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34화 (234/240)

<내 상태창 2개 - 234화>

서약 강탈 (2)

-정말로 대신 ‘헤라’에게 관리자 권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단말기를 통해 관리자 시스템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런 하찮은 신에게 관리자 권한을 쓰냐고 타박하는 느낌.

하지만 내 뜻은 확고하다.

“제우스가 혼돈의 대신이 된 이후, SP를 전폭적으로 지원받았다면 헤라를 구하러 이렇게 급히 달려오지는 않았겠지.”

헤라의 SOS 요청을 일부러 풀어 준 그때.

지구에서는 한참 제우스와 ‘또 다른 김지호’가 전투 중이었다.

[하. 제우스 이 자식. 세긴 세네. 본체의 판단, 믿는다.]

그리스에 뿌리를 박고 재앙을 퍼뜨리는 제우스.

지금까지는 아무리 많은 분신이 들이쳐도 기스도 나지 않았지만…….

관리자 권한을 통해 제우스의 정보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좀 달랐다.

[영혼신. 죽으러 왔구나!]

[혼돈의 권능. 아직도 세긴 하지만…….]

분명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건 저번과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거의 100% 막혔다면.

이제는 99% 정도 막힌다.

1%는 공격이 들어가는 셈.

[혼돈의 권능, ‘추방’에 내성이 생깁니다.]

[혼돈의 권능을 모두 파악하고 있습니다. 내성을 더욱 빨리 얻습니다.]

수십만의 김지호가 달려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건 역시…….

‘본체.’

분신은 뚫지 못한 공격, ‘본체’는 뚫을 수 있다.

[하찮은.]

물론, 뚫려도 효과는 없다.

어둠으로 물든 제우스의 영체에 닿을 쯤이면 이미 힘을 잃은 내 공격.

그의 입장에선 모기가 왱왱거리는 거나 마찬가지겠지.

제우스를 공격하는 목적은, 결국 유효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젠장. 내가 미끼라니.]

투덜거리는 본체.

영혼신의 본신 영체.

수십만의 분신 따위보다, 훨씬 먹음직스럽다.

만약 본체를 제압해서 혼돈의 권능 ‘분해’나 ‘융합’까지 써먹는다면, 여기서 인간 수천만, 수억을 죽이는 거보다 더 SP를 많이 얻을 수 있겠지.

이런 먹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음에도…….

헤라의 SOS 요청에 바로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헤라의 가치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제우스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아니, 헤라를!]

지구에서 한참 싸우다가, 갑자기 반응이 굼떠지는 제우스.

무섭게 날아오던 소멸의 흑뢰도 수가 줄어든다.

[헥…… 헥…… 시발. 반응이 바로 달라지네. 확인했지?]

“그래. 튀어라.”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튀는 본체.

흑뢰가 미친 듯이 따라붙지만, 애초부터 튈 준비만 하고 있어서 금방 줄행랑을 칠 수 있었다.

물론, 제우스가 내 본체에 완전히 집중하지 않는 바람에 득을 본 거기도 하지.

[야. 제우스랑 싸우는 건 아직 무리다. SP 1경 깨지려고 그래. 소모 SP가 장난이 아니야.]

“어. 수고했어.”

지구의 본체에게 그리 메시지를 전하고, 이제 화성에 집중한다.

여러 세계에서 동시에 영체를 운용하는 나처럼, 제우스도 목성과 지구를 비롯, 화성까지 침공하고 있는 상황.

아주 태양계가 다 전쟁터야.

-대신 ‘헤라’에게 관리자 권한을 사용했습니다. 헤라의 모든 것을 편집할 수 있습니다.

“추가 SP는?”

-들지 않습니다.

좋아.

바로 서약부터 편집한다.

[올림푸스의 서약]

[봉인 중]

[올림푸스의 주신, 제우스가 올림푸스의 모든 신과 맺은 서약. 올림푸스의 신은 제우스의 창조주 승급을 돕고, 제우스는 올림푸스 신의 완전한 영생을 후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계약의 주체는 제우스와 헤라. 하지만, 헤라는 제우스와 모의하여, 둘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자고 했다.]

흠. 둘이 애초부터 짠 건가?

관리자 권한을 사용한 후 드러난 추가 내용.

이를 쭉 살펴본다.

“햐.”

쓱 내용을 훑어보고 나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헤라. 대단하네.”

“무슨 소리냐?”

“그래도 무늬만 부부는 아니었나 봐. 제우스의 의중을 미리 파악하셨구먼?”

“그, 그게 무슨…….”

“결국엔 제우스가 창조주가 되어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고 파악하셨네.”

야훼에게 패배한 제우스.

유대 지방의 작은 종교에서 시작한 기독교에 비해, 올림푸스의 지위는 굳건했건만.

계속해서 세력이 밀리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기독교에게 짓밟혀 신앙의 대상이 아닌 이야깃거리로 추락하게 되었다.

