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32화 (232/240)

<내 상태창 2개 - 232화>

관리자 권한 (3)

나를 위주로 살겠다는 말에 화색을 띄는 목소리.

이렇게까지 환대를 하니, 괜히 미심쩍어진다.

“뭐 그렇게까지 좋아하냐?”

-제우스의 상태창에 감돌고 있는 빛, 보이십니까?

동상의 발톱 뿌리를 틀어막고 있는 제우스의 상태창.

상태창 주변은 붉은빛이 생겼다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이지만 내가 있는 푸른 영역을 침탈하고 있는 붉은빛.

“붉은빛이 감도네. 저거…… 왼팔의 빛과 비슷한데. 혼돈의 힘인가?”

-그렇습니다.

“중간중간 사라지지만, 내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네. 제우스가 지구를 쳐들어와서 그런가?”

-제우스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그럼?”

-당신이 혼돈에 흡수당했을 때, 빛이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나는 혼돈에 흡수당한 적이 없는데. 딱히.”

-당신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 이상은 빛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진입하기 전까지?

그때라면, 영검에게 낚여서 내 의지가 희미해지고 있을 때 아닌가.

“그땐 EX급의 신기에 속아 SP를 제한 이상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거랑 혼돈이랑 연관성이라고 해 봤자…….”

SP의 홍수에 뒤덮여, 자아가 희미해지던 그때를 떠올렸다.

내 자아가 희미해지면서, 그 자리를 대신 혼돈의 기운이 채운 건가.

근데 내가 가지고 있는 혼돈의 기운은 딱히 없을 텐데?

-본질을 살펴보십시오.

넌지시 알려 주는 목소리.

본질이라.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아는 거 있으면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직접 알려 주지 그래.”

-스스로 깨달아야 제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내부를 관조해 보십시오.

선문답 같은 소리 하긴…….

도움이 안 돼요.

발톱과 뿌리의 경계선.

제우스의 상태창 근처가 계속 번쩍번쩍하며 푸른빛과 붉은빛을 오가고 있었다.

그 빛을 보며 생각한다.

어디서 혼돈이 낀 거지?

내가 한 거라고는 SP를 많이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

그래.

SP…….

“흠…….”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느낌.

계좌를 열어, 내가 가진 SP를 50% 정도 넣어 보았다.

그러자 서로 번쩍이던 빛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일단, 내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푸른빛이 조금 옅어졌다.

하지만 옅어진 푸른빛과는 다르게, 붉은빛은 조금 반짝이다가 급격하게 기세를 잃었다.

단지 제우스의 상태창 테두리에만 붉은빛이 있을 뿐.

너무 많은 SP.

그 자체가 원인이었나?

본질을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리며, 내 안의 SP를 자세히 관찰해 봤다.

영혼신에 오른 후, 당연히 SP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공간에 있어서 그런가?

그때와는 또 보는 느낌이 달랐다.

쪼개고 쪼개서 보다 보니, 아주 미세하게나마 특이한 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거…… 모든 SP에 혼돈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렇습니다.

“이상한데. SP에 질서나 중립의 느낌은 아예 없어. 그럴 수가 없는데…….”

SP는 영체의 기본 단위.

그 어떤 진영의 힘도 느껴지지 않거나, 아니면 모든 진영의 힘이 다 같이 느껴져야 정상인데…….

아무리 보아도 혼돈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보유 SP를 계속해서 쪼개보았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이거도 혼돈. 저거도 혼돈. 죄다 혼돈의 기운만…… 어…… 이건 중립?”

수도없이 까다 보니 중립의 기운을 띈 SP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느낌을 알자, 다음부터 분류 속도는 더 빨라졌다.

금방 내가 파악한 SP의 비율은…….

“99%는 혼돈. 1%는 중립이군. 질서는 아예 없고.”

그냥 대부분이 혼돈.

중립은 가뭄에 콩 나듯이 잠시 보일 뿐이었다.

중립이었던 SP가 어디서 왔는지를 추적해 봤다.

쌀 한 톨을 가지고 원산지를 따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작업.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혼신 클래스는 그걸 가능하게 했다.

“이거는 SP 거래소 이자로 얻은 거군. 이거는 영혼 중개로. 이거는 영혼 약탈로. 허어…….”

SP 거래소의 이자로 얻은 SP.

내가 내 영혼 스킬로 얻었던 SP.

