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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42화 (42/177)

# 42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42화

15장 스토커(1)

“오빠!”

해맑게 웃고 있는 한서율이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나는 자세를 낮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던전 브레이크 때와는 다르게 밝고 활발한 모습이었다.

“잘 지냈어?”

“네.”

한서율의 뒤로 한서율의 부모님이 다가왔다. 난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녁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아내를 보며 보기 좋은 미소를 지은 한서율의 아버지 한민찬이 말했다.

“일단 올라갑시다. 나머진 식사하시면서 이야기하죠.”

나는 그들을 따라 앞에 있는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음식점이었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런 곳에 처음 오는 나를 배려해 한민찬이 알아서 메뉴를 주문했다.

한민찬이 정중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아이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음식이 나오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한서율과 그 부모님을 보면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해맑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민찬이 자신의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나는 손에 들린 명함을 쳐다보았다.

프릭스 헌터 법률사무소

대표 : 한민찬

번호 : 010-XXXX-XXXX

메일 : [email protected]

‘헌터 법률사무소.’

헌터들에 관한 사건을 주로 담당하여 처리하는 전문 법률사무소를 뜻했다.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헌터.

헌터도 사람이기에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헌터법이 따로 만들어지면서 이렇게 전문적인 법률사무소도 생기게 되었다.

옆에 있던 한서율의 엄마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프릭스 로펌 아시죠?”

모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손꼽히는 로펌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나라 최고 로펌이잖아요.”

“그이가 거기 출신이에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천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프릭스 로펌 출신 변호사.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한민찬을 쳐다보았다.

“대단하시네요.”

그러자, 손사래 치며 한민찬이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마치 김세아가 던전 하나를 박살 내놓고 ‘너무 약하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프릭스의 이름을 따서 법률사무소를 차렸다는 건, 내부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름을 아무에게나 주지 않으니까.

“엄마,나 화장실…….”

한서율이 엄마와 함께 화장실로 나가자, 한민찬이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지 조금은 진중한 어투로 말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한민찬은 조심스러워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을 대접하려고 한 것도 있지만 따로 얘기해 주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나도 자세를 고쳐 앉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쪽 업계에서 지내다 보면 증권가 찌라시 같은 것이 돌아다녀요. 저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분석을 합니다. 독립해 나온 마당에 사건 하나하나가 중요하니까요.”

자세를 바꾸며 한민찬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최근에 아이리스 길드에 대한 소문 하나를 들었습니다.”

“소문이요?”

나는 목소리를 줄여 우리 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한민찬도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속삭이듯 얘기했다.

“권력 싸움.”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너무나도 큰 이야기였다. 그러나 권력 싸움은 어느 길드나 있었다.

“근데 그런 알력 다툼 정도는 어느 정도 있지 않나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혹시나 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이기에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한민찬이 말했다.

“아, 하나 더. 아이리스 길드의 늙은 뱀들을 조심하세요. 소문이 사실이라면 제일 위험하니까.”

그때, 분위기를 바꿔줄 한서율이 돌아왔다.

“아빠, 나 아이스크림!”

한서율의 가족과 헤어지고,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권력 싸움.

이건 확실하게 일어난 일도 아니고, 실제로 아이리스 길드에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찌라시는 해프닝으로 끝나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 * *

회의실에 모인 14팀.

나는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뒤로 누워 있었다. 180도까지 펴지기 때문에 아주 편했다.

최근 며칠간 계속해서 내려오는 임무로 인해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 본적이 드물었다.

오래 걸리는 임무도 아니었고, 반나절이면 가능한 임무를 두 세게 씩 처리하니,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씻고 올라온 이찬혁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나와 같이 의자에 몸을 맡기며 말했다.

“으어…… 요새 임무가 왜 이렇게 빡빡하냐. 훈련하는 것 같네.”

훈련.

저 말이 딱 맞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해온 임무에는 반복되는 것들이 없었다. 제각각의 다양한 임무들을 수행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겪게 하려는 것처럼,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임무를 내려주는 것 같았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한 손에 종이 뭉치를 가득 들고 있는 김세아가 들어왔다.

이찬혁이 절망에 빠진 눈으로 종이 뭉치를 쳐다보았다.

“아…… 임무는 아니겠지?”

그 모습을 보던 김세아가 책상 위에 종이 뭉치를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임무야.”

머리를 부여잡으며, 좌절에 빠진 이찬혁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조, 조금만 쉬게 해줘!”

“그래? 그럼 넌 오늘 쉬어. 이번 임무는 나랑 오유성 둘이서만 진행할 테니까.”

너무나 쉽게 허락하는 김세아의 모습이 낯설었다. C급 임무를 받겠다고, 새벽에 나타나 우리를 끌고 가던 열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런 김세아가 포기?

이찬혁은 놀란 눈으로 김세아를 보며 되물었다.

“진, 진짜?”

김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쉬어.”

뭔가 찝찝하지만, 쉴 수 있다는 것이 좋은지, 이찬혁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나는 의자의 등 부분을 올리고, 김세아의 옆으로 의자를 끌고 갔다.

“임무가 뭔데?”

김세아가 자신의 앞에 있던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

“오늘 임무는 호위 임무야.”

“호위?”

헌터라고 항상 던전을 공략하는 임무만 맡는 것은 아니었다.

길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VIP의 호위 임무를 맡기도 하고.

