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10화
5장 다가오다(1)
배나윤이 김세아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더 위의 단계 임무를 받아도 되겠는데? 내가 맡아 본 팀 중엔 당연 최고야.”
“예. 감사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정리를 마친 뒤, 김세아는 길드 밖으로 나갔다. 나와 이찬혁은 숙소로 돌아가 몸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모님.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요.”
식판에 가득 음식을 담고 구석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뒤이어 음식을 받아온 이찬혁이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이번에 1팀까지 D급 갔대.”
1팀.
제일 무능하다고 소문난 팀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엔 큰일 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김세아 앞에선 알지?”
“당연하지. 너니까 얘기한 거야.”
밥을 다 먹고 난 뒤 식당 밖으로 나왔을 때, 매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눈이 돌아버렸다는 표현이, 매우 적절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보며, 나와 이찬혁도 다른 엘리베이터의 불을 눌렀다.
“팀장 사고 치는 거 아니냐?”
“그럴 눈빛이었어.”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리는 빠르게 회의실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김세아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집에 안 갔어?”
“팀장,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말을 걸어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머리, 조그맣게 쉬고 있지만 규칙적으로 내뱉는 호흡, 책상에 올려져 있는 손에서는 딱딱딱 소리가 함께 들렸다.
누가 봐도 ‘나 화났어’라고 티를 내고 있기에,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한 채 지켜만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강한수.
그가 우리를 보더니 물었다.
“웬일이야?”
강한수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김세아의 눈이 떠졌다.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김세아의 눈빛은 매서웠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묵묵히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교관님. 어제도, 아니, 지금까지 다른 임무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가 사실이 맞나요?”
자기 자리로 가서 앉은 강한수가 김세아을 보여 웃었다.
“그래서. 그게 사실이면 뭐가 달라져?”
“교관님. 장난할 기분 아니에요.”
“흠.”
다리를 꼰 채로 의자에 등을 기댄 강한수가 몇 초 동안 고민을 하다 대답했다.
“그래, 맞아. 그다음엔 뭐야?”
“규정 위반이에요. 교관은 임무 수행 시 항상 같이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을 알고 있으시겠죠.”
김세아의 분노로 인한 날 선 공격에 분위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웃고 있는 것은 강한수였다.
“나 대신에 나운이를 넣어 놓은 거잖아.”
“그러니까 왜 이런 F급 임무만 해야 하는 거예요!”
피식.
강한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이도도 쉽겠다. 놀면서 돈 벌면 얼마나 좋아. 수당 차이도 얼마 없잖아?”
“이런 임무나 하려고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온 게 아니에요.”
“놀면서 돈 버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직 모르는구만.”
“다른 임무를 주세요. 그러지 않는다면 다 말하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격해지자, 나와 이찬혁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맞췄다.
극한의 상황이다 보니, 초인적인 텔레파시가 통했다.
‘어쩔래?’
‘이건 김세아 편들어야지. 언제까지 따까리만 할 거냐.’
‘오케이.’
혹시라도 강한수에게 걸릴라, 찰나의 시선 교환이 끝나자마자 나와 강한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보고 있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시선을 다른 곳에 두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강한수의 책상 끝에 있는 그림 조각들이 보였다.
김세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난 머리를 비우려고 그 그림들의 모양을 암기했다.
그렇게 얼추 그림들의 모양을 다 암기했을 즈음, 김세아가 다시 따박따박 주장하려는 걸 낮은 목소리가 잘랐다.
“이래서 뒤치다꺼리 안 한다고 한 건데 짜증 나네…… 나가.”
“원칙을 어긴 건 교관님이……!”
“가벼운 임무라고 해도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헌터를 길드에서 애지중지할 이유가 있나? 정당하게 임무 하달한 거 불복하는 건 원칙 지키는 건가?”
강한수가 세게 나오자 김세아가 분에 못 이겨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아니면 강한수의 말에 찔려 쪽팔렸을 수도.
“후우. 너네도 김세아의 의견과 같냐?”
“예.”
이찬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나의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습니다.”
우리의 의견을 들은 강한수가 한쪽에 쌓여 있던 서류 뭉치를 김세아에게 던졌다.
턱!
꽤나 많은 양이기에 묵직한 소리가 났다.
“붉은 늑대 서식지 소탕 임무가 50건 정도 있으니까. 이걸 정말로 전부 다 수행하고 나면 다음에는 확실하게 난이도 높은 임무를 주마. 흠. 오케이.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으니 C급으로.”
“……보증을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김세아가 어느 정도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말투가 공손해졌다.
“원한다면 담당 교관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바꿔주지. 물론 임무 하달까진 책임져 준 다음에 교체해 주마.”
자존심이 꽤나 상해 보이는 김세아가 어물쩍거리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강한수가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오케이.”
* * *
딩동딩동.
방 안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새벽 6시도 채 되지 않았다.
이찬혁이 비밀번호를 잊어버릴 일도 없고, 무엇보다 밑에서 열심히 자고 있었다.
이런 이른 시간에 올 사람은 없었다.
“아, 졸려. 누구세요?”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여니 김세아가 떡하니 서 있었다. 단호한 표정의 그녀는 던전 안으로 들어갈 때 입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30분 줄 테니까 준비하고 내려와.”
“뭐?”
쾅!
