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4화>
대이주 (4)
“시작할까.”
위혼으로 인해서 제우스 측에 들킬 염려가 사라졌다.
이제 빠르게 영혼을 바꿔치기하고, 대이주 준비를 해야지.
작정하고 분신을 대거 뽑아서, 전 인류의 혼을 추출해야겠어.
거기에 우주 어딘가에 위혼 관련해서 뭐가 있는 거 같으니…….
분신이 더, 더 필요하다.
우주 정찰도 겸해야 하니까.
그러려면 이 집 말고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아. 그래.
내 신전이면 그 정도 크기가 되겠지?
“이동.”
신전으로 본체를 이동시켰다.
아르테미스가 관여를 해서 그런지, 빌딩은 빌딩인데 그리스 신전 풍의 느낌이 진하게 나는 내 신전.
위에는 커다란 초승달 조형물까지 달려서, 어째 내 신전이 아니라 아르테미스 신전 같았다.
거기에 달 옆에는 태양 조형물까지 추가된 모습.
아폴론, 이 자식은 일은 안하고 저런 거나 추가했나?
영체 상태로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층이 나눠지지 않은 건물 안.
거대한 공동 같은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장에 표정을 찌푸리며 둥둥 떠 있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제외하고는.
“어…… 영혼신? 무슨 일이지?”
나를 발견한 아폴론이 내려왔다.
눈을 감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던 아르테미스도, 그의 뒤를 따라서 천장에서 훅 떨어졌다.
“마침 이상한 일이 있어서 보고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무슨 일?”
“아프로디테의 힘이 갑자기 확 약해졌어.”
“아, 그거는…….”
나는 올림푸스를 다 털어서 봉인석을 들고 정화 중임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둘.
“올림푸스를 다 털어 버렸어?”
“그래도 신이 많았을 텐데…… 하긴, 영혼신 정도의 힘이면 막을 수 없었겠지.”
“그러면 이제 재앙이 생기지는 않는 거야?”
“아니, 그렇진 않아. 하데스가 남아 있지.”
“하데스? 하데스 숙부는 혼돈 편이잖아.”
“제우스가 혼돈 쪽 힘을 빌린 거 같거든. EX급이 까라면 까야지.”
“허…… 혼돈과 결탁하다니…….”
내 말을 듣자 표정이 일그러지는 아폴론.
“하데스의 권능이 발동한다면, 그냥 사망인데.”
“흠…… 그러기 전에, 인간의 혼을 모두 흡수하는 게 어때? 제우스에게 들어가면 골치가 아파질걸.”
“아르테미스 말이 맞아. 영혼신이 인간을 모두 SP로 흡수하고, 새로이 세계를 창조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인간의 혼을 모두 흡수하자는 아르테미스.
역시 대신들 생각은 다 똑같은가?
다들 그냥 인간은 죽이고 새로 시작하자고 하네.
확실히 이게 ‘효율적’이기는 하지…….
“아니, 인간들 다 데리고 갈거야. 영혼석으로.”
“음…… 왜 굳이?”
“나에겐 이 세계, 이 사회가 필요하거든. 김지호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에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폴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자아에 비해, 너무 힘이 빨리 커졌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인류가 필요한 건가?”
“그래. 현 인류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지. 하나 그러면 나 김지호도 돌아갈 곳이 사라진다. 영혼신으로만 남고, 영혼신 ‘김지호’는 사라질 거야.”
“그래도, 인간을 SP로 회수하는 거랑, 영혼석에 봉인하는 건 엄청나게 번거로울 텐데?”
“그래서 여기로 왔지. 분신 소환.”
신전 안에서 본격적으로 분신을 소환한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내 모습을 한 영체가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만들어진다.
“아니…… 이거 다 분신이야?”
“이 정도 숫자면, 일만은 될 거 같은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는 두 대신.
하나 이에 나는 대꾸를 할 수 없었다.
한 번에 일만씩 튀어나오니, 본체에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
일만이 같은 공간에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하니…….
분신은 본체에 비해 원래 크게 영향을 안 받는데, 숫자가 이 정도가 되니 느낌이 다르다.
“지구 전역으로 퍼져. 인간의 혼을 회수해. 한국을 중심으로 외곽부터 가자.”
“알았다.”
일만의 김지호가 일제히 대답을 하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러자 어마어마하게 소모되는 SP.
이렇게 김지호 군단을 10번 정도 소환하자, SP가 다 떨어졌다는 메시지가 떴다.
[SP가 고갈되었습니다.]
“계좌랑 연동해서, 자동으로 SP를 인출해.”
[앞으로 SP가 부족할 시, 계좌에서 자동으로 인출합니다.]
좋아. 되는군.
금방 차는 SP.
이를 바탕으로 또다시 김지호를 찍어 냈다.
십만이 넘는 분신의 감각이 들어온다.
