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7화>
신으로 나아가다 (3)
“색이 변했군.”
색이 변하지 않던 헤파이스토스와 데메테르의 봉인석.
예전과는 달리 완전히 푸르게 변한 상태였다.
두 봉인석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의 봉인석도 모두 푸른빛을 되찾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빠르게 변하다니…….
[그렇게 일이 된 것인가.]
[결국 저희는 영혼신의 포로가 된 거군요.]
봉인석에서 들리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
디오니소스나 아르테미스가 고통을 느꼈던 것과는 달리,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얘네들은 정화 과정에서 별로 통증을 못 느꼈나 보군.
[제우스는 저희를, 올림푸스를 이용하고 버렸습니다. 영혼신에게 협력하여, 그가 승리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이미 깨어난 헤파이스토스와 데메테르를 설득 중인 아테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을 잘하고 있었다.
[형님. 어머님의 행방, 아시는 것 있습니까?]
[글쎄. 너에게 이야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구나.]
아레스의 질문에 냉랭히 답하는 헤파이스토스.
이쪽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군.
이제 잡담은 그만 시키고…….
“헤파이스토스. 데메테르. 나는 영혼신 김지호다.”
두 신에게 말을 걸자, 봉인석 간의 대화가 사라졌다.
[헤파이스토스요.]
[데메테르예요.]
나에게 대답하는 두 신.
긴장은 느껴지지만, 적대적이진 않다.
“지금까지 그대들의 봉인석은 변화하질 않았는데, 어떻게 깨어난 거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조금 기억이 나오. 아버지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채, 불의 권능을 지구에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러기 직전, 나의 속박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소.]
“호오.”
[그러더니 어느덧 정신을 차리니 여기에 있더군.]
[저는 그런 걸 느낄 겨를도 없었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더군요.]
“그럼 지구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 건가?”
[그런 것 같소.]
[저도 권능이 사용되지 않았어요.]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지구를 둘러봤다.
두 신의 새로운 권능이 발현되기는커녕, 디오니소스나 아프로디테의 권능마저도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있는 지구.
네 신의 권능, 확실히 약해졌어.
아니,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이건…….
[영혼신이시여. 더욱 강해지셨군요.]
아테나의 말에 깨달았다.
영혼의 발아 과정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발전한 내 힘이 상상 이상이라고.
그로 인해 봉인석의 정화도 순식간에 진행되었다고.
“너희들은 제우스에 대한 정보가 없나? 쓸 만한 정보가 있으면 SP로 보답하지.”
[영혼신의 보답은 굉장합니다. 제 작은 정보에도 SP를 어마어마하게 주셨죠.]
옆에서 바람을 넣기 시작하는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처럼 제우스에게 협력하는 상황이었으면 모를까.
[제우스는 이제 더 이상 신용할 수가 없소.]
[저도 그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지긋지긋해요.]
두 신도 쌓인 게 많은 건지, 나에게 제우스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알려 주었다.
하지만 막상 두 신이 알고 있는 정보는 별것이 없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거나, 현 상황과는 쓸모없는 내용 뿐.
이럼 이건 되었고…….
“그래…… 제우스에 관한 내용은 그다지 눈여겨볼 게 없군. 헤파이스토스. 헤라에 대한 정보는 없는가?”
[……어머님은 왜 궁금한 것이오?]
“그녀의 봉인석만 없는데다가, 아까 아레스랑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는 게 있어 보여서.”
[어머님에 관해서는 대답할 수 없소.]
모른다고는 안 하는 헤파이스토스.
하지만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왜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네. 그녀도 제우스에게 좋은 취급을 받진 않을 거 아니야.”
[나도 아오. 하지만, 말하지 않기로 서약했으니까 할 수 없을 뿐이요.]
“시스템으로 서약한 건가? 페널티만큼 내가 SP를 주도록 하지.”
[서약에 내 존재가 걸려 있소…… 내가 죽는다면 SP가 의미 없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고 헤라에 대해 언급했는데, 수상한 태도를 취하는 헤파이스토스.
이렇게 나오니까 더 뭔가 있어 보이잖아.
알아내고 싶은데, 태도가 완강한 헤파이스토스.
후. 그냥 고문할까?
봉인석에 제우스의 흔적이 사라지긴 했지만, 고문을 가할 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봉인석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봉인석에 갇혀 있는 대신의 영체.
이거…….
뭔가 주무를 수 있을 것 같다.
‘변형’이 가능해 보여.
휙.
헤파이스토스의 봉인석 안에 손을 넣는다.
그의 영체를 잡아, 손가락을 헤집어 봤다.
[뭐…… 뭐 하는 것이오? 크으윽……!]
그러자 바로 고통을 호소하는 헤파이스토스.
“미안. 미안.”
