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3화>
대이주 (3)
크툴루?
갑자기 그 녀석이 정령계에 왜 나오지.
포세이돈의 영체를 장악하고, 르뤼에를 회수하겠다면서 떠난 크툴루.
녀석은 오케아노스에 있는 게 아니었나?
지구의 본체는 인류의 영혼을 장악하도록 놔두고, 그쪽에 의식을 집중해야겠군.
어두운 공간 너머에, 거대한 문어가 셀 수 없이 많은 촉수를 깔아 둔 채 떠 있었다.
촉수의 아래에는 검푸른 땅과 검은 건물이 자리했다.
나무가 뿌리내리듯이, 건물과 땅을 모두 감싸고 있는 초대형 문어.
촉수가 번들번들 암청빛을 뿜어내는데, 워낙 크기가 커서 엄청 징그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 기운은 크툴루가 확실하군.
문어를 잠시 쳐다보고 있자니, 거기서 빛이 스르르 나와 하나의 영체를 생성했다.
포세이돈의 모습을 한 영체.
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영혼신인가……? 어떻게 여기를 찾아온 거지?”
“나야말로 궁금한데. 크툴루. 네가 여기 왜 있지?”
서로 영문을 몰라하는 나와 크툴루.
“이곳은 오케아노스의 끝. 제우스의 눈도 닿지 않는 공간.”
“여기는 케브리안 행성의 정령계인데?”
“케브리안 행성의…… 정령계라고……?”
내 말을 곰씹는 크툴루.
나도 오케아노스의 끝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오케아노스는 지구의 신계가 배치되어 있는 곳이잖아.
근데 케브리안의 정령계랑 어떻게 연계되어 있지?
“케브리안 행성계와 연결이 되어 있다니…… 이면의 세계끼리도 연결이 되어 있는 건가…… 흥미로운 사실이로군.”
“여기 정령계의 공간이 오케아노스 같은 곳이라면…… 신계가 있어야 할 텐데. 엘프리안의 정령계 같은 곳이 신계인가.”
“케브리안 행성은 지구에 비해 격이 낮을뿐더러, 신이 직접 행성에 머무르니 이면의 세계에서 신계를 창설하지는 못할 것이다…….”
“케브리안 행성이 격이 낮아? 지구보다.”
“그래. 지구보다 훨씬 SP 생산량이 부족하지…….”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가.
“거기에 원래는 혼돈에 의해 멸망한 곳…….”
“아. 그랬었지.”
“어쨌든 타 행성계의 이면의 세계까지 오다니…… 신기하군…… 거기에 케브리안 행성계라니…… 지구와 케브리안 행성계는 거리가 상당할 텐데…… 물리적인 거리와는 상관이 없나…….”
혼잣말을 주저리주저리 길게 이어 가는 크툴루.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제지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넌 뭐 하고 있었냐?”
“음…… 피난 중이었다…….”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하는 크툴루.
“제우스의 힘…… 조금 알아봤지만 너무 강력하더군. 우리 드림랜드의 일원은 모두 외계로 피난 가기로 했다…….”
“제우스의 힘을 뭔 수로 알아봤어?”
“후후…… 오케아노스에 머물다 보면, 간혹 느껴진다. 거대한 파장이. 절대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미증유의 힘…….”
오케아노스에서?
“난 딱히 못 느꼈는데.”
“영혼신…… 너야 트라이아나를 타고 오케아노스를 이용하니까 그렇겠지…… 나는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간헐적으로 뿜어져 오는 그 파장이 너무 강력해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더군…….”
그런가?
뭐 트라이아나로 빨리빨리 이동만 했으니,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지.
“너 SP 수입은 어쩌고? 그래도 지구 쪽에 있어야지 SP 벌어먹는 거 아니야?”
“후후…… 영혼신. 그대가 있지 않는가? 요즘 통이 커졌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이 자식은 오케아노스에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소문을 듣고 다니는 거지.
아무리 내가 SP가 썩어날 정도로 넘쳐 난다지만, 그래도 공짜는 안 된다.
“내가 자선 사업가냐. 공짜로 도와주게.”
“당연히…… 나도 그런 철면피는 아니다…… 거래가 필요하지…….”
“뭐, 쓸만한 정보라도 있어?”
“후후…… 첫 번째로, 올림푸스의 위치가 있겠군…….”
“거긴 이미 털었어.”
“그래……?”
“그거보다 제우스의 위치가 더 궁금한데. 그 녀석 올림푸스에는 없더라고.”
“……그건 나도 모른다…… 제우스의 파장은 워낙 거대하여, 어느 방향에서 온 것인지 특정 지을 수가 없었지…….”
에이. 이 녀석 쓸모가 없잖아.
포세이돈의 모습을 한 크툴루가 몇몇 정보를 이야기했지만, 다 내가 알거나 더 많이 아는 수준이라 전혀 SP를 쳐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다 아는군…….”
