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9화>
신으로 나아가다 (5)
“무슨 말이라뇨?”
“지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인간을 사육하는 것 같지 않느냐.”
아.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군.
정보가 부족하니 그러신가 보다.
“아. 아버지, 저들은 혼이 없어요.”
“혼이 없다고?”
“예. 예전 지구의 인간이라고 볼 수 없죠. 제가 만든 가짜 영혼이 머물고 있는, 인형 같은 존재예요.”
“하지만 인간이지 않느냐.”
“진짜 혼이 없으니 인간이 아닙니다. 그냥 실험 대상일 뿐이죠.”
“허어…….”
“아버지. 진정한 인류는 이 세계에 있습니다. 이 빌딩에 보관되어 있죠. 저들은 단순히 껍데기일 뿐. 제우스를 쫓아내야 진정한 인간이 다시 지구에 자리 잡을 겁니다.”
지구에서 제우스를 이길 존재는 결국 나밖에 없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강해지는 게, 인류를 위해서도 좋은 일.
제우스의 막강함을 보면, 어떻게든 내가 강해져야 한다.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기 위해서, 인간을 사육해서 실험을 하겠다는 거냐?”
“혼이 없는 이는 인간이 아니죠. 인형에 불과합니다.”
“그럼 인형에서 혼이 생겨나면? 그건 인간이 아니더냐.”
“그럴 수 있겠죠. 그런 이들은 어차피 계속된 관찰을 위해서도 죽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이들은 인형에서 오히려 혼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으니, 저에게 감사해야겠죠.”
없던 혼을 생기게 했으니, 나에게 감사해야지.
새로운 세계에서 고생은 좀 하지만, 그래도 없던 혼이 생겨났잖아.
그런 내 말을 묵묵히 듣던 아버지.
“어차피 인형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냐? 70억 인류 중 쓸 만한 이는 실험 대상으로 삼고, 쓸모없는 이는 제우스에게 먹이로 주고…….”
“아니,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인간을 그렇게 다룬다면.”
“하이고. 인간. 인간. 무슨 도덕 교과서 같은 소리를 하세요? 인류는 이미 혼으로 다 생존시켰고, 육체는 얼마든지 재생시킬 수 있는데. 아버지도 혼을 잘 보존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 숨 쉬고 계시잖아요.”
아, 답답하네.
아버지가 갑자기 왜 이렇게 나오셔?
저들이 무슨 인간이야.
가짜 혼이 다 들어섰구먼.
“영혼신께서 보시는 게 맞습니다. 영체야말로 존재의 본질. 영혼이 없는 육신은 짐승에 불과하지요.”
“지금 인간은, 그저 짐승이라고…….”
“예. 혼이 없으면 그저 짐승에 불과하죠. 그러니 인류가 짐승을 다루듯 다루면 됩니다.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쓸모없음에 분쇄기에 갈리지요. 이처럼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이 있는 법입니다.”
“아직 반신의 경지라 깨닫지 못하신 것일 뿐. 곧 반신을 초월하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엘프리안을 비롯해서 나의 사도들이 아버지를 좋은 말로 설득하고 있었다.
확실히 S급은 되어야, 영체가 본질임을 확실히 깨닫는 건가.
주위의 설득에 곰곰이 생각하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가 A급이라 미처 몰랐던 것 같군요. 여러 신들을 불편하게 했던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불편하다니요. 주신의 아버지께 그럴 리가요.”
“그저 알아 주시니 다행입니다.”
서로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신들과 아버지.
하나 아버지의 미소는 어색하고, 딱딱했다.
그다지 납득을 한 거 같지는 않은데.
“지호야. 하나 더 물어봐도 되겠느냐?”
“예. 얼마든지요.”
“너는 위혼으로 지금 인간들 혼을 임시로 만들었다고 했지.”
“네.”
“그럼 진짜 혼도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
“흠…… 지금 경지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가능할 것 같네요.”
위혼을 좀 다듬으면 진혼으로 재창조도 가능할지 모르겠네.
SP 소모가 많긴 하겠지만…….
익숙해지면 제대로 만들 수 있겠지.
지금 같은 성장 속도면 금방 가능할 거 같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그렇죠.”
“그래…… 너는 이미 혼을 만들 수도 있는 경지다. 근데 왜 혼을 굳이 만들지 않고, 왜 저렇게 거추장스럽게 인류를 보관하고 있지?”
“네?”
“빌딩에 쌓아 둔, 인류를 백업시킨 영혼석. 사실 네게는 필요 없지 않느냐? 어차피 천지창조도 가능한데. 굳이 예전 인류를 짐처럼 들고 다닐 필요가 무엇이더냐?”
영혼석이 담긴 빌딩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버지.
“애초에 지구에 집착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 네게는 무한한 SP가 있는데, 제우스와 굳이 싸울 필요 없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도 될 텐데 말이다.”
