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37화>
한계 돌파 (2)
“창조주들이 뭐라고 했지?”
“꿀꿀. 주인님의 제안을 들은 창조주들이 긍정적인 답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대출을 받는 것에 대해 호의적입니다.”
황금돼지가 가져온 제안서.
특별예금계좌와 특별대출계좌를 만들어, 둘을 연동시킨다.
예금한 만큼, 그 양을 대출받아서 이자를 내는 시스템.
100조를 저금하면 100조가 자동으로 대출이 되는 셈이다.
“예금 이자는 일단 10%로 잡았고, 대출 이자는 이보다 1% 높게 연동시켰습니다. 매년 정산하여 재계약하고, 이율은 재계약시 변동하도록 했습니다.”
100조를 예금하면, 오히려 1조 SP가 나가는 날강도 같은 거래.
하지만 그들이 얻는 SP가 혼돈에서 중립으로 바뀌니까, 창조주들은 기꺼이 이 딜을 받아들인 거겠지.
“꿀꿀. 그런데 예금 이자율을 더 높이고 싶은 창조주도 있었습니다만…… 아예 100%로 하자고요.”
“그럼 아예 싹 다 SP를 중립으로 바꾸겠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100 넣어서 이자 100 받고, 대출 이자는 101 내는 거니까.
이자수익이 중립 SP로 바뀌면, 가지고 있던 혼돈이 중립으로 싹 다 바뀌는 거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SP거래소가 정말 그 수많은 SP를 단번에 중립으로 세탁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들었다.
“일단 올해는 10%로 가자. 창조주들의 SP 양이 워낙 많아서, 그게 다 중립으로 될지 확신이 안 서네. 괜히 혼돈으로 받으면 그쪽도 SP만 날리는 거 아니겠어?”
“꿀꿀. 예.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창조주 중 일부가 극비리에 만남을 타진해 왔습니다.”
“날? 직접 만나자고? 뭐 때문에?”
“꿀꿀. 사도신을 통해서 만나자고 합니다. 이유는 만나면 이야기해 준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려 줘야 가지.”
“영혼신께 도움이 되면 되지,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날 왜 만나자는 거지?
뭐, 사도신을 통해 만나자고 했으니, 함정 같은 건 아니겠다만…….
“만남에 응할 시, 이자를 1% 더 쳐주겠다고 합니다. 꿀꿀.”
“호오. 그래?”
“대신, 파견된 사도신과 영혼신, 모두 중립 SP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중립 SP만 가지고 만나자고…….
조건이 좀 있긴 하지만, 이자 1%를 더 쳐준다는 대가가 너무 크다.
“조건도 뭐, 쉬운 편이고.”
나야 잠깐 계좌에 혼돈 SP를 넣어 두면 되니까.
사도신으로 누굴 보낼지가 문젠데…….
기존의 사도신을 보낼까 하다가, 봉인석에 갇혀 있는 올림푸스 대신들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기존 사도신들은 내가 뿌린 SP가 많아서 그걸 사용하고 중립 SP를 넣어 줘야 하는데…….
봉인석에 갇힌 대신은 보유 SP도 적으니, 중립 SP만 채워 주면 되니까.
“아테나가 좋겠군.”
머리가 그중 가장 똑똑하고, 원래부터 나와 협력해 왔었으니까.
사신으로 보내기에 적당하겠지.
그녀의 봉인석을 가지고 와서, 의향을 물어보자 흔쾌히 수락했다.
[SP에서도 진영의 색이 있었다니, 놀랍군요.]
“응. 네가 제일 머리가 좋으니까, 그들의 의향을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영혼신의 사도가 되어서, 충실히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테나의 봉인을 풀고, SP를 뒤바꿔 준다.
부활한 아테나는 갑옷을 역소환하더니, 검은 여성용 정장 차림으로 외양을 바꾼다.
비서 룩인가?
역시 외모가 되니 뭘 해도 어울리네.
“이게 중립 SP인가요?”
“어.”
“평소와 별다른 점은 모르겠군요.”
“그거야 그럴 거야. 워낙 미세한 차이라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테나.
내 옆에 있는 황금돼지를 보며 물어본다.
“제가 그럼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꿀꿀. ‘라이트 암’에서 준비가 되면, 포탈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라이트 암?”
“창조주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오른팔이라니.
그거…… 창조주의 왼팔을 의식해서 만든 모임 아냐?
위이이잉.
황금돼지가 꿀꿀거리며 통신을 보내자, 곧 이 공간에서 포탈이 열린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어. 다녀와.”
아테나가 포탈에 들어서자, 바로 그녀와 시야 공유를 시도했다.
포탈 너머에는 원형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원형에 마련된 자리는 10자리.
