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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35화 (35/177)

# 35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35화

14장 더 높은 곳으로(1)

롤러코스터를 타듯 부유감이 온몸을 차지했다. 다행히도 던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았다.

점점 부유감은 사라지고, 내 발이 바닥에 닿았다.

하얀빛이 점점 줄어들며 사라졌다.

섬광에 맞은 눈이 점점 회복되듯, 백색 노이즈가 사라지며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게슴츠레 뜬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갈색 문이었다. 나는 먼저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주위를 둘러보고 느낀 점은 하나였다.

‘좁네.’

5평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낡아빠진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 한 톨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먼저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다.

갈색 문은 열리지 않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금은 나갈 수 없습니다.]

‘뭐지?’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엥?’

내가 헛것을 본 건가 싶어 양손으로 눈을 비벼보았다.

분명 방안을 돌아볼 때,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발칸 또한 같이 빛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정말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 침대 위에 누군가 걸터앉아 있었다.

‘뭐야.’

젊은 사내였다. 갈색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몸은 전체적으로 갸름한 선을 가지고 있었다.

길쭉해 보이는 키에 등판도 넓었다.

짧은 머리에 휘황찬란한 금발.

신이 빚은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

내가 아는 그 어떤 연예인보다 잘생긴 얼굴이었다.

너무나 잘생겨서 나이대가 큰 차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냐?”

나는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구……?”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잘 아는 듯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나 모르겠어?”

내 벙 찐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는 젊은 남자를 보니 묘하게 누군가와 비슷했다.

투기장에서 익숙히 봐왔던 사람과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말투부터가 달랐다.

아무런 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나를 보며, 젊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섭하네. 심장까지 찔러놓고.”

‘뭐?’

아닐 거라고 부정했던 중년 남성의 모습이 젊은 남자에게 덧씌워졌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바……알칸?”

“그래. 드디어 본 모습으로 만나게 됐네.”

분명 내 검에 찔리는 것을 확인했다. 심장박동까지 확실하게 느꼈는데, 어째서 살아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마지막에 검이 연기처럼 변하면서 바닥에 떨어졌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 하더라도 꽤나 깊은 상처를 입었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충격을 받은 내 뇌는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신경 다발이 끊어진 듯, 내 말이 뚝뚝 끊겨 나왔다.

“본모습……?”

발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튜토리얼 지역 매뉴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입에 맞지도 않는 말투로 말하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정리하자면 모습을 숨기고 있었으며, 내 검에 찔리고도 멀쩡히 살아서 나와 같이 이동했다는 것.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며,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발칸이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고생했으니까. 보상을 줘야겠지.”

발칸의 손에서 빛이 일어나더니 내 눈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보상 : 5,000P

[스킬 : 마나 운용(E)를 습득하셨습니다.]

[마나 운용(E) : 소유자가 가진 마나 운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랭크가 올라갈수록 효율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나는 입이 떡 벌어지며, 쉽게 다물지 못했다. 한 경기당 최대로 많이 받아봤던 게 230P였던 것을 생각하면 약 21배에 해당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나 운용이라는 스킬도 얻게 되었다. 스킬을 얻음과 동시에 내 몸에 흐르는 마나가 더욱 잘 느껴졌다.

투기장에서는 무의식중에 마나를 끌어올려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하게 의식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놀라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발칸이 입을 열었다.

“먼저 이 투기장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줄게. 일단 투기장 각각의 층은 독립된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지. 투기장의 시스템도 제각각이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준도 달라.”

얼굴이 젊어져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친근한 친구에게 말하듯 물어보았다.

“그럼 이곳은 몇 층이지?”

“여긴 대기실 같은 곳이야. 1층과 2층 사이쯤? 이곳에서 나와 볼일이 끝나면 2층으로 이동하겠지.”

“볼일?”

내말에 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발칸이 스폰서 제안을 요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스폰서?”

“그래. 난 네가 강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하는 거지.”

“그럼 넌?”

거래란 항상 상호적인 것이다. 내가 얻는 게 있으면 상대방도 얻는 게 있어야 올바른 거래였다.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내 가치가 올라가게 되지.”

“가치?”

“응. 이곳에 있는 스폰서들은 자신들이 키운 투사들로 인해 그 서열이 정해지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발칸이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당분간 그 누구랑도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었는데 너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

“왜지?”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려나. 맨 처음 네가 투기장에 소환되었을 때에는 얼마 못 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럴 만도 했다.

초반에 나는 꽤나 어벙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근데 고블린을 단칼에 죽이더라고. 처음 투기장에 온 놈치고는 너무 차분했고 과감했지. 딱 그때부터였어. 네놈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건.”

고블린이야 내가 원래 살던 곳에서는 이미 바퀴벌레 취급을 받고 있는 놈이라 그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던전이 생긴 지 100년.

그 시간 동안 고블린은 분석될 대로 분석되었고, 헌터들의 기본 수준은 상향 평준화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발칸의 입장에서는 놀라울 수도 있었다.

나는 발칸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계속 들었다.