건성으로 사과하며, 그의 영체를 만져 내가 어디까지 가능하나 알아봤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무리 영혼신이라지만, 대신의 영체는 신 중에서도 극에 다다른 영체라 변형이 불가능했다.
가능한 변형이라곤 파괴나, SP를 더해서 회복시켜 주는 것에 불과했지.
한데 지금은 다르다.
예전에는 가공이 불가능한 다이아몬드였다면, 지금은 조각이 가능한 대리석이 된 느낌.
다만 완전히 변형시키기에는, 내 힘이 아직 부족한 느낌이었다.
대리석을 조각할 힘과 연장이 딸려…….
[저…… 정신을 헤집지 마시오. 뭘 하는 거요. 컥!]
“아. 이거 참…… 내가 처음이라 서투네.”
[그럼 당장 그만두시오!]
“좀만 참아 봐. 금방 능숙하게 할 테니까.”
헤파이스토스의 영체를 열심히 헤집지만, 저항이 거세다.
이거 참, 좀 더 힘을 얻게 되면 금방 끝낼 텐데 말이야.
“릴렉스 하고 있어 봐.”
[으…… 대신의 영체를 흔들다니……! 그만, 그만하라!]
“그냥 기억만 싹 봐 볼게.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니 서약에 위배되지도 않겠지.”
[크으윽…… 이…… 이놈!]
고통이 심해졌는지,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하는 헤파이스토스.
무시하고 계속 일을 진행하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흠…… 아래 등급부터 해 볼까.”
너무 처음부터 대신의 영체를 바꾸려고 한 거 같아.
올림푸스에서 탈취한 하급, 중급신들의 봉인석을 꺼내서 영체 변형을 시도해 본다.
처음은 하급신부터.
“이건 쉽네.”
봉인석에서 하급신의 영체를 주무르자 바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바뀌어 간다.
흑뢰에 물들어, 제우스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하던 올림푸스의 하급신들.
영체를 주물러서 충성의 대상을 나로 바꾼다.
[김지호 님께 충성을!]
그들 안에서 제우스가 나로 바뀌며, 맹목적인 충성을 외친다.
이거 참…….
하급신은 쉬운데?
[혼돈의 권능, ‘동화同化’에 대해 내성이 생깁니다.]
[‘동화同化’에 저항하는 힘을 가집니다.]
거기에 뜻밖의 부수입까지 들어왔다.
이거 처음에는 조금만 바꾸고 말 생각이었는데…….
싹 다 해야겠네.
[영혼신이시여. 지금 무엇을…….]
“아. 헤파이스토스는 아무래도 대신이라 바꾸기가 힘들어서. 하급신부터 시작하려고.”
[신을…… 저렇게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어. 쉽던데.”
[어떻게 신의 영체를 저렇게…… 독존이 가능한 신을…….]
그러며 말이 없어지는 아테나.
나머지 대신들도 침묵을 지킨 채, 내가 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다.
“동시에 해도 되겠네.”
하급신의 봉인석을 꺼내 죄다 제우스의 색을 빼고 나를 그 위에 칠한다.
처음에는 능숙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최대 백 이상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영혼신께 충성을!]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모두 충성을 다짐하는 하급신 무리.
몇몇은 스스로 영체를 붕괴하여, 자신을 SP화 하려고 하고 있었다.
제우스의 흑뢰에 물들게 되면, 신도 스스로를 불태워 자원이 되는 건가?
“소멸하지는 말고.”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자살하려는 하급신은 막아선 채, 차곡차곡 제우스의 색을 뺀다.
하급신의 봉인석 정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좀 요령이 생긴 것 같았다.
동화의 내성도 두 번 정도 더 메시지가 떠서, 속도가 더욱 붙은 상태.
“다음은 중급신인데…….”
이건 확실히 하급신과 비교할 바가 아니네.
난이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나는…… 제우스께 끝까지 충성을……!]
흑뢰의 동화는 뺐지만, 그럼에도 극심하게 저항하는 중급신.
그래도 헤파이스토스처럼 수정 불가능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나하나 집중해 본다.
[으으…… 대체…… 대체 무슨 짓을……!]
“그만 반항해라.”
헤파이스토스처럼 반항하지만, 하급신들을 주물러 보니 이제 요령이 생겼다.
거기에 대신이 대리석이라면, 이 녀석들은 고무 찰흙이나 다름없는 상태.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하데스의 죽음의 권능이 발동되기 전, 폭풍전야의 시기.
남은 시간 동안 여기에 온 힘을 쏟는다.
어차피 혼돈의 권능에 내성도 길러질 테니까…….
[으…… 으으윽…….]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중급신의 영체도 하나둘씩, 꺾이기 시작한다.
[김지호 님께 충성을!]
“그래 그래.”