“…….”
“그래. 마치 야훼처럼.”
뭐…….
가능은 한 일이다.
아버지의 말대로 할 수는 있지.
SP는 무한정에 가깝고, SP 거래소에서 계속 막대한 양이 들어오니까.
내 사도신들도 천지창조를 시도한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아버님, 맞는 말씀이에요.”
“그렇습니다. 주신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지구보다도 더 좋은 세계. 인류보다도 더 우월한 종족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사도신들도 그 말을 반가워하는 기색.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내가 나로서 있기 위해서는 그러면 안 돼.
“그건 안 됩니다. 저에겐 인류, 인류 사회가 필요해요. ‘김지호’로 있으려면 인간을 살려야 합니다.”
“김지호로 있기 위해서 왜 하찮은 인간이 필요하지?”
“인류가, 인간 사회가 없으면…… 한때 인간이었던 저의 자아가 사라질 것 같으니까요.”
“그래?”
뚜벅. 뚜벅.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아버지.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내가 아는 내 아들은 평범한 아이였다.”
“그랬죠.”
“공부도 중간, 운동도 중간. 성격은 착한 편이었지만, 마냥 좋기만 한 사람만은 아니었지. 이기적일 때는 이기적이고, 반항할 때는 반항도 하는 아이었지.”
“뭐……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지극히 평범했죠.”
“그런 평범한 녀석이, 인간의 죽음을 방관하고, 실험하려 했다고?”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에휴. 그만하세요.”
“내가 아는 내 아들이었다면, 인간이 아니라…… 원숭이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 가혹한 실험에 내몰고, 고문하듯이 상황을 만들고. 이를 즐기지는 않았겠지.”
“아버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직도 협소한 관점에서 생각하시다니.
하…… 꼭 내가 나쁜 놈인 것처럼 말씀하시잖아.
좀 섭섭한데.
“상황이 절 그리 변화시켰을 뿐입니다. 저도 가능하다면 다 살리고 싶죠. 제우스와 싸워 이길 수 있다면, 그리스에서 그를 벌써 없애 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그렇게 여유롭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
“아니, 이기기는커녕, 버티기도 힘든 상대죠. 제 분신이 단번에 박살 났습니다. 그에게 공격은 털끝만큼도 먹히지 않았고요. 창조주 제우스는 그런 상대입니다. 그를 상대로 인류의 혼도 살리고, 육체도 살린다? 불가능해요. 저는 제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썼을 뿐입니다.”
“그래…… 그가 그렇게나 강한 거냐.”
“예. 그렇다고 인간을 피난처인 이 세계로 불러올 수도 없죠. 평범한 인간의 육체가 정령계에서 버틴다? 불가능합니다. 케브리안이나 칼바인 등의 다른 세계로 보내는 것도 다 각성자의 육체나 가능한 일. 일반인의 육신까지 살리는 건, 지금 제 힘으로는 불가능해요.”
묵묵히 내 말을 듣던 아버지.
나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어차피 제우스에게 죽을 거, 실험 대상으로 쓰겠다는 거구나.”
“예. 그래요. 아버지. 제우스가 더욱더 강해져서, 이곳까지 추격해 오면 어떻게 합니까? 70억 인류의 혼, 저게 다 사라지면 그때야말로 인류의 종말입니다. 그전에 제가 강해져야 해요. 그가 이곳까지 오기 전에, 그를 이길 힘을 얻어야 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
내가 제우스를 압도할 힘을 가졌으면 모를까.
그러지 않는 이상,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다.
“예. 그렇죠.”
내 대답에 후 하고 한숨을 쉬는 아버지.
“그런 녀석이, 왜 그렇게 신나 했느냐? 그리고 왜 그리 즐거워하느냐?”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즐겁긴……?”
“봐라.”
아버지의 눈앞에서, 화면 하나가 생성된다.
마치 거울과도 같은 유리 화면.
그 안에 담긴 내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우냐.”
이게 내 얼굴이라고?
뭐…… 아니…….
이렇게 좋아했다고?
“그리고.”
유리 화면에서 영상이 재생된다.
조금 전, 내가 사도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모습.
[임무를 주겠어.]
너무 밝다.
인간을 사육하는데 한 점 미혹도 없는 얼굴.
그 당시 신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웃고 있는 건 나였다.
내가 이렇게 즐거워했던가……?
내가 이렇게 사악하게 웃을 줄 알았나?
“뭐가 그리 신났느냐.”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그래. 나는 신났다.
신났어…….
힘이 강해져서. 신났다.
“이렇게 즐거워하는 게 네가 지키려는 자아, ‘김지호’ 맞느냐?”
이 모습이 내가 지키려고 했던 내 ‘자아’인 건가?
