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13화
6장 영웅(2)
D급에는 자신이 있어도, C급엔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상대는 어느 정도의 상대인지 짐작도 가지가 않았다.
‘……그 이상.’
라이칸 슬로프는, 돌연변이의 피가 묻은 입가를 달싹이며 물었다.
“살려줄까?”
라이칸의 물음에 우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며, 가지고 놀았다.
“좋아. 나한테서 도망가면 살려주지.”
그 순간, 나는 김세아와 이찬혁을 보며 눈빛 교환을 했다. 어차피 살 방법은 도망가는 것밖에 없었다.
왜 도망가라고 하는 지도 눈에 보였다.
사냥.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찬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행복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미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 덕에 살 확률이 일 퍼센트라도 주어진다면.
저 녀석이 기회를 줄 때,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다음은 저 녀석과 멀어진 다음 해야 할 고민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배나운을 등에 업었다. 살짝 뒤를 돌아 눈치를 보았지만, 정말로 우리를 보내줄 것처럼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죽일 수 있는 거리.
침을 삼키며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이찬혁과 김세아까지 모인 뒤 우리는 빠르게 달려 라이칸에게서 떨어졌다.
“크하하하하.”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우리는 모두 이를 악물며 빠르게 달렸다. 저 녀석에게 죽지 않기 위해서.
내 짐 가방을 매고 있는 이찬혁에게 말했다.
“뒷주머니에 보면 늑대용 교란제가 있을 거야.”
늑대들은 후각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람의 체취만 맡으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라이칸 또한 늑대이기에 후각에 민감함 것이다. 변수를 하나씩 만들어야 했기에 이찬혁이 달리면서 교란제를 뿌렸다.
“으으으.”
침음성을 뱉고 있는 배나운. 살짝 돌아보니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양팔에서는 피가 너무 많이 흘러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 일단 저기 동굴로 가자.”
소탕 임무를 하면서 봐두었던 동굴. 우리는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갔다.
김세아가 주위를 돌아보더니 역할을 나눴다.
“나와 이찬혁은 일단 흔적을 지우고 올 테니까 넌 선배님을 치료하고 있어.”
교란제를 들고 밖으로 나간 두 녀석을 보며, 나는 가방에서 응급처치 도구를 꺼냈다.
일단 지혈 주사를 꺼내 양팔에 투여했다.
그다음 재생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통풍이 잘되는 붕대를 감았다.
정신이 든 배나운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보았다.
“으아악! 시발! 내팔!”
피는 멈췄지만 그 고통은 지속되고 있는, 배나운은 좌우로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악! 아파!”
성질머리가 뻗쳤다.
“이 와중에 소리 질러서 나 여기있다고 소문내고 싶습니까. 선배면 좀 닥치고 있어요.”
나는 가방에 있던 진통제를 꺼내 배나운에게 주사했다.
“일단 정신 놓지 말고 있으세요.”
진통제를 놓았으니 진정이 될 것이고, 혹시나 모를 쇼크사까지 예방했다. 살아만 있다면, 나중에 팔을 찾아 붙일 수 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찰나가 지나자마자 다시 배나운을 들쳐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가던 와중, 김세아가 나에게 물었다.
“어떡할까.”
나는 달리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찬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포털로 가는 거 아니었어?”
가장 쉬운 던전 밖으로 나가는 포털로 향하는 것.
고개를 절로 지으며 기각했다. 그곳에서 라이칸이 지키고 있다면 우린 바로 전멸이었다.
라이칸은 우릴 놀리기 위해서 놓아준 것이었다. 그걸 감안한다면 포털은 가장 죽기 좋은 장소였다.
뒤이어 얘기한 김세아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전혀 예상 못 할 장소에서 아예 기척을 숨기고 숨어보는 건 어때. 구조대가 오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길드원들은 던전에 들어갈 때 출입부를 작성했다. 우리도 물론 작성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아마 2~3일 정도가 지났을 때 수상함을 느끼고, 그제야 움직일 것이다.
