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47화
16장 투기장 4층(2)
-다음 적은 ‘흉폭’이란 단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거미 군주입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거미 군주를 죽이십시오.
승리 : 5,000p
패배 : 죽음
철컥.
철창이 빠르게 열리고, 2m는 넘어 보이는 기다란 막대기 같은 다리 2개가 보였다.
다리는 수북한 털이 덮고 있었고, 몸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8개의 다리가 모두 나타났다.
엄청난 크기의 몸체를 가진 거미.
4쌍의 홑눈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눈들이 살벌하게 돌아갔다.
-거미 군주는 지금 심각하게 배가 고픈 상태입니다. 그럼 경기 시작 하겠습니다아아아!
진행자의 말이 울려 퍼지고, 거미 군주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달려들 줄 알았던 거미 군주는 우리를 피해 최대한 뒤로 이동해 벽에 붙었다.
진행자의 말과 다르게 소극적인 상태로 나오는 거미 군주.
나는 검을 쥐고 거미 군주의 행동을 살폈다.
거미 군주가 배가 고픈 상태는 배란이 임박했을 때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바로 달려들지 않고, 일단 뒤로 갔다는 것은 이제 곧 새끼를 낳는다는 뜻이었다.
새끼를 안전하게 낳아야 했으니까.
‘신경도 안 쓰네.’
나를 제외한 나머지 투사들은 거미 군주의 행동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으니, 방금 전의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움직임이었다.
애초에 눈이 돌아버린 검은 수염 사내가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달려가 코가 큰 투사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머진 그 둘의 검투를 지켜보았다.
나 또한 지켜보았다.
코가 큰 투사는 방어적인 태도에 비해 꽤나 선방하고 있었다. 검은 수염 사내가 찌르는 살초를 잘 막아내며 역습을 노렸다.
자신이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코가 큰 투사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챙! 챙!
“하하하. 이거 순 겉멋이었잖아.”
자신감이 생긴 코가 큰 투사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점점 검은 수염 사내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게 똑똑히 보였다.
아마 다른 투사들도 보았을 것이다.
지금 검은 수염의 사내는 분노나 짜증이 아닌 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을.
코가 큰 투사가 자제력을 잃고 검을 휘두르며 체력이 빠진 타이밍에 상황은 역전됐다.
‘끝났군.’
코가 큰 투사는 검은 수염 사내가 빠르게 찌르는 공격을 막지 못하고 심장을 찔려 피를 토했다.
조금은 강렬한 빛이 코가 큰 투사의 몸에서 나와 검은 수염 사내의 몸으로 들어갔다.
검은 수염 사내가 자신이 흡수한 힘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크하하하하! 이거 좀 부족한데?”
그때, 거미 군주의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곤 빠르게 줄어들며, 무언가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만 한 알.
그 알이 깨지면서, 새끼 거미들이 껍데기를 깨고 기어 나왔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 새끼 거미들이 투기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눈알을 굴리더니, 투사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어딜!”
“뭐야. 이것들 잡아도 강해지는데?”
“징그러운 새끼들.”
투사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달려드는 새끼 거미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나도 앞에서 날아오는 거미 새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삭!
깔끔하게 반으로 잘려 나간 새끼 거미.
[200p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를 얻는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몸을 날리며 바닥에 있는 새끼 거미를 밟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검을 X자로 휘두르며, 두 마리 새끼 거미를 베었다.
순식간에 들어온 600p.
그러나 아직 앞에는 수십, 아니,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새끼 거미들이 끊임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삭! 삭!
투사들 모두 하나같이 앞에 있는 새끼 거미들을 죽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흡.”
나는 빠르게 날아오는 하얀 뭉치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거미줄 뭉치.
거미 군주가 사용하는 능력 중 하나였다. 저 거미줄 뭉치에 맞게 되면, 몸이 거미줄로 감겨 꼼짝도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으아악! 이거 뭐야!”
한 명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맞은 모양이었다.
