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29화
12장 던전의 주인(4)
나는 몸을 숨긴 채, 안에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먼저 스켈레톤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옮기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마석을 가공하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는 스켈레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듀라한이었다.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작업실인 모양이었다.
스켈레톤을 만들어내는 곳.
이 던전 안에서 나타난 스켈레톤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리치의 마법으로 인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스켈레톤들이 자신들의 동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체 하나에 마석 하나씩을 머리에 꽂아 넣고는 스켈레톤이 들어 올렸다.
스켈레톤은 시체를 들고, 오른쪽 구석에 있는 곳으로 가서 집어 던졌다. 그곳에는 높은 산 형태를 이룬 시체 더미가 있었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검을 들었다. 이 공간 너머에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빨리 처리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숨기고 있던 몸을 일으키고, 작업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어차피 이곳에서 가장 강한 것은 듀라한뿐이었다.
스켈레톤이야 이젠 상대도 되지 않았으니까.
듀라한의 왼손에 들린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몸을 뒤로 빼면서 자신의 머리를 지키고, 오른손에 있는 검을 들면서 반격을 개시했다.
삭!
난 검을 피하고, 빠르게 움직여 듀라한의 팔목을 잘라내었다. 팔목과 함께 듀라한의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축구공 굴러오듯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듀라한의 머리. 나는 잠시 발을 들어 올렸다가,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두개골이 갈라지고, 듀라한의 시체가 무너졌다. 이제 이 작업실에 남은 강자는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스켈레톤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가 듀라한을 죽여도 신경 하나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맡은 일만 하고 있었다.
나는 검을 들어, 그런 녀석들의 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터져 나가는 두개골을 보며,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작업실에 남은 것은 나밖에 업었다. 스켈레톤과 듀라한은 내 손에 죽었으니까.
‘이동하자.’
작업실 너머에 있는 길로 가기 위해 걸었다. 아까 스켈레톤이 시체로 만들어놓은 산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일까.
저렇게 많은 마석들은 어디서 난 것일까.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시체에 박혀 있을 마석들을 빠르게 챙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길을 쭉 따라가니 이번에는 스켈레톤 마법사들이 다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스켈레톤 정예 병사였다. 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이곳 역시 처리해야지만 다음 곳으로 갈 수 있으니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스켈레톤 마법사들이 나를 확인하고, 마법을 만들어냈다.
파이어 볼.
아이스 에로우.
라이트닝 볼트.
다양한 마법들을 확인한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스켈레톤 마법사들을 쳐다보았다.
마법을 캔슬시킬 리는 없고, 나는 앞으로 달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내 검이 닿기도 전에 사방에서 마법이 날아왔다.
‘칫.’
검을 당겨 내 앞에 다가온 파이어 볼을 쳐내고, 몸을 숙이고 구르며 마법들을 피했다.
앞으로 전진하면서 피하다 보니 기회가 생겼다.
쾅!
콰앙!
다시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스켈레톤 마법사의 머리를 부수며, 옆으로 이동했다.
차례대로 스켈레톤 마법사를 정리하고, 작업 중이었던 스켈레톤 정예병사도 부숴 버렸다.
맘 같아선 불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스켈레톤 정예 병사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다 남은 마석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챙겼다.
이미 C급 마석은 100개를 채워 두 번째 칸까지 자리를 차지했다.
‘이 정도면 돈 좀 되겠는데?’
마석은 순도 등 여러 가지 항목으로 평가하여 가격이 책정되었다. 아마 내가 가져가는 마석들도 그렇겠지만, 저렇게 많은 양이면 충분히 돈이 됐다.
스켈레톤 정예 병사 작업장을 지나 다시 길을 따라 쭉 이동했다. 이번에는 조금 시간이 걸려서야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없는 큰 공간이 나왔다.
‘저 녀석이구나.’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정면 끝쪽에 뼈로 이루어진 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 의자에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몬스터가 있었다.
