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36화>
한계 돌파 (1)
“관리자 시스템의 말을 듣길 잘했군.”
혼돈의 권능, 융합.
원래대로라면 1SP당 1초의 시간이 걸리지만, 관리자 시스템의 충고대로 권한을 여기에 사용했지.
1만 배로 늘어난 시간.
그가 완전한 융합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번 셈이다.
“다만, 시간을 만 배로 벌어 뒀다고는 하나, 이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을 터.”
무적에 가까운 제우스.
지금 내 수준에서는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의 강자다.
1경쯤 남은 SP를 완전히 내가 품는다면 싸울 만하겠지만…….
“나를 유지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건 결국 창조주의 왼팔에 먹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안 되지.”
유통되는 모든 SP에는 혼돈의 기운이 묻어 있다.
그런 걸 1경이나 흡수하면, 창조주의 왼팔에 날 바치는 셈.
제우스를 잡으려다가 내가 사라진다.
그 방법은 지워 버리고.
어떻게 힘을 강화할 방법이 없을까?
SP 제한을 늘려야 하는데.
“관리자 공간은 낭비가 너무 심하고…….”
그곳에서 SP 제한을 200조까지 늘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늘리기 위해 사용한 SP가 너무 어마어마하다.
“그러고 보면, 200조 제한…… 혼돈이 섞여서 그런 거였지.”
내가 가진 SP는 죄다 혼돈의 색이 깃들어 있다.
극히 일부만이 중립의 색을 보일 뿐.
중립 SP는 SP 거래소와 영혼 중개 등, 온전히 내 능력으로 얻은 때에만 나타났지.
“관리자 공간에서는 그게 60조였는데.”
온전히 내 능력으로 얻은 SP가 60조.
여기에 140조 혼돈을 더하니, 10% 정도가 혼돈의 기운에 잠식되었다.
200조 중, 140조 혼돈. 60조 중립.
이 비율에서 10% 혼돈 잠식이라…….
“실험을 해 봐야겠군. 거래소 매니저 소환.”
“꿀꿀.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나 계좌 하나만 더 만들어 줘. 이름은 ‘중립’ 계좌로.”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그곳에다가 내가 SP 거래소에서 얻는 SP 소득을 다 담아 줄 수 있어? 1경 있는 계좌에다가 섞지 말고.”
“예. 지분에 따른 배당 소득 말씀이지요?”
“어. 거기에 내 1경 계좌의 이자까지 다.”
“꿀꿀.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SP 거래소에서 얻는 모든 이자 수익을 중립 계좌에다가 넣게 시킨다.
이 계좌에는 온연히 중립 SP만 관리해야지.
“그럼 여기에다가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60조의 중립 SP.
여기에 가볍게 10조를 넣는다.
그러자, 단말기의 윗부분 색이 변한다.
“11.25%라.”
-주의하십시오. 혼돈의 비율이 15%를 넘어설 시, 사용자의 영체가 혼돈에 침식되기 시작합니다.
단말기에 나타난 비율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곳에서 음성이 들린다.
시스템 관리자 녀석.
케어가 대단하군.
“15%를 넘지 말라는 거지? 10조 더 입금한다.”
그러자 나타나는 비율이 12.5%로 변한다.
비율이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지금 내 총 SP는 180조.
혼돈은 140조고, 중립은 40조인데…….
흠. 혹시…….
혼돈과 중립의 SP 차이는 100조 차이고, 이게 12.5%니까…….
“800조가 온전한 한도인가.”
중립 SP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비율이 변하는 걸 보니, 800조가 기준점임을 알 수 있었다.
800조의 15%는 120조.
혼돈의 SP에서 중립을 빼고, 남은 수치가 120조까지는 통용이 된다는 건가…….
이건 중립 SP가 더 모여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약에 내 계산이 맞다면.
혼돈 SP 460조, 중립 SP 340조를 갖추면 800조를 채울 수 있는 거네.
중립 340조…….
이거 모으려면, 거래소에서 확실히 수익이 나야 하는데.
“매니저. 수익은 어때.”
SP 거래소가 전 우주로 퍼지고 있으니, 수익이 많이 나고 있겠지?
그런데 돼지의 표정이 뜻밖에도 좋지 않았다.
“꿀꿀. 그것이…… 우주의 큰손들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예금이 대출에 비해 너무 많습니다. 꿀꿀.”
아니…….
그럴 수가 있나?
원래 대출 장사가 최고로 수지맞는 거 아니었어?