112, 119 헌터들의 수가 적어 그들이 해야 할 임무들도 간간이 길드로 접수되었다.

이런 일상에서 일어나는 임무를 일상임무라고 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게 오늘인 모양이었다.

나는 자료를 넘기면서 대충의 내용을 읽어 내렸다.

검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꽤 익숙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세븐 돌즈?”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고의 걸그룹 중 하나였다. 이름처럼 7명의 멤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미모는 두말할 것 없었다.

연기와 춤, 노래 여러 방면에서 자질이 뛰어나 데뷔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세븐 돌즈가 유명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멤버 중 한 명이 헌터였다.

“이번에 ST백화점에서 공연이 있다는데 호위해 달라는 접수가 들어왔어.”

“이유가…… 스토커?”

“맞아. 최근에 누군가 쫓아다니는 기분이 든다나? 실제로 최근에 협박 메일도 받았다고도 하고.”

그 정도 인기면 길드가 아니더라도, 소속사 차원에서도 경호원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뒷부분은 덮어두고, 김세아를 쳐다보았다. 읽는 것보다는 요약해서 듣는 것이 편했다.

“근데 협박 메일을 받았으면 공연을 취소하면 되는 것 아니야?”

“자세한 건 모르겠고. ST백화점 측에서 무리하게 요구했나 봐. 세븐 돌즈 앨범 일정이 오늘이 마지막이라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 같고.”

“우리가 할 일은?”

“경호원들은 이미 얼굴이 많이 노출돼서. 우리가 숨어 있다가 스토커를 잡을 거야.”

“간단하네.”

내 말에 김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토커가 안 나타날 수도 있고. 바람 좀 쐰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럼 언제 출발할 거야?”

“공연이 3시라고 했는데…… 그럼 지금 출발하자.”

지금 시간이 11시니, 가면서 점심을 먹고 백화점을 한번 둘러보면 딱 될 것 같았다.

그다음에 경호원들이나 백화점 측 경호팀과 말을 맞추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이다.

나와 김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이찬혁이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팀장! 생각해 봤는데 팀원들이 고생하는 데 나만 쉴 수는 없을 것 같아.”

“아니야. 명령이니까 쉬어.”

김세아는 단호했다.

화가 난 것은 아니고, 옆에서만 보이는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면 이 상황을 즐기는 것이었다.

이찬혁이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이 세븐 돌즈였다. 술 먹으면서도, 평상시에도 노래를 부르니 김세아도 모를 리가 없었다.

‘가끔 보면 사악하다니까.’

이찬혁은 김세아의 말에 절망 어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앞으로 달려가 문을 막아섰다.

“나 안 데려가면 아무도 못 가!”

“흐음…….”

“제, 제발!”

김세아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점심은 네가 사는 거야?”

“그…… 그럼!”

긍정적인 시그널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이찬혁이 문을 열고 에스코트하듯 김세아를 안내했다.

“팀장님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김세아가 걸어 나가고, 이찬혁이 뒤이어 따라 나갔다. 아주 신나 죽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랄한다.’

* * *

백화점 근처에 있는 맛집에서 점심을 거하게 얻어먹고, 후식으로 커피는 내가 샀다.

먼저 ST백화점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스토커가 도주했을 경우를 생각해 도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구역을 나눴고, 커피를 마시며 내가 맡은 구역을 눈에 담았다.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눠 장소를 파악했다.

첫 번째, 스토커가 평범한 일반인일 때.

두 번째, 스토커가 지원 헌터일 때.

세 번째, 스토커가 전투 헌터일 때.

사실상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큰 차이가 없었다. 속도와 거리가 차이가 날 것이고, 사소한 차이가 있겠지만, 도중 경로는 비슷했다.

세 번째가 가장 문제였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에 세 번째가 스토커라면 잡기가 쉽지는 않을 거 같았다.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는 도심 속은 전투 헌터가 숨을 곳이 많았다.

빌딩 위를 돌아다녀도 되고, 능력을 사용해서 마음먹고 숨는다면, 탐색 스킬이 없는 한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헌터들이 연예인 스토킹을 할 확률은 매우 적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볼 수 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다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이 세상에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그때, 전화가 울렸다.

김세아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래. 글로 갈게.”

* * *

ST백화점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입구에서 이찬혁을 만났다. 옆으로 다가온 이찬혁이 말했다.

“같이 가자.”

회전문을 지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세븐 돌즈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뿐만 아니라, 백화점 자체에 대한 손님도 많았다.

그것은 옷차림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거나, 옷차림이 가벼웠다.

반면에 백화점 자체에 대한 손님들의 옷차림은 고급스러웠다. 이찬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람 너무 많은데.”

“그러게.”

아무래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스토커가 사람들 사이로 숨어버린다면, 답이 없었다.

“일단 빨리 팀장한테 가자.”

이찬혁의 말처럼, 디테일한 임무 파악을 위해 김세아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걸음을 옮겨 김세아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때, 수상한 옷차림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검은 가죽 코트에, 검은 선글라스.

짧은 금발 머리의 사내가 껌을 씹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사내가 두리번거리며 보던 중에 내 눈과 마주쳤다.

수상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나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선글라스를 안을 보지 않아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혀까지 날름거리니, 더욱 이상했다.

‘미친 새끼.’

나는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잊어보려고 했지만, 날름거리던 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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