스켈레톤과 똑같이 뼈다귀로 이루어져 있지만, 온몸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겉에 걸친 보라색 망토는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이었다.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고서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 옆에 있는 해골이 달린 스태프.
그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저 앞에 있는 몬스터의 정체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리치.
이 던전의 주인이자, 내가 잡아야 할 최종 목표.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고 할 때,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이야.”
이곳에는 나와 저 리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리치는 여전히 턱을 괴고 있었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파악을 위해 대답했다.
“뭐가 나라는 거지?”
그러자 다시 환청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집을 어지럽히고 다닌 게…….”
삐그덕거리면서, 리치의 머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머리가 모두 올라갔을 때, 빨간 안광이 터져 나오며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이로……구나……!”
귀를 찢어버릴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엄청난 기세가 담겨 있었다.
리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에서 마나가 요동치더니,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다.
눈앞이 먼지로 자욱해지며, 정면의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입만 가린 채, 눈을 게슴츠레 뜨며 주위를 경계했다.
바람이 불며 먼지가 가시고, 다시 시야가 확보되었다.
‘젠장…….’
앞에 나타난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 병사와 스켈레톤 정예 병사, 그리고 스켈레톤 궁수.
지금까지 사냥했던 녀석들과 다르게, 듀라한처럼 검은 기운이 그들의 몸에 서려 있었다.
스태프를 들어 올린 리치가 화가 난 듯한 음성으로 스켈레톤들에게 지시했다.
“죽여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스켈레톤 병사들.
뒤에서는 스켈레톤 정예 궁수가 일제히 화살을 걸고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는 길게 호흡을 들이마신 뒤, 조금씩 내뱉었다. 중구난방으로 날뛰던 감정을 다스리고, 당장 앞에 보이는 녀석들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검을 들고, 나에게 달려오는 스켈레톤들에게 향해 달렸다. 수십 마리, 거기다 검은 기운이 몸에 서려 있다고 하지만, 약점이 훤히 보이는 놈들이었다.
머리.
오로지 그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켈레톤 궁수가 쏘는 화살을 피하면서도.
사방에서 찔려 오는 검을 피하면서도.
머리를 부수며 그 수를 하나씩 줄여 나갔다. 점점 깎여나가는 체력과 함께, 스켈레톤 병사와 스켈레톤 정예 병사를 모두 처리했다.
나는 체력의 안배를 두고, 스켈레톤 정예 궁수에게 접근해서 검을 휘둘렀다.
퍽! 퍽!
이미 화살을 쳐내는 데는 이골이 났다. 녀석들이 날리는 화살을 쳐내며 마지막 남은 스켈레톤 정예 궁수의 머리에 검을 박아 넣었다.
내 앞에 서 있던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 호흡을 조절했다. 아직까지는 많은 체력이 소모되지 않았다.
리치가 다시 한번 빛이 나는 스태프를 휘두르자, 지면이 떨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먼지들과 함께 나타난 듀라한 다섯 마리. 하나같이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듀라한들이 몸을 움직였다.
리치의 곁으로 걸어가 그곳에 자신들의 머리를 내려놓고, 나를 향해 일제히 검을 들었다.
이런 식으로 소모전이 지속된다면, 결국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나는 리치의 곁에 있는 듀라한의 머리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것부터 처리하자.’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리치만 조심한다면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았다.
생각의 정리를 끝내고, 나는 다시 앞으로 달려나갔다. 듀라한들이 내 모습을 보고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앞까지 다가왔을 때, 듀라한들이 검을 휘둘렀다.
나는 자세를 낮추며, 슬라이딩으로 정면에 있는 듀라한의 다리 사이로 몸을 뺐다.
그러곤 바로 일어나 리치가 있는 곳까지 빠르게 달렸다.
내 모습을 확인한 리치가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어딜!”
