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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12화 (12/177)

# 12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12화

5장 다가오다(3)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중년 남성의 옆으로 가서 새로운 종류의 소주를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했다.

[소주를 구매하셨습니다.]

잔에 따라서 주니, 중년 남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중년 남성과 건배을 하고는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부드럽게 넘어가 몸 안에 흡수되었다.

“오, 색다른 맛이군.”

중년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게요.”

“신기하단 말이야.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것이.”

“보통 그래서 먹는 것만 먹습니다.”

내 표정이 읽혔는지 중년 남성이 먼저 물어왔다.

“술을 술술 들이켜는 걸 보니 이번에도 고민이 있는가 보군.”

“티가 많이 나나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문제들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뭔가 실마리는 알겠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확실한 정보도 없이 괜한 혼란만 사는 행동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여기는 달랐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고, 눈앞의 중년인도 내가 사는 곳의 누구와도 연락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상 현상들이 너무 많다 이거군.”

“맞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안하니까요. 뭔가 뜬구름 잡는 기분이에요.”

“허상에 집착하면 볼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게 되지. 진실을 알고 싶다면 더 본질적으로 다가가 보게.”

‘본질적이라.’

이번에도 한 번에 알아 듣기에는 뭔가 어려운 말이었다.

좀 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좋겠지만, 투기장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이번 결투는 무패 대행진을 이루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오유서어어어어어어엉!

끼이익.

철창이 열리고 나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나가자마자, 철장이 닫혔다.

그리고 무대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고로 동물은, 서열 싸움을 할 때 여럿이서 하나를 공격하지 않아.”

“……네?”

“서열 정리는 일 대 일이지. 동물이 여럿이서 하나를 잡는 건 서열 싸움이라고 안 해. 사냥이라고 하지.”

중년인의 말에 신경이 곤두서려고 하는데, 그 순간 반대편에서는 괴상한 울음소리와 흥분한 돼지 소리가 들렸다.

더불어 관객들 또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크들에게 광역 도발을 시전한 효과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반대편 철장에서 걸어 나오는 오크.

평소와 다른 점은 머리가 두 개라는 것이었다. 양손에는 검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한쪽 머리에서는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고, 다른 한쪽 머리에서는 분노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트윈헤드오크 발데라아아아아아아악!

“쟤 먹어도 돼?”

“일단 척추부터 뽑아버릴 거야. 크륵.”

살벌하네.

‘이능력자.’

초반에 붙었던 고블린 쿰퍼와 같이 비정상적 강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검을 고쳐 들며 자세를 잡았다. 트윈헤드 오크가 무서운 점은 머리가 두 개라는 것이다.

한쪽 머리가 없다고 해도 몸을 제어할 수 있으며, 머리 두 개로 각 팔과 다리를 제어할 수 있어 다양한 공격들이 가능했다.

또한 머리가 두 개이다 보니 360도 확인이 가능해서 뒤치기 같은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럼 경기를 시자아아악 하겠습니다아아아아아!

[투기장에서 승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상대방을 죽이거나 항복 선언을 받아내어 승리하십시오.

승리 : 포인트 100점

패배 : 죽음

“일단 머리부터 먹어버릴거야.”

“아니지. 양팔과 다리부터 하나씩 때야 동료들이 기뻐할 거야.”

나를 보며 아직도 어떻게 죽일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너네 둘 중에 누가 더 멍청하냐?”

내 질문에 서로를 쳐다보더니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얜 먹을 생각밖에 못 하는 멍청한 놈이지.”

“입만 산 너보단 나.”

서로 티격 태격 싸우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먼저 머리를 하나 없애고 시작해야 싸우기가 편했다.

그러나 나를 확인 했는지 검을 휘둘렀다.

‘아쉽네.’

머리가 두 개면 둘 중 하나는 도발이 먹힐 줄 알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발데락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검 사이로 몸을 집어넣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 왼쪽에 있는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죽여 버릴 거야!”

고통에 몸부림치며 오른쪽에 있던 얼굴이 분노에 가득 차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목에 박힌 검을 빠르게 뽑아 몸을 회전시키며 심장에 박아 넣었다.

회전으로 인해 속도가 붙은 검은 쑤욱 하고 심장에 박혔다. 양 손의 검을 떨어뜨리고 오른쪽 머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육중한 육체가 뒤로 넘어가며 쿵 하고 쓰러졌다. 심장에 박힌 검을 뽑자 피가 주르륵 흘렀다.

