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46화
16장 투기장 4층(1)
“왔나?”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발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딘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투기장 속 대기실이었다.
‘뻗었나 보네.’
강철 거북을 잡느라 하루 반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애초에 구비해 두었던 포션을 모두 사용하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곤 간단하게 씻고 누웠는데 기절한 모양이었다.
나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래.”
잠만 하루 종일 잔 것처럼 아주 기분이 좋았다. 강철 거북을 잡으며 생겼던 피로가 싹 가셨다.
기지개를 켜면서 약간은 굳었던 몸을 풀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몸 상태를 체크했다.
‘완벽해.’
내가 준비가 끝냈다는 것을 느꼈는지, 발칸이 입을 열었다.
“다음 층으로 가기 전에 간단하게 설명할 것이 있다.”
“뭔데?”
“다음 층은 여러 명이 강력한 적 하나를 처리하게 될 거다.”
발칸이 말한 개념은 잘 알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 여러 명이 합동해서 싸우는 것이었다.
각자의 능력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내는 것. 그것이 레이드의 핵심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얘기하는 발칸의 말을 들었다.
“너를 포함한 20명의 투사가 모일 테지만, 그들이 하나로 뭉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레이드라면 힘을 합쳐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일 테지만, 발칸은 그 핵심을 버리는 게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지?”
“자신을 제외한 투사를 죽이면 강해질 수 있다. 이것이 다음 층에 적용된 룰이니까.”
발칸의 말을 듣고 나니, 머릿속으로 상황 하나가 그려졌다.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를 앞에 두고 서로가 견제하는 모습.
만나게 될 투사의 성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떠한 상황으로 흘러갈지 모르니까.
“한마디로 뒤통수 잘 챙기라는 소리?”
“그래. 투기장은 관객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되어 있으니까. 자극적인 연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들이 환호하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을 때 추가 포인트를 얻었던 것을 생각했다.
할 말을 모두 마쳤는지 발칸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발칸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음 층으로 가기까지 얼마나 남았어?”
“30분 정도.”
“충분하네.”
나는 포인트 상점에서 소주 하나를 구매했다.
[소주를 구매하셨습니다.]
내 손에 생긴 초록색 병을 보더니, 발칸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자신의 품에서 소주잔 두 개를 꺼내 들었다.
나는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버렸을 줄 알았는데 가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발칸과 내가 잔 하나씩을 들고 부딪쳤다.
“크으…….”
“크으…….”
오랜만에 마시는 거라 그런지 달달했다. 그건 발칸도 마찬가지인 듯 단숨에 비워냈다. 기분 좋아 보이는 발칸의 비어 있는 잔을 채워주었다.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4층으로 올라가기까지 남은 30분 동안, 발칸과 소주를 마시며 내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4층으로 이동합니다.]
* * *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시야에 비치는 장소가 빠르게 변했다.
방금 전까지 앞에 있던 발칸의 모습은 사라지고, 검은 철창이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 다음 층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4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4층의 경기 방식은 레이드입니다.]
여러분은 힘을 합쳐, 앞으로 나올 적들을 쓰러뜨리면 됩니다. 적을 쓰러뜨릴 경우, 그에 해당하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옆에 있는 사람을 죽여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적을 처치했을 때, 살아 있는 사람들만 다음 투기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발칸에게서 들었던 내용이 쭉 흘러나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가볍게 참고하는 정도로만 읽었다.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면에 있는 투기장은 튜토리얼 층에 비하면 3배 정도는 커 보였다.
관람석도 그만큼 컸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발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느낌으로만 다른 누군가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이건 튜토리얼 층에서도 익히 겪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경기장에서 시선을 돌려 철창 내부를 돌아보았다.
평평한 바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 있던 감옥은 울퉁불퉁한 돌들로 가득해 불편했었다. 거기다 감옥 안은 전체적으로 깔끔해졌다.
‘층이 올라가서 그런 건가?’
평평한 바닥 위에는 발칸이 얘기했듯이 제각각의 투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코가 주먹만 한 투사도 있었고.
키가 3m는 돼 보이는 장신의 투사도 있었다.
피부색도 다양했고, 얼굴의 생김새나 덩치도 모두 달랐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수를 셌다.
‘20명.’
발칸이 얘기했던 대로 정확히 20명의 투사가 이 안에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겉으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
낯선 환경에 조금은 긴장을 한 것 같은 표정.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즐거워하는 표정.
나는 이 중 세 번째였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투사 한 명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허리춤에는 도를 차고 있었고, 긴 수염을 가진 젊은 사내였다. 그가 나를 보며 히죽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쓰릅. 맛있게 생겼네. 경기가 시작되면 너부터 잡아먹어 주지.”
최근 랭크 업을 거치며 나는 육체적으로도 변화가 있었고, 분위기도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이 안에는 나보다 왜소해 보이는 놈들도 많았는데, 왜 하필 나한테 시비를 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만만해 보이는 건가.’
긴 수염 사내는 점점 다가와 내 앞에 서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새끼 바짝 쫄았네.”
내 표정이 그렇게 보였나 싶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
“뭐, 뭣? 이 새끼가.”
긴 수염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올리려고 할 때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지금부터 빅매치를 진행하겠습니다!
관객의 거센 환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하나둘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던 긴 수염 사내도 뒤로 물러서며, 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나는 멀어지는 긴 수염 사내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일단 한 놈.
