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8화>
신으로 나아가다 (4)
[나의 땅에 먼저 성은을 내리니.]
그리스에 빛이 사라진다.
시커멓게 변한 세상.
태양과 달의 빛은 물론이거니와, 전기로 발하는 빛마저도 없어져 완전히 깜깜해진다.
“무슨 일이지……?”
“제우스, 제우스다!”
위혼이 들어간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무 조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신의 부름.
여기에 두려움을 떨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
[신체여. 정지하라.]
제우스의 한마디에 사람들의 심장이 멈춘다.
노인이든 젊은이든 예외가 없다.
모두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심장이 정지한다.
“큭…… 이…… 이 힘은……!”
각성자는 달랐다.
그들은 단번에 죽지 않았다.
대신 극심한 통증을 겪었을 뿐.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으아아아악!”
자신의 가슴을 감싸 쥐던 F급 각성자가 먼저 쓰러졌다.
뒤를 이어 E급, D급도…….
등급에 따라 버티는 시간은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죽음에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은 똑같았다.
그리스의 모든 이가 다 죽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분.
C급이 최고로 버틴 게 그 정도였다.
[나에게 들어오라.]
쓰러진 사람들의 혼이 빠져나온다.
그러더니 일제히 하늘 위로 빨려 들어가는 영혼.
그리스의 하늘 위에 있던 뇌전의 소용돌이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저항은…… 불가능한가.”
가짜 혼을 한 번 움직이지 않게 막아서 보려고 했지만, 워낙 흡입력이 막강하다.
게걸스럽게 혼을 삼키는 소용돌이.
가짜 영혼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일단은 아무런 조종도 하지 않고 놔둬 본다.
우걱. 우걱.
혼이 무언가에 씹혀, 그대로 분해됐다.
음식물처럼 소화되어 흡수되기 시작하는 가짜 영혼.
최종적으로는 SP로 나뉘어서, 제우스에게로 들어선다.
[혼돈의 권능, ‘분해分解’에 내성이 생깁니다.]
분해.
이게 네 번째의 권능인가?
영혼을 완전히 조각내어, SP로 만드는 권능.
이건 사실 나도 가능하지만…….
혼돈의 권능은 나보다 더 파괴적이고, 대신 효율적으로 SP를 채취하는 느낌이다.
천만이 넘는 그리스의 인구가 사라지고, 가짜 혼이 먹힌다.
그 과정에서 ‘분해’에 대한 내성도 세 번 정도 더 증가.
대략 400만당 한 번 꼴이군.
그렇게 분해된 가짜 혼은…….
제우스로 추정되는 거대한 ‘무언가’에 들어가 구성 요소가 됐다.
이를 파악하려고 해 보지만…….
“부족하네.”
분해, 흡수 과정이 제대로 되었기 때문일까.
제우스 안에 들어선 가짜 혼만으로는, 그를 파악하기에 부족하다.
더, 더 먹혀야 해.
그래야 제우스를 알 수 있어.
[부족하군.]
부족한 건 그도 같은지, 권능을 확장했다.
그리스의 하늘에 떠 있던 뇌전의 소용돌이는 점차 커져 가고, 그 너머에 있던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크…… 크으윽……!”
그런데 아까와는 뭔가 다르다.
조금 전에는 단번에 심장이 정지했는데, 이번에는 모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픈 것도 심장 쪽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만 데가 다 통증이 나타나, 사람을 미치게 하고 있었다.
[인간의 혼, 너무나도 쓰레기구나. 너희들의 혼을 숙성시켜 주마.]
위혼으로 얻은 SP가 너무 적어서 그런 건가?
단번에 죽이는 대신 고통을 주기로 한 제우스.
“으아…… 살려 줘……!”
“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죽지도 못하고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쇼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인데, 억지로 숨은 끊기질 않고 있었다.
“호오…….”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들.
그들의 몸에 머문 위혼 중, 변화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진성처럼 싹이 나기도 하고, 혼 자체가 살짝 찌그러지거나 울퉁불퉁해진다.
이를 분해하면, 그냥 위혼 때보다 SP가 더 나올 것 같았다.
영혼에 사무칠 정도로 강렬한 고통을 가하면, 혼도 변화하는 건가?
[SP의 가용 한도가 늘어납니다.]
혼의 변형을 봐서 그런지, 또다시 가용 한도가 늘어난다.
생각지도 않은 소득.
이거, 횡재했네.
제우스의 행동을 응원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십여 분 정도 통증이 지속되자…….
[이제 정지하라.]
제우스가 안식을 명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쓰러지는 사람들.
[나에게 들어오라.]
천만의 사람들이 또다시 목숨을 잃는다.
한 번에 천만씩 타깃으로 삼은 건가.