그중 일곱 자리에는 흐물거리는 젤리 덩어리가 놓여 있었는데, 아테나가 들어서자 모두 형태가 아테나로 변했다.
아테나는 그 광경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빈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영혼신의 사도여. 환영한다.”
“만약을 위해, 그대의 모습, 잠시 빌리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행성계의 지배자, 창조주들이여.”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는 일곱 아테나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는다.
아테나끼리 대화하고 인사하는 광경.
느낌이 이상하군.
“주신께서는 당신들의 제안에 흥미를 느끼고, 절 사신으로 보내셨습니다.”
“아아. 1%를 더 준다는 것 말인가.”
“물론 더 줘야지. 우리의 희망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아테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창조주의 아테나들.
만나서 뭐 제안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진짜 만났다고 1% 더 주네.
[아테나. 네 입을 써도 될까?]
[그렇게 하십시오. 주신이시여.]
그들에게 궁금한 점이 많아, 아테나의 입을 빌린다.
“영혼신의 힘이 더 짙어졌군.”
“직접 왔는가?”
그걸 또 바로 알아보는 창조주의 사도.
역시 한가락 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미묘한 차이도 알아내는구나.
“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얼마든지 말해 보게.”
“먼저, 왜 모임 이름이 라이트 암입니까?”
“알면서 물어보는 눈치군. 우리는 ‘창조주의 오른팔’이 되고픈 이들의 모임이네.”
역시 그렇군.
“이 우주는, ‘창조주의 왼팔’의 소유나 다름없어.”
“우리는 행성계 이상으로 발전할 수가 없지.”
“‘창조주의 왼팔’과는 달리 말이야.”
행성계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이들 창조주는 더 이상을 추구하나 보다.
“많은 창조주가 있었네.”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지.”
“혼돈과 직접적으로 맞붙은 창조주도 있었고, 그들과 결탁한 척하며 이후를 도모하던 창조주도 있었네.”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초월을 시도한 이는, 모두 사라졌네.”
“단 한 명도 성공하질 못했어.”
“태초부터 존재했던 이, ‘창조주의 왼팔’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말을 듣자, 나에게 2.4경을 주었던 노인신이 생각났다.
SP 거래소의 지분을 사고 초월을 시도한다던 이.
그도 실패한 건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그의 이야기를 꺼내는 창조주의 사도.
“마지막으로 초월을 시도한 것은 시리우스의 주인.”
“라이트 암의 최고참인 그는 조심성이 많았지. 초월을 할 법한데도, 그만한 ‘격’이 되는데도 섣불리 초월을 시도하지 않았어.”
“그야 당연하겠지. 초월한 창조주들은 모두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그도 더 이상 이 정체 구간을 버티지 못했어.”
“영혼신에게만 허락된 SP 거래소. 이것의 지분을 얻고 난 이후, 초월을 금방 시도해 버렸지.”
“그렇군요. 그가…….”
그가 사라지다니.
그에게 받은 2.4경…….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게임으로 치면 치트키 쓰고 하는 느낌이 있었지.
보스인 제우스 자식한테는 안 통해서 치트키가 반쪽짜리긴 했지만.
근데 그렇게 사라졌으면, 그가 가지고 간 지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지분 확인해 봐.”
“0.9%의 지분 말입니까? 꿀꿀.”
“어.”
“그 지분의 주인은 확인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거 예전에도 그랬어?”
“꿀꿀. 아닙니다. 예전에는 ‘시리우스의 주인’이 주인이었습니다.”
거참. 언제 바뀐 거야.
“다행히 시리우스의 주인이 사라지기 전, 우리에게 SP의 성질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지.”
“그는 사라지기 전 이에 대해 깨달았던 것 같아.”
“SP에도 진영의 색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때서야 우리에게도 색이 보였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고신(古神)이라 가능한 것.”
“영혼신. 그대가 이 사실을 알려 주었을 때, 우리는 놀랐다네.”
“어떻게 대신인 그대가 벌써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대단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
걱정?
뭘 걱정하는 거야.
“영혼신.”
“깨달았는가?”
“뭘 말입니까?”
“지금 정도의 수준이면…….”
“!$$#$&(#!#.”
“#$#*)$*!#.”
갑자기 두 아테나가 정체불명의 말을 시작한다.
뭐야. 이 자식들.
바쁜 사람 불러서 외계어나 하고 있고.
[아…… 아니. 이것은…… 우주의 진리……?]
입을 나한테 맡기고 조용히 있던 아테나가 갑자기 나에게 음성을 보내왔다.
얘는 왜 갑자기 진리 타령이냐.
아니, 음성뿐만이 아니다.
