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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 2개-230화 (230/240)

<내 상태창 2개 - 230화>

관리자 권한 (1)

메시지가 뜨지 않은 시스템 창.

초록색 테두리를 제외하고는 투명한 빈칸이다.

혹시 좀 기다리면 메시지가 나오나?

그런 생각에 잠시 시스템 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글자는 나오지 않았다.

“만져야 하나?”

빈칸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보았다.

그러자 쑥 빨려 들어가는 손.

“……?”

손을 휘저어 보이만,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삑. 삑. 삑.

갑자기 빈 시스템 창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얀빛이 번쩍번쩍하면서 경고음이 들린다.

지릿. 지릿.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

정전기처럼 근질근질하다.

-관리자 권한. 확인.

관리자 권한?

고저가 없는 음성이 들린 후, 빛이 멈춘다.

다시 투명해지는 시스템 창.

휙. 휙.

손을 넣고 빼고가 가능하네.

조금 전에는 정전기 같은 게 방해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자유로워진다.

“이 안에 뭐가 들었지?”

SP를 흩뿌려 안을 살펴봤다.

그러자 붉은빛으로 가득한 공간이 인지되었다.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 공간.

“흠…….”

“지호야…… 방금 무슨?”

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나에게 물어본다.

내 시스템 창이 아버지한텐 보이지 않았을 테니, 허공에서 주먹질한 거로 보이겠지.

“후. 아버지. 덕분에 살았네요.”

EX 등급 신기라는 놈이…… 주인을 위하지는 못할 망정 인간 김지호를 완전히 지워 버리려고 하다니.

녀석이 원하는 대로 아버지의 영체를 변형했으면, 더는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신기가 제 의지를 없애려고 했네요.”

EX등급의 중립 신기,‘영검’.

성장 권능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그거보다 내가 사라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지.

근데 시스템 창을 부숴 버렸다지만…….

그 녀석은 아직 계속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인벤토리를 둘러본다.

영검으로 썼던 검은 막대기.

EX등급 신기로 진화하여 나에게 흡수된 그것이, 인벤토리 한 칸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를 꺼내니, 새로운 메시지 창이 뜬다.

[파괴된 단말기 ‘영검’]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단말기, 복구 불가능이라…….

왜 단말기라고 뜨지?

영검이었던 것을 이리저리 돌려 보니, 한편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미 변한 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인간을 버리십시오.]

나 보라는 듯이 적어 둔 글귀.

이 자식, 부서지기 전까지 훈계네.

그건 그렇고, 변한 건 되돌릴 수 없다니…….

의식을 지구로 되돌려 본다.

그리스의 변고로 인해 난리가 나 있는 지구.

[인공위성 상으로도, 그리스 지역이 관측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통신이 모두 두절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를 지나던 한국 항공 소속 여객기에서도…….]

[그리스 근방에서, 제우스의 음성이 들렸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혼란.

제우스는 그 사이에 한 차례 권능을 더 사용해서, 천만이 또 죽어 나간 상태였다.

지구 인구가 70억인데…….

700번만 권능 쓰면 다 죽겠네.

이 속도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전멸하겠는데.

분신 하나를 생성해 거리를 나서 본다.

그리스발 소식에 웅성웅성 소란스러운 거리.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극도의 혼란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도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인터넷에서 보니까, 제우스가 인류를 멸망시키겠다고 공언했다는데?”

“에이. 씨. 인터넷을 믿어? 찌라시겠지.”

“신들은 뭐 하냐. 저거 막지도 않고?”

삼삼오오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내 마음은…….

“예전과 똑같네.”

가짜 혼이 담긴 사람들.

예전처럼 혼이 없으니 진짜 사람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들을 이용해서 힘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이미 인간을 보는 시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돌아온 거냐? 근데 손은 왜 사라져 있고?”

정령계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

의식을 다시 돌리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아버지로 보이는데 말이지…….

“뭐, 이젠 괜찮습니다. 손은 좀 알아볼 게 있어서…….”

팔을 넣었다 뺐다를 다시 하며 정상적임을 보여 주자, 안심하는 아버지.

내 변한 눈높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지.

괜히 걱정 시켜드릴 필요는 없잖아.

“그럼 다행이구나.”

“예. 저 잠시 이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버지를 안심시켜 드린 후, 다시 시스템 창 안을 살펴봤다.

상상 이상으로 큰 공간 안.

손에서 뿜는 SP만으로는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드넓었다.

이거 가지고는 안 되겠어.