아…….
이거 스케일이 너무 큰데.
분신은 어디에나 있다.
경복궁, 만리장성, 에펠탑, 타지마할…….
인류의 유구한 유산이 동시에 포착된다.
10만이 넘는 시각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니, 이거 감당이 안 된다.
이거…… 좀 꺼야겠는데.
너무 많이 만들었나?
[사용자의 ‘의식’이 크게 성장합니다.]
[더 많은 SP를 다룰 수 있습니다.]
[감각 정보를 계속 받아들인다면, 의식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걸 끄려고 하니까 마침 나타나는 메시지.
영검이 보낸 거군.
나보고 의식 수준을 올릴 거면, 이 정도는 감당하라고 권유하고 있었다.
이러면…….
견딜 수밖에 없잖아.
어차피 제우스 상대하려면 가용 SP를 올려야 하니까.
SP에 잡아먹히느니, 이렇게 올리는 게 나아.
[사용자의 ‘의식’이 크게 성장합니다.]
[사용자의 ‘의식’이 크게 성장합니다.]
십만이 이십만이 되고, 오십만이 되자 성장 메시지가 계속해서 떴다.
물론 이에 비례해서 나는 미칠 지경.
전 지구에 배치된 분신이 동시에 느끼는 감각이 내 의식을 혼미하게 했다.
그래도…… 어떻게 견뎌지는 게 신기하다.
대신은 대신인가.
수십만의 감각이 동시에 들어오니, 더 견디기가 힘들 거 같았는데…….
어찌어찌 가능하다.
이 막대한 정보를 처리하면 처리할수록, 뭔가 능숙해지는 거 같아.
이렇게 성장할 줄 알았으면, 진작 해 볼 걸 그랬네.
[SP가 고갈되었습니다. 계좌에서 자동으로 SP를 인출합니다.]
[SP 가용 한도가 올랐습니다. 계좌에서 SP를 더 인출하시겠습니까? 현재 상태라면, 50조까지 가능합니다.]
수십만의 김지호가 활동하기 시작하자,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SP.
SP를 자동 보충하려고 하자 가용 SP가 50조까지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거, 이렇게 빠르게 성장이 가능한 건가?
50조를 소유하면, 10조 때보다 산술적으로 5배의 힘을 낼 수 있는 상황.
과연 그렇게까지 성장하나 궁금해서, 50조를 인출해 보았다.
“크으으윽…… 야이. 씨…… 50조 이거…….”
짓눌린다.
‘김지호’가 너무 작아진 느낌.
평소의 5배에 달하는 SP에 내가 좁쌀만 한 존재로 느껴졌다.
개미가 코끼리를 조종하는 격.
거기에 80만 김지호 대군이 정보를 보내 오니 아주 이중으로 내 존재가 옅어진다.
“으…… 망할. 거기에 분신까지 5배 성장했네.”
일반 대신보다 강력한 내 분신.
SP가 50조가 되니, 안 그래도 센 분신이 5배 강해진다.
들어오는 감각 정보도 5배로 증폭되니,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볼륨을 5배로 올려 버린 느낌.
정신이 정말 혼미해진다.
영검 이 자식…….
뭐? 50조까지 가능해?
그대로 내가 묻힐 거 같구먼.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해야 성장합니다. 이것도 견디지 못하면 혼돈의 지원을 받는 제우스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나를 자극하는 영검의 메시지.
정신을 차리라는 건가.
점차 멘트가 도발적으로 변한다.
[이것도 못 버팁니까? 겨우 이 정도 수준인데, 근데 뭐 이렇게 자아를 지킨다고 뻐팅겼답니까?]
[애초에 인간의 의식 수준으로 있겠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이것도 못 버틸 거면 그냥 포기하십시오. SP에 영체를 맡기세요. 그럼 진정한 영혼신이 되어 제우스를 단번에 쓸어 버릴 겁니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네. 이럴 거면 그냥 SP 계좌에서 더 빼요. 5000조쯤 빼죠. 어때요? 예 누르면 편해집니다.]
진짜 5000조를 인출하시겠습니까? ……라고 뜨는 메시지 창.
이 자식이 진짜…….
이쯤 되니까 날 빡치게 해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진짜 영혼신으로 만들라고 그러는 건지 구별이 안 된다.
“김지호. 이제 분신 소환 안 해?”
옆에서 들리는 아르테미스의 목소리.
“아. 너무 많이 소환해서…… 지금 정보에 묻힐 거 같다.”
“어쩐지…… 너무 많이 뽑아내더군. 아르테미스. 녀석 영체 좀 여기저기 만져 봐.”
“어…… 왜?”
“본체의 감각이 가장 최우선이어야지. 자극적으로 만져 줘. 이곳저곳.”
그러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아폴론.
내 영체 여기저기를 거칠게 매만진다.