가볍게 흔들어 피를 털고 뒤로 돌았다.

“아!”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검을 역으로 쥐고 있는 힘껏 힘을 주고 뒤로 돌며 찔렀다.

어느새 서 있던 발데락의 왼쪽 갈비뼈 부분에 정확히 내 검이 박히면서 등을 뚫고 나갔다.

“어…… 어떻게.”

눈을 부릅뜨며 나를 놀란 표정을 쳐다보는 발데락. 나는 그 얼굴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깜빡할 뻔했네. 너 심장 두 개 있는 거.”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보상 : 100점

추가 보상 : 100점 (반전 있는 결과에 관객들이 환호합니다.)

[다음 상대 : 오크 투베라]

당연히 깜빡한 것은 아니었다.

200포인트.

재능도 없는 연기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드디어 5랭크다!’

오늘로써 모인 포인트가 3,000.

드디어 스탯 중 하나를 5랭크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변수의 연속이었다.

임무 난이도에 비해 여유롭게 모으나 싶더니, 김세아가 폭주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던전은 이상 현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굉장히 컸는데, 목숨의 여유분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귀환합니다.]

* * *

상부의 호출을 받고 올라간 강한수는 문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업무 중인 채하나가 보였다.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섰다.

“앉아.”

“예.”

그녀가 가리킨 소파에 앉아 있자, 채하나가 커피잔에 커피 믹스를 타며 물었다.

“요즘 맡고 있는 팀은 어때?”

강한수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보였던 녀석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매사 열심히 하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출세욕과 자기 과신의 덩어리들.

“문제아들 집합소랄까요.”

“그러니까 너한테 맡긴 거 아니겠어?”

채하나가 커피를 가지고 와 소파에 앉았다. 순간 달라지는 눈빛, 지금부터는 공적인 관계로 변했다.

“그래서 지금 임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김세아 조의 임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만간 끝날 것 같습니다.”

“언제쯤 움직일 것 같아?”

“일주일 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임무 끝나고 나면 교관 노릇 제대로 해. 안 그럼 계속 합법적으로 빠지게 해준다.”

교관이 합법적으로 빠지는 방법은 하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임무가 주어지는 것.

‘……얼마나 거지같은 거만 줄지 눈에 선하구만.’

“노력하겠습니다.”

채하나는 강한수의 눈빛에서 불만이 가득한 것을 느꼈지만, 더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알겠어. 나가봐.”

* * *

앞서 걷고 있던 이찬혁이 말했다.

“이상하네.”

마지막 소탕 임무를 위해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붉은 늑대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찬혁과 김세아, 배나운 모두 긴장을 잔뜩 한 얼굴이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이상 현상.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영역 다툼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건 자연에서 강자가 나타났을 때의 현상과 비슷했다.

공격성을 상실했던 붉은 늑대.

다수가 무리를 지어 다니던 붉은 늑대.

우두머리를 공격했던 붉은 늑대.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생태계를 교란 시키고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짐에 있는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다른 일행이 내 행동에 궁금증을 가지며 다가왔다.

“뭐하는 거야?”

“무슨 일이야.”

지도를 활짝 펼치고, 우리가 임무를 수행했던 곳을 모두 체크했다.

‘설마…….’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지도 위로 쏟아내었다.

“어라……?”

파노라마처럼 이상 현상들과 중년인의 조언, 여러 증거들이 머릿속에서 촤라락 맞춰졌다.

‘……미친!’

결과를 도출한 나는 빠르고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도망가야 돼.”

하지만 그때.

아주 낮고 깊게 울리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르.”

우리는 일순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 갈기 늑대가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수도 없이 본 그 늑대를 보며 얼어붙었다.

“돌연변……이?”

늑대의 갈기에선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열기에 갈기 주변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배나운이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저…… 저게 뭐야!”

전투 자세를 잡으며 내 쪽으로 다가온 김세아가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최대한 이성을 붙잡으려 노력하면서, 침착하게 설명했다.

“애초에 우린 이곳에서 몬스터 수색 임무를 하고 있었던 거야.”

“뭐?”

“우린 외곽을 돌며 이상 현상을 조사하고 있었던 거야. 저놈이 나타날 거라는 증거를 찾아다녔던……!”