“저도 이번에 안 사실입니다만…….”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황금돼지.
“창조주 중 행성계의 지배자들이 지닌 SP는 제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초창기에 SP 거래소 확장을 위해서 예금을 무차별적으로 받았는데, 너무 많은 SP가 들어왔습니다.”
“흠…… 나한테 SP 거래소 지분을 판 창조주 같은 케이스인가?”
EX급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창조주.
각기 행성계의 정점이라면, 모아 둔 SP가 어마어마하겠지.
“꿀꿀. 그렇습니다. 아무리 SP가 필요한 신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창조주가 지닌 SP가 워낙 많아서…… SP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월등한 실정입니다.”
“그거 문제네.”
행성계의 주인. 창조주.
행성계에서 수많은 경쟁을 뚫고 올라온 그들은, 이미 승리자다.
승리자가 되기 전까지는 SP가 많이 필요했겠지만.
이미 정점이 된 후에는 SP가 부족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SP 거래소에서 대출할 일도 그다지 없겠지.
“꿀꿀. 거기에 이렇게 거액을 예금했는데, 이자를 더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SP도 그렇게 많으면서, 가진 놈이 더하더군요…… 꿀꿀…….”
“창조주급 되는 신들이 이자 더 달라고 항의한다고?”
“그렇습니다요. 꿀꿀. SP는 차고 넘치면서…… 이자가 중요하다고 계속 거래소 매니저들을 재촉합니다. 금돼지가 매일같이 소환되는데다가, 저도 종종 불려 가는 실정입니다.”
행성계의 지배자 창조주.
태양계같이 거대한 행성계의 지배자들이, 이자 때문에 SP 거래소 매니저를 달달 볶는다고?
뭔가 이상하군.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창조주급만 그러는 거야?”
“꿀꿀. 예. 일반 대신 급은 예금해 봤자 그 SP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흠…… 창조주 정도 되면 SP가 필요할 일이 많을까?”
“일반적으로는 별로 없습니다. 휘하 대신들이 알아서 SP를 바치니까요.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어서, SP를 쓰고 써도 남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꿀꿀.”
“그런데도 이자를 달라고 독촉을 한다…….”
행성계를 지배하는 창조주가 쩨쩨하게 이자나 달라고 하다니…….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창조주 중 일부만 그러는 거야? 아니면 다 그래?”
“대개 세력이 강하고 오래된 창조주일수록 더 그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꿀꿀.”
더 강한 창조주가 이자를 달라고 독촉한다라…….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에게 2.4경에 SP 거래소 지분을 샀던 창조주가 생각났다.
그는 한 단계를 더 초월하기 위해 거래소 지분을 샀다고 했지…….
“아, 혹시…… 그 창조주들. 다들 초월을 준비하나?”
“꿀꿀. 거기까진 알 수 없습니다만…… 다들 상위권 행성계의 창조주이긴 합니다.”
SP가 부족할 일이 없는 상위권의 창조주.
그런 이들이 체통도 지키지 않고 이자를 달라고 계속 보챈다.
어쩌면,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 초월을 준비해야 할 그들이 말이지…….
“이거 설마…….”
나랑 비슷한 이유에서 그러는 거 아니야?
혼돈의 SP를 세탁하여, 중립으로 받고 싶은 나처럼.
초월을 준비하는 창조주도…… 중립 색을 보이는 SP를 챙기고 싶은 거 아닐까?
“야. 혹시…….”
내 추측에 대해 이야기해 주자, 지친 얼굴을 하던 황금돼지가 눈을 빛낸다.
“꿀꿀. SP에도 진영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나는 영혼신이라서 안 사실이지만…… 초월을 준비하는 창조주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지.”
“꿀꿀…… 그렇군요…….”
“자꾸 보채는 이들에게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건지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중립 SP를 이자로 받기 위해서 그러는 게 맞다면…….”
머리를 굴려 본다.
어차피 SP도 넘쳐 나는 창조주.
초월 때문에 중립 SP가 필요한 거라면…….
좀 손해 봐도 되지 않겠어?
“지들이 대출받으라고 해.”
“꿀꿀…… 그들 보고 대출을 받으라고요?”
“어차피 필요한 건 중립 SP일 거 아니야. 돈 예금한 만큼 대출하라고 그래.”
“꿀…… 꿀…….”
“창조주 등급의 대출 이자는 얼마지?”
“3~5% 정도 됩니다. 꿀꿀. 창조주 내에서도 세력에 따라 이자가 다르게 측정됩니다.”
