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역대급 수련-8화 (8/177)

# 8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08화

3장 역사상 최초(3)

“으어어.”

눈이 떠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걸었다. 바로 옆에 있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털썩.

바닥에 앉자,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군.”

“네.”

이제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도 익숙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포인트 상점을 열어 술을 샀다.

[소주를 구매하셨습니다.]

내 손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초록색 병. 그 안에서 찰랑거리는 액체는 우리를 아주 기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럼 들어가기 전까지 한잔할까요.”

“좋지.”

나는 초록색 병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좀처럼 웃지 않던 중년 남성의 표정에 웃음이 피었다.

“일주일짼가? 여기에 들어온 게.”

“뭐 그렇죠.”

내 손에 있는 소주병을 미친 듯이 원을 돌리며 회전시켰다.

뚜껑을 따고, 중년 남성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휘이익!

소주잔에 맴도는 회오리.

아무나 할 수 없는 고오급 기술이다. 그 이름하여 회오리주.

“드셔보세요. 아주 부드럽게 넘어갈 거예요.”

내 잔에도 따른 뒤 짠을 하고, 목 안에 모두 털어 넣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 온몸으로 퍼지는 알코올의 향연.

“크으.”

“크으. 이건 어떤 술인가?”

“소주라고 합니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철창 밖에서 펼쳐지는 결투를 바라보았다.

쌍칼을 든 여성이 고블린과 싸우고 있었다.

여성은 양손에 든 검으로 고블린을 빠르게 몰아쳤다. 그저 막기만 하던 고블린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더 이상 보지 않아도 결과는 보였다.

“흠.”

그 모습을 보면서 소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중년인이 질문을 던졌다.

“고민거리가 있는 모양이군?”

“그래 보이십니까?”

“술을 되게 맛있게 먹고 있잖아. 술은 고민거리 없인 맛있을 수 없는 법이지.”

중년인이 킬킬 웃으면서 소주를 들이켜더니, 입가를 훔쳤다.

“그러는 그쪽도 되게 맛있어 보이는 데요?”

“고민거리 있는 사람과 함께 하니까.”

“그거 꽤 그럴싸한 말이군요.”

고민거리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너무 느려.’

성장 속도의 문제였다.

4랭크의 경지에 다다르면서, 드디어 전투 헌터의 수준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다음 랭크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랭크 4 : 0 / 3,000]

갑자기 요구 포인트가 서른 배로 늘어나 버렸다.

‘더 빨라졌으면 좋겠는데…….’

그를 위해서, 나름대로 시험하고 있는 게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속도는 더 줄어들어 버렸다.

‘골 아프네.’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아아아아리샤의 승리입니다!

“저는 이만 준비해 보겠습니다.”

“다음에는 내가 한번 대접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철창 쪽으로 다가갔다.

“내일 마시는 술도 맛있으면 좋겠군.”

“……내일까지 고민을 안고 있으라는 소리입니까?”

아리샤라 불렸던 여성이 사라지고 철창이 열렸다. 검은 후드의 사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나는 자연스럽게 걸어 나갔다.

“고민이 해소된 사람 또한, 고민거리와 함께한 사람인 거야.”

“오늘 명언 많이 남기시는군요.”

-이번 대결은 무패의 고블린 학살자 오오유성!

운영자가 힘껏 분위기를 띄워보지만,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그에 대항하는 고블린의 마지막 자존심 더어어어락!

반대편 철창이 열리고 고블린 하나가 검을 들고 나왔다. 덩치는 처음 만났던 트렉터와 비슷해 보였다.

우람한 근육과 날카로운 인상.

그러나 둘에게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었다.

나를 무시하고 가지고 놀려 했던 트렉터에 반해, 눈앞의 고블린의 눈동자에는 시작부터 공포가 서려 있었다.

-경기를 시이이작하겠습니다!

보통이라면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고, 결투에 대해 흥분을 하겠지만. 이미 그런 분위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일까, 보너스 포인트도 못 받은 지 꽤 됐다.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한 발자국 내딛자, 고블린의 팔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좀 더 다가가자 검을 쥐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앞까지 다가서자.

