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1화>
대이주 (1)
[왜 굳이 그런 수고를…….]
[SP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 겁니다.]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한가요?]
나의 결정에 의문을 표하는 올림푸스의 신들.
그들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낭비로 보이겠지.
[영혼신이시여. 저희는 SP를 얻기 위해서라도 인간과 인간의 영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거기서 초월한 존재가 아니십니까? SP 거래소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굳이 한 행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텐데요.]
“인간은 나를 위해 필요해. SP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인간을 데리고 가시려고요?]
“영혼석이 있잖아.”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인간들이 봉인되어 있는 영혼석.
그걸로 사람들의 영혼을 담으면 되겠지.
[영혼신이시여. 인간이 어떤 연유로 필요하신 겁니까?]
“내가 돌아갈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 대답을 들은 아테나가 다시 묻는다.
[돌아갈 곳이라 하시면…… 현재의 인간 사회가 필요하시다는 겁니까?]
“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모든 인간의 기억을 유지해야 가능할 겁니다. 육신도 바뀌지 않아야 하고요.]
“그래야겠지.”
[그게 가능할까요?]
“될 거야. 하지만…… 한번 실험을 해야겠지.”
아버지의 영혼이 담겼던 영혼석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야훼를 믿었던, 수많은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영혼석.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복구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제우스가 혼돈 쪽에 붙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먼저 시도하게 되는군.
수많은 영혼 중 내가 선택한 건 아버지의 영혼.
제대로 복구가 되느냐를 보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복구한다.”
아버지의 영혼을 쥐자, 예전에 육체로 썼던 몸의 정보가 저절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영혼에 담긴 정보에 따라 육체를 복구하시겠습니까?]
[‘미카엘의 아바타’로 쓰인 육체입니다. 500만 SP가 소모됩니다.]
[봉인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 SP 소모가 없습니다.]
음…… 500만…….
미카엘의 아바타라 SP가 500만씩 드는 건가.
다른 사람은 어떤지 보니, SP 소모량이 작게는 100 정도에서부터 많게는 1만도 넘게 차이가 났다.
차이의 핵심은 각성자냐, 아니냐의 여부.
미카엘의 아바타였던 육신은 고위 각성자라 SP가 많이 드는 거 같았다.
“이 정도면 지를 만한데…….”
한 명당 1만씩 든다고 쳐도, 70억에 1만이면 70조니까.
지금 내 자산에선 별로 큰 소모가 아니지.
500만 SP를 사용하자, 내가 쥐었던 새하얀 영혼이 빛을 발한다.
퍼져 나가는 빛은 인간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복구를 하시는 겁니까?]
“어.”
[아니, 이렇게 간단히 하시다니…….]
일반신들에게는 어려운 과정인가.
인간의 형태로 뭉친 빛은 머리 쪽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 드러나는 사람의 몸.
아버지의 모습이다.
영혼 상태에서 육신을 부여하는 거, 간단하네.
역시 이 세상, SP만 있으면 다 된다니까.
근데 아버지의 육신은 내 기억속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미카엘의 아바타였을 때의 몸을 재생해서 그런지, 피부도 탱탱하고 몸도 근육질로 바뀌었다.
뱃살도 별로 없고…….
얼굴 생김새가 아니었으면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
“으음…….”
눈꺼풀이 흔들리는 아버지.
“옷을 생성해야겠군.”
곧 사각 팬티에 메리야스 차림이 되신 아버지.
예전에 매일 집에서 보던 모습으로 됐군.
여기에 적당히 추리닝도 덧붙인다.
“여기는…….”
“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완벽하게 복구했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몸과 영혼은 같지만, 기억은 없을 수도 있잖아.
“지호냐…….”
“오. 기억이 나시는군요. 아버지.”
성공이구나!
기억이 어디까지 돌아오셨지?
“어디까지 기억나시죠? 미카엘도 기억나세요?”
“그래…… 머리가 뒤죽박죽 하지만…… 다 기억이 나는구나. 미카엘 님의 아바타로 선택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분께…… 후. 그래, 미카엘 님은……?”
“미카엘은 저랑 협약 맺고 지구를 떠났어요. 이제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했죠.”
“……그래. 그렇게 되었나. 잘 헤쳐 나갔구나.”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아버지.
“일어서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그냥 앉으셔도 돼요.”
“음…… 감각이 몽롱해서, 어떻게라도 움직이고 싶구나.”
힘들게 선 아버지가 어지러운 듯, 몸을 비틀거리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뚝 서더니, 자신의 몸을 바라보셨다.
“……내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지?”
“미카엘의 아바타였으니, 육신은 반신 급이죠.”
500만이나 주고 산 육신이다. 좋을 수밖에 없지.
신기한 듯이 몸을 움직여 보던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봉인되었을 때, 느낌이 어떠셨죠?”
“느낌? 모르겠다. 그냥 지금 깨어난 것 같았거든. 다만…….”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버지.
“잠깐잠깐 의식을 찾을 때가 있었지. 그때마다 끝없는 어둠, 미지의 공포 속에서 내 자신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중에는 의식을 찾고 싶지 않을 정도였지.”
