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32화
13장 각성(2)
간단하게 한잔하기 위해 술집으로 이동했다.
안주를 시키고, 맥주 500ml 3잔을 시킨 나를 쳐다보며, 김세아가 입을 열었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준비한 대본대로 말했다.
“아니. 분명 던전에서 갈라진 것은 기억나는데…… 눈 떠보니 회복실이었어.”
내가 자유롭게 활동한 것을 몰라야 했다.
지금의 내 힘은 비정상적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많이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내 말에 납득한 김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일단 간단하게 말하자면 넌 어둠에 잠식당해 마석을 섭취하며 폭주를 했어. 그런 상태로 지하 3층까지 이동해 리치와 싸웠지.”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꽤나 자연스럽게 나온 표정에 김세아가 넘어갔다.
“내가?”
“그래. 그러니까 한동안 몸 관리 잘해. 지금은 건강할지 몰라도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그사이 술과 안주가 나왔다.
우린 모두 잔을 들어 가볍게 잔을 부딪친 뒤 맥주를 마셨다.
목으로 넘어가는 시원한 맥주의 톡톡 쏘는 느낌을 음미하며, 김세아에게 물었다.
“이호연은 어떻게 된 거야?”
던전에서 헌터를 공격한다는 것은 큰 범죄에 해당되었다. 물론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나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졌으니까.
범죄행위로 볼 수 있었다.
이 질문에는 이찬혁이 대답했다.
“위에서 합의 봤대.”
간략한 내용은 김세아에게 들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을 알고 싶었다.
“무슨 합의?”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이템 하나를 양도받았다고 들었어. 물론 이 이야기도 우리만 알아야 돼.”
“아이템?”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김세아가 눈치를 줬다. 이찬혁이 내 귀에 대고 정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추측일 뿐이지만 S급 던전과 관련된 거지 않을까 싶어.”
S급 던전.
헌터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아무에게도 공략되지 않는 난공불락의 던전이었다.
세계 4대 길드 또한 지금의 목표는 S급 던전을 공략하는 데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역사상 최초.
그리고 S급 던전에서 나올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템들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템을 고작 이호연 하나 살리기 위한 협상 카드로 썼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엥? 걔가 뭐라고 그런 아이템으로 협상을 해.”
“해미 길드 이자욱의 아들이래.”
이자욱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나는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검을 사용하는 전투 헌터 중 다섯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조건 포함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추측이라지만 너무 간 것 같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찬혁이 말했다.
“뭐 그런 높은 사람들은 이런 일이라도 하나 잘못 걸리면 명성이 바닥끝까지 추락해 버리니까. 그래도 대단한 걸 거래하지 않았을까?”
위에서 합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는 나였다.
“나한테 뭐라도 떨어지겠지?”
“아, 너 못 들었구나.”
한참 얘기를 해서 목이 탔는지, 술이 고팠는지 모르겠지만 이찬혁이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번 던전에서 얻은 거 우리 다 가지래. 게다가 너랑 이호연이 흡수해서 무용지물이 된 마석분만큼의 현금을 해미 길드에서 보전해 주기로 했고.”
내가 챙긴 마석은, 대외적으로 어둠에 물든 내가 흡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둠에 노출되는 결정적 계기 또한 이호연이 제공했기에, 그것까지 전부 다 이호연이 보상하기로 결정이 난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에 마음이 확실하게 놓였다.
내가 챙긴 몫에 비하면, 이호연이 흡수한 마석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환웅이나 해미 쪽은 관심 없었지만, 괜히 김세아와 이찬혁에게까지 비밀로 하고서 딴 주머니를 찬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이호연이 그 몫까지 돈을 치러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김세아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기가 할 말을 생각해 놓고, 자기 스스로도 웃긴 것이었다.
“그리고, 강한수 선배님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불려 버리셨어. 던전에서 나왔어야 할 마석량.”
“……뭐?”
“너 엄청 약한데 리치까지 때려잡을 정도로 강해졌던 거 보면, 왕창 나온 게 분명하다고 해미 길드 완전 후려쳐 버렸어.”
김세아는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도 통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강한수가 미소 짓고 있을 얼굴이 떠올랐다.
‘약 올랐겠네. 해미 길드.’
별수 없었다. 사람 하나 죽일 뻔한 헛짓거리를 했으니 이 정도로 페이크는 받아줘야 했다.