결국에는 검을 떨어뜨리고,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위협적인 기운이 적의 온몸을 파고듭니다.]

[적의 온몸에 근육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일주일간 이뤄진 일방적 살육의 현장.

그 일방적인 학살 속에서 고블린이 본 것은 죽음뿐이었다. 나와 마주친 고블린은 무조건 한 칼에 죽었다.

마법을 사용하던 마법사 고블린도.

머리가 두 개 있던 트윈헤드 고블린도.

온몸에 문신을 두른 대족장 고블린도.

모두 내 검 짓 한 번에 목숨을 잃고 포인트로 변했다. 너무나 압도적인 차이에 관객들은 흥미를 잃었고, 더 이상 환호와 포인트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오면 혀를 차며 경기가 빨리 끝나길 기다리는 행동들을 보였다.

오늘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에 있는 고블린은 죽을 것이고, 나는 포인트를 얻을 것이다.

운영자들의 진행?

관객들의 환호?

내 알 바 아니다. 그저 이 공짜 포인트로 강해질 내 모습을 생각하면 수십 번, 수백 번은 더 죽일 수 있다.

삭!

내 검은 고블린의 목을 가볍게 베고 지나갔다. 이미 공포에 몸이 지배당한 고블린은 그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쓰려졌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보상 : 50p

오늘도 이것으로 아주 가볍게 포인트를 벌었다.

그렇게 귀환을 준비한 순간이었다.

“……음?”

몇 초가 지났을 때.

난 의식을 잃지 않고, 귓가로 거슬리는 경첩이 삐그덕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끼이이익!

그때, 반대쪽 철창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 몸 또한 귀환되지 않고 그대로 투기장에 남아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고 여러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벤트를 하나 준비해 봤습니다.

운영자의 목소리에서 이벤트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웅성웅성.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관객석이 웅성거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관객석에서는 새로운 이벤트라는 말에 활기가 띠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흥미라는 것이 살아났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뭐지’

나는 다시금 긴장 상태로 돌입하고 반대쪽 철창을 지켜보았다. 이미 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확실시된 것 같다.

그렇다면 저기서 나오는 녀석을 죽여야 한다는 건데, 누가 나올지 솔직히 조금 떨렸다.

-오유성을 상대할 그 상대느으은!

철창 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몸을 드러내는 무언가.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발이었다.

초록색 피부의 거대한 발.

고블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 위로 드러나는 굵은 허벅지는 수박만 한 크기였다.

지방이란 보이지 않는, 오로지 순수한 근육의 결집으로만 이루어진 다리와 함께 팔이 드러났다.

손에 들려 있는 양손 도끼.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도끼를 쥐고 있는 거대한 손. 고블린의 손가락만 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도끼를 꽉 쥐고 있었다.

그와 함께 드러난 배에는 왕(王)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둠을 뚫고 나온 얼굴을 보며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털이 하나도 자라지 않은 머리, 눈에서는 붉은 안광을 띄고 돌출된 이빨이 얼굴을 더욱 흉폭해 보이게 만들었다.

-오크입니다아아!

안내자의 말에 환호하는 관객들이 느껴졌다.

오크.

고블린과 함께 초반에 등장해 많은 사람을 죽였던 몬스터다. 사람보다 두 배는 큰 덩치를 가졌으며, 가지고 있는 힘 자체가 달랐다.

이벤트라고 준비한 운영자의 확신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관객들의 욕망을 만족시켜야 하는 투기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라졌으니까.

관객들의 전투에 대한 욕망과 피 터지는 싸움에 대한 갈증이 저리 만들었을 것이다.

저벅저벅.

큰 덩치에서 나오는 기세와 함께 오크가 걸어 나왔다.

-지금부터 오크 대 오유성, 오유성 대 오크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아아!

[투기장에서 승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상대방을 죽이거나 항복 선언을 받아내어 승리하십시오.

승리 : 포인트 100점

패배 : 죽음

고블린 때와는 다르게 확연한 차이가 보일 정도로 늘어난 승리 보상. 두 배나 늘어난 포인트에 놀란 내 입에서 기쁨이 터져 나왔다.

