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04화
2장 파워 업의 노다지(2)
“시작!”
시험관의 휘슬 소리와 함께 나는 온 정신을 발끝에 집중했다.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가면서 숨 쉬는 것을 멈췄다.
양팔은 앞뒤로 크게 흔들었고, 다리는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공기를 가르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동시에 사방에 산재해 있는 장애물들을 땅을 박차면서 피해 나갔다.
저 앞에 보이는 통과선.
평소였다면 숨이 벅차 끝 힘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유가 넘치는 호흡과 가벼워진 몸으로 탄성 있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후우, 후우.”
통과선을 지나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관에게 다가갔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시험관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다가간 나는 기록을 확인해 보았다.
[35초 15]
전투 헌터도 급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아이리스 길드의 전투 헌터들은 장애물 슬라럼 따윈 기본 25초 대에 끊는다.
하지만 지원 헌터들은 달랐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40초 안으로 들어온 경우는 없었다.
오래달리기가 올해 지원자들 사이에서 순위권이었다면, 장애물 슬라럼은 아예 신입 전체 1위를 해버린 것이다.
“쟤 학교에서랑은 너무 다른데?”
“헐, 그럼 갑자기 전투 특성이라도 각성한 거 아냐?”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는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오래달리기 이후 계속 들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그 뒤로 멀리뛰기와 높이뛰기 항목에서도 기록을 갈아 치웠다. 비록 전투 헌터들에 비하면 기록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엄연히 전투 헌터와 지원 헌터의 육체적 차이는 존재 하니까.
“다음은 악력 측정을 하겠습니다. 기회는 두 번 그중 높은 기록을 사용하겠습니다.”
시험관이 악력기를 건네면서도 나를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번졌나 보네.’
본의 아니게 비슷한 반전을 주게 생겼다.
그것을 한 손에 쥐고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측정기의 숫자가 조금 올라가더니 더 이상 변동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휘슬이 울리고 시험관이 돌아다니며 기록을 측정했다. 내 기록은 [71]에서 정체 중이었다. 다른 지원 헌터들과 큰 차이가 없는 기록이었다.
시험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힘 랭크 2가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파악됐다.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힘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힘 랭크 2가 랭크 3이 되었습니다.]
온몸에 있는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찢어졌다가 붙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극들이 쉴 틈 없이 움직이다가 금세 사라졌다.
동시에 악력기를 쥐고 있는 손의 느낌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조금 억지로 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아주 편안하게 잡혔다.
있는 힘껏 악력기를 쥐었다. 이를 악물면서 악력기를 쥐자 꼼짝도 하지 않던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아주 조금 악력기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104]
그 숫자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미쳤다.’
심지어, 손아귀에는 힘이 조금 남아 있었다.
갑자기 튀어 오른 힘이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전부 다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진짜 강해졌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마지막 체력 검증까지 시험관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보며 끝낼 수 있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한수가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오유성 군 덕분에 새로운 기록을 하나 세우게 됐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들 오유성 군을 본받아 지원 헌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그럼 이것으로 체력 검증을 마치겠습니다.”
시험관이 나가고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가장 먼저 나가는 사람들은 몸짓부터 달랐다.
흥에 겨운 발걸음.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밖으로 나갔다.
그다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평타를 친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나왔기 때문일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서린 사람도 있었고, 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간 뒤에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체력 검증을 망친 사람들.
“흐어어엉. 나 어떡해, 망했어.”
한쪽에서 단발머리의 여성이 너무나도 서럽게 울며 신세 한탄을 했다. 옆에서 친구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지만 당사자의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대편 러닝머신에서는 멍하니 계속 걷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 처음 나가고 싶었지만, 몸 안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여운이 몸을 마비시켰다.
“후우.”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 쪽만 바라보고 걸어 나갔다. 입가에서 사라지지 않는 미소 때문이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죽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나의 웃는 모습이 비웃음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밖으로 나와서 대련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전투 헌터들의 테스트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2층으로 관객석이다.
주위에는 방금 체력 검증을 마친 지원 헌터들과 흥미로운 눈길로 대련을 쳐다보는 2군 길드원들도 보였다.
나도 시선을 돌려 밑에서 진행 중인 대련을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검은색 타일이 붙은 길이는 가로세로 5m의 반듯한 정사각형의 무대에서 대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찬혁을 찾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략 100명 정도로 보였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면서 찾자니 눈이 아팠다.
“어?”
밑에서 팔을 흔들며 웃고 있는 이찬혁을 찾을 수 있었다. 이찬혁은 나를 보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찍었다가 대련장을 향해 가리켰다.
나도 손을 흔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람들이 많아 소리칠 수는 없으니 입 모양으로 응원했다.
‘화이팅.’
이찬혁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나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더니, 곧 시험관의 호출에 2번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뭐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뒤에 서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새하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와 대비되는 애쉬 블루 계열의 머릿결은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음에도 많은 남자의 마음을 훔친 헌터 학교의 여신.
