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51화
16장 투기장 5층(2)
정신이 돌아오면서, 눈을 뜬 나는 상황 파악부터 시작했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가득한 울창한 숲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비포장도로처럼 보이는 산길이었다. 울퉁불퉁하고 자잘한 돌들이 깔려 있었다.
나는 그 중심에 서 있었고, 눈앞에는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시련 : 미치광이 살인마를 죽여라.]
서부 외곽에 존재하는 소영지 푸란.
푸란은 북동남이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은 해안가로 이루어진 영지입니다.
산맥에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해안 너머에는 난폭한 해적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던 그곳의 영지민들은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새로 온 영주가 부임하면서 상황이 많이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곳에서는 벌써 5명이나 죽은 잔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범죄를 척살하는 ‘심판관’입니다.
푸란으로 가서 미치광이 살인마를 죽이세요.
살인마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지목하면 간이 투기장이 만들어집니다.
단, 투기장은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투에서 죽인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 경우, 시련은 실패입니다.
제한 시간 : 7일
클리어 조건 : 살인마를 죽여라.
보상 : 6층. 50,000p
실패 : 1. 시간 초과의 경우 - 재도전, 패널티
2. 무고한 사람을 죽일 경우 ? 사망
3. 범인에게 패배할 경우 ? 사망
차근차근 읽어 보고나니, 임무 자체는 발칸이 설명해 준 것처럼 간단했다.
살인마를 찾아서 죽여라.
하지만 무턱대고 의심 가는 사람을 죽일 수 없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패널티로 인해 쉽사리 행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단 한 번의 기회.
거기다 제한 시간까지.
간단한 듯하지만, 여러모로 까다로운 시련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친절하게도 내가 가야 할 방향이 화살표로 눈앞에 나타났다.
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단 시련도 시련이지만, 발칸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봐야 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지문 인식을 통해 잠금을 열었다. 다행히 내 지문을 지운 것이 아니라, 발칸의 지문을 추가한 거라 열리지 않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금이 열리고, 보이는 화면에는 SD캐릭터로 변한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발칸은 내가 깔아 놓은 어플들 위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통화를 하듯 스마트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기가 네가 살고 있다는 그곳인가?
‘그럴 리가.’
나는 스마트폰의 하단부에 있는 마이크 부분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말해보았다.
“들려?”
조그마한 발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들린다.
“휴. 일단 네가 있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니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싶었다.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가 버리다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런 기계 쪽이나 마법에 관한 지식은 하나도 없는 나에게 지금 상황은 무척이나 답답했다.
일단 차근차근 하나씩 확인해 보기 위해, 발칸에게 말했다.
“거기서 나올 수 있겠어?”
-무언가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어, 내 힘으로는 힘들 것 같다.
“그래?”
나는 혹시나 싶어, 소환사들이 하던 방식대로 행동해 보았다. 스마트폰에 약간의 마나를 흘리며, 시동어를 외웠다.
“소환!”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변한 것은 있었다.
내 마나로 인해, 얼마 없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이거 어떻게 하지?”
-소용없어. 아무래도 이 물건에 내 영혼이 각인 된 것 같다.
“그런 건 좀 빨리 말해.”
현실에서도 이런 상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상위 랭커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 중에 에고 소드라는 것이 있었다.
검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건 에고 폰이라고 불러야 하나…….’
-일단은 시련을 진행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케이.”
-아, 그리고 이곳에선 심판관이라는 것은 숨겨야 시련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편할 거다.
“그 정돈 나도 잘 알고 있어.”
이에 관련된 일은 나중에 처리해도 되었다. 당장은 시련을 깨는 것이 더 중요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화살표를 따라 쭉 걸어가던 도중 무슨 소리가 들렸다.
챙! 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누군지 모를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어리바리 까지 말고 정면을 봐!”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속도를 올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섯 개나 되는 수레가 있고, 주위로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행색을 보니 죄다 다양한 복장을 하고 있어, 어딘가에 소속된 것은 아닌, 용병이 아닐까 싶었다.
용병들은 초록색 피부의 사람의 두 배정도 되는 크기의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말 허벅지만 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몬스터의 정체는 오우거.
오크와 매우 비슷한 면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팔이 굵고 길었다. 약간의 배가 볼록하게 나왔지만, 그건 살이 아니라 모두 근육이다.
용병들 3~4명이 하나의 오우거를 맡고 있었다.
“조심해!”
“칼슨 허벅지를 노려라!”
용병들은 꽤나 능숙하게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우거의 수가 용병들의 수보다 많았다. 용병이 붙지 않은 오우거 두 마리가 첫 번째 수레에 있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 행렬의 주인 같은데.’
나는 검을 들고 중년 남성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들고 중년 남성을 내려치려고 할 때, 나의 마나가 서린 검이 몽둥이를 반으로 잘랐다.
바로 연이어 몸을 회전시키며, 오우거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200p를 획득하셨습니다.]
한 마리를 정리하고, 남은 한 마리를 처리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오우거의 왼쪽 허벅지를 베고, 중심을 무너뜨렸다.
자신의 몸집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오우거에게 다가가, 심장에 검을 찌르며 마무리 지었다.
[2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누…… 누구십니까?”
내 실력에 놀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유성이라고 합니다.”
“저는 베일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 오우거 놈들을 처리하는 것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눈빛을 보니, 오우거를 잡아준다면 간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확실히 도와주기 위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오우거들에게 다가가 정리하며 포인트를 쌓았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모든 오우거를 정리할 수 있었다.
