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6화>
신으로 나아가다 (2)
[혼의 자연 발생을 목격했습니다.]
[혼의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현 의식 상태에서 사용 가능한 SP의 한도가 증가합니다.]
혼의 자연발생이라고……?
가짜 혼의 가장자리에서 싹이 튼 영혼을 살펴본다.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나다.]
혼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존 욕구.
육체만 남은 껍데기로 판명받고, 곧 죽을 거라고 들은 탓일까.
가짜 혼에서 파생된 새로운 영혼은 오로지 살기 위한 일념만이 남아 있었다.
태초에는 영혼이 먼저가 아니라, 생명체가 먼저였나……?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여 고등 생물이 되듯이, 혼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생성하고 발전한 건가.
그래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모두 혼이 생기진 않을 텐데…….
육체가 B급 각성자 수준이었고, 가짜 혼임을 알고 있어서 생긴 건가.
“야. 왜 멍 때려?”
궁금하다.
이 영혼의 싹.
잘 관찰하면, 혼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질 것 같다.
그럼 사용 가능한 SP 한도도 늘어나겠지.
이 발아된 싹…… 실험하고 싶다.
SP의 한도 때문만이 아니라, 영혼신으로서 혼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진성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금 전 나와 이야기했던 건 확실하게 잊어 버린 모습.
그래도 강렬한 생존 욕구는 남아 있어, 새로이 혼을 발아한 건가.
이 녀석이 의지력이 강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도 다 그런 건지.
더 알아보고 싶다.
“미안하다.”
“뭐가?”
“이진성. 잠깐 자고 있어라.”
풀썩.
말에 힘을 담아 명했다.
신언神言에 저항하지 못하고 책상에 엎어지는 이진성.
녀석에게 다가가 손을 뻗는다.
그러자 둥둥 뜨는 이진성의 육체.
가볍게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자신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게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이진성.
입도 헤 벌려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모습 그대로다.
“……녀석의 진짜 혼은 나에게 있으니, 약간의 실험 정도는 괜찮겠지.”
잠깐 거북한 것도 잠시.
금방 마음이 평온해졌다.
한때 나랑 같은 인간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진성의 육체를 보고도 죄책감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인간이 생쥐 실험을 하는 느낌일까.
내 죽마고우인 이진성도 혼은 내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으니까…….
육체야 다시 만들어 주면 되는 거고.
혼의 발생이나 좀 더 실험해 보자고.
그전에…….
일 하나만 처리하고.
“꺅!”
“CCTV로 숨어서 보고 있다니. 그러면 안 되지.”
다른 방으로 공간 이동을 한다.
위치는 이 건물의 최상층.
어두컴컴한 공간에, 수십 개의 모니터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앉아 있는 강시아.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여긴 어떻게……?”
“지금 인류는 다 나의 가짜 영혼으로 뒤바뀐 상태. 혼에 이상이 생기면, 알아챌 수 있지. 당신도…… 신기하게 변했어.”
이진성만큼 싹이 발아한 건 아니지만, 가짜 혼이 살짝 변형된 강시아.
영상을 지켜본 건가?
“으, 으으…….”
몸을 벌벌 떨면서 뒤로 물러나는 강시아.
나를 보는 눈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진성 방에 왜 CCTV가 있었던 거지?”
“……혹시 다른 길드에서 접촉할까 봐, 그랬죠.”
이진성이 지금 제일 잘나가는 헌터라서 그런가?
이 여자, 그렇게는 안 봤는데…… 속이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네.
“그것보다 지호 님. 아까 하신 말씀이 진짜인가요?”
“뭐가?”
“저희 인류의 혼이 다 가짜라고…….”
“어. 맞어.”
“하데스에게, 모두 죽는다고…….”
“그래. 그러니까 미리 혼을 대피시켰지. 다시 살리기 위해서. 다른 신들은 왜 그런 낭비를 하냐고 했지만. SP가 좀 많이 들기는 했지.”
그 말을 듣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강시아.
그녀의 위혼이 조금씩 변형되기 시작한다.
“그럼 제가 가짜…… 라는 건가요? 기억이 이렇게 온전한데? 혼이 나도 모르게 뒤바뀌었으니 가짜인가요?”
“흠, 뭐 육신은 바뀌지 않았어. 인간이 맞아. 뇌도 그대로니 기억도 그대로고. 하지만 어차피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니까. 영혼신인 내 눈에는 그냥 가짜로 보여.”
“영혼으로서는…… 가짜…….”
부들부들 몸을 떠는 강시아.
그와 함께 위혼의 꿈틀거림이 커진다.
오호라.
“참 신기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말해 봐.”
신언으로 명한다.
그러자 강시아가 날 노려보면서, 입을 연다.
“절망적이에요. 무서워요. 갑자기 죽는다니. 제가 가짜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원망스러워요. 나는 난데…… 왜? 왜 내가 가짜지? 당신이 두려워요. 아무런 전조없이 혼을 바꾸고, 사람을 마음대로 다뤄요. 우리를 장난감처럼…… 나는 살고 싶어요. 가족들 모두랑 다.”