이것들만이 중립의 색채를 보이고 있었고…….

내가 창조주에게 지분 팔아서 저금해 둔 SP는 모두 혼돈의 색을 보였다.

내 능력으로 온전히 얻은 건 중립.

그러면 혼돈은…….

“2.4경 받은 거는 죄다 혼돈이었군. 아. 이거, SP 상점을 거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SP 상점은 거래소가 생기기 전까지는, SP 유통을 위한 단 하나의 통로였다.

상점의 주인은 혼돈의 최고신, ‘창조주의 왼팔’.

상점을 거치는 SP는 주인의 성향에 맞게 변했다.

아주 슬쩍.

티도 안 나게.

모래사장을 걸으면 아무리 묻히지 않으려 해도 모래가 묻기 마련.

SP 상점에서 유통되는 SP는 어느덧 혼돈의 성질을 아주 조금이나마 가지게 된 거다.

-SP의 혼돈성은 아주 미약하여,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무한한 양을 지니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대신급은 전혀 모르겠지. EX급이 된다고 해도, SP의 혼돈성을 파악하기는 힘들 거야. 하지만…… EX급조차도 한 단계 뛰어넘을 정도의 신이라면.”

그래.

나한테 지분을 2.4경에 산 그 EX급이라면.

창조주를 뛰어넘으려고 하던 그 수준이라면 파악할 수 있겠지…….

“내가 SP에 완전히 잠식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발톱도 왼팔처럼 완전히 붉어졌을까?”

-아닙니다. 그럼 다시 왼팔로 환원되었을 겁니다. 혼돈의 기운을 지닌 SP는 저리로 가야 합니다.

“그럼 여기는 중립 속성의 SP만 채울 수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녀석이 왜 나를 도와주나 했더니…….

내가 혼돈에 잠식되면 이 거대한 창조주의 상에 색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 거였군.

“혼돈의 SP가 사실상 전 우주를 주름잡는 거나 마찬가진데. 그래도 왼팔은 저기서 못 벗어나는 거야?”

-예. 질서, 중립, 혼돈 진영이 모두 준비가 되어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오직 혼돈만이 준비가 끝난 상황입니다.

“너는 나에게 오른 다리의 색을 채우길 기대하겠군.”

-예.

어쩐지 너무 호의적이더라.

-창조주의 왼팔은 너무 완벽한 신이었습니다.

갑자기 왼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목소리.

-그는 오랜 전쟁 끝에 중립과 질서 진영을 완전히 짓밟았고, 세상을 혼돈의 기운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영혼신의 가능성이 있는 이를 자신에게 귀속시키려 했습니다.

창조주의 왼팔.

전 우주를 제패한 그는 창조주의 상을 오롯이 혼돈의 색으로 물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채울 수 있는 건, 왼팔뿐이었지요. 다른 진영의 힘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그도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 근데 넌 어째 그렇게 잘 아냐? 왼팔 사정을 너무 잘 꿰뚫고 있네.”

-그가 알려 주었으니까요.

알려 줬다고?

-그는 자신의 안배를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안배?”

-영혼신의 적을 만들고 지원하여, 그가 SP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안배.

“지금 내 상황처럼?”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는 제우스.

2.4경 얻고 좀 힘 생겼다 싶더니 어디서 혼돈의 신기 같은 걸 가져와서 때리지도 못하게 만들었지.

근데 아예 항거 불가능도 아닌 게…….

내가 지분 팔아 얻은 2.4경의 SP를 쓴다면, 조질 수는 있을 거 같거든.

“애초에 SP 엄청 던져 준 것도, 의도가 있었구나.”

-예.

“그럼 나에게 SP 준 노신도 그쪽 계통 신인 건가?”

-그렇습니다.

“허…… 아니, 그러면 안배를 그만 쓰면 될 거 아니야.”

-그는 지금 18,764,872번째 초월을 하기 위해 모든 힘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개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왼팔 자식.

자기에게 방해될 후발 주자들 죄다 흡수한다고 안배를 다 깔아 뒀는데…….

그게 오히려 지 발등을 찍었구먼.

“어쨌든…… 너는 날 돕겠다는 입장이지?”

-예.

“왼팔도 뭐 초월 때문에 개입은 안 할 테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럼 날 전폭적으로 지원하면 되겠네. 수정 권한이나 좀 더 줘 봐.”