[제 영혼을 다 바쳐, 주군의 힘이 되겠습니다!]
“야. 소멸하지는 마라.”
중급신이 하나둘 씩 내 편으로 전향한다.
사도신보다도 더 충성스럽고, 나를 위해서라면 소멸도 불사할 중급신 무리.
[혼돈의 권능, ‘동화同化’에 대해 내성이 생깁니다.]
[‘동화同化’에 저항하는 힘을 가집니다.]
[한 번 더 내성을 획득할 경우, ‘동화同化’에 완벽히 저항합니다.]
동화의 내성도 계속 얻다 보니, 한 번만 더 얻으면 완벽히 저항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중급신까지 저렇게 변화하다니…… 이러면 곧 대신도…….]
[저희도, 저렇게 바꾸실 겁니까?]
중급신까지 변형하는 걸 보자 올림푸스의 대신이 예전보다 더 정중해진다.
아니, 정중하기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모습.
신마저도 뒤바꾸는 걸 보았으니 오죽할까.
“나에게 적대하지만 않으면, 건들지 않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안심시켜 줬지만, 그래도 내 말을 다 믿지는 않는 올림푸스의 대신.
뭐, 사실 나도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그들 대신에게도 시도할지도 모르니.
저들이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디오니소스와 헤파이스토스. 둘은 다르지만.”
[…….]
[나…… 나? 나는 또 왜…… 여기서 더 뭘 가할 참이냐!]
하도 나에게 시달려 말이 없는 헤파이스토스에 비해, 디오니소스는 아직 말할 힘이 남아 있었나 보다.
녀석, 봉인석이 정화되고 나니 고통이 부족했나 보군.
“넌 제우스랑 협력하는 입장이었잖아. 그 충성의 대상을 나로 바꿔야지.”
[아, 이제 아니야. 이제 아니야! 너에게 충성한다!]
“충성하는 놈이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아닌 거 다 알아. 원래는 헤파이스토스 하나 조절하기도 힘들었는데, 이젠 힘이 남아서…… 네가 다른 대신들을 대신해 줘야겠어.”
[크…… 크아아악!]
두 대신과 함께, 남은 중급신들을 변형한다.
중급신과는 달리 확실히 영혼 보호가 단단한 대신.
아무리 두들기고 두들겨도, 고통만 호소할 뿐 쉬이 바뀌지를 않는다.
[충성합니다! 충성합니다!]
고통을 도저히 못이긴 디오니소스가 그리 말하지만, 영체가 변형되지 않았음을 안다.
“구라 치면 아예 싹 다 바꿔 버린다.”
[거짓말 아닙니다. 진짜. 진심으로 충성합니다!]
필사적으로 느껴지는 호소.
영체를 뒤바꾸는 고통에 굴복하여 정말 마음이 바뀐 건가?
하지만 그의 충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
“영체 변형이 안 되었는데, 무슨. 반항하지 말고 있어.”
[반항하지 않아요…… 제발. 제발 변형할 거면 빨리 해 주세요…….]
“거 참. 네가 만든 술이라도 먹고 있어 봐.”
[먹어도 깨고, 또 깹니다…… 미쳐 버리겠어요!]
흐느끼는 디오니소스.
헤파이스토스는 계속되는 고통에 넋이 나갔는지 며칠 전부터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다.
거참…….
“빨리 끝내 줄게.”
[으…… 으으…….]
시간이 다시 흐른다.
디오니소스에게 빨리 끝내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속도는 더디기 그지없다.
이제 중급신을 변형한다고 해서, SP 한도가 느는 것도 아니고 내성을 획득하지도 못했다.
게임으로 치면, 몬스터가 너무 약해서 경험치가 안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상황.
“하. 한 단계만 더 올라서면 될 것 같은데…….”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
이진성과 강시아의 영혼 발아를 지켜보면 더 성장할까 했지만, 지구 시간으로는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난 상황.
30일의 시간으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주에도 별것 찾지 못했고…….”
우주로 나간 80만 김지호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애초에 태양계 전체를 탐색하기에 80만은 너무 작은 숫자였지만.
그래도 뭐 건질 게 하나도 없네.
“힘이 필요하다.”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지만, 아직 부족하다.
준비가 더 필요한데……!
[인류여.]
갑자기 지구에 파견된 이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이 목소리, 제우스다.
“녀석…… 이제 시작인가?”
지구의 인간에게 새겨져 있는 70억의 가짜 혼.
그들 모두가 신의 음성 정보를 보내왔다.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음성 정보.
치매를 앓는 노인도, 귀머거리도, 갓난아기도, 중환자실의 환자도.
하나도 예외 없이 이 신의 음성을 알려 온다.
[오래 기다렸구나. 이제 진정한 신의 품으로 들어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