“나도 막을 수 있으면 막았겠지. 하지만 하데스의 권능은 막지 못해. 인류 모두가 그대로 죽느니, 혼이라도 살려 두는 거야.”
내 말에 더 눈을 부릅뜨는 강시아.
나를 노려보는 시선이 더욱 강렬해진다.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겠죠. 인류를 보존해 준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일 수 있겠죠. 어차피 제가 죽어도 제 진짜 혼이 남았으면 다시 재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저는 죽는 거잖아요? 이 육체는 사라지는 거잖아요. 제 뇌도 행동을 멈추는 거잖아요. 거기에…….”
갑자기 자신의 입가를 쭉 올리는 강시아.
분노한 표정에 입가만 쓱 올라가니, 이쁜 얼굴도 기괴한 모습이 된다.
“당신은…… 왜 웃고 있죠? 한때 인간이었던 거 맞아요?”
“흠. 내가 웃었나?”
입가에 손을 가져간다.
나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었나 보다.
“이거 미안하군. 네가 원망을 토해 내면서, 가짜 혼에서 미약한 싹이 트는 걸 본 바람에 말이야.”
[혼의 발아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영혼신의 자극으로 인해, 오랜 진화 과정으로 인해 발생해야 할 혼이 생성되었습니다. 혼의 원리를 심층적으로 깨닫습니다.]
[사용 가능한 SP의 한도가 증가합니다.]
‘신언’으로 명령해서 거침없이 토해 내는 강시아의 본심은…….
사실 뭐, 마음에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가짜 혼’이 있는 이상, 그녀의 말은 그냥 인형이 하는 말, 짐승의 울음소리에 불과한 느낌이다.
정말, 나…….
인간의 느낌이랑은 멀어졌군.
“지금 본 사실, 누가 더 알고 있지?”
“저밖에 없어요. 사람들에게 알려 봤자…… 저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없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거야.”
“그럼 저도 진성 님처럼 기억을 다 없앨 생각인가요?”
흠.
사실 기억을 되돌려, 혼이 어디까지 발달하나 관찰할 생각이었지만…….
한번 고르게 해 볼까?
“그럼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선택지요?”
“기억을 없애고 이대로 사느냐. 아니면, 이 기억을 지니고 나의 실험에 참가하던가.”
“실험……?”
“응. 네 가짜 혼에서 특이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거든. 살고 싶다, 나로서 살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져.”
“그래서요?”
“이 기억을 가진 채 살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 봐. 그렇게 해서 네 혼이 유의미하게 발달하면, 넌 살려 주지. 육체를 그대로 보존하게 해 줄게.”
“살려 준…… 다고요? 그럼 제 진짜 혼은요?”
“그때 되면 강시아의 혼이 두 개인 셈이지. 진짜 혼 쪽에는 육체를 하나 더 만들어 주면 될 뿐. 가족 관계는 적당히 쌍둥이로 설정하게 해 주지.”
내 말에 이를 악물면서 생각에 잠기는 강시아.
기억을 잊어버린 채 그냥 돌연사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살면서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그녀의 선택은 후자였다.
“살아 보겠어요. 어떻게든!”
“그래. 그럼 나야 좋지. 미리 말해 두지만, 허튼 생각은 하지 말고.”
“……하. 인간에게 알려져 봤자. 당신에겐 별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영혼도 뒤바꾸는 신이신데.”
“그런 소동이 나면 제우스도 이상한 점을 눈치챌지 모르니까. 거기에 뒷수습이 귀찮거든.”
“귀찮다…… 저희는 당신에게 그런 존재로군요.”
“혼이 없는 인간은 나에게 인형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내 말에 이를 악무는 강시아.
내 말에 기분이 나빠 보인다.
하지만 진짜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걸 어째.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는 것도…… 인형이 혼을 생성하는 과정이 나에겐 너무 신기해서 그랬다.
“알겠어요. 혹시 제 가족도 생존시켜 줄 수 있나요?”
“혼의 발전 상황을 봐서 고려하도록 하지. 일단은 확답은 못하겠네.”
가족의 생명까지 달려 있다면, 강시아의 생존 욕구가 더 올라가겠지.
혼의 발달도 의무감에 더 빨라질지도 모르니…….
작은 희망 정도는 줘도 되겠지.
“좋아요. 이진성 님은 어쩌실 생각이죠?”
“이 친구는 다른 환경에서 관찰할 생각이야.”
“하. 완전히 실험용 생쥐 취급이군요. 알겠어요.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휙 돌아서는 강시아.
완전히 반항적인 모습이다.
뭐, 저렇게 반항심이 있어야 생존 욕구도 더 들겠고, 혼도 발전하겠지?
“한 명이 감시하고.”
분신 하나를 투명하게 해서, 강시아의 옆을 밀착 감시한다.
그리고 이제 일을 잃은 80만으로 불어난 영혼들은…….
“우주 정찰을 보내자.”
크툴루가 우주에 뭐가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었지.
태양계 안을 뒤져 보면 되나?
분신 80만 가지고는 이 드넓은 우주를 다 살펴보기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해 볼때까지는 해 봐야지.
“빛으로 변해라.”