일방적으로 닫힌 문. 나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며 상황 파악을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제 강한수가 이야기했던 50건의 소탕 임무.
다른 것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게 분명했다.
“하아아.”
난 깊은 한숨을 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찬혁을 깨웠다. 말로는 일어나지 않아 덮고 있는 이불을 완전히 벗겨 버렸다.
“아! 왜!”
“김세아가 나오란다. 30분 안으로.”
“몇 신데?”
“5시 50분.”
“팀장이라 해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
나도 그 말에 격하게 공감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밑으로 내려가니 배나운 선배도 도착해 있었다.
이찬혁도 입으로 구시렁 대고 있지만, 배나운이 있어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출발하겠습니다.”
던전으로 이동하는 동안 김세아가 간략한 일정을 말해주었다. 너무나도 간략한 일정이었다.
던전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임무를 끝내는 것. 밖을 나갔다 오는 것은 오로지 식량을 보충할 때 만이었다.
그렇게 막무가내식 소탕 임무가 시작됐다.
앞장서서 움직이는 김세아의 레이더에 포착된 녀석들. 눈에 스위치가 켜진 김세아가 마법을 사용하며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오케이. 일단 저기 붉은 늑대 3마리 확인.”
* * *
“다음 지역으로.”
마지막 붉은 늑대를 죽인 김세아의 모습은 많이 지쳐 보였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14팀 전원 강행군 일정을 소화하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벌써 일주일 째.
첫째 날부터 칠 일간 매일 소탕 임무를 3개씩 처리했다. 평소였다면 이틀에 3개씩 처리하는 수준이었다.
임무를 그렇게 진행한 이유는 길드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그걸 무시하며 오버페이스로 달렸다.
하지만 다들 군말을 하거나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첫날은 워낙 당황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다른 임무를 받기 위해선 이 소탕 임무를 빨리 끝내야 했다.
그래서 이찬혁도 첫날 이후에는 토를 달지 않으며 다 함께 임무를 진행했다.
배나운 또한 빡빡한 일정에 불만을 가질 만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겉으로 티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물론, 짐을 들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나와 배나운은 그렇게까지 극심한 체력을 소모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찬혁과 김세아가 걱정될 뿐이었다.
처음에는 식량 보충 이외에는 임무를 계속 진행한다고 했지만, 절반 정도가 지난 지금 휴식이 필요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내 말에 김세아가 이를 질끈 물며 고민을 했다. 그녀도 충분히 알 것이다. 이 정도의 일정을 소화했으면 쉬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짐을 챙기고 던전의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지도를 들고 길을 안내했다.
지도에 표시된 X자가 20개를 넘어섰다. 우리가 임무를 수행한 곳을 체크한 곳이었다.
중심부를 제외한 왼쪽 반원이 X자 표시로 가득했다. 아마 다음 주가 지나면 다른 편도 X자로 가득할 것 같다.
“어라?”
가장 선위에서 걷고 있던 이찬혁이 주먹을 쥐고는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모두 그 자리에 멈추라는 신호.
김세아가 원을 그리며 모이라는 신호를 보냈고, 팀장을 중심으로 모였다.
“무슨 일이야?”
김세아의 물음에 이찬혁이 답했다.
“전방에 붉은 늑대 3마리가 보여.”
“그럼 잡고 가자.”
자기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간의 뜸을 들인 이찬혁이 말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해.”
조심스레 자세를 낮추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정면으로 걸어갔다. 눈앞에는 이찬혁의 말대로 붉은 늑대 3마리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 마리와 한 마리가 대치 중이었다. 서로를 사납게 노려보며, 그르릉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이찬혁의 툭 하고 내뱉은 혼잣말.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헌터 학교에서 배운 이론으로는 이랬다.
“영역 싸움이겠지.”
내 말에 김세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몬스터라고 해도 생명체고 서열이 있으니까. 다만 이런 일이 드물 게 일어나서 깊게 배우지 않았어.”
단순한 영역 싸움이라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크르륵!”
두 마리의 늑대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서로를 향해서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사나운 이빨을 이용하며 물어뜯으며 싸우던 중 조금 먼저 달려든 붉은 늑대가 큰 상처를 입었다.
나와 일행은 뒤쪽에서 숨죽여 그 싸움을 지켜봤다.
잠깐 동안의 싸움 끝에 승패가 갈렸다.
승자는 당연하게도 두 마리 늑대 쪽이었다.
그러나 한 마리 쪽이 강력했던지라, 두 마리 쪽도 싸움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건 한 마리뿐이었다.
승자인 붉은 늑대는 엉망진창의 상태였다. 한쪽 다리나 팔에는 상처로 인한 피가 흘렀고, 절뚝거리며 전장을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퍽!
김세아의 마법 한 방에 붉은 늑대가 절명했다. 아주 깔끔한 처리였다.
배나운이 예상대로 빼먹지 않고서 칭찬을 했다.
“역시. 훌륭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나는 그 둘을 바라보았다가 쓰러진 붉은 늑대 쪽을 쳐다보았다.
‘이것도 보고하면 되겠지.’
임무 결과
-해당 구역 소탕 완료.
비고 : 영역 다툼을 일으킨 늑대 발견.
붉은 갈기 늑대를 사냥한 이래, 처음으로 새로운 내용을 적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난 갑자기 무언가를 많이 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