내 말은 거기서 끊어져야 했다.

늑대의 입이 벌어지더니, 새빨간 무언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김세아의 허리를 낚아채고서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콰아아앙!

그 순간, 내가 방금 전에 서 있었던 자리를 화염 브레스가 녹여 버렸다.

그 와중에도 김세아는 아이스 월을 사용해 열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그러나 아이스 월 너머, 바닥의 흙과 돌이 녹아서 버무러진 모습에, 나와 김세아는 긴장감을 바짝 끌어올렸다.

‘……미치겠군.’

인간들만 특출한 능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간혹 몬스터들 중에서도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비정삭적인 힘을 가진 기존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

눈앞에 있는 붉은 갈기 늑대도 그러한 존재였다. 기존의 늑대들보다 강한 체력과 힘을 가졌고, 심지어 입에서는 불을 뿜는 특수 기술까지 있었다.

‘D급은 절대 아니고…….’

여기 있는 사람들로 D급을 깨지 못할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C급. 혹은…… 그 이상.’

그 이상일 경우는 상상하기 싫었다.

절망적인 가정이었다.

도망가기는 글렀다. 지금 저 녀석을 죽여야만 모두가 살 수 있었다.

김세아도 그런 것을 아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정면에 있는 붉은 갈기 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나 혼자 해볼게. 나머진 뒤로 빠져 있어.”

그 말에 배나운이 가장 먼저 움직였고, 이찬혁은 마지못해 뒤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 가지고 있는 방어구도 없고, 근접에서 공격을 하다가 브레스를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인 김세아 입장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을 내린 것이었다.

이찬혁의 표정을 보니 근심이 가득해 보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함인지 입술을 질끈 물고 있었다.

내 옆으로 다가온 이찬혁이 말했다.

“팀장 혼자 가능할 것 갔냐?”

“몰라. 저놈의 급을 전혀 모르니까…….”

다만 재능과 센스가 뛰어난 김세아가 이기길 기도할 뿐이었다.

선공은 늑대였다.

“크르라라락!”

늑대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몸을 뒹굴면서 김세아의 사각에 브레스를 뿜었다.

“아이스 월.”

바닥에서 올라온 얼음으로 이루어진 벽이 브레스를 막았다. 얇은 벽이 순식간에 세 겹이나 올라왔다. 그리고 그 직후, 자신의 양 옆으로 아이스 월을 두 겹 더 쌓았다.

그렇게 올린 아이스 월은 모두 불투명했다.

몸 전체에 아이스 월을 두르자, 김세아는 브레스를 간신히 막아냈다.

아이스 월의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일부러 얼음을 불투명하게 해서, 안쪽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 셈이 됐다.

그렇기에 나 또한 안에서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나를 과하게 썼을 건데…….’

초조하게 그쪽을 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쩌억!

아이스 월의, 정확히 브레스의 타격점 정 중앙에서 금이 쩍 벌어지더니 거대한 얼음창이 솟구쳤다.

그 얼음창은 브레스를 그친 직후여서 아직 아가리를 아이스 월 쪽으로 향하고 있던 늑대의 입속을 관통했다.

“크으응!”

아주 빠른 속도였지만, 늑대는 그 와중에도 뇌를 다치는 것을 피하며 재빨리 몸을 뒤로 빼 관통상의 깊이를 최소화했다.

치이이익.

붉은 늑대 갈기의 머리 부분이 얼어붙더니 연기가 피어오르며 천천히 녹아내렸다.

강한 열을 가지고 있는 머리 부분에 얼음이 만나 아주 빠른 속도로 수중기가 피어올랐다.

수증기로 인해 주위가 뿌옇게 변하면서 붉은 갈기 늑대의 시야도 막아버렸다. 위험을 느낀 붉은 갈기 늑대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의 기세를 보며 나는 직감했다.

‘됐다!’

순식간에 대처해낸 것 같지만, 치명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이찬혁! 마무리를 부탁해.”

이찬혁에게 소리를 치며 김세아는 다중의 아이스 스피어를 만들어 냈다. 그녀의 주위로 4개의 날카로운 창들이 나타났다.

김세아의 손짓으로 빠르게 날아가 붉은 갈기 늑대의 다리를 공략했다. 미쳐 연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붉은 갈기 늑대의 다리에 하나씩 박혔다.