분신이 모조리 빛이 되어 하늘을 꿰뚫는다.
우주로 뻗어 가는 80만의 김지호.
사용 가능한 SP가 늘었기 때문일까?
80만 분신의 힘이 더욱 강해져서, 모두가 소울 배리어를 켜고 우주를 둘러보는데도 별로 무리가 가지 않았다.
이거, 영혼의 발아를 관찰한 게 성장에 꽤 도움이 된 거 같은데…….
대기권을 돌파하는 80만 김지호의 감각을 느끼는 데, 별 무리가 없다.
아니, 한 50만은 더 추가해도 될 거 같아.
영혼의 발아를 보았다고 이 정도로 성장하다니…….
이 실험, 시행할 만한데.
“이진성은 다른 환경에서 실험해 보자.”
강시아에게 생존 의지를 북돋으라고 했지만, 잘 나가는 길드장이자 재벌가 소속인 그녀가 딱히 목숨 위험할 일이 없지.
이진성은 육체도 좀 고달픈 쪽으로 밀어 볼까?
“케브리안에 두면 되겠군.”
엘프리안의 영역은 지금껏 살 만했지만, 하데스 소속 언데드가 통제를 잃고 발광하는 상황.
그곳에 떨어지면 진짜 목숨이 위험할 테니, 생존 욕구가 더 오르지 않겠어?
분신 하나를 파견해 지켜보면서, 녀석의 혼의 성장을 관찰해야겠어.
“헤임달의 귀환.”
이진성을 들쳐 메고 엘프리안의 은신처로 귀환을 사용했다.
“일어나라.”
그러자 눈을 서서히 뜨기 시작하는 이진성.
“여…… 여긴 어디야?”
“내가 지운 기억, 다시 떠올려라.”
“뭐? 으…… 으읏?”
머리를 부여잡는 이진성.
녀석을 데리고, 은신처에 나와 지상으로 올라간다.
“너,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기억나면서 왜 이래.”
“대체 무슨 생각이지? 기억을 지웠다가…… 다시 되돌렸다가…… 이 숲은 뭐야?”
“네가 보여 준 변화, 아주 인상 깊었어.”
“……무슨 소리야?”
영혼의 발아와 강시아와의 일을 이야기해 주자 대번에 표정을 찌푸리는 이진성.
“내 방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길드장이 대체 왜…….”
“다른 길드에 스카웃이 갈까 봐 그랬다는데.”
“아니, 내가 뭘 다른 길드를 간다고…… 미쳤나, 진짜.”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너, 살고 싶지 않냐?”
“무슨 말이지?”
내 질문에 의문을 표하는 이진성.
그에게 제안한다.
“여기서 생존해서 네 혼을 키워 봐. 가짜 혼 대신 독립적인 영혼을 만들게 되면, 계속 살게 해 주지.”
“여기서 살라고?”
“그래. 거기에 네가 영혼을 독립적으로 생성하게 되면, 그때는 각성자로서의 성장도 가능할 거야. 그럼 그때 전폭적으로 SP를 밀어 줘서, 신의 경지도 노릴 수 있게 해 주지.”
이 동네에서 생존만 추구한다면, 영혼의 성장이 정체될 수도 있어.
이 녀석, B급 각성자의 육체를 지니고 있으니…… 적에게서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거든.
“여기는 엘프 신의 영역. 평화로운 땅이지만,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혼돈의 군주가 요즘 미쳐서 언데드들도 난동을 부리고 있지. 그들과 싸우면서, 혼을 성장시켜봐.”
“너 대체 뭔 짓을…… 설마 나 가지고 실험하는 거냐?”
“실험이라. 성장을 위한 무대를 마련해 준다고 생각해.”
“그게 그 소리지, 이 자식……!”
“그럼, 이대로 기억 잃고 지구로 가서 죽을래?”
내 말에 입을 다무는 이진성.
“네가 보여 준 변화가 없었으면, 이런 기회를 주지도 않아. 여기서 성장해. 그래서 가짜 혼을 밀어내고 이진성이 되도록 해. 그럼 불사의 존재, 신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지.”
“……아니면 죽거나?”
“어. 어차피 너는 나에게 인형에 불과하거든. 지금은.”
으드드득.
이를 가는 이진성.
“너와 나는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로 생각했는데,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구나.”
“나랑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진성은 내가 영혼석에 잘 모셔 두고 있어. 너는 그저 육신에 불과하지. 인형으로 보이기 싫으면, 네 혼을 잘 키워 봐.”
“……아까의 약속, 맹세해라.”
“얼마든지 하지.”
녀석, 의욕이 생겼구나.
영혼의 싹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가 되는군.
더 많은 인간들을 이렇게 투입해 볼까?
실험 표본은 많을수록 좋을 텐데.
“너…….”
이진성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내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했고,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런. 이렇게 기뻐하는 얼굴이었나?
-헤파이스토스가 깨어났다. 데메테르도.
또 다른 내가 그리 알려 온다.
그리로 집중을 해야겠군.
“그럼, 가 보마.”
녀석에게 손을 흔들고, 정령계로 의식을 이동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득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