얼굴과 가슴, 나중에는 아래까지 손이 가려는 아폴론.
아, 이 미친 또라이 같은 놈이!
“아…… 이 미친 새끼가!”
양손을 움직여 녀석의 손길을 막는다.
“이것 봐. 이럼 정신 차리지. 자. 이제 네 차례야.”
그러자 뒤로 물러나서, 고개를 으쓱하는 아폴론.
아르테미스 보고 출동하라고 손짓한다.
“에휴…… 어쩔 수 없네.”
한숨을 푹 쉬며 나에게 다가오는 아르테미스.
그런 것치고 두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것들 진짜 뭐하는 거야.
스윽. 스윽.
아폴론과는 다르게 내 몸을 섬세하게 만져 가는 아르테미스.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점차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신의 손길이 영체에 닿으니 뭔가 느낌이 간질간질한데…….
“아르테미스. 생각보다 잘하네?”
“흥.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냥 만지는 건데. 김지호. 정신 좀 차렸어?”
“벌써 차리겠어? 자극이 너무 약해. 옷 벗기고 하반신을 자극해야지. 그것도 고간 쪽으로.”
“아…… 그런가? 그래야 정신을 차리나?”
“어. 녀석도 남신인 이상, 생식기가 민감할 거야.”
“그럼 어쩔 수 없네…… 옷도 벗길까?”
“어. 벗겨 버려. 옷 벗기고 있으면 나는 신전에서 나가줄게. 어차피 아프로디테의 힘도 약화되었겠다, 너 처녀일 필요도 없잖아?”
“아 아폴론. 미쳤어? 진짜 머릿속에 더러운 생각밖에 없어.”
그러면서도 능숙하게 옷 단추를 푸는 아르테미스.
“아. 이건 안 풀리네. 태운다?”
“오. 좋은 자세야. 아예 하반신 다 태웠다가, 불 끄고 만져 줘. 고통과 쾌감이 왔다 갔다 하면 본체 감각이 확 돌아올걸?”
바지를 풀어 보려고 하다가 불태우려고 한다.
아폴론은 한술 더 떠서 고추까지 태워 버리라고 한다.
아…… 이 미친것들.
거시기의 위기에 김지호의 의식이 갑자기 확 부상한다.
묻힐 뻔한 정신이 다시 주도권을 잡는다.
“야. 야. 그만해라. 정신이 확 드네.”
“어. 벌써 정신 차렸어?”
쩝하며 아쉬워하는 아르테미스.
“이 정도에 정신이 들다니. 별거 아니었군그래. 영혼신.”
아폴론은 시시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그래…… 시발. 개 고맙다. 이것들아.”
하.
덕분에 정신을 차리긴 했는데…….
기분이 찜찜하군.
조금 아쉽기도 하고…….
고추를 태운다고만 안 했으면, 어디까지 갔을까.
흠흠…….
“영혼신. 시작할 건가?”
“그래. 내 분신은 이미 지구 전역에 퍼졌고, 모든 인간을 장악했지.”
80만 김지호 대군.
어느새 지구 전역에 퍼져, 혼 봉인 준비를 완료했다.
70억 인간을 봉인하기에는 과도하게 많은 분신 숫자.
하지만 단번에 봉인하고 가짜 혼을 넣기 위해서는 이 숫자가 필요했다.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는 않고?”
“굳이 왜? 하데스한테 죽을래, 나한테 봉인당할래? 라고 물어보는 격인데. 혼란만 야기할 거야. 그러느니 모르고 봉인당하는 게 낫지.”
차라리 모른 채 봉인되어 있다가, 일이 다 끝나고 다시 복구되는 게 낫지.
괜히 봉인 전에 혼란이 가중되면, 귀찮아질 거야.
제우스 놈이 알아챌 수도 있고.
“그래…… 그게 당연하지. 신의 명대로 인간은 따라야 하는 법. 영혼신 그대가 점차 인간에서 벗어나 신이 되는 것 같구나.”
이빨을 보이며 씩 웃는 아폴론.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지?
후. 나는 내가 할 일을 하자.
“대이주, 시작한다.”
80만 김지호가 일제히 전 지구에서 인간의 영체를 장악한다.
영혼이 뽑혀 영혼석에 차곡차곡 담겨 나가는 70억 인간.
준비를 과하게 해서 그런가.
일 처리 속도가 순식간이다.
“1분. 걸렸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영혼석에 봉인되는 데 걸리는 시간.
고작 1분이었다.
대이주는 이걸로 끝이고…….
“위혼 생성.”
그다음 프로세스로는 가짜 영혼을 불어넣는 것.
제우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얼마간만 인간처럼 활동하면 된다.
그냥 원래 인간 그대로 혼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위혼의 영혼 특성을 정하시겠습니까?]
추가 메시지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