아테나의 영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제어하고 있었는데……?
그러자 그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창조주의 일곱 사도.
“야. 왜 울고 있어?”
보다 못한 내가 아테나의 입으로 반문하자,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모르는군.”
“사도신으로 임명한 아이가, 명석한가 보네.”
“아직 깨닫지 못했어.”
흠…….
뭔가 기분이 껄쩍지근한데.
나만 바보 된 기분이야.
“영혼신. 그대 전에는, 영혼신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뭐, 영혼 계열 클래스는 헤라클레스도 그렇고 있었습니다만…… 영혼신은 못 들어 봤군요.”
“우주는 넓고, 영체는 무한하지. 영혼 계열 클래스의 조건은 기본 소질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지구에서도 둘이나 나온 영혼 계열 클래스. 다른 세계에는 없었겠는가?”
그도 그러네.
아무리 확률상 희박하다지만, 대상 숫자가 무한하면 그 희박한 확률도 맞아떨어질 거 아니야.
지구에서도 헤라클레스랑 나도 나왔고.
“있었겠군요.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깨달았네.”
“아까 우리가 읊던, 우주의 이치.”
“이를 깨닫고, 우주와 동화되어 버렸지.”
“억겁의 시간을 기다려서 나타난 영혼신은 모두 다 그랬네.”
“다 자기 혼자 깨닫고, 자기 혼자 사라져 버렸어.”
우주의 진리를 깨닫다니…….
우주의 진리라는 게, 그렇게 깨닫기 쉬운 거였나.
“이상하게 영혼신은 중급신에서 벗어나질 못했지.”
“대신이 되려고 하면, 사라졌어.”
“우리도 진리를 깨달은 자지만, 그렇다고 우주와 동화되지는 않네.”
“한데 영혼신은 달라. 이상하게, 그들은 이치를 깨닫기만 하면 사라졌어.”
원통한 듯이 이야기하는 일곱 사도.
“몇억 년을 기다려 겨우 영혼신이 된 엘프는 중급신이 될 때 사라졌지.”
“내 권역 안에 있던 테오바르 행성인은 하급신 때 사라졌네. 그 이후로 영혼과 우주의 원리는 가르치지 않았지.”
“쯧. 그런 교육은 시키는 게 아니야.”
고차원적인 교육은 시켜서는 안 된다고 성토하는 사도들.
그 광경을 어이없게 바라보자니, 한 사도가 헛기침을 한 후 나에게 말한다.
“잠시 흥분했네. 미안하네.”
“아니, 뭐…….”
“이렇듯, 영격이 높은 고위 종족은 제멋대로 깨닫는 경우가 많다네. 애초에 영격이 높다는 것은, 우주의 진리와 많이 접함을 뜻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고위 종족은 배제하기로 했어.”
“대신…… 영체의 최하 단계. 인간. 그들이라면 이치를 깨닫기 힘들 터.”
“영혼신의 자질을 보이는 인간을 후원하기로 했지.”
갑자기 주제가 바뀌어서, 후원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을 후원했다니.
난 뭐 받은 기억이…….
“영혼신의 자격이 있는 인간에게, 물건을 보냈네.”
“지금 자네에게는 없을, 그 물건.”
어. 이거 혹시……
“영검을 말하는 겁니까?”
“영검이라고 부르는가. 그러네.”
“성장형 아이템. 신기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물건.”
“하지만 주인이 형편없다면, 쓸모없이 방치될 물건.”
“그 녀석 때문에 뒤통수를 맞았는데…….”
내가 중립 신기와 얽힌 일을 이야기해 주자, 이를 흥미롭게 듣는 창조주들.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신기의 영역에서 생기는 자아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지.”
“주인이 금방 강해지는 길이 있는데, 인간의 의지를 지키겠다고 버티니 답답했을 걸세.”
“하지만 그 자세야말로, 우리가 찾던 자세야.”
“그대는, 범속해야 하네.”
“깨달으면 안 되네.”
아. 씨.
잘했다, 잘했다 칭찬을 하는데, 왠지 기분이 좀 그러네.
너 모자라서 다행히 안 깨달았구나.
어휴. 다행이야.
이러는 거 같잖아.
아니…….
아니지.
나는 나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야.
멍청한 게 아니라.
SP를 그냥 제한 없이 다 받아들였으면, 나도 동화가 되었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김지호는 사라질 뿐.
나는 아직 ‘김지호’로 오랜 세월 살아 보고 싶어.
이런 내 생각을 말하니, 환하게 웃는 일곱 아테나.
“좋은 생각이네.”
“전폭적으로 지지하네.”
“그래서 말인데…….”
“그대의 적인 제우스.”
“그를 천천히 처리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