“해미에서 받아줬고. 우리 보너스 나올 거래.”
‘계산 깔끔해서 좋고.’
그렇다면 듀라한의 검은 그냥 내가 사용하면 됐다.
거기다 꽤나 많은 마석을 챙겼으니, 그 돈이 꽤나 클 것이었다.
‘아, 리치!’
무엇보다 기절하면서 미처 챙기지 못한 리치가 흘린 아이템이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찬혁에게 물었다.
“리치 잡고 뭐 나왔냐?”
“리치가 사용하던 스태프랑 B급 마석 5개.”
대박이었다.
리치가 사용하던 스태프의 정확한 능력치는 감정을 해봐야 알겠지만, 한두 푼 하는 가격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 리치는 내가 잡았으니, 자체적으로 나눈다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졌다.
“리치의 스태프는…….”
나는 차마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느껴지는 부담스러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김세아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스태프는 자신에게 달라는 강렬한 염원을 담아서.
저 눈빛을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리고 피할 마음도 없었다.
이 스태프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는 이번 던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남겨 먹었으니까.
“팀장이 가지는 게 좋겠지?”
* * *
투기장.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그러자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
“동료들은 잘 보고 왔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있더라고요.”
회복실에서 보내는 동안, 투기장에서 중년 남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투기장이라는 독특한 환경이었고, 짧지 않은 시간을 봐왔기 때문일까.
어느샌가 중년 남성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말 같겠지만. 앞으로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이야기를 하면, 중년 남성은 항상 잘 들어주었다.
“이유가 뭔가?”
“누군가에게 무시받지 않고, 제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힘이 강해야 하니까요.”
“항상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지.”
“큰 대가가 무섭지 않을 정도로 강해질 겁니다.”
중년 남성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나 즐겁네.”
* * *
C급 임무를 마치고, 일주일이란 회복 기간을 가지면서 개인 정비를 하지 못했다.
위에다 요청해서 얻은 이틀이라는 휴가. 그 기간 동안 할 게 많았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샤워실로 달려가 몸을 씻었다.
씻고 나온 나를 쳐다보며 잠에서 덜 깬 이찬혁이 중얼거렸다.
“어디 가냐?”
“과천.”
눈을 게슴츠레 뜬 이찬혁이 스마트폰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후우…… 야, 아직 9시밖에 안 됐어……. 힘들지도 않냐?”
한숨 한 번 쉬었는데, 숙소 안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스태프를 쟁취해서 기분이 좋아진 김세아가 초반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취하고 난 뒤에는 항상 그렇듯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했다.
이번 불만의 주인공은 이호연이었다.
일방적인 시그널, 그리고 소문 때문에 엄청 힘들었다는 얘기를 1시간 동안이나 들어야 했다.
거기다 이찬혁은 워낙 술을 좋아하는 데다가, 김세아가 제어하지 않으니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렸다.
나 또한 그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달렸지만, 투기장에 갔다 오면서 숙취가 풀렸다.
괴물 쳐다보듯 나를 보는 이찬혁을 무시하며, 검은색 트레이닝복에 검은색 후드티를 챙겨 입었다.
밝은 색깔의 옷도 있지만, 큰 행사가 아니라면 스타일에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칙칙한 새끼…….”
한소리 하곤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하는 이찬혁을 뒤로하고, 숙소 밖으로 걸어 나왔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금방 도착한 버스에 탑승해,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며 오늘의 스케쥴을 정리했다.
일단 오전에는 던전에서 얻은 마석을 처리하려고 했다.
C급 임무를 마치고, 포상으로 받은 마석은 길드를 통해 처분했다. 지금 처리할 것은 내 아공간 주머니에 모셔져 있는 마석이었다.
하지만 그 양이 많기에 한 번에 처리할 수가 없었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대중적인 곳은 안 돼.’
일단 아이템 가게를 돌아다니며 시세를 알아볼 예정이었다. 개인적인 마석 거래가 되는 곳은 아이템 가게가 유일했다.
이미 검색으로 아이템 가게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파악해 놓았다. 먼저 갈 가게는 ‘플렉스’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템 회사로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었다. 주로 고가의 아이템들을 팔고 있는 메이커 회사였다.
비싼 만큼 그 성능도 좋다고 알려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복합 쇼핑몰.
꽤나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차는 계속해서 들어왔고, 주차원들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정확한 크기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눈으로 감상하고, 감탄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입구 쪽에 배치되어 있는 안내문과 약도를 챙겼다. 가장 가까이 있는 플렉스 매장으로 걸어갔다.