내 뒤통수를 후려칠 놈이 알아서 나타났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저렇게 자기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하수가 하는 행동이니까.
자신의 감정을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 표정을 감추고 있는 18명의 투사.
저들 중에는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 녀석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번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긴장의 끈을 놓는 일은 없어야 했다.
-투사들은 모두 경기장으로오오 나와주시기 바랍니다아아아아아!!!!!!!
튜토리얼 층에서 보았던 검은 사내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감옥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압축되듯이 빠르게 줄어드는 벽을 보며, 하나둘 열린 철창으로 걸어 나갔다.
다들 나간 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철창을 나섰다.
콰앙!
철창과 벽이 마주치며, 아주 조그마한 공간도 남겨놓지 않았다.
싸우지 않는 자는 죽인다는 투기장의 뜻이 보였다.
‘흐음.’
먼저 나간 투사들은 모두 일정 거리를 벌린 채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선.
그 선을 넘으면 공격하겠다는 듯, 맹렬한 기세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남을 죽이면 자신이 강해지는 룰.
그 룰은 상대해야 할 적을 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용감한 투사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바로 그레이트 베어입니다아!
[투기장에서 승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그레이트 베어를 죽이십시오.
승리 : 3,000p
패배 : 죽음
철컥.
철창이 열리고, 그 안에서 엄청난 덩치의 곰 한 마리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갈색 털을 가지고 있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 곰이었다.
그레이트 베어.
현실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강력한 송곳니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강력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지금이 실력이라면 일 대 일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20명이 상대해야 할 강력한 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혹시 돌연변이인가?’
그렇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것을 진행자가 설명해 주었다.
-첫 번째 그레이트 베어는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다음에 나올 적이 강할 테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선물은 원하시는 분이 알아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그럼 빠른 진행을 위해 5분이라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아무도 선물을 받지 않으신다면 선물은 제가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고, 그레이트 베어가 두 발로 일어서며 자신을 뽐냈다.
그르렁거리며, 자신의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러나 20명이나 되는 투사 중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레이트 베어가 무서워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었다.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해.’
이득을 취하겠다고 먼저 나섰다가는 19명의 투사를 동시에 적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엄청나게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있는 19명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장담은 없었다.
거기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나올 강력한 적들까지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도 안 받는다면 내가 챙겨도 되겠지?”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검은 수염 사내가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앞으로 나서서 그레이트 베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투사들이 그런 사내를 견제하며 자신들의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검은 수염 사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지기엔 다른 사람들이 겁나고. 내가 가진다니 또 그건 싫고?”
코가 큰 투사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차라리 아무도 그 선물을 받지 않는 게 낫다.”
“뭐라는 거야. 다음 녀석을 공략하려면 저 곰 새끼를 죽이고 힘을 얻어야 한다잖아.”
“굳이 그 녀석을 잡지 않아도. 우리가 힘만 합친다면 가능한 일이야.”
나는 코가 큰 투사의 말을 들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발칸의 말처럼 힘을 합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애초에 서로가 날이 잘든 검처럼 견제를 하고 있는데, 뭉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건 단순히 자신이 가지지 못하니 투정을 부리는 것이었다.
검은 수염 사내는 코가 큰 투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레이트 베어를 잡기 위해 도를 휘둘렀다.
흥미 넘치는 표정을 짓던 게 이해가 갔다.
상당한 실력으로 그레이트 베어의 공격을 막아내며, 상처를 늘리기 시작했다.
원맨쇼.
검은 수염 사내가 그레이트 베어의 체력을 줄이고 있을 때까지, 다른 투사들은 아무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쿠우웅!
그레이트 베어가 체력을 다해 바닥에 쓰러졌다.
검은 수염 사내가 마지막 공격만 하면 진행자의 선물을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검은 수염 사내가 빠르게 도를 들어 올렸다. 그러곤 있는 힘껏 그레이트 베어를 향해 내려쳤다.
채에에엥!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
검은 수염 사내의 도는 다른 투사의 검으로 인해 원하던 결말을 얻지 못했다.
“큭큭큭. 이 버러지 새끼가.”
검은 수염 사내가 자신의 도를 막은 투사를 발로 찼다. 그러나 투사는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그때, 빈틈을 노리고 코가 큰 투사가 그레이트 베어의 심장에 자신의 창을 찔러 넣었다.
그레이트 베어에서 흘러나오는 갈색빛이, 코가 큰 투사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크하하하하. 아주우우 재밌는 상황이 나왔습니다! 이런 걸 죽 써서 개 준다고 하나요?
진행자의 말에 검은 수염 사내가 인상을 파악 구기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나에게도 분명 기회는 있었다.
이형환위를 사용했다면, 그레이트 베어에게 충분히 이동했을 테지만 참았다.
코가 큰 투사가 검은 수염 사내를 분노하게 함에 따라, 가뜩이나 보이지 않던 협력이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다음 적이 나왔을 때, 코가 큰 투사와 검은 수염 사내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틈을 노려 최대한 이득을 챙길 생각이었다.
3,000p가 아깝긴 했지만, 당장의 작은 보상보다는 뒤에 있을 더욱 큰 보상을 생각했다.
오히려 저 3,000p는 미끼다.
물면 낚이는 미끼.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