“분신 생성.”

시스템 공간 안에서 분신을 생성한다.

SP가 소모되나 싶더니, 다시 돌아온다.

분신이 취소되다니……?

-관리자 권한을 지닌 본체만이 진입 가능합니다.

본체만이 가능하다고?

그러자 좀 꺼려지긴 했지만, 빈 시스템 내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뭐, 본체도 두 개 더 있으니…….”

자아 발전을 위해서 본체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나 하나 정돈 여기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제우스랑 본체랑 싸우는 건 녀석에게 먹힐까 봐 위험부담이 있어서 안 한 거지만…….

이 시스템은 제우스처럼 위협적이진 않을 거 같은데.

관리자 권한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나에게 그다지 적대적이진 않아 보인다.

“잠깐 갔다 오겠습니다. 일 보고 계세요.”

“어…… 어딜?”

아버지와 사도신들에게 그리 말한 후, 몸을 축소시켜 빈 시스템 창 안으로 집어넣었다.

-관리자 권한 확인.

이번에는 별 방해 없이 들어가는군.

안으로 들어서서, 원래대로 몸 크기를 되돌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끝도 없는 붉은빛의 공간만이 드러나 있었다.

위이이잉.

내 몸이 완전히 들어오자, 스르르 닫히는 빈 시스템 창.

“뭐야. 닫혔어?”

이 공간에 들어와 보니 알겠다.

여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귀환 스킬 같은 건 전혀 통용되지 않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공간이라는 것을.

저 문을 통해서만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관리자 권한을 이용하여, 문을 여십시오.

관리자 권한은 어떻게 쓰는 건데.

컴퓨터냐?

이럴 때는 신언으로…….

“문 열어.”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시스템 창 확인.”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영검 나와.”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EX등급 중립 신기, 상태창 띄워.”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에라이.

되는 게 없네.

그래도 날 끌어들여 집어삼키거나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일단 좀 살펴보자.”

붉은 공간을 전력으로 살펴본다.

손으로 기운을 뻗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SP가 내부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눈으로만 보면 빛밖에 없지만, SP의 흐름을 따진다면 아주 정교하고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이 SP는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거야?

“저기에 제일 많이 몰리네.”

주위를 둘러보다, 가장 많은 SP가 있는 곳을 향해 가 봤다.

최고 속력으로 가 보지만, 생각보다 먼 목표 지점.

곧 다 왔다 싶다가도, 계속해서 거리가 벌어진다.

[SP가 부족합니다.]

수십 분을 갔을까?

갑자기 뜨는 시스템 창.

얼마 활동하지도 않았는데, SP가 팍팍 사라져 있었다.

아니, 한도에 맞게 꽉꽉 채워 넣어서, 50조는 넘게 있을 텐데……?

SP 보유량을 확인하니, 조 단위의 SP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많이 빠져.

영체 좀 움직였다고?

SP 다 떨어지면 큰일 날 것 같은데.

“SP 계좌 인출.”

일단 SP를 충전하기 위해 계좌를 연다.

[SP를 인출하시겠습니까?]

다행히 계좌는 열리네.

SP를 적당히 30조만 인출하고, 계속 따라가 본다.

그러면서 SP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니…….

이 붉은 공간이 내 SP를 야금야금 털어 가고 있었다.

SP 흐름이 워낙에 거대해서, 내 꺼 털리는 걸 모르고 있었네.

마치 태양 옆에서 전구를 켜 봤자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한데, 내 SP가 조 단위인데도 느끼지 못할 정도면…….

이 SP의 흐름이 얼마나 거대한 거지?

일단 털리지 않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강구한다.

“소울 배리어.”

그러자 바로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음성.

-소울 배리어를 사용할 시, ‘관리자 공간’의 이해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습니다.

-이해도가 낮을 시,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수정?

뭘 바꾼다는 건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SP의 흐름을 보자니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였다.

“배리어 해제.”

배리어를 해제하자 다시 약탈당하는 내 SP.

30조도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금방 동이 난다.

다시 인출하고, 인출하고…….

백 번 좀 넘게 썼을까?

그렇게 SP가 사라지다 보니, 어느 순간 음성이 들려온다.

-‘관리자 공간’의 일부를 이해했습니다.

-‘수정’이 가능합니다.

-현재 가능한 ‘수정 권한’은 1회입니다.

그 음성과 함께 달라지는 세상.

붉은빛 위에, 창들이 뜨기 시작한다.

“이거…… 시스템 창이잖아?”