“나이쓰으으으!”

순간의 정적.

내 기쁨 넘치는 소리에 관객들이 오히려 당황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고블린과는 비교가 안 되는 오크가 나와서 미친 걸까?

딱 봐도 그런 표정이었다.

강력한 놈이 나왔는데 좋아하고 있으니 미친놈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흐흐흐흐.”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내 웃음소리에 오크까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블린 같은 나약한 녀석들을 잡았다고 기세등등하군. 우리 부족의 주식 또한 고블린이다.”

오크가 고블린을 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역한 기운이 올라왔다.

“우웩.”

난 진심이었는데, 도발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고블린처럼 씹어 먹어주겠다!”

쿵쾅거리며 양손 도끼를 들고 달려오는 오크. 고개를 돌려 철창 안을 바라보니 중년 남성이 이번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번과 같이.

나는 웃음으로 응답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가볍게 휘둘렀다.

내 팔보다 그 두께가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놈이 휘두르는 녀석의 도끼와 내 검이 부딪치는 순간, 녀석의 도끼는 힘없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놈의 눈이 반사적으로 반동 탓에 어깨 뒤로 휙 젖혀진 팔과 그 뒤로 빙글빙글 도는 도끼를 좇는 사이, 서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의 시간 뒤엔,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크의 반대 손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크아아아악!”

오크가 나머지 손으로 잘린 팔을 움켜쥐려고 한 순간이었다.

푸욱!

내 검이 그대로 오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심장을 조준해서 파고든 검은, 정확하게 그것을 관통해서 등을 뚫고 나왔다.

오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온몸을 벌벌 떨었다.

“내가 잡아본 오크 중엔 제일 세네. 그건 인정해 줄게.”

‘상상 이상으로.’

과거의 자신은, 오크라면 온갖 장비를 다 가지고서야 간신히 이길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놈은, 그런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더라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과거에 불과하다.

현실은, 지금 이 상황이 보여주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움직임을 내 몸으로 얼마든지 펼칠 수 있는 이 상황.

나는 놈의 가슴팍에 박혀 있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떼고서 오크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오크의 도끼를 들었다.

그것을 줍고서 고개를 들자, 철창 앞의 흉흉한 눈빛들과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하고서, 도끼를 들고서 다시 나와 싸웠던 오크 앞에 섰다.

“그런데 오크가 세봤자지.”

뻐억!

아래서 위로 휘두른 양손 도끼에 오크의 목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 순간, 당황한 운영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패 행진을 이어나가게 된 오…… 오유성의 승리이이이!!!

나는 방금 전의 눈빛들이 느껴진 방향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명백한 적의가 느껴졌다.

동족이 농락당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

‘양심이 없나 저것들은.’

오크가 어떤 성정을 지닌 종족인가를 생각하면, 내로남불의 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운영자, 잠시만! 나 한마디만 하고 돌려보내!”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의식은 그대로였다.

나는 오크들이 모여 있는 철창들을 보며 말했다.

“고블린이나 오크나 별반 차이 없네.”

그 직후, 메시지가 떴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보상 : 100p

추가 보상 : 100p + 200p (관객들이 이변에 흥분했습니다.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상대자 : 오크 톨레노]

‘역시.’

즉흥적으로 시도한 건데 잭팟이 터졌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틈으로 분노해서 철창을 두드리는 오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크는 고블린과 다르게 자신이 이기든 지든 자존심이 상하면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이다.

이렇게 건드리면, 중반부부턴 쫄아서 재미없어지는 고블린과는 달리 끝까지 벌 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종족끼리의 전쟁 구도가 흥미인 건 덤이다.

기본 보상이 두 배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씨익.

이제 한탕 제대로 버는 일만 남았다.

‘5랭크도…… 가시권이다.’

역시 여긴 파워 업의 노다지다.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기 직전, 시선을 돌려서 중년인 쪽을 살폈다.

중년인은 다음에 술 한잔하자는 듯, 술잔을 기울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귀환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