결론은 이 안에서 라이칸에게 들키지 않은 채, 2~3일 버텨야 한다는 소린데, 이것도 힘들었다.
라이칸 슬로프가 마음만 먹는 다면 붉은 늑대를 동원해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우리를 찾을 것이다.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내가 머릿속으로 정리한 이야기를 풀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세아와 이찬혁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급하게 달려가는 방향을 홱 하고 틀었다.
달려가는 방향에서, 붉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교란제를 이용하면서 자잘하게 진로를 변경했지만, 완전히 그 방향을 피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일단의 붉은 늑대들을 만난 순간.
김세아와 이찬혁은 굳은 표정으로 돌격했다.
“흐음.”
라이칸 슬로프는 흥미가 돋았다.
‘재미있네.’
라이칸 슬로프는 지금 죽기 싫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만든 역설을 보고 있었다.
포털이 죽기 딱 좋은 묫자리란 걸 깨달은 그들은, 역으로 숲의 중심지로 향하고 있었다.
‘몇 시간 더 살자고 말야.’
그곳으로 도망간다고 절대 생존의 확률이 높아지는 게 아니었다.
그냥 살아 있을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뿐이었다.
‘재미있네.’
돌연변이 늑대보다 더 재미있는 유희거리가 생긴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라이칸 슬로프는 생각보다 길게 가지고 놀고 싶어졌다.
김세아와 아이스 스피어로 붉은 늑대를 꿰뚫었으며, 분노한 목소리를 터뜨렸다.
“이 늑대 새끼가!”
방금 잡은 늑대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라이칸 슬로프를 말하는 것이었다.
유희를 즐기려는 것 같더니, 정말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늑대를 한 마리, 두 마리 보내며 몇 마리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보는가 싶더니, 한 번은 정말 강한 늑대를 보내서 간신히 이기는가 싶을 때 다른 자잘한 늑대들을 떼로 보내서 놓치게 만들었다.
“열 내지마, 진 빠진다.”
농담으로 말한 거지만, 진지하게 걱정됐다.
사실 돌연변이와의 전투만으로도 김세아에겐 무리였다. 그런데 그 직후로도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몸 내부가 엉망진창인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힘을 그냥 쓸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참아야 해…….’
이 힘은, 우리 팀에 여벌의 목숨이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으득.
이를 악물고서, 나는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그렇게 한참은 달린 끝에, 결국 우리는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으스스하네.”
수도 없이 와본 던전이었지만, 중심부까지 들어온 적은 처음이었다.
이곳으로 들어오자, 분위기가 한층 무거웠다.
붉은 늑대 서식지 던전 중심부.
김세아가 주위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일단 몸을 숨길 곳을 찾아보자.”
“나랑 찬혁이가 찾아볼게. 팀장 넌 몸 관리하고 있어.”
우리가 살 확률을 올리려면 김세아가 컨디션을 되찾아야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중간중간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약품과 김세아의 얼음 총동원해서 체력회복을 하긴 했다.
그러나 ‘하긴 한’ 수준은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여기여야 할 텐데…….’
예상하는 목적지는 거의 다 도착했다. 이제 한 번의 숨만 더 돌리고 나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휴식을 끝내고서 몸을 움직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꽤 재미있었어.”
유희의 끝을 알리는 말이었다.
‘……젠장.’
이제 곧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였다.
코앞에서 무너졌다.
“그러니까 더 오래 살고 싶거든, 다른 곳으로 꺼졌어야지.”
“……뭐라고?”
“도둑 새끼가 하다 하다 남의 집까지 헤집으려고 하면, 잡아먹고 싶어지잖아.”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라이칸 슬로프는 굉장히 분노해 있었다.
그 순간.
입맛을 다시고 있는 녀석에게 이찬혁이 먼저 달려들었다.
빠르게 다가가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검격.
챙!
아주 쉽게, 라이칸 슬로프의 발톱에 간단하게 막혔다. 표정의 변화조차 없이 여유롭게 막아낸 공격.