“쯧쯧. 정보가 이거밖에 없냐. 이러면 SP를 쳐줄 수가 없어.”
“으음…… 곤란한데…….”
[영혼신. 그의 권능을 요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품속의 봉인석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아테나의 목소리였다.
“권능을?”
[예. 그는 일반적인 신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이한 거짓 신입니다. 그라면 영혼신의 행보에서 쓸 만한 권능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흠…… 그런 게 있을까.”
“지금 영혼신을 보니…… 내 권능은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정말 어마어마한 SP로군…….”
내 본체를 보고 말하는 크툴루.
뭐, 싸우는 권능이라면 녀석에게 얻을 게 딱히 없겠지.
그래도 다른 권능이 있다면……
거짓 신이라는 특성상, 건질 만한 게 있으려나.
“크툴루. 비밀 유지는 해 줘야겠어.”
“서약을 하길 원하나? 알겠다…… 나도 SP가 필요하니.”
비밀 유지 서약을 한 뒤, 지금 저반의 내 사정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인간을 모두 영혼석에 담아 뜰 거라고 이야기하니, 이를 곰곰이 듣고 있던 크툴루가 나에게 말했다.
“인간의 영혼을 들고 가면, 제우스가 알 것이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70억이 사라지는데…….”
“그건 그렇지.”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아직은. 찾고 있어.”
“후후…… 그럼 나의 권능이 쓸 만할 것 같군…… 혼을 가짜로 만드는 방법이다…….”
혼을 가짜로 만든다고?
“그런 권능이 있었어?”
“그래…… 나는 만들어진 신…… 진실된 영혼을 집어삼키고, 그 자리에 거짓된 혼을 넣을 수 있지…… 지속시간은 짧지만…… 혼을 들고 도망가기엔 충분하겠지…….”
[아니, 당신…… 설마 지금까지 인간의 혼을 집어삼키면서 생존해 왔던 겁니까?]
“그렇다…… 크툴루 신앙을 믿는 이도 있었지만…… 그런 미친놈은 세상에 얼마 되지 않지. 후후후…….”
[그럼 영혼의 총량이 점점 줄어들 텐데, 아직까지 용케 들키지 않았군요.]
“후후후…… 조심조심 집어삼켰으니까 들키지 않았지…….”
진실된 혼을 집어삼켜?
이거야 원 악질이네.
이 녀석의 힘이 강했다면 지구의 영혼은 죄다 가짜 영혼이었을지도.
거대한 암덩어리나 다름없었겠어.
하지만, 그 권능이 지금은 필요하다.
진실된 영혼을 집어삼키는 건 필요 없지만, 거짓된 혼을 만드는 건 쓸 만할 것 같아.
어째 좀 연구를 하면 나도 거짓된 혼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좋아. 그 권능, 사지. 나한테 팔아. 스킬로 되어 있지?”
연구할 시간이 아깝다.
그냥 스킬 사서 분석해 보고 나에게 맞게 고치는 게 낫지.
SP 좀 든다고 해 봤자 얼마나 들겠어.
“값은 비싸다만…….”
내가 살 의지가 보이자 슬쩍 눈치를 보는 크툴루.
원활히 돌아가는 눈동자 모습이 어떻게든 비싸게 받을까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이 스킬…… 나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지…… 후후…… 거짓된 신은 드물지…….”
“야. 거짓된 신은 크아이가도 있잖아. 비싸게 받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적당히 욕심내라. 수틀리면 녀석에게 사면 그만이거든?”
“시간이 급할 텐데……?”
“지금 내가 운용하는 분신이 몇 갠데. 웬만큼 쳐줄 테니까, 어설프게 머리 굴릴 생각하지 마.”
“후후…….”
크아이가 이야기에 눈동자가 잠시 멈추는 크툴루.
찰나의 멈춤이었지만 내 눈을 벗어나진 못했다.
저 반응을 보면, 그 녀석도 가지고 있겠네.
“그렇다면…… 원래는 3000억…….”
“3000억? 가자. 그렇게.”
“받으려고 했지만…… 어?”
“난 또 얼마 부르나 했네. 3000억 SP면 바로 사 주지. 스킬 가르쳐 줘.”
“어…….”
얼마 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어.
시간 아깝게끔.
내 반응에 얼떨떨해하던 크툴루.
빨리 스킬 달라는 내 재촉에, 엉거주춤하더니 말문을 연다.
“영혼신…… 3000억을 말했다. 나는.”
“그래. 삼천억.”
“정말 줄 수 있는 건가……? 서약할 수 있나……?”
“아, 삼천억 가지고 쫑알쫑알 대네. 무슨 서약이야? 바로 줄게.”
“어…… 그래…….”
거래창을 열어 바로 SP를 넘겨준다.
3000억이 한 번에 들어오자 눈을 껌뻑거리는 크툴루.
말없이 계속 껌뻑, 껌뻑하는데 보는 사람이 답답할 지경이다.
“야. 선입금했으니 빨리 스킬이나 줘.”