왼팔은 왼팔이고.

지금 나에게 닥친 적은 일단 제우스니까.

이놈 스탯이나 막 수정하다 보면 뭔가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저에게 그런 권한은 없습니다.

거참. 도움이 안 되네.

그럼 뭐가 가능한 거야?

노골적으로 물어본다.

“그럼 뭐 해 줄 수 있어?”

-직접적인 서포트는 불가능하지만, 관리자 공간 안에서 조언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조언이라…….

“한번 들어나 보자.”

-제우스는 목성과 지금 융합 중입니다.

[융합]

- 세계를 녹여 냅니다. 분해, 동화의 과정을 거쳐,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융합되는 1SP의 가치당, 1초의 시간이 걸립니다.

- 현재 행성 ‘목성’, ‘지구’를 상대로 시행 중입니다.

그 설명과 함께 내 앞에 뜨는 제우스의 권능.

-여기서 1초를, 10,000초로 바꾸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호오. 시간을 벌자는 거야?”

-그렇습니다.

“왜. 아예 더 수치를 올려 버리지.”

-그러려면 수정 권한도 더 필요할뿐더러, 제우스가 눈치챌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녀석 스킬창에서 수치가 변할 텐데. 어차피 눈치채지 않을까?”

-그의 스킬창에서는 변화된 수치가 나오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건 그대로라 제우스가 쉽게 알아채지 못할 거라나.

스탯은 직접적인 수치가 영체에 체감이 되니 변경하면 바로 알지만, 스킬의 효율은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럼 지금보다 융합에 10,000배가 더 걸리는 거니, 시간은 확실히 벌겠군.

바로 수정에 들어가니, 수정 권한 1개에 1000조를 요구했다.

1000조…… 아깝긴 하지만.

“융합의 권능. 수정한다.”

지금은 1000조보단 시간이 더 중요하지.

1초가 10,000초로 바뀌자, 시간을 좀 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없는 건가.”

서 있기만 해도 SP가 사라지는 관리자 공간.

SP 소모량이 예전보다는 좀 줄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 더 있다가는 아무리 나라도 파산하겠지.

이제 슬슬 나가야겠어.

하지만 그전에.

“너, 뭐 하나 좀 찾아 줘라.”

* * *

관리자 공간에서 나오자,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죠?”

“시간이 흐르다니?”

그러자 나에게 반문하는 아버지.

호오. 관리자 공간 안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는 건가.

잘됐네.

“일단, 오늘은 해산하고. 아까 시킨 일은 일단 하지 말고 있어 봐.”

“알겠습니다.”

인간을 제멋대로 다룰 기회를 잃어버리니, 아쉬워하면서 물러나는 사도신들.

신들이 다 떠나고 나자, 아버지에게도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아버지. 저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괜찮은 거지?”

“예. 이제 완전히 괜찮습니다.”

‘영검’을 부순 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왔으니까.

관리자 공간에 들어서고 나니, SP를 다룰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 있었다.

“SP 인출.”

영검의 잔해, 파괴된 단말기를 들고 잔고에서 SP를 꺼낸다.

액수가 커질수록, 단말기의 색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200조쯤 되었을까.

단말기의 윗부분, 10% 정도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그래도 아예 쓸모가 없지는 않군.”

관리자 공간 안의 목소리.

그는 내가 떠나기 전, 발톱의 상황을 단말기에 전해 준다고 했다.

이 정도면 10% 정도가 혼돈의 기운에 장악당한 셈.

“아예 혼돈이 없으려면 60조쯤인가.”

큰물에서 논 탓일까.

사용 가능한 SP의 한도가 꽤 늘어 있었다.

“그래도 조금 있는 게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

200조 정도는 운용할 만하다.

10% 정도의 잠식은 버텨 내며, 발전해야지.

이 정도로 가용 SP가 늘자, 할 게 더 많아졌다.

일단 내가 가진 전반적인 힘이 크게 상승하고, 분신 운용도 더 자유로워졌다.

현재 태양계 우주 공간에서 바늘 찾기 중인 내 분신들.

그들의 속도도 더욱 늘어나겠지.

더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분신에게, 모두 명한다.

“헤라를 발견했다.”

그러자 우주에서 움직임을 멈추는 수많은 김지호들.

그들에게 위치를 알려 준다.

“화성. 화성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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