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22화 (222/240)

<내 상태창 2개 - 222화>

대이주 (2)

정령계…….

그 세계가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고?

“이곳에 그런 특성이 있었습니까?”

“예. 완전히 시간과 단절이 되지는 않지만, 속도를 크게 늦출 수 있어요.”

“호오…….”

“거기에 정령계는 제우스의 힘이 잘 미치지 않는 곳. 그의 눈을 피해 있기도 안성맞춤이죠.”

그러면 이곳에 피난처를 마련할까?

부지는 어디서 구하지?

“정령계의 땅은 어디서 사죠? 엘프리안 님에게 사면 되나요?”

“70억 인구의 영혼석을 둔다고 하셨죠? 그럼 제 힘으로는 감당하기가 벅찰 것 같네요. 정령계에 김지호 님만의 영역을 확보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영역 확보라…….”

“정령계는 본래의 세계에 종속된 세계입니다. 크기는 케브리안 행성계와 비슷할 정도로 넓죠.”

정령계.

나느 그냥 정령이 원래 거주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극히 일부라고 했다.

케브리안 행성과 겹치는 정령계나 그런 정령이 나오지, 저 너머에는 암흑 공간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지구 밖의 우주 공간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흠…… 그런 곳에서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SP만 있으면 됩니다. 특히 김지호 님은 신격도 대신격이니, 문제없이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손가락을 위쪽으로 가리키는 엘프리안.

“위로 가셔서, 무無의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아버지. 잠시 다녀올게요.”

“지호야. 날 봉인해야지!”

살아난 지 얼마 되었다고 봉인을 다시 당하려고 하시냐.

엘프리안에게 곁눈질하며 말한다.

“엘프리안. 아버지를 잠깐 부탁드려요.”

“호호. 알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팔을 그대로 감싸 안는 엘프리안.

여신이 그리 나오자, 아버지의 얼굴이 시뻘게진 채 바로 굳어 버린다.

엘프 여신이라 안 그래도 한 미모 하니…….

엘프리안의 영역을 뛰어넘자, 검은 우주 속에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전력을 다해서 그런가.

그녀의 영역은 저 밑에서 어느새 점처럼 작아진 상황.

“이쯤에서 영역을…….”

SP를 흩뿌리며, 영역을 얻으려고 시도한다.

처음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지만.

SP를 아낌없이 퍼붓다 보니 빠진 독도 채워진다.

그러고 있어 얼마 있지 않아…….

[이면의 세계에서 영역을 얻으시겠습니까?]

메시지가 뜬다.

이런 데에서도 시스템이 있네.

예를 누르자, 추가로 뜨는 메시지.

[정령신이 아닙니다. 영역 확보를 위한 SP 소모량이 10배 증가합니다.]

10배 정도야.

예를 누르자 추가로 메시지가 뜬다.

[영역을 어떻게 꾸미시겠습니까?]

“흠…… 지구처럼.”

[사용자의 기억에 따라, 영역을 생성합니다.]

어둠이 걷히고 대지가 형성된다.

나만의 영역에 태양 빛이 들어오고, 하늘이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천지 창조나 다름없는 광경.

그렇게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땅에서…….

“뭐야. 빌딩이잖아.”

서울 도심에서 볼 수 있는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다.

엘프리안네는 숲이었는데, 나는 왜 빌딩이지.

아무래도 현대인으로 자라 와서 그런가?

빌딩 안은 텅텅 비어서, 수수깡 같은 상태.

땅도 어느새 아스팔트로 변해 있었다.

황량하네.

정령이랑은 하나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세계.

하긴, 시스템에서도 이면의 세계라고는 했지.

정령신 아니라고 SP 소모량이 팍 늘어나긴 했지만.

“빌딩에 영혼석을 넣으면 되겠군.”

인간의 영혼을 압축해서 영혼석으로 만들면, 빌딩 하나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의 흐름을 더 느리게 하고…….”

SP 상점에서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 아이템을 뒤져 본다.

이런 아이템이 있을까 싶었는데, 상당히 많이 나오는 물건들.

가격은 상관하지 않고, S급 이상의 물건을 대거 구입해 건물에 설치한다.

이것저것 설치하고 나니 뜨는 메시지.

[시간의 흐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S급 이상의 각성자는 시간의 제약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SP 상점에서 시간 관련 물건을 많이 샀는데도, S급까지밖에 제약을 못하네.

그래도 인간 중 가장 높은 등급이라 해 봤자 아버지의 A급이 전부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시 돌아가자.”