“아…… 그러지.”
“설마 튈 생각은 아니겠지?”
“무슨…… 감히 그대 앞에서 어떻게 도망가겠는가. 잠깐만 기다려라.”
내 말에 정신을 차린 크툴루.
그의 본체 촉수 중 세 개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와 크툴루가 선 머리 위쪽으로.
촤아아아악.
두 개의 촉수가 가운데 하나의 촉수를 자른다.
거대한 촉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순식간에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내 쪽으로 낙하할 때쯤에는 오징어 다리만큼 작아진 촉수.
“먹어라.”
“자식. 뭔 스킬을 이렇게 주냐?”
“거짓된 신의 근원적인 스킬이다…… 나의 영체를 집어삼켜야 가능하지…….”
물컹물컹한 촉수.
맛은 있어 보이네.
바로 입에 가져다 대서 씹으니, 메시지가 뜬다.
[SSS급 스킬, ‘탈혼(奪魂)’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상위 스킬, ‘영혼 약탈’이 존재합니다. ‘탈혼’스킬이 사라집니다.]
탈혼…….
영혼 약탈의 하위 스킬이었군.
진실된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 거야 딱히 필요가 없지.
사라져도 괜찮아.
내가 진짜 원하는 건…….
[SS급 스킬, ‘위혼(僞魂)’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상위 스킬, ‘영혼 합성’이 존재합니다. 다만, 스킬 특성이 달라 스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영혼신입니다. 위혼 스킬이 강화됩니다.]
[위혼의 지속시간이 증가합니다.]
[소모 SP가 대폭 줄어듭니다.]
[위혼의 영혼 특성을 사용자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위혼.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스킬.
제우스가 70억 인구의 혼이 사라지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해 줄 스킬이다.
영혼신이라서 보너스로 추가된 게 많네.
소모 SP 감소나 지속시간 증가는 그냥 소소한 보너스 같은데…….
영혼 특성 조절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나중에 써 봐야지.
“후후…… 원하는 대로…… 스킬을 얻었는가.”
“어. 탈혼은 내 스킬보다 하위 스킬이라 사라졌지만, 위혼은 스킬이 남았어. 쓸 만하겠네.”
“잘되었군…….”
“이 위혼 스킬, 지금도 적용된 애 있나?”
“인간을…… 말함인가? 인간은 없다. 지금쯤 위혼이 사라졌겠지…….”
별생각 없이 물어봤는데, 굳이 인간을 강조하는 크툴루.
뭔가 석연치 않아 더 파고 들어간다.
“너 왜 이렇게 인간을 강조하냐. 어, 그럼 인간 말고. 신도? 신도 적용되나?”
“그것은…… 대답할 수 없다.”
“뭐?”
“후후…… 3000억이나 받았으니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대답할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이 녀석.
서약을 해서 확답을 못하는 건가?
이러면 결국 있다는 건데.
[크툴루. 앞으로 영혼신이 어디를 둘러보면 좋겠습니까?]
“나에게 물어봤자, 잘 모르지…… 다만, 지구에 한정짓지 말고…… 우주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주요?]
“큭…….”
갑자기 녀석의 영체의 색이 옅어진다.
표정을 찡그리던 크툴루.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더 이상 이에 관해서 말하지 않겠다…… 서약 위반이 될 소지가 있군…….”
페널티를 좀 받은 건가.
아쉽지만 이쯤 해야겠군.
우주의 구석구석이라…….
분신을 정찰 보낼 필요가 있겠어.
“영체 타격을 좀 받았나 보네. 미안하니 천억은 선물로 주마.”
“오오…….”
얼굴이 대번에 환해지는 크툴루.
그러더니 몇 번 더 영체를 깜빡거린다.
이 자식…….
“야. 수 쓰지 말고. 니가 형광등이냐?”
천억을 주면서 말하자 녀석이 깜빡이는 걸 그만둔다.
“쳇…… 아쉽군…… 그럼 나는 여기에 기반을 마련하고 있겠다…….”
“케브리안계에?”
“그래. 지구 쪽은 태양계 전체가 너와 제우스의 싸움의 여파에 휘말릴 것 같군…… 고래 싸움은 피하는 게 낫지…….”
뭐 오케아노스까지 영향이 갈까 싶다만.
“그래. 맘대로 해. 이 동네에서 이상한 짓만 하지 말고.”
“그럴 힘도 없다…… 아직은…… 드림랜드부터 제대로 복구해야지…… 4천억을 가지고. 4천억…….”
4천억을 계속 되새김질하듯이 말하는 크툴루.
녀석에게 얻을 만한 건 다 얻었으니, 자리를 뜬다.
그건 그렇고.
위혼으로 이루어진 가짜 신…….
이게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건가?
녀석에게 가짜 신 생성을 의뢰할 만한 자는…….
“제우스밖에 없나.”
대이주 준비도 겸해서, 알아볼 일이 생긴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