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45화
15장 스토커(4)
혜성 대학 병원.
어마어마한 건물이 여러 채 있었고, 입구와 출구에는 수십 대의 차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입구 오른쪽.
대형 버스에 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즉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내가 볼일이 있는 곳은 좀 더 안쪽에 있었다. 장례식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인공 공원이 보였다.
곳곳에 조성된 공원에서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병원 건물 입구가 보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회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띠링!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7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낯이 익은 남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세븐 돌즈 매니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매니저가 안으로 들어오고,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갔다. 옆을 보니 매니저의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았다.
근심 걱정 가득한 얼굴이랄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예? 아, 아니에요.”
내 말에 잠깐 놀라더니, 매니저가 손을 절레 흔들며 말했다. 저러니 더욱 이상해 보였다.
‘박영주 때문인가.’
나는 애써 더 묻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너무 오지랖 떠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니까.
띠잉!
문이 열리고, 매니저가 먼저 내린 뒤, 내가 뒤를 따라 걸었다. 오른쪽 길로 쭉 따라 걸어가니 끝 쪽에 1인 병실이 있었다.
720호.
명패에는 박영주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드르륵.
매니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 사이로 환자복을 입고 있는 박영주가 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아름다웠다.
항상 함께하는 김세아의 얼굴을 보면서 단련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안에선 박영주와 매니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 왔어요?”
“응, 근데 정말 괜찮겠어? 며칠 더 병원에 있어도 돼.”
“으으으. 여기 더 있다간 없던 정신병도 걸릴 것 같아요. 빨리 퇴원할래요.”
“그래. 그럼 난 의사 선생님 만나고 올 테니까. 손님이랑 대화 나누고 있어.”
매니저의 말에 박영주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졌다. 몰랐다는 듯 입을 막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피식 웃더니 박영주가 입을 열었다.
“귀신이에요?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하지.”
난 어깨를 으쓱거리곤, 병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니저가 나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병실을 나갔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홍삼 세트를 박영주에게 건넸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 병원에 오기 전 마트에서 하나 구매했다.
내 선물을 받아 든 박영주가 웃었다.
“홍삼이라니…… 저 몸은 멀쩡해요. 아시다시피 제 능력도 있고.”
“알고 있습니다.”
박영주의 완전 회복.
자기 자신에게 사용할 수도 있는 능력이라 자잘한 외상 같은 것은 이미 완치된 지 오래였다.
다만,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였다.
범죄 피해 트라우마.
납치를 당했고,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지 몰라 상담 치료를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나는 별다른 의미 없이 홍삼 세트를 산 이유를 설명했다.
“마트 아주머니가 비싼 게 최고라고.”
“뭐라구요? 하하하”
박영주가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며, 찔끔 흘린 눈물을 닦고 있었다. 농담의 축에도 못 끼는 이야기에 이렇게 반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연예인이라 그런가 리액션이 상당히 후했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됩니다. 웃으라고 한 얘기가 아니라 정말 비싼 게 최고라서 산 거라.”
“그렇게 아무 표정 없이 말하니까 웃긴 거예요. 에휴, 여자 친구 없죠?”
팩트로 정강이를 후려치는 소리에 나는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오늘 만나자는 이유가 뭡니까?”
“회피하시는 스킬이 만렙이네요.”
나를 흘기듯 쳐다보는 박영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진심을 다해 말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안에 담긴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느꼈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박영주가 눈을 찡긋 거리며, 자신의 손을 오므리며 말했다.
“후우…… 말하고 나니 좀 손발이 오그라드네.”
“풋.”
생각 외로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모습을 본 박영주가 볼에 바람을 넣더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웃지 마요!”
나와 박영주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아주 잠깐이지만 실컷 웃었다.
둘 다 웃음을 멈춘 뒤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박영주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헌터라는 일 위험하지 않아요?”
“뭐 하기 나름이라.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니 위험 요소는 확실히 많습니다.”
“후우.”
박영주가 다리를 끌어 올려, 자신의 무릎을 감싸 안았다.
무언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박영주가 입술이 떨리며,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전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언니나 동생들이랑 계속 같이 활동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능력을 각성했을 때 자세한 것들은 숨겼어요.”
뉴스에서 접할 수 있던 것은 박영주의 능력 각성일 뿐, 무슨 능력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나 또한 그녀가 직접 얘기해 줘서 알았고.
우수에 젖은 눈을 한 박영주가 얘기를 이어나갔다.
“근데 제 욕심으로 인해 멤버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했어요. 미소가 납치당할 뻔했고, 테러까지…….”
나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게 가만히 있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이렇게 연예계 생활을 해도 될까? 아니면 헌터로서의 삶을 살아야 될까?”