나는 녀석이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내가 거의 다가갔을 때, 리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함께 마법이 발동되었다.
“……배리……어!”
은은하게 빛나는 유형의 막이 리치와 듀라한의 두개골들을 덮었다.
그 막을 부수기 위해 나는 위에서 아래로 힘을 실으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검과 유형의 막이 부딪치며 거대한 굉음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일어난 거세한 바람이 내 몸을 통과해 뒤로 날아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에도, 리치의 배리어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리치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리치의 입이 다시 움직였다. 동시에 스태프와 고서에서도 빛이 흘러나왔다.
“파이어 볼.”
내 머리만 한 파이어 볼 수십 개가 리치의 주변에 나타나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리치가 스태프를 움직이자,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나를 향해 동시에 날아왔다.
나는 뒤로 몸을 빼면서,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검으로 쳐냈다.
콰과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녀석의 파이어 볼을 모두 피할 수가 없었다. 몇 개는 쳐낼 수 있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크흑.”
내 다리와 왼쪽 팔에서는 검은 그을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옷은 타버렸고, 피하지 못해 생긴 상처가 욱신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멩이를 주워 리치를 향해 던졌다. 키워드 장소에서 만났던 스켈레톤 마법사처럼, 일시적인 마법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날린 돌은 배리어에 닿으며 부서졌다. 그때와는 확실히 다른 마법이었다.
무엇보다 유형의 막이 아직도 눈에 훤하게 들어왔다.
나는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어쩔 수 없어.’
리치에게 집중하기 위해선, 앞에서 다가오고 있는 듀라한부터 처리해야 했다.
이젠 어쩔 수 없었다.
갑옷을 벗겨내고, 심장에 있는 마석을 찾아 부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니면 저 배리어 마법이 끝날 때까지 버텨보는 수도 있겠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위험했다.
팔과 다리는 욱신거리긴 하지만,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비상용으로 챙겨놓았던 포션을 하나 꺼냈다.
‘쉽지 않겠어.’
그러나 포션을 마시기도 전에 검부터 휘둘러야 했다. 시간을 주지 않은 듀라한들을 상대하며, 포션은 다시 원래 자리로 집어넣었다.
챙! 챙!
정면에서 날아오는 검을 쳐내면, 두 곳에서 검이 날아왔다. 정신없는 연격 속에서 나는 선택했다.
살을 내주더라도 뼈를 취하자.
정면에 보이는 한 놈만 노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강하게 휘두른 검에 갑옷이 찌그러지며 벗겨졌다.
‘일단 하나.’
검은 기운 사이로 보이는 빨간 점. 그 안에 손을 넣어 마석을 부쉈다. 그리고 빨리 몸을 피했지만, 완벽하지 못했다.
“크윽.”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검상을 입었다. 그리 깊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상처를 입으면서 듀라한의 수를 줄여 나갔다.
‘하나!’
마지막 남은 듀라한의 갑옷을 부수고, 그 심장에 있는 마석을 쟁취했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마석을 깨뜨렸다.
듀라한을 모두 처리한 내 모습은 기괴했다.
온몸에 검상과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물론 배와 등도 따끔했다.
나는 품에서 포션을 꺼내 빠르게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머리 위로 부었다.
마시는 것도 좋지만,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으면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크크……크.”
리치의 웃음소리.
나는 정면에 있는 리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유형의 막과 함께 리치의 스태프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다시 생성된 수십 개의 파이어 볼.
백 개는 돼 보이는 파이어 볼들을 만들어낸 리치가 다시 한번 웃었다.
“……크크……크.”
이 정도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내 꼴이 그렇게 꼴사나웠나 싶었다. 하지만 저 비웃음에 분노는커녕 나도 실소한 듯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그저 웃음이 나왔고,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
그 욕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라이칸 슬로프를 만난 그 이후였던 것 같았다.
강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좌절하기보다는 이기고 싶은 감정이 솟구쳤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