“야훼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처박으면서, 아스트라페를 손수 바친 제우스. 그는 결국 패배의 원인이 자신이 다신교의 수장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

“제우스가 EX급에 오르면, 신은 이제 나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터.”

일신교에게 패배한 다신교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아스트라페마저 빼앗겼다.

이 굴욕을 갚기 위해, 올림푸스는 ‘서약’을 매개로 하나로 합심해서 제우스를 밀어 주기로 했지만…….

제우스는 자신의 힘을 올림푸스와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는 절대자가 되기를 추구했다.

“당신은 그런 제우스의 의중을 파악하고, 자기만이라도 살아 보겠다고 서약에 사기를 쳐서 대행했군그래.”

올림푸스의 서약.

이 서약을 위반했을 경우, 페널티는 자동으로 제우스에게 가지만…….

그 페널티는 본래의 10%도 되지 않는다.

신들의 대행자인 ‘헤라’가 직접 나서서 서약이 위반되었다고 실행해야 그제야 제대로 발동하는 페널티.

복잡한 조건이 나열되어 있지만, 결국 핵심은 그거다.

헤라가 실행해야 모든 페널티가 정상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봉인 상태면, 페널티의 효율은 10%.

헤라는 혹여나 실행이 되는 것을 우려해, 스스로를 봉인했다.

크툴루를 통해 가짜 헤라를 만들어, 대외 활동은 대신한 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구나.”

얼굴이 딱딱히 굳은 채, 발뺌하는 헤라.

자식들 앞에서 창피는 당하기 싫은가 보지.

그녀의 사기 계약에 대해 다 까발릴까 했지만…….

[영혼신……!]

밖에서는 소멸의 권능을 담은 제우스가 번개를 마구 뿌리고 있었다.

화성에 아직 힘이 다 당도하지는 못했는지, 아직은 내 소울 배리어로 막을 만했다.

그래.

제우스가 저렇게 난리인데, 굳이 여기서 헤라랑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지.

“서약 편집. 봉인을 풀어.”

-대신 헤라의 특수 스킬을 수정합니다.

관리자 시스템의 음성이 들리고 난 이후.

헤라가 두 눈을 크게 뜬다.

“아…… 아니……!? 이럴 수가?”

눈앞에서 봉인이 풀린 서약.

하지만 헤라가 이를 실행해야 제대로 발동하지.

“헤라가 자기 입으로 서약을 실행하도록, 적당히 바꿔봐. 가능하지?”

-알겠습니다.

“영혼신. 내가 미쳤다고 그럴 것 같으냐…….”

내 말을 듣고 벌컥 화를 내던 헤라.

갑자기 말끝의 기세가 확연히 약해지더니…….

표정이 점차 뒤바뀌기 시작했다.

표독스럽게 올라와 있던 양 눈가.

이게 스르르 풀어진다.

“아…… 아니…….”

당황해하는 음성.

나에게 이를 갈던 입매는 어느새 화사한 미소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너! 뭐한…… 거야…… 거예요…….”

목소리는 더 이상 성나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로 나긋나긋해지는 목소리.

갑자기 존대가 나오네.

“…….”

나를 응시하기 시작한 헤라.

조금 전 노려보던 눈빛과는 180도 달랐다.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양 볼에는 짙은 홍조가 피어났다.

갑작스런 표정 변화에, 내가 도리어 놀랄 지경.

“영혼신…… 이시여.”

조금 전과는 달리 나긋나긋해진 음성.

마치 아프로디테가 나한테 잘 보이려고 목소리에 애교를 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영…… 영혼신. 어머님께 무슨 짓을 한 것이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레스가 깜짝 놀라 물어 온다.

아니, 나도 그냥 관리자 시스템에게 시켰을 뿐인데…….

“야. 뭐 어떻게 한 거야?”

-헤라에게 애정과 숭배의 대상을 추가했습니다. 영혼신으로요.

나에게 가볍게 대답하는 관리자 시스템.

숭배의 대상이면 신앙이니 그렇다 치는데…….

“아니, 뭔 애정까지 넣고 있어.”

-그것이 보다 확실한 길입니다.

“하…… 근데 그런 것도 바꿀 수 있어?”

-관리자 권한으로 바꾸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제우스에게 믿었던 반려의 배신을 보여 주십시오.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관리자 시스템.

[누구와 이야기하는 것이오. 거기에 애정이라니…… 당신. 어머님께 무슨 짓을 한 것이오?]

“아레스. 조용히 해라. 감히 어느 분께 음성을 높이느냐?”

[어…… 어머님.]

“더러운 제우스의 자식아. 더는 말하지 말거라.”

와.

관리자 권한 무섭네.

애지중지 아끼던 자식 아레스도, 남편인 제우스도…….

그냥 원수 취급이잖아?