이찬혁은 검을 빼며 뒤로 물러섰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김세아가 아이스 스피어를 만들어 라이칸 슬로프를 향해 날렸다.
손짓 한 번에 아이스 스피어가 얼음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날렸다. 뒤이어 그녀가 비장의 한 수를 사용했다.
그녀의 몸 주위로 새파랗고 빛이 일어났다.
“아이스!”
새파랗게 빛들은 주변 일대를 움직이며 수많은 얼음 결정들을 만들어냈다.
생각보다 많은 마나를 사용하기에 몸이 휘청거렸지만, 멈추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
“프리즌!”
김세아의 영창이 끝나고.
사방에 존재하던 얼음 결정들이 빠르게 라이칸 슬로프에게 날아갔다.
파바바바밧!
결정들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얼음 감옥.
호박 화석처럼 라이칸 슬로프는 얼음으로 된 결정 안에서 정지된 상태로 존재했다.
배나운은 그 모습을 보더니 곧바로 뒤로 줄행랑쳤다.
그리고 그 순간. 얼음 결정 속에 들어가 있던 라이칸 슬로프의 눈동자가 데룩 하고 굴러갔다.
서걱.
공간이 기다랗게 찢어진 것처럼, 라이칸 슬로프와 배나운 사이의 일직선 상에 모든 것들이 베어졌다.
“으아아아아!”
양팔에 이어 양다리까지 날아간 배나운이 풀숲에서 바둥거리고 있자, 라이칸 슬로프가 얼음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와서 걸어갔다.
지면을 박차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배나운의 앞에 서서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난 시끄러운 녀석을 제일 싫어해.”
라이칸의 오른손이 배나운의 심장을 뜯어냈다.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축 처졌다.
아직도 팔딱 뛰고 있는 심장을 입안에 넣고는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음. 생각 외로군.”
비록 재수 없고, 꼴사나운 선배였지만 라이칸 슬로프에게 죽어버렸다.
라이칸 슬로프가 낮은 소리로 울었다.
그 순간, 숲의 뒤에서 이 일대에 모든 붉은 늑대가 모인 것처럼, 엄청난 양의 붉은 늑대가 나타났다.
우리를 감싸듯 자리 잡고는 침을 뚝뚝 떨어뜨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라이칸은 근처에 있던 나무에 몸통을 날려 보내고 그 위에 앉았다.
“놀이터는 여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늑대들이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왔다. 김세아는 마법을 영창했고, 나와 이찬혁은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이런 좆같은 상황이 분한지, 이찬혁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시발.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먼저 달려 나가며 정면에 있는 붉은 늑대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붉은 늑대들과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김세아와 이찬혁 둘 사이에 서서 그저 쳐다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합!”
김세아의 손놀림에 여러 개의 아이스 스피어가 만들어지며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깨갱!”
“크륵!”
필사.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정신력이 상승되어, 김세아의 마법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압도적 물량의 차이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나는 점점 소모되었고, 떨어져 서 있는 것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헉헉!”
붉은 늑대 다수가 마지막일 것 같은 공격을 하려고 할 때, 라이칸 슬로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까지.”
이찬혁과 김세아의 사이로 다가온 라이칸 슬로프. 둘은 마지막 최후의 공격을 라이칸 슬로프에게 실행했다.
아이스 스피어와 검.
그러나 라이칸 슬로프는 가볍게 피하며 둘에게 주먹을 선사했다.
퍽!
퍽!
극도로 떨어진 체력에 둘은 내 쪽으로 날아오며 기절하여 쓰러졌다. 나는 둘을 바라보며 여러 감정이 솟구쳤다.
라이칸 슬로프는 나를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주변에 일어난 상황들이 머릿속에 다시 새겨지면서, 심장이 타오를 듯이 빠르게 뛰었다.
즐거워하는 라이칸 슬로프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서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이제 겨우,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강해지기 위해 투기장에서 포인트를 쌓았고.
동료들과 임무를 하며 영웅에 대한 생각을 키웠다.