그럼 70억 인구를 없애야 하니 700번은 해야겠군.
가짜 혼이 또다시 그리스의 하늘로 빨려 들어간다.
우걱. 우걱.
똑같은 과정을 통해 분해되는 위혼.
[혼돈의 권능, ‘분해分解’에 내성이 생깁니다.]
이제는 천만이 다 사라질 정도가 되어야 내성이 붙는다.
거대한 ‘무언가’에 퍼지기 시작하는 SP.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크다.
그리스의 하늘에 있는 뇌전 소용돌이 정도는 이에 비하면 작은 쌀알처럼 보이는데?
제우스 영체 크기가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아무리 인간의 혼이 쓰레기라도, 이상하군.]
하늘에서 제우스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
아직 위혼임을 눈치채지는 못한 거 같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숙성을 시켜서 반항은 심해졌는데…… SP가 너무 적구나.]
이런.
혼돈의 권능에 내성이 생긴 게, 위혼에도 적용이 되었던가?
그러면 점차 이상함을 느끼게 될 텐데…….
[김지호! 김지호! 지금 뭐 해? 지구에 제우스가 나타났어! 위치는 그리스. 거기에만 빛이 들어가질 않아!]
나에게 통신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나름 빠르게 통신이 오긴 했는데, 뒷북이구먼.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럼 그냥 지켜보기만 할 거야?]
“일단은 제우스의 전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 아직 실체도 다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아직은 제우스의 영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지켜볼 때다.
하지만 그가 계속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신경을 돌릴 수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너랑 아폴론도 거기 있으면 안 될 테니, 이쪽으로 피난을 와. 다른 사도신도 죄다 불러야겠다.”
일단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을 비롯해, 아스가르드를 돕던 내 사도신들을 모두 피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피난? 어디로?]
“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세계가 있어.”
내가 마련해 두었던 첫 번째 정령계의 영역.
아버지가 조성하신다고 했는데, 영혼 변형에 집중하느라 시간을 보내서 그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일단 그리로 보내야겠어.
지구는 개판이 될 테니까.
[알겠어.]
아르테미스를 비롯한 사도신을 정령계의 영역으로 보낸다.
그러며 제우스의 행동을 분석하고 있자니, 옆에서 봉인석이 반짝거린다.
[영혼신이시여. 혹시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저도 볼 수 있을까요?]
나와 아르테미스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테나.
나에게 정중히 부탁한다.
아테나의 머리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좋아. 뭐 시꺼먼 화면만 보이겠지만, 제우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겠지.”
지구 화면을 열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한다.
[죽음의 권능을 바로 발동하지 못했군요.]
“그래. 원래는 일 분에 천만씩 죽이는 페이스였는데, SP 흡수가 덜 되었다고 저러고 있지.”
[제우스는 교활하고 눈치가 빠릅니다. 금방 지구인들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지도 몰라요.]
“그래…… 녀석이 그러기 전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구에 있던 김지호 분신은 우주를 배회 중인데…….
또 하나의 본체로 들이쳐 봐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녀석의 권능인 ‘분해’나 ‘동화’가 마음에 걸린다.
내 본체가 만약 잡혀서 분해되면 어마어마한 SP를 안겨 주게 될 거 같은데…….
동화도 좀 그렇고 말이야.
완벽한 저항을 얻기 전까지는 본체로 공격하는 게 꺼려져.
“본체는 좀 그러니, 분신으로 견제를 넣어 봐야겠다.”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너무 대응을 하지 않아도 제우스의 경각심을 일깨우게 될 겁니다.]
그럼 일단은 분신부터 보내 볼까.
지구에 있는 본체에서 분신을 생성한다.
그에게 SP를 최대한 안 주기 위해, 분신의 힘은 일회성으로 설정하여 언제든지 자폭이 가능하게 했다.
“가짜 혼의 SP도 좀 보강하고…….”
어디까지나 목적은 제우스가 가짜 혼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분신 수십만을 형성해서, 일부는 가짜 혼의 SP를 보강하고, 일부는 제우스를 공격해 보기로 했다.
“간다.”
SP의 가용 한도가 크게 늘어, 분신 생성도 초고속.
수십만의 김지호가 일제히 들이쳤다.
대한민국에서 그리스까지의 거리를 단번에 주파하는 분신.
금방 목적지에 도착한다.
“저긴가.”
태양이 내리쬐는 세상에, 한 부분만 괴리된 듯 어둠으로 덮여 있다, 그리스가 있었던 땅.
그리고 그 주변이 모두 다 제우스에게 먹힌 상태다.
[호오. 영혼신. 늦었구나.]
지지지직.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흑뢰.
지금까지 보았던 녀석의 힘과는 차원이 다르다.