동시에 아이스 스피어가 박힌 부분부터 인접한 곳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붉은 갈기 늑대.

그 등에 올라탄 이찬혁이 검을 들어 미간을 향해 검을 내리 찍었다. 검에 서린 마나가 검 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고, 미간에 그대로 박혔다.

“휴.”

이찬혁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붉은 갈기 늑대의 등에서 내려왔다.

“이…… 이거 대박이다!”

언제 저곳까지 다가갔는지, 붉은 갈기 늑대의 사체 옆에서 배나운이 욕심의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사체를 가져가기 위해 자신의 등에 업었다.

“이찬혁! 뒤에서 좀 같이 들어봐. 이거 돈이 얼마짜린데!.”

돌연변이의 사체.

저것을 판다면 확실히 많은 돈을 챙길 수 있었다. 돌연변이의 시체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니까.

‘……다행이네.’

긴장이 잘 풀리지 않았지만, 어찌저찌 위기는 잘 넘어간 것 같았다.

어쩌면 긴장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내 입장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혼자서 오랫동안 이걸 끙끙 앓고 있었으니까.

“흠.”

그런데 바로 옆에서, 김세아의 찝찝함 섞인 한숨 소리를 듣는 순간, 난 불안함이 다시 치솟았다.

“왜?”

“아니. 뭔가…… 좀 이상해서. 그냥 긴장이 덜 풀려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그 말을 들은 순간 긴장감이 더욱 증폭됐다.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저건 이유가 아니라 변명이다.

‘현실을 직시하자면.’

강한 것 치고 너무 힘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던 공격도 한 박자 늦게 움직여 공격을 허용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더 본질적으로 다가가 보게.’

나는 곧바로 배나운에게 다가갔다.

“이거 잠시만 줘보세요.”

“뭐? ……왜?”

나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고 사체를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난 내 손에 묻어 있는 축축함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조심스럽게 손을 떼자, 그곳에는 새빨간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 피를 본 모두가 정색했다.

배나운이 업고 있는 사체.

그 밑 부분에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무언가에 커다랗게 할퀴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그 사이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내 손에 묻어난 피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건 우리가 낸 상처가 아니에요.”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만약 붉은 갈기 늑대가 다른 무언가와 싸워 큰 상처를 입었던 거라면?”

이렇게 쉽게 전투가 끝난 것도 납득이 갔다.

현실감각이 뒤늦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돌연변이를 만난 순간, 지금쯤 우리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붉은 갈기 늑대에게 저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

나는 늑대을 밀치고서 곧바로 짐가방의 소켓을 체크했다.

“선배님 당장 사체를 버려요. 여기서 도망가야 돼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아니길 바라며 배나운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갈등했다.

“아니, 벌써 여길 떠났을 수도 있는 거잖아! 얘 여기까지 도망친 거 아냐! 그놈이 다친 거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 말을 다 하기 전,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서걱.

저 멀리서 날아온 바람 소리가 지나가는 순간, 배나운의 양팔이 허공으로 날아가며 피가 솟구쳤다.

“크아악!”

배나운이 잘려 나간 팔을 보거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숲 전체에 메아리쳐서 내 귀에 섬뜩하게 꽂혔다.

그때, 바람이 불어온 방향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붉은 갈기 늑대에게 상처를 입힌 존재. 불길한 생각 속에서만 존재해야 했던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양 발로 바닥을 걸으며,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다. 양 팔은 길게 쭉 늘어져 있으며 눈에서는 빨간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교육에서 본 적이 있었다.

늑대종의 돌연변이 중 인간형으로 변이된 가장 위험한 종.

라이칸 슬로프.

그 녀석이 자세를 잡더니 펑 하고 빠른 속도로 달려 우리가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 빠른 속도에, 우리 모두는 얼어붙었다.

라이칸 슬로프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붉은 갈기 늑대의 사체를 뒤적이며 말했다.

“도둑 새끼가 들었군.”

사체에서 꺼낸 것은 심장이었다.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며 팔딱 뛰고 있었다. 라이칸 슬로프는 그것을 입안에 넣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나는 그것을 보며 확신했다.

‘C급이 아냐…….’

우리를 돌아보던 라이칸 슬로프.

녀석의 시선은 우리에게 멈춰 있었다.

“근데…… 니들도 맛있나?”

절망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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