김세아.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번 술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으니 일주일 정도 지났을 것이다.
“안녕?”
먼저 손을 들며 인사하는 김세아를 보며 내 손도 같이 올라갔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상황에 말이 끊겨 나갔다.
“어. 안녕.”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지만 적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름다운 외모.
거기다 지적인 면모까지 더해져 입학과 동시에 헌터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특성 때문이었다.
아이스 퀸.
흔히들 급을 나누어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뛰어난 특성을 가진 S급부터 가장 낮은 F급까지.
김세아가 가진 아이스 퀸은 그중에서도 최상의 등급인 S급.
때문에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그녀를 다뤘다. 졸업 직전에도 어느 길드에 들어갈지 추측성 기사를 마구잡이로 보도했었다.
그중 가장 유력했던 것은 세계 4대 길드라고 불리는 미국의 피닉스, 한국의 그린나래, 중국의 파천, 일본의 야마카시.
그만큼 S급 특성은 희귀했고 파급력이 대단했다.
‘근데 왜?’
최근에야 중견 길드로 올라온 아이리스 길드에 있는 것일까.
설마 복수하러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헌터 학교 시절 모든 시험에서 내가 1등을 차지하면서 그녀는 만년 2등으로 지내야 했었다.
더불어 술자리에서 나와 같은 전략 기획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는 말도 떠올랐다.
‘정신 차리자.’
“저번에도 그렇고 나만 보면 왜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짓는 거야. 뭐 잘못한 거 있니?”
“그럴 리가. 저번엔 소문이 사실 인가해서 그런 거고.”
내 말에 헛웃음을 쳤다.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문? 설마 너도 그딴 헛소문을 믿는 거야?”
“아님 말고.”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뒤이어 김세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호연과 김세아의 스캔들. 이 일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그땐 가격이 꽤나 나와서 내가 반 정도는 부담하려고 얘기하던 중이었어.”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누가 뭐래. 근데 네가 왜 이 길드에 온 거냐?”
“글쎄. 대우가 워낙 파격적이어서?”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온 것은 이로써 확정 사실이 되었다. 한데 지원 헌터 테스트에서도 그녀를 보지 못했고, 전투 헌터들은 밑에서 한참 대련 중이다.
그렇다면.
“설마?”
“소문은 참 잘 듣고 다니네. 맞아. 내가 이번에 바로 1군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야.”
* * *
테스트가 끝나고 이찬혁과 함께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나는 나름 조절해서 마셨지만, 이찬혁은 승리의 분위기에 취해 미친 듯이 마시고 취해 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이찬혁을 던져 놓고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왔다. 2층 침대에 올라가 편하게 누웠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오유성
종족 : 인간
힘 : 랭크 3 (0/100)
민첩 : 랭크 3 (0/100)
지능 : 랭크 1 (03/15)
체력 : 랭크 3 (0/100)
마력 : 랭크 1 (02/15)
잔여 포인트 : 53p
상태창을 보니 아까 숨겨두었던 미소가 다시 얼굴에 나타났다. 베개를 꽉 잡아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비볐다.
여러 감정이 오갔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뻤다.
너무나 기뻐서 주체할 수 없다는 것만 뺀다면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몸을 뒤집어 머리를 베개에 눕히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번에는 보지 못했던 포인트 상점을 확인해 볼 차례였다.
‘포인트 상점.’
[포인트 상점]
1. 무기
2. 방어구
3. 물약
4.
…….
내게 가장 필요한 무기 항목에 먼저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검에 대한 항목을 선택했다.
[포인트 상점]-[무기]-[검]
1. 수련용 한 손 검 10p
2. 수련용 양손 검 10p
3. 떠돌이 기사가 들고 다니던 검 30p
4. 기사 지망생의 검 30p
…….
검만 해도 수십만 개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100p를 어떻게 사용하면 효율적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단 포인트는 최대한 많이 남겨놓을수록 좋다. 상대방을 보고 그의 능력치에 맞춰 따라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무기를 아예 안 살 수는 없다. 트렉터를 이긴 것은 요행이었고, 또다시 운에 목숨을 걸 순 없었다.
“흠.”
가장 처음에 있는 검들을 확인해 본 결과 10p짜리와 30p짜리의 검에 큰 차이는 없었다. 내구도가 높은 것과 낮은 것 딱 이 차이뿐이다.
아주 비싼 무기를 사지 않는 이상 초반에는 기본적인 무기보다는 육체적인 부분에서의 차이가 클 것이다.
최대한 포인트를 많이 모으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수련용 한 손 검을 구매했다.
[수련용 한 손 검을 구매하시겠습니까? Y/N]
‘예스.’
아무것도 없던 천장에서 검 한 자루가 내 위로 뚝 떨어졌다. 그와 함께 추가적으로 생긴 메시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매칭이 완료되었습니다. 투기장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