-더해서 제우스에 대한 증오도 증폭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런 태도가 나온 거구나.

대신이었던 헤라가 한순간에 이리 바뀌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럼 서약 발동은 바로 가능하겠군. 헤라. 서약 발동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헤라가 배시시 웃음 짓더니, 바로 위를 바라보며 서약을 시행한다.

“천공의 신 제우스여. 그대는 우리 올림푸스와의 서약을 위배했도다.”

헤라의 앞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빛의 문자.

새하얀 문자가 모여 하나의 글귀를 이룬다.

글자의 숫자는 총 65개.

“나, 헤라는 올림푸스의 대행자로서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바.”

허공에 새겨진 백색의 문자에, 붉은빛의 색깔이 칠해지기 시작한다.

한 글자, 한 글자 색이 채워지며 15글자가 완전히 색이 변했을 때.

콰르르르르.

소울 배리어를 두들기는 흑뢰의 힘이 대폭 강해진다.

아무리 제우스의 권능에 내성이 생겼다고 해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수준.

쿠궁. 쿠궁.

찌지직.

계속 공격해 오는 흑뢰에 의해, 배리어가 찢겨 나간다.

그리고 배리어를 찢은 흑뢰는…….

헤라 바로 옆으로 떨어졌다.

[영혼신……! 헤라, 멈춰라. 내가 왔다.]

대지를 강타한 흑뢰에서 제우스의 음성이 강하게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지구의 본체에서 연락이 온다.

[제우스가 더 이상 추격해 오지 않는다. 날 신경 쓰지 않는군.]

지구의 본체는 이미 완전히 탈출한 상태.

제우스의 관심사가 완전히 이곳으로 쏠려 있는 게 느껴졌다.

[헤라. 뭐 하느냐. 당장 멈추지 않고? 영혼신은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

헤라가 나에게 억류되어서 강제로 서약을 이행한다고 생각한 건지.

계속해서 멈추라고 종용하는 제우스.

이에 헤라가 차갑게 답한다.

“무슨 소리야. 제우스. 내가 왜 멈추지?”

[뭣이……? 너, 너…… 미쳤느냐?]

헤라의 태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제우스.

헤라가 자신을 배신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우스답지 않게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라. 헤라. 서약, 아직은 취소할 수 있다!]

“제우스. 당신 같은 쓰레기가 세상을 창조해서는 안 돼.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당신이 창조하는 신세계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해.”

[큭……! 너……!]

제우스가 생각 이상으로 당혹해하는군.

헤라의 서약.

나는 견제구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는 그 정도 가치가 아니었나보지?

“그래. 세계를 새로 창조할 이는 위대하신 영혼신 뿐입니다.”

[영혼신. 네놈이 꾸민 일이었구나! 감히 헤라를……!]

극도로 분노한 제우스.

땅에 꽂혀 있는 흑뢰가 일렁인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SP.

어. 이건 좀 위험한데……?

“소울 배리어.”

배리어를 치고, 튈 준비를 갖춘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 여기서 죽을 필요는 없지.

헤라가 발동한 서약의 글자도 65자 중 33자가 완성된 상태.

저 정도면 이미 제우스 발목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야.

[사라져라!]

지지지지지직.

순식간에 나에게 날아오는 흑뢰.

소울 배리어에 힘을 필사적으로 불어넣었지만, 닿자마자 깨달았다.

아. 이거 1초도 못 버틴다.

튀자.

아. 근데…….

사방이 흑뢰 천지네.

화성에 배치해 뒀던 분신은 어느덧 제우스의 흑뢰 폭풍에 모조리 쓸려 나가고, 화성 전체가 제우스의 흑뢰로 뒤덮여 있었다.

촘촘한 그물망처럼.

“이거, 힘들겠는데.”

[영혼신…… 여기의 네가 진짜겠지. 이곳에서 완전히 없애, 후환을 제거하겠다!]

화성의 나를 진짜 본체로 여기는 제우스.

본체가 여럿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완전 풀 파워로 온 건가?

최대 출력의 제우스, 감당하기가 힘드네.

쩝. 도망은 아무래도 힘들겠어.

자폭…… 간다.

또 다른 본체에게 뒷일을 맡기고……!

“안 돼!”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서는 헤라.

비장한 얼굴로 흑뢰 앞에 선다.

[헤라……! 이익!]

황급히 흑뢰를 거두려고 하는 제우스.

하지만 이미 그의 번개는 헤라에게 닿은 상태였다.

지직.

지지지지지직.

헤라의 영체가 그대로 전류에 물들더니, 사라진다.

비명을 지를 세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소멸한다.

혼돈의 권능, 소멸.

지금 막 깨어난 대신이 막기에는 너무나도 강했다.

[헤라!]

그녀가 사라진 자리.

65자의 문자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면서, 완전히 색이 붉은빛으로 변한 문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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