옷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을 때, 베일이 다가와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건 사례금입니다.”
베일이 건네주는 조그만 주머니를 받았다. 그것을 확인한 베일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혹시 어디로 가십니까?”
“푸란으로 갑니다.”
베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처음에 어린 경계했던 표정보다는 기대감이 보였다.
“그곳에는 무슨 일로 가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심판관이라는 것을 숨기고, 준비하고 있던 멘트를 이야기했다.
“기사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구경하는 중입니다.”
“기사 지망생이셨군요. 그렇다면 같이 가시죠. 저희도 푸란으로 가고 있던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베일의 수레 행렬에 참여했다. 수레 행렬은 다시 푸란을 향해 움직였다.
베일에 수레에 앉아서, 나를 보며 말했다.
“혹시 동방제국에서 오신 겁니까?”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대충 대답했다.
어차피 7일이 지나면 나는 이곳에 없을 테니까.
“맞습니다.”
“동방제국의 기사들은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사례는 하겠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베일은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푸란 영지 출신입니다. 푸란 영지는 기사님도 알다시피 살기가 매우 힘든 곳입니다.”
베일은 그것을 시작으로 푸란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가 말해주는 것은 처음 안내 메시지에 있던 내용들이었다.
“주변에는 오우거들이 나타나고. 한 달에 한 번씩 해적들이 나타나 영지에 있는 식량이나 여성들을 데려갑니다.”
그러나 메시지로 보았던 것과 앞에서 슬픈 표정으로 베일이 말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많이 달랐다.
착잡한 마음과 자신이 태어난 영지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그나마 1년 전, 영주님이 새로 오시면서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몬스터 토벌도 직접 나가시고, 영지 발전을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하고 계시죠. 영지 일만 해도 바쁘신데, 최근에 오우거들의 공격이 거세졌습니다.”
베일이 용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도 오우거들을 처리할 겸, 상단의 호위를 맡긴 용병들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들과 함께 오우거를 사냥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우거를 잡는 것은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사례까지 해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푸란 마을에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거기다 포인트도 얻고, 사례금도 얻으니 일석이조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도와드리죠.”
내 말에 베일은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 * *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푸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레에서 내린 다음 영지를 쳐다본 나는 아름다운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수정 빛을 머금고 있으며, 햇빛으로 인해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산으로는 다양한 모습의 오두막집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영지민들의 표정은 메시지와는 다르게 활발하고 밝아 보였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하고 있기도 하고,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수레에 실은 짐을 정리하는 것을 맡기고, 내 옆으로 다가온 베일이 말했다.
나는 베일의 말에 적극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답군요.”
“당분간 묵으실 숙소는 제가 잡아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나는 베일의 뒤를 따라갔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밝은 분위기였다. 메시지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영지민의 밝은 모습이 인위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일을 감추기 위해, 더욱 밝게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오아시스.]
분명 처음 보는 글씨지만, 나는 읽을 수 있었고, 그 의미가 머릿속으로 번역되었다.
‘시스템이 좋긴 좋아.’
애초에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시스템으로 인해 가능했다.
베일은 오아시스라고 적힌 여관의 문을 열었고, 나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깔끔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건물처럼, 향긋한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홀에는 식사를 하기 위한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고, 오른쪽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베일과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오아시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세레나. 이쪽은 내가 모시고 온 손님이니 잘 부탁한다.”
세레나라고 불린 여성이 베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이 아이를 부르시면 됩니다. 제가 고용한 다른 용병들도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지내시면 됩니다. 비용은 오우거 토벌을 해주시는 대가로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베일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러죠.”
베일이 나가고, 나는 세레나에게 말했다.
“일단 방에서 좀 쉬고 싶은데.”
“따라오시죠.”
세레나가 안내해 준 방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내려가겠다.”
“예, 알겠습니다.”
세레나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마련되어 있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휴……. 평소엔 하지도 않던 연기를 하려니 어색하네.”
이곳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나는 이들에게 독특하거나 특이해 보이면 안 됐다. 그렇게 되면 시련을 진행하는 데 있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에 이종족이나,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 게 도움이 되었다.
“발칸.”
아무런 대답이 없어, 나는 스마트폰 화면 잠금을 풀었다.
그러자 기본 배경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세부에 있는 휴양지.
그리고 발칸은 썬 베드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발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뭐 하고 있냐?”
일광욕을 즐기던 발칸은 나를 보더니 되게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음료를 들이켰다.
-이런 좋은 곳이 있다니.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니 좋네. 아 시련은 클리어했나?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싶지만, 애초에 내가 이런 투기장에 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자세히 생각하는 것은 포기했다.
발칸을 찾은 이유는 이번 시련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아직. 힌트 더 없어? 이 마을 도저히 살인자가 있는 마을이라고는 안 보이는데.”
발칸의 입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만, 이상한 음이 깨지는 소리만 나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뭐라는 지 안 들리는데.”
-시련에 관한 내용은 자체 검열이 되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얘기해 줄 수 없고. 하루가 지났을 때, 힌트 하나가 나타날 거다.
“힌트?”
-그래. 살인자를 특정 지을 수 있는 힌트.
“일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겠네.”
-영지라도 돌아다녀 봐라.
“그건 당연히 하려고 했던 거고. 일단 알겠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옷차림새를 정리했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세레나가 다가와 물었다.
“어디 가시나요?”
“영지 구경 좀 하고 오겠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주점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모름지기 주점은 정보의 창고이니까.
‘술에 취한 작자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빠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