[분신이라도, 인간 따위보다야 맛있겠지. 나의 먹이가 되어라.]
어둠 속에서, 거대한 번개가 채찍처럼 날아왔다.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저건 막을 수 없다.
“소울 배리어.”
일제히 배리어를 가동하는 분신.
하지만 막으려고 쓰는 게 아니다.
찰나의 시간이라도 벌어, 자폭이라도 하려고 쓰는 거다.
“자폭해라.”
[소용없다.]
싹둑.
찰나의 시간도 벌지 못하고, 단번에 잘리는 배리어.
하나 내 판단이 조금 더 빨랐다.
쾅! 쾅! 쾅!
새하얗게 물드는 화면.
분신을 구성하는 SP를 완전히 폭발시키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다.
빛의 폭발로 인해 살짝 걷힌 어둠.
“뭐야. 저거……?”
흐물거리는 액체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금속 같기도 하고…….
쇳물 같은 게 어둠 안에 들어 있는데, 느낌이 싸하다.
저건 대체…… 뭐야?
[분신의 폭발만으로 이런 힘이라니. 이번에 꼭 죽여 주지.]
금방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
하지만 제우스의 음성에 경계의 색이 보인다.
자폭만으로 어둠이 걷힌 게, 그에겐 경계할 만한 일이었던 건가?
[분신을 계속 보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SP 흡수는 되지 않았으니. 어둠 속의 쇳물이 뭔지 밝혀내야겠어.”
[예. 그리고…… 그의 행보가 너무 느린 것 같습니다. 인간을 대번에 죽일 수도 있을 텐데…….]
“흠…….”
다른 목적이라도 있는 건가.
이 자식.
얌전하게 위혼이나 먹어치울 것이지.
신중하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힘이 더 필요해.”
제우스와 맞부딪쳐 보니 알겠다.
저거, 이 상태론 못 이겨.
파괴의 권능이 듬뿍 담긴 공격을 막을 수가 없다.
“영혼의 발아 과정을 더 지켜봐야 해. 아까 제우스가 했던 것처럼.”
제우스의 고통을 가하는 방법이 나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다.
그렇게 변하는 영혼은 아무래도 각성자들이 많았지.
더, 더 실험을 해서…… 힘을 늘려야 해.
[정령계에 사도신이 모두 도착했어.]
아르테미스의 보고를 보자,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만든 영역으로 이동하자,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빌딩은 여전히 늘어서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현대식의 공원이 드넓게 쭉 깔려 있다.
녹음이 우거진 세상.
엘프리안의 입김이 꽤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정령계를 둘러보다가, 가장 크게 뻗친 나무쪽으로 걸어간다.
하늘 끝까지 뻗은 규모를 보니, 세계수 같은 느낌이네.
“모두 모여 봐.”
사도신들을 불러 모으자, 일제히 신들이 이리로 도착한다.
거기에 아버지와 엘프리안까지.
엘프리안이 아버지한테 자연스레 팔짱을 끼고 아버지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달 동안 사이가 꽤 진척된 거 같네.
“임무를 주겠어.”
“알겠습니다!”
“내가 인간을 선발할 테니, 그들에게 시련을 주도록 해. 시련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알아서 하되, 영혼에 새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워야 해.”
“시련 말씀입니까?”
“그래.”
지구에 있는 각성자들.
그중 고위급들을 다른 세계로 보내고, 거기서 시련을 가해 혼의 발달을 지켜본다.
이진성처럼.
강시아, 이진성은 그냥 자유방임으로 놔뒀지만……
나머지 인간들은 내 사도신으로 죽을 만큼 굴리면서 혼을 발달시켜 봐야겠어.
제우스에게 영감을 받은 것처럼.
그들에게 이런 계획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자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신들.
오히려 나의 힘이 강해진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인간에게 시련을 주는 것도 신의 의무.”
“그로 인해서 주신이 강해진다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아버지와 팔짱을 낀 엘프리안도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군요. 어서 시행하도록 해요. 저도 케브리안에서 물심양면 도울게요.”
모두가 화기애애한 상태로 나의 이야기를 받는다.
“각성자 중 몇몇은 본보기로 죽이는 게 낫겠죠?”
“맞아. 그래야지 공포가 전염되겠지.”
“차별을 두는 것도 좋을 겁니다. 일부에게만 은총을 집중시키는 거죠.”
“좋은 생각이군요.”
예전부터 인간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듯, 거침없이 토론하는 사도신들.
이런 밝은 분위기 속에서, 단 한 명만 얼굴이 굳어 있었다.
“지호야.”
내 말을 묵묵히 듣던 아버지.
점차 표정이 굳어지더니, 엘프리안의 팔짱을 풀고 나에게 다가왔다.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