이건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고…….
“그럼 대출 이자는 그대로 가고. 예금 이자는 대출이자랑 1% 차이 나게 맞춰 준다고 해.”
내 예측이 맞다면…….
초월 준비하는 창조주들은 SP 벌려고 예금하는 게 아니다.
이자 수익을 통해 중립 SP를 챙기려고 하는 거지.
그들에게 이자 더 챙겨 줄 테니, 대출받으라고 하면…….
받을 거다. 틀림없이.
“1%는…….”
“수수료지.”
1%는 내가 먹어야지.
“꿀꿀.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뭐.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그냥 창조주들이 짠돌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제가 바로 직원들을 시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꿀꿀.”
“그래. 알아봐.”
내 허가가 떨어지자, 황금돼지가 내 옆에서 명령을 지시한다.
“꿀. 꿀꿀. 꿀꿀꿀!”
나한테 이야기할 때는 달리, 그냥 오로지 꿀꿀거리기만 하는군.
하긴, 부하들도 돼지였지…….
꿀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구의 동태를 살핀다.
[…….]
이제는 들리지 않는 제우스의 음성.
간헐적으로 그의 감정만이 전달된다.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짜증.
융합의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린 데 오는 짜증이었다.
“그래도 원래 이런 줄 알고 있군. 속도가 느려진 건 모르는 모양이야.”
제우스가 예전부터 융합을 한 게 아니니까.
행성을 집어삼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모를 법도 했다.
“인간 쪽은…… 패닉이군.”
사람들은 완전히 패닉 상태.
눈 깜짝할 사이에, 인류의 반이 사라졌다.
서쪽으로는 유럽, 아프리카를.
동쪽으로는 히말라야까지 완전히 집어삼켰으니.
“제우스가 다시 움직이면, 인류는 멸망한다.”
혼은 이미 뒤바뀐, 가짜 인류.
갑작스런 멸망의 위기에 놓인 탓일까?
인류의 위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와…….”
죽음을 앞두자 새롭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영혼의 씨앗.
수십억의 인구 중 새롭게 혼을 일깨우는 이는 1%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천만이 넘는 발아를 목격했다.
지금까지 본 거와는 양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 영혼의 탄생.
수없이 많은 케이스를 보자, 제우스의 일도 어느새 잊고 이 광경에 집중했다.
“대단하군…….”
같은 듯 미묘하게 조금씩 다른 영혼의 발아.
천만이 넘는 경우를 하나하나 보고 있으니, 저절로 개안한다.
강시아, 이진성의 케이스를 볼 때와는 또 달랐다.
“꿀꿀. 주인님! 주인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잠시. 조용히 해 줘. 지금 중요한 순간이라서.”
“옙.”
내 생각이 맞았다고 알려 주는 황금돼지.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시간이 없다.
천만 영혼의 발아가 내 한계를 어마어마하게 늘려 주고 있었으니까.
영혼에 대한 이해도가 커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만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발아하던 영혼의 싹.
처음에는 천만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하는 도중 익숙해져서 금방 끝낼 수 있었다.
“며칠 지났지?”
내 옆에 있는 황금돼지에게 질문하자, 돼지가 눈을 껌뻑인다.
“꿀꿀. 며칠이라니요. 두 시간 흘렀습니다.”
“그거밖에 안 흘렀어?”
체감은 상당히 오래 걸린 것 같았는데…….
의외다.
영체를 둘러본다.
영체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직감적으로 SP 수용 한계가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확인해 볼까.”
단말기를 꺼내, 색을 확인해 본다.
SP를 종전처럼 맞춰서 혼돈 140조. 중립 60조 상태였던 나.
그래서 10%로 다시 맞춰져 있었는데…….
“5%밖에 안 되잖아?”
이러면 한계가 두 배로…… 늘은 건가?
영혼의 발아.
천만 케이스를 넘게 보았다지만…….
겨우 2시간 만에 이렇게 한계가 팍팍 늘다니.
“대단한데…….”
순식간에 두 배라니. 어마어마하잖아?
이러면 한계가 1,600조인건가.
그럼, 중립 SP만 빨리 얻으면 되겠어.
“매니저. 아까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지? 타 행성계 창조주에게서 답이 왔어?”
“꿀꿀. 예. 주인님.”
아까는 수익이 생각보다 나지 않아서 침울해하던 황금돼지.
지금은 완전히 표정이 펴진 채, 자신 있게 대답했다.
“창조주들에게서 긍정적인 답이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