“우와…….”
화려한 간판과 함께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렸다. 내 인생에 아이템 전문 매장에 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돈도 없었을뿐더러, 지원 헌터가 사용할 만한 아이템은 이곳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나는 감격에 젖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직원에게 약간의 목 인사 정도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아이템이 나열되어 있었다.
부츠부터 시작해서, 상·하의 세트, 각종 병장기가 자신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본래의 목적을 접어두고, 아이쇼핑에 나섰다.
제대로 된 방어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쪽으로 먼저 이동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상의가 보였다. 감촉이 부드러웠으나, 힘을 줘보니 단단했다.
나는 시선을 내려, 밑에 있는 태그를 쳐다보았다.
[아이언 베어의 가죽으로 만든 상의]
제작 디자이너 : 블랙 오션
아이언 베어의 가죽으로 만든 상의입니다. 도검은 물론 마나 소드에 우월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 떨어집니다.
가격 : 1,000,000,000원
천천히 공을 세어보았다. 무려 일 뒤에 공이 아홉 개나 붙어 있었다.
10억.
‘미친.’
나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며, 옆에 있는 하의의 가격도 확인해 보았다.
똑같은 10억.
나는 갑작스러운 무력감과 공허함을 느끼며 아이쇼핑을 종료했다. 더 이상 구경해 보았자 구매도 못하고 허탈감만 가득할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왼쪽 끝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마석 거래소로 걸어갔다.
아름답게 생긴 직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마석이 얼마 정도 하나 알아보려고요.”
나는 준비해둔 C급 마석 한 개와 B급 마석 한 개를 꺼내 놓았다.
마석은 같은 C급이라도 크기와 농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측정해 볼 필요가 있었다.
A급 던전에서 나오는 C급 마석과 C급 던전에서 나오는 C급 마석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니까.
네모난 판에 올려놓자, 직원이 옆에 있는 측정기에 두 개의 마석을 올려놓았다.
측정기에서 빛이 나더니, 앞에 있는 표시창에 수치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고, 수치를 확인한 직원이 말했다.
“고객님. C급 마석의 경우에는 30만 원, B급 마석은 100만 원으로 측정이 됩니다.”
얼추 가격대를 파악했으니,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용병 연합에서 마석을 처분하면 되었다.
워낙 덤터기를 많이 쓰는 곳이라 정확한 가격을 알아야 흥정에도 유리했다.
“음…… 다른 곳도 들렀다가 올게요.”
마석 두 개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렉스 매장에서 나와 용병 연합으로 가려고 택시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마석을 처리하고, 점심을 먹으면 딱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제일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탔다.
“용병 연합으로 가주세요.”
용병 연합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는 꽤 차이가 나는 금액을 불렀다.
“이 정도면 C급은 17만 원, 비급은 70만 원에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만이 아니었다. 그 외의 몇 명의 딜러들도 엇비슷한 금액들을 부르고 있었다.
‘값 차이가 꽤 나네.’
생각보다 차이 나는 금액에 고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띄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용병 길드에 와서 종종 모르는 걸 물었던 여자, 박보영이었다.
나는 마석 주머니를 챙겨서 그녀가 있는 바로 갔다.
“저기.”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박보영은 예의 비즈니스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나를 반겨주었다.
“여기서 일한 지 좀 오래된 거 같은데. 그냥 알바는 아니죠?”
“직원 개인 사정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 미안한데 작업 멘트가 아닌데…….”
나는 꾸러미를 꺼내서 바 위에 올려놨다.
“정식 매장에선 30, 100 준다는 걸 여기선 17, 75 준다고 하는데. 이게 눈탱이인지 합리적인 정가인지 모르겠어서 말이죠.”
박보영은 자신에게 작업을 걸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서 얼른 다시 대화에 임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표정 뒤로, 새빨개진 귓바퀴에서 그녀가 창피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음, 그러니까 더 비싸게 팔 수 있냐 묻는 건가요?”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이면, 길드 내에 여기저기 인맥이 있을 거 같은데요?”
“음……. 죄송한데 함부로 영역 침범을 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서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이런 곳은 호구잡이 눈감아주는 것도 상도덕의 영역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도 제시할 카드가 있었다.
“공짜 아닙니다. 내가 제시받은 금액보다 비싸게 처분해 주면, 그 차액의 3할을 드리죠.”