헌터가 되더라도 연예계의 일은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채하나 또한 계약 기간까지는 터치를 안 한다고 했고.
정말 위급한 경우에 능력만 사용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박영주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질문 아닌 질문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멤버들이 걱정되는 건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멤버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때, 박영주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빛. 그녀의 능력인 완전 회복이었다.
그녀는 그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힘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는 능력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런 능력은 짐 덩어리였다.
나는 그녀와 반대의 경우였다.
왜 나에겐 능력을 주지 않았냐고, 능력을 얻게 해달라고 매일 같이 빌었다.
강렬하게 원했고,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다 투기장에 가게 되었고, 힘을 얻어 내가 원했던 삶을 위해 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녀에게 정답이 될 수 없었다. 그녀와 나의 상황은 달랐고, 겪은 처지도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얘기 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이루어질 겁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잠시 동안.
내 말을 곱씹으며 되새기던 박영주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 환한 얼굴로.
“고마워요.”
* * *
병원에서 나온 뒤, 택시에 타서 용병연합으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마워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거기에 이번 납치 사건까지 더해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리스 길드라는 이름으로는 어떤것도 할 수 없었다.
나름 중견 길드이며, 명성이 있지만 범죄 조직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진행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신 김재섭이었다면, 범죄 조직들이 일을 강행했을까.
지나친 비약이지만, 결코 쉽게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강자 앞에서 범죄 조직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내 이름값을 올려야 돼.’
이제 어느 정도의 기초는 잡았다. 이제 내 가치를 끌어올리고 전면으로 나설 준비를 해야 했다.
내 이름만 들어도 저런 범죄자들은 기어 나오지 못하게, 그렇기 위해선 당연히 지금보다 더더욱 강해져야 했다.
내일 밤이면 투기장으로 가게 된다.
그전에 내가 가진 것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택시에 내려 용병 연합 건물로 들어가, 적당한 던전을 검색했다.
[강철 거북의 서식지]
임무 : 강철 거북 등껍질을 모아주세요.
보상 : 개당 10만 원
이름처럼 강철 같은 등껍질을 가지고 있어, 웬만한 병장기는 통하지 않는다.
마나를 사용해야만 잡을 수 있는 몬스터.
강철 거북의 단단함은 해라족장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편이 나에겐 메리트로 다가왔다.
이번 목표는 마나 운용의 랭크를 올리며 얻은 극대화를 최대한 몸에 익히는 것이었다.
마나를 전부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소량의 마나를 이용해 그 위력을 높이는 게 필요했다.
딸깍.
나는 임무 수락을 누르고, 던전으로 향했다.
* * *
던전 안의 분위기는 조금 더웠다.
앞에는 야자수 나무들이 있고, 왼쪽으로는 기다란 해변이 맞이해 주었다.
지평선 너머로 끝이 보이질 않는 바다.
휴양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앞으로 걸었다. 하얀 백사장 위에서 강철 거북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먼저 선공을 취하지 않는 강철 거북이지만, 건드리고 난 뒤에는 물리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한번 물면 잘릴 때까지 놓지 않으니까.
나는 검을 꺼내 들고, 앞에 있는 강철 거북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사람이 웅크리고 있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강철 거북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등 부분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약한 배 부분을 공격하면 쉬웠다.
그러나 내 목표는 강철 거북을 쉽게 잡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일단 가볍게 마나를 두르고, 강철 거북의 등껍질을 향해 휘둘렀다.
얍!
쉽지 않았다.
반 정도 들어간 검을 다시 빼냈다. 그러자 강철 거북이 나를 노려보며 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정 거리를 벌렸다. 강철 거북의 머리는 1m 정도까지 길어져 조심해야 했다.
일단은 극대화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마나를 전부 끌어올렸다. 수호신을 잡을 때와 같이 타오르듯 피어오르는 마나.
나는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를 느끼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강철 거북을 두부 썰 듯 자르고, 바다를 갈라 버렸다. 수심이 얕아 바닷물이 갈리며, 모세의 기적처럼 바닥이 보였다.
‘후우.’
온몸의 기운을 다 써버린 내 몸은 바닥에 축 쓰러졌다. 방금 전의 감각을 기억하며, 미리 구매해 두었던 체력과 마나 포션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포션이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지금 내가 얻을 것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다시 해볼까.”
효능이 좋은 녀석이라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다. 극대화를 사용했을 때의 느낌을 생각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상상하고, 강한 의지를 담는 게 중요했다.
그것을 기억하고 지금 담긴 마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강철 거북의 등껍질에 절반 정도 박힌 검.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극대화를 다시 한번 사용해서 느낌을 기억하고,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포션을 꺼냈다.
[상급 체력 포션×98]
[상급 마나 포션×98]
순간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더 사면 되지.’
내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