투기장 벽에 붙어 하얀 거미줄 뭉치에 휩싸여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 저기 나 좀 살려줘.”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그에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다들 앞에 있는 새끼 거미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몸이 고정된 투사에게 새끼 거미들 다수가 다가가고 있었다.
“야 이 새끼들아! 나 좀 살려달라고!”
새끼 거미들은 자신들의 독니를 드러내며, 형제의 복수를 위해 투사를 향해 돌진했다.
‘저렇게 둘 순 없지.’
나는 새끼 거미들을 죽이며, 거미줄에 걸린 투사에게 다가갔다.
투사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의 앞쪽에 있는 새끼 거미들을 죽이곤 앞으로 가서 섰다. 주위를 둘러봤을 때, 이쪽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고, 고마워!”
“뭐가?”
나는 검을 꺼내 들어 투사의 몸에 찔러 넣었다. 정확히 심장을 노렸는지, 한 번에 죽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쳐다보더니 몸을 축 늘어뜨렸다.
[2,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축 늘어뜨린 투사를 향해 중얼거렸다.
“거미 새끼한테 주긴 아까워서 온 거야.”
아까부터 유심히 살폈기에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던 놈의 눈길은 거미에게 제대로 향했던 적이 없었다.
투사의 시체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간 상태 그대로 절명한 모습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거미줄에 휘감긴 것이다.
그리고 그 손잡이는, 거미를 공격하기 위해서 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남 죽여서 포인트 딸 놈이 뻔하지.’
옆의 다른 사람을 죽일 생각에 정신 팔렸기에, 남들이 다 피한 거미줄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목에 보이는 두 개의 자그마한 구멍.
새끼 거미의 독니에 물린 자국이었다.
어차피 죽을 녀석, 새끼 거미에게 죽을 바에는 내가 죽여 포인트를 얻는 쪽이 훨씬 이득이었다.
새끼 거미 10마리는 잡아야 하는 포인트를 간단하게 얻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랭크 7을 올리기 위한 포인트는 20만 포인트가 필요했다. 이 정도로는 턱도 없었다.
“크아악!”
“젠자아앙!”
거미 군주가 계속해서 쏘아 보낸 거미줄 뭉치에 투사들이 하나둘 당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고 할 때, 검은 수염 사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재밌는 짓을 하던데?”
“봤나?”
아무도 못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나는 검을 들어 빠르게 위로 쳐올렸다.
검은 수염 사내가 도를 들어 내 공격을 막았다. 동시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역시. 죽일 만한 재미가 있겠어.”
“X까.”
이 녀석만 죽이면, 당분간은 내 뜻대로 판을 만들 수 있었다. 뒤에 죽은 녀석도 검은 수염 사내의 탓으로 돌리면 되고.
어차피 검은 수염 사내는 다른 투사를 죽였기에 위화감을 일으켰다. 죽인다고 해서 당장 나를 적으로 돌릴 투사는 없었다.
검은 수염 사내가 도를 크게 휘둘렀다.
나는 검으로 막으며, 뒤로 몸을 뺐다. 최대한 많은 투사가 볼 수 있게, 투기장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왕 할 거면 확실하게.’
검은 수염 사내가 먼저 공격했고, 나는 정당방위로 녀석을 죽이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죽어라!”
검은 수염 사내가 소리치며, 도를 휘둘렀다.
순간, 잠시나마 내 쪽으로 이목이 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투사들을 보았다.
‘됐다.’
상황은 만들어졌고, 이제 결말만 지으면 됐다.
챙!
나는 검을 들어 도를 막았다.
힘을 주어 도를 퉁겨내고, 녀석의 머리와 심장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거센 공격에 검은 수염 사내의 표정도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비웃고 있던 표정은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
자신이 밀린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악물며 자신의 도에 마나를 실어 내리찍었다.
“으아압!”
나 또한 검에 마나를 두르고, 검은 수염 사내가 휘두르는 도를 맞받아쳤다.
실력 대 실력 싸움.
서걱!
검은 수염 사내는 도와 함께 몸이 반으로 잘려 나가며, 결투의 승자는 내가 되었다.