빌딩에 보관 공간도 마련했으니, 엘프리안의 정령계로 다시 돌아간다.

“벌써 일이 끝났니?”

“예. SP만 있으면 되더라고요. 근데…….”

어느새 엘프리안과 나란히 앉아 있는 아버지.

어느새 나무 벤치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사과 같은 과일이 여럿 보였는데, 색이 특이하게 황금빛을 띄고 있었다.

“김지호 님. 빨리 일을 끝내셨네요. 이리 와서 정령수의 열매를 좀 드셔 보세요. 정령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미랍니다.”

“향이 기가 막히네요.”

와삭.

한 입 물자마자 청량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거…… 엄청 맛있네.

지금까지 먹어 왔던 음식은 쓰레기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이거 너무 맛있어서 중독되겠는데요.”

“후후……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아버님께서도 참 좋아하셔요.”

말도 없이 정령수의 열매를 계속 드시는 아버지.

나도 그에 합세해서 몇 개 먹어 치우니, 테이블 위의 열매가 금방 동이 난다.

“하…… 진짜 맛있구나.”

“그러네요.”

“이제는 봉인되어도 여한이 없겠어.”

“아버지. 뭐 벌써 봉인되려고 하세요? 살아난 지 얼마나 되셨다고.”

“네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구나.”

으. 고집불통이셔, 진짜.

정령수의 열매를 먹었을 때 황홀해하던 표정도 잠시.

벌써 굳은 표정으로 흔들림 없이 날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이미 각오가 다 된 모습이었다.

에휴. 그래도 이렇게 봉인하는 건 마음에 걸리는데…….

뭐라도 해서 붙잡고 싶어.

아. 그래.

“그러지 마시고, 아버지. 제 영역에 가시죠.”

“네 영역?”

“예. 이번에 정령계에서 새로 만든 영역이요. 지금은 아스팔트에 텅 빈 빌딩만 있지만, 관리하는 신에 따라 개조가 가능할 것 같아요.”

“내가 가서 뭐하겠느냐.”

“가서 그냥 아들의 영역 좀 꾸며 주세요. 어차피 거기에 분신 하나도 상주시킬 거니, 분신 시켜서 황량한 제 영역 좀 바꿔 주세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영혼석을 보관하기만 하면 될 건데, 빌딩에 넣으면 그만 아니니?”

사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버님. 만약 제우스가 지구를 장악하면, 김지호 님의 본진은 이곳이 될 거예요. 그런데 그런 장소를 황량하게 놔두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제2의 고향이 될지도 모르는데.”

“으음…….”

고맙게도 옆에서 엘프리안이 지원 사격을 해 준다.

그러자 고민에 잠기는 아버지.

“아버님. 아니, 세준 씨!”

“엘…… 엘프리안?”

“폐가 안 된다면, 저도 정령수의 열매를 가지고 자주 놀러 갈게요. 제가 도와 드릴 테니, 정령계를 꾸며 봐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는 엘프리안.

굳어 있던 아버지의 표정이 슬쩍 풀어진다.

거참. 아버지 성함은 언제 아신 거야?

거기에 언제 서로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어?

“그래도 그럴 수는…….”

“그럼 며칠이라도 있어 보세요. 어떻게 살자마자 다시 봉인을 해요? 제 분신이 옆에 있으니, 정말 봉인을 원하시면 바로 분신으로 봉인할게요.”

“그래요, 세준 씨. 김지호 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한사코 봉인되겠다는 아버지를 뜯어말린다.

처음에는 이 고집 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옆에서 엘프리안이 적절하게 미인계를 구사한 덕에, 마음이 약해지신 아버지.

다행히 한 발 물러서신다.

“그래. 알겠다. 며칠 동안 사람 살 만한 곳으로 꾸며 보마. 그 후에는 꼭 봉인하는 거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며칠이라…….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호호. 그럼 가 봐요. 지호 님 정령계.”

“그러죠. 포탈을 열겠습니다.”

아버지 마음이 바뀔까, 빨리 가 보자고 재촉하는 엘프리안.

그녀의 의견에 따라 포탈을 열고 다시 내 영역으로 들어선다.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그 위에 셀 수 없이 올라서 있는 빌딩.

그걸 본 아버지가 혀를 찬다.

“아니…… 여기가 네 영역이라고?”

“정말 말씀대로 황량한 공간이네요.”

“별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졌네요.”

“이건 좀 심하구나…… 그래. 내가 사람 살 만하게 좀 바꿔 보마.”

쩝. 사람 살 만하게라니.

난 대신인데.