그 말을 꺼낸 순간, 박보영의 입가에선 비즈니스용 미소가 사라졌다.
“3할이요?”
70만 원 제시받은 B급 마석. 그것을 80만 원에 처분해 준다면 박보영의 손엔 3만 원의 차익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손에 들려 있는 마석 꾸러미에는 수십 개의 마석이 잔뜩 쌓여 있었으니, 충분히 군침 흘릴 만했다.
“당신이 돈 벌려고 거래에 끼어드는 거니까, 이건 상도덕 위반이 아니죠?”
묘한 헛소리였지만, 맞는 뜻이었다.
순수한 동기가 아니라, 돈을 보고 경쟁에 뛰어든 이상 다른 딜러들이 손가락질하기가 애매해지는 것이다.
박보영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 정도면 C급은 25만 원, B급은 92만 원으로 일괄 처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잠시 후, 박보영이 데려온 감정사의 입에서 나온 금액은 썩 마음에 들었다.
박보영에게 줄 삼 할을 감안하더라도, 가격 차이가 확 줄어들었다.
괜히 지저분한 흔적을 남길 바에는 이쪽이 훨씬 깔끔했다.
“전량 처분하죠.”
내 결정에 박보영의 얼굴이 환해졌다.
처음으로 보는 진짜 미소였다.
“다음에 제가 보답으로 밥 한 끼 살게요!”
* * *
나는 용병 길드를 나와서 다시 택시를 탔다, 용병 연합에 거의 다 와갈 무렵, 김세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어디야?
꽤나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나 지금…… 시내에 있는 복합 쇼핑몰 쪽?”
차마 용병 연합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방금 전까지 있던 곳을 이야기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어. 현재 길드에서 잔류 중인 헌터들은 모두 현장으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바로 그쪽으로 와.
던전 브레이크.
간단하게 말하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오는 현상을 뜻했다.
“주소 좀 보내줘.”
나는 전화를 끊고, 김세아에게 받은 문자를 기사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로 가주세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린 다음 택시를 보냈다. 자칫 잘못하면 민간인인 택시 기사가 휘말릴 수 있었다.
‘하필이면 사람 많은 곳에 터지는 거야.’
높은 건물 사이사이로 피어오르는 불길과 검은 연기가 보였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비명 소리 또한 들렸다.
정신없는 현장.
시내 한복판에서 터졌음에도, 헌터들은 침착하게 전투 구역을 한정 짓는 작업을 하면서 민간인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112와 119 소속의 헌터들이 현장을 격리하자 민간인들은 최대한 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구역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헌터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아이리스 길드 소속입니다.”
“네! 스마트폰의 재난 대응 앱에 지도 구역이 배포되어 있습니다. 아이리스 길드는 C구역입니다!”
나는 곧바로 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자 보이는 몬스터.
전체적으로 갸름한 몸매에 사나운 이빨을 가진 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사냥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저 몬스터의 이름은 레틱스라고 불린다.
일명 몬스터의 하이에나라고 불리는 레틱스가 민간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펑!
펑!
익숙한 아이스 스피어가 레틱스에게 적중했다. 정면에서 마법을 사용하면서 레틱스를 처리 중인 김세아가 보였다.
다른 볼일을 보고 있었는지, 꽤나 치장에 신경 쓴 차림이었다.
“꺄아악!”
어린 여자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사태를 파악했다. 자동차 안에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다.
비명의 원인은 레틱스.
자동차를 툭툭 건드리더니, 자신의 머리로 유리창을 세게 치며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뒤에 있는 김세아는 다른 쪽에서 몰려오는 레틱스 때문에 이쪽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나는 지면을 박차며, 빠르게 레틱스에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 위에서, 레틱스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곧바로 레틱스 머리와 몸통을 검으로 후려쳐서 아이에게 보이지 않을 곳으로 날려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에 있던 레틱스들이 나를 보며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으어어엉!”
자동차에서는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뒤로 두 발자국 움직여 깨진 유리창 너머로 손을 넣어 문을 열었다.
아이는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만,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나를 굉장히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은 솔직했다. 그래서 제대로 보였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심정이라는 것이, 그 눈빛에서 진하게 전해져 왔다.
예전이었다면 힘이 없어,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 이 순간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연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저씨가 구해줄 테니까. 눈 감고 딱 열까지만 세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