[6,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처음 죽였던 투사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은 포인트였다. 아무래도 남을 죽인 녀석일수록 더욱 많은 포인트를 주는 모양이었다.
거미 군주가 폭주하고, 우세했던 상황이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초반에 힘을 뺀 나머지 힘들어 보였다.
거기다 이미 거미 군주의 먹이가 된 투사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당장의 포인트도 중요했지만, 이다음에 얼마나 강한 적들이 나타날지 몰랐다.
일단은 이 정도에 만족하고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목청 터지도록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이!”
내 목소리를 들은 다른 투사들이 시선을 돌렸다. 나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정도로만 하고. 다음에 얼마나 더 강한 녀석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거미 군주는 빠르게 처리하는 게 어때? 여기서 힘 빼서 뭐 하자는 거지?”
내 의견에 흥미를 보인 다수의 투사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거미 군주는 누가 죽이지?”
그거야 당연했다.
“먼저 죽이는 놈이 임자지.”
“좋다.”
“좋아.”
모든 투사의 의견이 종합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남 주기 싫어하는 몇몇 투사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자의 의견은 묵살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소수 몇 명이 반대한다고 다수가 하는 일을 막을 순 없었다. 오히려 다수가 행동하니 빠르게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새끼 거미들을 죽이며, 대부분의 투사가 거미 군주를 향해 달려갔다.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끌어모아 거미 군주의 다리부터 공략했다.
거미 군주가 발악하듯이 자신의 독니에서 독을 뿜어냈다. 초록색 독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지직.
독이 닿은 부분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새끼 거미 두 마리의 사체가 뼈도 남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독을 보여주면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미 군주의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자신이 강해지는 것에 목숨을 건 투사.
이미 그들은 새끼 거미를 잡으면서 재미를 보았기 때문에, 거미 군주의 독 하나를 보고 멈출 생각은 없는 놈들이었다.
빠각!
단단해 보였던 거미 군주의 다리가 하나씩 부러지거나, 잘리면서 거미 군주의 몸체가 주저앉았다.
거미 군주가 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다수의 투사가 달려드는 것은 당해내지 못했다.
나도 몸을 날리며 거미 군주의 위를 향해 도약했다. 밑에서는 투사들이 거미 군주의 이곳저곳을 쑤시고 있었다.
“이건 내 거다!”
“내가 죽일 거야!”
물론 저런 식으로도 거미 군주를 죽일 수 있지만, 한 번에 즉사시키는 방법이 있었다.
약점.
내 눈에 띈 빨간 점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촤아악!
배가 찢겨나가며 거미 군주가 죽었다. 동시에 하얀 빛이 흘러나와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5,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오오오오오오! 이번 결투 역시 투사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투사들이 아쉬워했지만 자신들이 한 이야기 있어 입맛만 다실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다시 일정 거리를 벌린 채,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바로 이어서 세 번째 적을 공개하겠습니다!
* * *
세 번째로 나온 적은 검은 갈기 사자였다.
이번에는 서로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들이 죽이기 위해 검은 갈기 사자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자신이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검은 갈기 사자를 몰아치는 투사가 있다면, 자신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행동만 취하는 투사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투사 몇 명이 죽어, 남은 투사는 나를 포함해 14명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죽는 투사들이 없이 검은 갈기 사자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 주인공은 나였다.
[7,000p를 습득하셨습니다.]
-네 번째 적을 만나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선물 하나를 더 드릴까 합니다. 지친 여러분들을 위해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켜 드리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체력과 마나가 모두 회복되었다.
다른 투사들도 마찬가지인지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체력이 모두 돌아오자, 투사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두 번 연속으로 독식한 나.
투사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불만을 표출했다.
“애초에 네놈이 다 처먹으려고 이런 수작 부린 거지!”
그러곤 주위에 있는 투사들을 향해 선동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부터 죽이고 시작하는 게 어때?”
나는 녀석을 쳐다보며 피식 웃고는 검을 들었다. 그러곤 정확히 나에게 불만을 표출했던 투사를 보며 말했다.
“나를 죽일 순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