그리고 강해졌다. 손색이 있을 지언정, 과거의 자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자신할 수 있었다. 미래의 자신은, 또 지금의 자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신이 주신 기회로, 꿈을 이룰 수 있을 기회도, 꿈을 이룬 미래의 자신도, 한낱 유희나 즐기는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게 생겼다.
화가 났다.
“후우.”
내 옆에 떨어져 있는 검.
그것을 주워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바라보며 라이칸 슬로프가 말했다.
“그 자리에서 비키면 네 목숨만은 살려주지.”
“좆까.”
살려줄 리가 없었다. 조롱이나 하려고 이러는 것이다.
더 이상 이딴 놀이에 놀아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설령 죽더라도 영웅답게 죽을 것이다.
“덤벼, 이 자만심에 절어버린 늑대새끼야.”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오유성
종족 : 인간
힘 : 랭크 4 (0/3,000)
민첩 : 랭크 3 (0/100)
지능 : 랭크 1 (03/15)
체력 : 랭크 3 (0/100)
마력 : 랭크 1 (02/15)
잔여 포인트 : 3,003p
난 3,000포인트를 사용해 모두 힘에 때려 박아 랭크 5를 만들었다.
그 순간, 몸에서 열이 끓듯 뜨거워지며 표면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강철을 때리면 때릴수록 더 견고해지듯.
내 몸도 계속해서 근육들이 움직이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변화가 끝났다고 느꼈을 때.
검을 들고 라이칸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그 기세에서, 라이칸 슬로프는 무언가 심상찮음을 본능적으론 느꼈다.
그렇기에 전력을 다했다.
채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일격이 라이칸 슬로프의 발톱과 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난 팔목부터 어깨죽지까지가 모조리 아작났다. 전력을 다한 라이칸 슬로프의 예기 때문에 온몸도 난도질당한 것 마냥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일격.
흘려내고서 심장을 노렸던 공격이니, 충격을 모두 흡수한 게 아님에도 몸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명백한 패배다.
그러나 난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일 합 만에 승리했을 터인데, 라이칸 슬로프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논다며? 별거 없네?”
내 조롱에 라이칸 슬로프는 분노했다. 라이칸 슬로프가 나를 가볍게 밀어쳤다.
더 이상의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나는 힘없이 뒤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입에서 쿨럭하며 기침을 하니 피가 흘러나왔다.
갈비뼈 쪽이 부러졌는지 숨 쉬는 게 많이 힘들었다. 입에서는 갈라지는소리가 나며 폐에 공기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넌…… 내가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마.”
희미해진 시야 사이로 라이칸 슬로프가 손톱을 김세아의 가슴 쪽으로 가져가는 걸 느꼈다.
‘안 돼.’
속으로 외쳐보지만 닿지 않는 메아리였다.
라이칸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심장에 다가가려고 할 때.
“숙여.”
그 소리가 들리자, 나는 필사적인 힘을 끌어올리고서 김세아를 끌어안은 채, 몸을 숙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서걱!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희미한 내 시야에 비친 것은, 갈라진 공간이었다.
거인의 검이 베고 지나간 것처럼, 거대한 검이 세상을 통째로 베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이 지나간 직후.
콰아아아!!
베어낸 자리에서 엄청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그 바람에 라이칸 슬로프를 비롯한, 이 지역의 늑대들이 모조리 갈려 나갔다.
바람이 강력해질수록, 난 혹여 김세아가 다칠세라 그녀를 더 꽉 붙들고서도, 절대 그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희미한 눈에 힘을 꽉 줬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바람이 전부 가신 세상에는, 늑대가 모조리 증발하고 없었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정신을 붙잡으며 머리를 나무 뒤로 기대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커다란 등이 보였다.
어릴 적 내가 본받고 싶었던,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영웅이 되고 싶게 했던 그 넓은 등.
그 등을 가진 주인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물었다.
“괜찮냐?”
틱틱대지만 아주 친근한 느낌.
외곽을 수색하는 14팀과 연계해서, 극비리에 필드 내부를 수색하는 임무를 받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14팀의 교관 강한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