“고블린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크가 나왔는데 미친놈처럼 좋아하는 건 네가 처음이었어.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지.”

오크 또한 구시대의 몬스터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모든 사람이 인정한 고블린 다음의 공식 2인자.

지원 헌터가 감당하긴 힘들었지만, 전투 헌터는 충분히 싸워도 승산이 있었다.

거기다 난 고블린을 잡으며, 전투 헌터 정도의 스탯을 올린 상태였으니까 오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뭐 이것 또한 발칸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궁금했어. 근데 네가 얘기했지. 이곳에서 얻은 힘으로 인해 이루고 싶은 꿈에 다가가게 됐다고.”

꿈.

나는 발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발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꿈이란 양날의 검이야. 그 덕분에 강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꿈이 강함에 먹히기도 하지. 거기다 넌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해졌으니 난 궁금했어. 네가 과연 힘에 먹히지 않고 전진할 수 있을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정도 호응을 해주었다. 저 이야기는 정말 마음속에 새겨야 하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시험하게 된 거야. 동족을 죽이는 것. 그건 웬만한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거든. 가끔 변종처럼 나타나는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사람을 죽이는 것.

나는 양손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아직도 그 감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확신을 가지고 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쾌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내 시험을 통과한 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지.”

잠시 말을 멈춘 뒤, 자리에서 일어난 발칸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다가왔을 때, 발칸은 씨익 웃으며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얼마나 강해질지 가까이서 직접 보고 싶어졌어. 왠지 너라면 정말 저 꼭대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장난기 없는 맑은 눈.

무엇보다 진심 어린 말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앞에 있는 발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계약 성립.”

[스폰서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오유성님의 스폰서는 하이 클래스 입니다.]

“계약금이라곤 뭐하고 이거 하나 받아 써. 시험을 통과한 상이다.”

발칸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고, 빛과 함께 메시지가 나타났다.

[하이 클래스에서 오유성님에게 스킬을 지원하였습니다.]

[스킬 : 이형환위(C)를 습득하셨습니다.]

[이형환위(C)]

일정 시간 몸의 움직임이 비약적으로 빨라집니다. 랭크가 올라갈수록 지속 시간이 길어집니다.

스폰서에게 부여받은 특수 스킬입니다. 발전 가능한 잠재 능력치가 무궁무진합니다.

-지속 시간 : 2초

“스킬?”

내 놀란 모습에 발칸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여벌의 목숨은 될 거다. 제대로 써먹어.”

발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동 스킬은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포인트를 모으면 가장 먼저 사려고 했던 것인데, 심지어 시작부터 C급인 스킬이라면……. 발전시킨다면 과연 어디까지 갈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나는 스킬에 대해 확인해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의 끝으로 걸어가 자세를 잡았다.

아직은 정확한 사용법을 몰라, 속으로 스킬명을 생각하며 발동시켰다.

‘이형환위.’

스킬을 사용한 순간, 세상이 멈춰섰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 지난 이후, 난 세상이 멈춘 게 아니라 내가 빨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순간 모든 세상이 슬로우 모션이 됐음에도, 나 혼자서만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고 있는 이질감.

그 감각이 끝날 즈음, 눈 깜박할 시간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

그 안에 나는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이동해 있었다.

“……미쳤네.”

여벌의 목숨.

진짜 제대로 된 표현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몸을 구해줄 소중한 기술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스킬을 쓴 직후, 몸에 어느 정도 부하가 찾아왔다.

‘……공짜는 아니라는 거네.’

역시 스폰서가 주는 특수 스킬다웠다.

단순한 이동 기술이라고 해석하면 안 됐다.

중요한 분기점에 사용해야 하는, 일종의 필살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발칸은 스킬을 받자마자 분석해 보려는 내 태도에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제 튜토리얼은 끝났고. 2층으로 올라갈 차례야. 문을 열고 나가면 돼.”

나는 발칸의 말에 문 앞으로 다가가 섰다. 문을 열기 전, 몸을 돌려 발칸을 쳐다보았다.

“넌?”

“나도 같이 간다. 스폰서니까.”

그리고 문 앞에서, 발칸이 한 가지를 더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너는 한 가지를 더 선택해야 한다.”

“……선택?”

“첫 번째 투기장은 테스트의 성격이지. 그리고 그곳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 놈들에게는 일종의 특권이 주어진다.”

나는 짚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건너뛰는 거, 뭐 그런 걸 말하는 건가.”

“똑똑해서 좋네.”

발칸이 씨익 웃으며 동의했다.

“시험에 응할 특권이 주어지지. 그리고 이겨낸다면 곧바로 그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는 거다.”

“나한테 그 권리가 있다는 거지?”

“그래.”

그와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이로운 실력입니다. 튜토리얼 층에서 절대적인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3층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시험에 응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2층의 시험에 응하시겠습니까? Y/N]

“위로 올라갈수록 받을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나겠지?”

내 질문에 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면 빨리 올라가야지. 저 위로.”

[시험에 응하셨습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한 장소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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