“이런 모습을 보니, 인류를 왜 지키려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구나. 굳이 인류가 없어도, 이쪽 ‘김지호’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거다. 인간에 더 이상 가치를 둘 필요가 없는, 절대자시니까.”
아버지가 덤덤한 어조로 말을 끝낸다.
“어…….”
말문이 막힌다.
이게…… 나라고?
당혹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신들이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그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주신께서 잘하고 계셨는데…….]
[아무리 주신의 아버지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가. 굳이 인간 따위에 집착하게 하시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인간은 신의 장난감. 마음대로 다루는 게 뭐가 문제지?]
신의 장난감, 인간.
그래. 이들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이랬지.
애초에 신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런다지만…….
나는 아니었는데.
나는 달랐는데.
언제부터 이들과 완전히 동조하게 된 거지?
[진정한 자신을 파악합니다.]
갑자기 뜨는 메시지.
그 뒤에는 날 지금까지 즐겁게 해 왔던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SP의 가용 한도가 늘어납니다.]
[권능 ‘성장’이 업그레이드됩니다.]
[권능 ‘성장’의 숙련도가 한계에 다다릅니다.]
[권능 ‘성장’의 승격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갑자기 퍼주듯 나오는 보상 메시지.
거기에 중립 신기의 권능마저도 승격시켜 준다고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진정한 자신을 파악했다고 이렇게 보상을 주는 거냐?
아니, 애초에 이게 ‘진정한 자신’이라고?
[권능 ‘성장’을 ‘진화’로 승격시키기 위해, 마지막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반신 ‘김세준’의 영혼을 변형시켜, ‘김지호’에게 충성하도록 하십시오.]
……하.
아버지의 혼을 변형시키라고?
당혹스러웠던 마음이 갑자기 가라앉는다.
[창조주의 위에는 그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영검의 메시지.
창조주.
EX급이 되기 위해선, 아버지의 혼을 바꿔 버리라는 이야기다.
그리스 신들처럼, 맹목적으로.
이 메시지를 보자, 갑자기 머리가 개운해졌다.
“너구나. 너였구나.”
시스템 창을 손에 쥔다.
평소처럼 터치를 하기 위한 게 아니다.
부수기 위해서다.
우드드득.
금이 가는 메시지 창.
부서지기 전, 새로운 글귀가 뜬다.
[무슨 짓입니까.]
“너야말로 무슨 짓이지? 조건으로 아버지를 걸어?”
[저는 사용자의 신기. 사용자의 성장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 조건을 내건 거라고?”
[혈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영혼신. 보다 완전해지십시오. 초월하십시오. 그대의 성장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눈앞의 존재, 김세준입니다. 그를 완전히 충성하게 만드십시오.]
“그러면 보다 완전해질 수는 있겠지.”
콰직.
시스템 창이 깨진다.
“하지만 나는 사라진다.”
[아직도 인간의 자아 타령입니까. 그건 아집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더 위대한 존재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그건 내가 정한다. 이 새끼야.”
네가 아무리 EX급 신기라고 해도.
도구에 불과한데…….
누구 맘대로 그런 월권을 저지르지?
불현듯, 이 자식을 완전히 부숴 버리기 전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너…… SP를 자동으로 충전시켜 주겠다고 할 때부터, 장난을 쳤구나.”
SP를 계좌에서 자동으로 충전시켜 주겠다는 중립 신기 ‘영검’.
그때, 한꺼번에 많은 SP가 들어와 미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
그때부터 의도한 건가.
나에게 한도에 맞춰서 SP를 주겠다고 해 놓고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을 줬구나.
[장난이 아닙니다. 주인을 완전히 만드는 데 필요한 절차였을 뿐입니다. 그 일은 성공하여, 당신의 어설픈 인간성은 마모되었습니다.]
SP의 홍수 속에서, 겨우 자아를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깎여 나갔구나.
[김세준이 마지막 단추입니다. 퀘스트를 시행하십시오.]
금이 간 메시지 창 사이로도 계속 뜨는 글.
이 요구에 내가 내린 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해서 완전해지라고?”
쿵. 쿵.
깨져 가는 시스템 창을 계속 주먹으로 때린다.
전력을 다한 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시스템창이 파편이 되어 흩날린다.
세 개로 나뉜 시스템 창.
“그러느니, 나는 불완전해지겠다.”
[제우스 앞에서.]
[후회할.]
[겁니다.]
삼등분이 된 시스템 창.
각기 그리 메시지를 보내고는 사라진다.
이 새끼. 마지막까지 저주구나.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하고는 아주 끝까지 당당해요.
“……음? 또 뭐야?”
완전히 부숴 버린 시스템 창.
그 위치에 또 하나의 시스템 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 ]
아무 메시지가 없는 시스템 창.
곧 뭐가 뜨겠지 싶었는데…… 계속해서 글이 뜨질 않았다.
이거 설마…… 빈칸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