. 하지만 경계를 늦춘 것은 아니었다.
뒤이어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도착하고, 기사는 그들에게 이 일대를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베일과 함께 여관으로 이동했다.
베일이 나를 보며 말했다.
“최근에 영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로 영지민 3명에 용병이 3명이나 당했군요.”
“범인은 아직도 잡지 못한 겁니까?”
“예. 일단은 오유성 님도 외지인이시니 마을에서 행실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특히 이런 야밤에 혼자 돌아다니시는 것은 피해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여관에 도착하자, 세레나가 맞이해 주었다. 그걸 확인한 베일은 인사를 하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올라온 나는 포인트 상점에서 야행복을 구매했다.
[야행복을 구매하셨습니다.]
침대 위에 검은색 옷 상·하의와 두건이 나타났다. 나는 빠르게 야행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어두운 곳에서 나 하나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쉬웠다.
지붕 위로 올라가 기척을 숨기고,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 주위를 병사들이 돌아다니며,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메이슨이라던 기사는 사건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자신의 동료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심장에 박힌 단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런 짓을 할 새끼는 그놈밖에 없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난 메이슨이 병사들을 소집했다.
“2, 3분대는 계속 수색을 실시하고, 1분대는 나를 따라와라.”
병사를 이끌고 가는 메이슨을 바라보며, 나도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