내가 각성하고 항상 보던 시스템 창.

스탯, 스킬 등등의 능력치와 등급 나열된 상태창이 사방에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와…….

[각성자 제임스. C급.]

[각성자 샤오린. D급.]

[각성자 황인석. E급.]

이름과 등급이 나열된 상태창.

눌러보면 능력도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이 이름. 어째 다 지구인 같은데……?

거대한 SP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여러 상태창을 지켜보았다.

한 곳에 엄청나게 모여 있던 지구인 상태창.

근데 이 영역을 지나자, 상태창이 싹 다 사라진다.

어쩌다가 드문 드문 보이는 상태창들은……

[각성자 레히겔, D급. 불완전.]

[각성자 앨리아슨. D급. 불완전.]

다들 불완전 딱지만 붙어 있었다.

딱히 수정 생각은 없어서 지나가고 있는데……

[각성자 강시아. C급. 불완전.]

지구에 있는 강시아의 이름까지 뜬다.

이 상태창…… 지구인이 확실한 거 같은데.

아까 뭉텅이로 모여 있던 건, 내가 영혼석으로 따로 격리해둬서 그랬던 건가?

이들은 지구에 남아 있는 이들의 상태창 같고.

이 숫자가 얼마 안 되는 건, 가짜 혼에서 발아해서 자신의 혼을 만들어 낸 경우만 카운트 돼서 그런 거 같다.

[SP가 부족합니다.]

또다시 SP 고갈 메시지가 뜬다.

거의 5,000조 이상 빠져나간 SP.

남은 잔고가 9경 초반이다.

어마어마하게 낭비를 하긴 했지만…….

이 공간에선 SP를 쓸 만해.

SP를 계속 충전하면서 나아가니, 이제는 신들이 뜬다.

이름도 다양한 하급신부터 시작해서…….

[대신 인드라.]

[대신 아수라.]

[대신 토르.]

[대신 아르테미스.]

내가 만나 보았던 대신들의 상태창도 뜨기 시작한다.

아르테미스의 상태창을 눌러 보니, 그녀의 능력치부터 ‘주신 - 김지호’ 라는 현 상태까지 떠 있었다.

아르테미스 게 확실하군.

-대신 아르테미스의 상태창을 수정하시겠습니까? SSS급 대신으로, 수정 권한이 1회 필요합니다.

아르테미스 상태창을 좀 둘러보고 있자니,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

수천 조 SP를 소모해 가며 얻은 수정 권한인데, 여기에 쓰기는 아깝지.

“아니. 됐어.”

수정 권한 사용을 포기하고, SP 흐름에 따른다.

“목표에 거의 다 와 가네.”

여기까지 오는데 SP를 얼마나 쓴 거냐.

그건 그렇고, SP 농도가 짙어지니 이젠 지구의 대신들만 보이는데…….

목표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격의 상태창만 드러나고 있었다.

[대신 오딘.]

아스가르드의 대빵인 오딘도 보였고.

[대신 미카엘.]

야훼의 세계로 갔을 미카엘도 아직 여기에 상태창이 남아 있었다.

최종 목표지에는 대체 누구 게 있을지 궁금하군.

이렇게 점점 강자만 나온다면…….

설마, 제우스도 있나?

“창조주도 수정 가능하면 대박인데.”

수정을 아직 한 번도 쓰진 않았지만…….

SP 잔고를 다 털어 버린다든지.

주신을 아예 나로 바꿔 버린다던지 하는 게 가능하면 제우스는 끝장 아닌가?

이런 기대감을 품으며,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창조주 제우스]

막대한 양의 SP가 모이는 목표 지점.

바로 그 근처에, 창조주 제우스의 상태창이 놓여 있었다.

하나 나는 그걸 보고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저건?”

거대한 상이 있다.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몸통.

인간의 육체와도 같은 상.

하나 그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지금 내 몸이 그의 발톱만큼도 되지 않으니까…….

시야를 아주 드넓게 확장해야 그의 거대한 상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리 넓게 보려고 해도, 몸통 위로는 볼 수가 없었다.

“뭐 이렇게 커?”

어마어마한 SP가 거대한 상의 왼팔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왼팔에서 나오면서 순환하는 SP.

그러고 보니…… 이 거대한 상.

다른 부위는 그냥 암회색인데, 왼팔만 붉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아니.

또 다른 데도 살짝이지만 빛이 나네.

어…….

그래.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발톱.

발톱에서는, 푸른색의 빛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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