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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36화 (36/177)

# 36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36화

14장 더 높은 곳으로(2)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이전과도 같은 철창 안에 있었다. 틈 사이로 보이는 주변 시야.

주위에는 관람석이 보였고, 관객은 발칸 한 명뿐이었다.

그는 관람석에 앉아, 다리를 꼬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거대한 철창이 하나 보였다. 오로지 저곳에만 철창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기서 무언가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때, 정면 너머의 철창에서 하얀빛이 일어났다. 동시에 관람석에서도 빛이 일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길쭉한 귀를 하고 있었다. 키가 상당히 작은 고블린.

그자가 발칸을 보며 말했다.

“발칸? 오랜만이네, 킥킥.”

나는 안에서 그 둘의 표정을 분석했다. 둘이 친한 사이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기에는 서로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발칸이 그 고블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사이먼.”

저놈도 발칸과 같은 스폰서인 모양이었다.

사이먼은 고블린답게 비열한 표정으로 지껄이고 있었다.

“네가 스폰해 주는 놈은 알고 있냐? #@[email protected]%@#$%#%”

순간 귀가 먹먹해지더니, 그 뒷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웅웅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귀를 툭툭 치거나,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신나서 떠드는 사이먼을 향해 발칸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뻐하는 건지, 분노하는 건지 모르겠다.

둘 다 섞여 있는 것 같은데, 기뻐하는 게 더 커 보였다. 뭐가 저리 기분이 좋을까 싶을 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언제 시작하는지 궁금해지려던 차에 타이밍이 좋았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상대방을 죽이십시오.

승리 :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특전. 한 경기당 포인트 1,000p

패배 : 죽음

3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만 해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추가 포인트도 얻을 수 있었다.

패배 시 죽는다는 것은 평소와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마음을 다잡고 검을 들고 있을 때, 철창이 열리기 시작했다. 옆으로 밀리며 철창이 움직였고, 안쪽의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처음 내민 발을 보고 그 정체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초록색 피부를 가졌으며, 나보다 3배는 큰 발을 가진 몬스터.

나한테는 너무나 익숙한 생김새를 가진 녀석이 철창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

다양한 오크들을 죽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약했던 오리지널 오크로 보이는 녀석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단 일격에 죽였던 오크.

그러나 눈앞에 있는 녀석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덤한 표정은 기본이고, 호흡 또한 일정하게 쉬고 있었다.

흥분하지 않은 모습으로 차분하게 나를 탐색하고 있었다.

관람석에 있던 사이먼이 나를 보더니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 발칸, 너 인간을 골랐나?”

이내 실소를 머금은 사이먼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발칸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하하하. 이건 뭐 1분도 안 걸리겠네. 괜히 구경하러 왔잖아?”

이에 지지 않는 발칸의 도발.

“1분? 10초도 안 걸려서 끝나겠네.”

생각해 보니 도발은 아니었다. 저건 내가 사실로 만들 테니까.

나는 발칸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둘이 어떤 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스폰서님 기 좀 한번 세워줘야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크가 중얼거리듯 얘기했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인간 따위에게 스폰서가 붙었다고?”

그 말을 통해서 나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놈에게는 스폰서가 붙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곳에서 내 상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걱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내 실력으로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한순간, 서로를 노려보다 오크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덩치만 한 도끼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도끼에 서리는 마나.

나 또한 마나를 검에 휘두르며 도끼를 막았다.

챙!

검과 도끼에 서린 마나가 만나며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반발력으로 인해 몸이 뒤로 밀려나려고 했지만,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오크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순간, 오크의 몸에서 빨간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멀쩡했던 눈은 타오르듯 붉게 변했다.

확실한 변화.

‘이건 스킬이야.’

정확히 무슨 스킬인지 파악하지 못한 나는 위험을 감지하고, 맞대고 있던 검과 함께 몸을 뒤로 뺐다.

“크르르르륵!”

포효와 함께 오크의 붉은 기운은 더욱 거세졌다. 양손으로 들던 도끼를 한 손에 쥔 오크가 나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후우웅!

갑자기 강해진 힘과 붉은 기운.

한쪽 머릿속에 잠재워 있던 정보가 떠올랐다.

버서커.

헌터 중에서도 저런 스킬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체력을 소모하여,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스킬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의 도끼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이크.’

자세를 숙이며 도끼를 피하고, 검을 들어 녀석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마나를 이용한 빠른 공격이었지만, 오크가 그것을 알아채고 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삭!

갈비뼈 쪽을 스치고 지난 검.

멈추지 않고 뒤로 계속 빠진 오크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버서커화의 지속 시간이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기회다.’

나는 검에 마나를 두른 다음,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이형환위.

공간을 가르듯 시야가 바뀌며,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갈랐다.

아주 잠깐 사이 오크 앞에 도착했다.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녀석의 심장에 마나를 휘두른 검을 찔러 넣었다.

“오크는 역시 오크야.”