그래도 아버지가 의욕이 생긴 것 같으니, 봉인 이야기는 안 꺼내시겠군.

“그럼 제 분신을 소환할 테니, 지시할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손뼉을 치자 휙 튀어나오는 내 분신.

나와 똑같은 모습에 아버지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아…… 그래. 정말 똑같이 생겼구나.”

“제 능력도 나름 쓸 줄 압니다. 전 제우스 대비를 하러 지구에 가 볼게요.”

“알았다. 지호야.”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내고, 엘프리안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지호 님에게 받은 은혜가 있는데, 이 정도야 당연하죠.]

[며칠간 아버지를 좀 부탁드립니다. 보답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어머, 물론이죠. 걱정 말고 일 보세요.]

좋아. 그럼 지구로 가자.

“아, 근데 이 두 봉인석이 문제군.”

헤파이스토스와 데메테르의 봉인석.

아프로디테나 디오니소스랑은 달리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괜히 지구 갈 때 같이 들고 가느니, 여기서 해결하는 게 나은데.

제우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깐.

흠…….

분신에게 정화 작업을 맡길까?

아니, 이건 분신의 힘으로는 부족해.

“‘나’를 하나 더 만들자.”

분신이 아니라, 본체 급은 이미 둘이 있는 상태.

가용할 수 있는 힘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하나 정도는 더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또 다른 나는 내 영역에서 머물게 하고, 두 봉인석을 해제하면 되겠는데…….

-세준 씨. 여기는 화단을 꾸미면 어떨까요?

-그럴까요. 어…… 지호야. 여기에 화단을 꾸며 다오.

엘프리안이 아버지한테 적극적으로 어프로치를 한다.

그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의견에 그대로 따르는 아버지.

점점 밀착하는 여신에게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다.

허 참. 시야 공유가 되는 내 분신 앞에서도 이러네.

“엘프리안…… 아버지 꼬드기나?”

A급 각성자가 되면서 살도 쭉 빠지고 이목구비도 뚜렷해졌지만, 그래도 기본은 어디 안 간다.

베이스는 그냥 중년 남성인 아버지.

근데 엘프의 여신이 저렇게 먼저 열렬히 다가오니, 그림이 이상하단 말이야.

뭐…….

영혼신인 나의 아버지라는 걸 감안하고 저러는 거겠지?

혹시라도 잘되면, 뭐 내 덕을 더 볼 거란 계산도 염두에 두고 있겠지.

“그래도 행복해 보이시니, 일단 놔두자.”

엘프리안이 성격상 함부로 선을 넘을 것 같지도 않고.

아버지도 좀 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좋은 거니까.

대신…….

“내가 자리를 피해야겠네.”

아들내미가 있으면 장밋빛 분위기가 흐려지겠지.

기껏 만든 내 영역에서 떠나, 어둠의 공간을 부유한다.

어째 정령계라고 하더니, 실제 영역보다는 이런 암흑 공간이 대부분이네.

엘프리안이 속한 정령계처럼, 다른 세계는 없나?

갑자기 궁금해져서 속도를 최고로 내 본다.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내 영체.

하지만 주위는 온통 어둠뿐이다.

이 세계…… 뭐가 이렇게 텅텅 비었어?

“별것 없네.”

어느 정도 가도 계속 똑같은 풍경이자, 이동을 멈췄다.

우주여행은 이 정도로만 해야겠어.

나한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본체부터 만들자.”

정령계에서 활동할 새 본체를 생성한다.

이제 사용 가능한 힘이 늘어서 그런가.

금방 생겨나는 또 다른 본체.

녀석에게 가지고 있는 봉인석을 다 넘겨준다.

“정화 작업 부탁한다.”

“그래. 정화하는 김에 우주여행도 하지 뭐.”

“그래. 수고해. 헤임달의 귀환.”

새로운 본체에게 손을 흔들고, 지구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보관 장소도 마련되었으니, 인간을 옮겨 볼까.

“흠…….”

이게 쉽지가 않군.

그래도 제우스 몰래 하는 게 안전할 텐데.

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단번에 영혼을 회수해서째는 방법이…….

아무리 SP가 넘쳐흐른다고 해도, 70억 인구의 영혼을 휙 가져가는 건 힘든데.

거기에 안 들키고 해야 하는데 말이야.

으으.

뭔 수로 하지?

-본체.

집에서 뒹굴면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정령계 공간에 있던 나에게서 연락이 온다.

-정령계에서 새로운 영역을 찾았는데…….

“그래? 더 가 볼 걸 그랬나.”

-여기, 크툴루가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