눈을 부릅뜬 채로 몸이 축 늘어지는 오크를 바라보며, 나는 심장에 박힌 검을 빼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보상 : 1,000p

털썩.

승리 메시지를 듣고 난 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을 침대 삼아 누워 위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형환위에 마나까지 긁어 사용했더니 몸 상태가 만신창이었다. 속이 어질거렸으며, 근육통으로 욱신거렸다.

관람석에서는 사이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강하긴 하구만.”

오크가 나오고 닫혔던 철창이 다시 열렸다. 철창 안에서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온몸을 붕대로 감아 정확한 생김새는 파악되지 않았다. 한쪽 눈에서 흘러나오는 빨간 안광만이 유일했다.

키는 나와 비슷해 보였지만, 너무나 말라 있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스태프로 보아, 마법을 사용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아니, 확실했다.

사이먼은 다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보며 말했다.

“미이라라. 이건 또 재미있어지는군”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조금 더 경계심을 높였다.

방금 전 내 검을 보고서도 흥미로워한다는 건, 그만큼 눈앞의 미이라가 강하다는 뜻일 테니까.

정면에 있는 미이라를 쳐다보며, 검을 들었다. 마법사가 나온 김에 확인해 볼 게 있었다.

“시작할까?”

내 말에 미이라는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스태프의 빛이 번쩍이며 아이스 스피어가 나타났다. 김세아의 주력마법이라 나에겐 아주 익숙한 마법이었다.

슉!

아이스 스피어가 나에게 날아왔다.

검에 마나를 두르고, 아이스 스피어를 쳐냈다. 그러자 아이스 스피어가 경로를 바꾸고 내 뒤에 가서 박혔다.

‘된다.’

마나를 두르지 못했을 때는 검에 마법이 부딪칠 경우, 그 순간 폭발했다.

아이스 스피어 같은 경우에는 충격이 생기면 충격 부위를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마나를 휘두른 검은 마법을 쳐낼 수 있었다.

이거라면 앞으로 마법사를 상대하기 수월해질 것이다.

뒤이어 날아오는 아이스 스피어 4개를 모두 쳐냈다. 그러자 미이라는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저번 리치와 같은 패턴.

방어막을 만들고 안에서 위력이 큰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나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엄청난 위력과 함께 방어막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캐스팅을 마쳤는지, 스태프가 빛나며 내 주위로 얼음 결정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스 프로즌.

김세아가 사용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

내 주위로 모여든 결정이 사면체가 되어 밀폐된 공간을 만들었다.

모든 면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벽.

그 벽이 점점 거리를 좁혀들며, 나를 압살하려 들었다.

‘꽤나 신박하지만.’

나는 이형환위를 사용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가속도와 함께 휘둘러진 검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만들어냈다.

콰과과과과광!

아이스 프로즌을 부숴 버리고, 미이라의 뒤쪽으로 이동한 나는 크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미이라의 목을 베어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보상 : 1,000p

나는 바닥에 앉아 체력이 회복되길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관람석에서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뒤이어 발칸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저놈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이거든.”

발칸의 목소리는, 다분히 조롱이 섞여 있었다.

다음에 나온 녀석은 검은 옷을 두르고 있었다. 양손에 들린 단검으로 빠른 연계 공격을 하는 암살자 계열의 투사.

녀석의 공격은 막을 만했다.

다만, 기척과 함께 자신의 몸을 숨기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 상대하기가 귀찮았다. 한 방을 날리려고만 하면 자꾸 기척을 지우고 모습을 감췄다.

그중 다행인 것은 내 관찰자 특성에 있는 약점 공략으로 녀석의 은신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약점 파악 메시지가 뜨고, 암살자 녀석을 깔끔하게 제압했다.

그다음 녀석은 키가 작은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태프를 들고 있어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환사였다.

정령들을 소환해 나를 공격해 왔다.

마나를 머금은 검에 정령들을 역소환 시켜 버린 뒤에는 일사천리로 정리되었다.

소환사의 약점은 소환수가 없는 것이니까.

그때, 사이먼의 표정은 꽤나 가관이었다. 자신의 동족인 고블린이 죽어서 그런지 표정이 꽤나 불편해 보였다.

그 뒤에도 나는 계속 체력을 회복하고, 철창에서 나오는 녀석들을 잡았다.

서걱!

쿵!

덩치 큰 오우거를 쓰러뜨리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상대를 잡고 나서야, 드디어 통과했다는 알림이 떴다.

넋을 놓아버린 사이먼을 버려두고, 발칸이 내려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내게 보상에 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상을 획득하셨습니다.]

보상 : 5,000p

꽤나 만족스러운 보상이었다.

1층에서 오크를 잡는다면 한 달 반을 넘게 모아야 쌓이는 포인트가 하루아침에 모였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시험이었다.

그러나 충분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적은 강했다.

그러나 감당할 만했다.

그 점이 내 마음속에서 ‘혹시나’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발칸에게 물었다.

“혹시, 이대로 3층까지도 뚫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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