“흠…….”
“어떤 점이 궁금한 거야?”
“제가 지금 지구 인간들을 모조리 봉인하려고 하는데요.”
제우스와의 분쟁과 이에 대한 내 대처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70억 인구를 모두 봉인한다니…… 그게 가능한 거니?”
“충분히 가능해요. 단지 봉인하고 다시 풀어 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죠.”
“몇 년에서 몇십 년, 몇백 년까지도 걸릴 수 있겠구나.”
“예. 최악의 경우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봐야죠.”
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아버지.
고개를 흔든다.
“몇 년까지만 모르겠는데, 몇십, 몇백 년이라면…… 난 자신 없다.”
“역시 그런가요.”
[그 지역의 시간을 멈추면 모르겠습니다만…….]
“인벤토리 안에서는 시간이 가나 보네.”
[사용자와 연계되어 있으니까요.]
흠.
신을 봉인한 봉인석과는 달리 영혼석은 인벤토리에 잘 넣어져서, 그냥 모든 인류를 내 인벤토리에 보관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영혼에 새겨진 정보가 다 사라지니 문제인가.
“영혼에 새겨진 정보가 사라지면…… 그냥 SP가 되겠군.”
[영혼석도 그 기반 구조는 저희 신을 봉인하는 봉인석과 비슷하죠?]
“그렇지.”
[그렇다면, 봉인석과 같은 환경을 견디는 건 S급에 다다라야 가능할 거예요. 영혼신님의 아버님 같은 경우는 A급에 다다르는 각성자가 되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의 인간 영혼은 봉인석의 환경을 이겨 내지 못할 겁니다.]
거참.
그냥 봉인시키면 될 줄 알았더니 난관이 있네.
영혼을 슬쩍 만져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명색이 영혼신인데, 이 정도에서 방법을 못 찾으면 안 되지.
그래. 해 보자.
“정보가 사라지면, 백업을 해 두면 되지.”
영혼의 정보는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방대하지만…….
영혼신은 그 정보를 압축할 수 있다.
“정보 추출. 압축.”
영혼석에 있는 영혼에 대고 명하니, 혼에 있는 정보가 추출되어 한 점으로 압축된다.
이렇게 압축된 정보를 원래의 영혼에 붙여 두면, 오랫동안 유지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걸로는 부족해.”
압축한 정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사라진다.
다만, 이런 방법으로 사라지는 속도를 100배, 1000배 이상 느리게 했을 뿐.
제우스와의 싸움이 장기전이 된다면, 결국 인간의 영혼은 모두 백지가 되겠지.
이 상태에서, 시간이 멈춘다면 가능할 것 같긴 한데…….
“지호 님. 일은 잘돼 가시나요? 어머, 이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아버님이요? 영혼신의 아버님이라니…….”
다시 내가 있는 정령계로 돌아온 엘프리안.
아버지를 보더니 눈을 반짝인다.
그 모습을 보고 시선을 슬쩍 돌리는 아버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하긴, 엘프리안도 엘프의 여신이라 그런지 한 미모 하지.
“아버님. 정말 훌륭한 아들을 두셨어요.”
“가…… 감사합니다.”
“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아니, 실례라니요…… 얼마든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입가에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띠며 헬렐레하는 아버지.
아버지, 이렇게 여자 미모에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대신급 되니 어쩔 수 없나 보다.
“혹시 영혼신께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이라도 있으셨나요?”
“출생의 비밀이요?”
“혹시 선조께서 대영웅의 혈통이라던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저희 집이 안동 김씨기는 한데…… 사실 노비 출신이 족보를 사는 경우도 많아서요.”
헐. 노비 출신일 수도 있는 거야?
“그렇군요…… 하긴, 혈통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영혼신께서는 태어나신 이후에, 두각을 나타내셨을 텐데요.”
그러자 날 힐끗 바라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아버지.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하디평범한 아들이었죠. 공부도 중간. 운동도 중간. 뭐든지 중간.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죠.”
“아…….”
“정말 평범한 자식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영혼신이라는 거창한 신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쪽도 뭐 없죠?”
“없어. 태어난 것도 평범했고. 애기 때도 평범했지.”
거참 평범 강조하시네.
그래도 엘프리안이 물어봤을 때, 나도 내심 출생의 비밀이 있는 건가 궁금했던 건 사실이다.
영혼신이 된 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
“그런 거 없다. 넌 평범하게 태어나고 자랐어.”
“어머니도 그냥 평범했죠?”
“그래. 바람나서 집 나간 거 빼고는.”
그래…….
그런 집이었지.
어머니는 튀었지만, 그거 외에는 어디서나 볼 법한 집안이었어.
그냥 우연히 이렇게 된 건가.
능력치가 모두 똑같아서…….
3/3/3 최소치로 똑같아서?
우연이라기엔 너무 희박한 확률이지만, 아버지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하는 엘프리안.
아버지도 마주 인사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저 엘프리안만 보면 미소가 멈추질 않으시네.
아들내미 볼 때보다 더 좋아하셔.
하나 그렇게 웃는 것도 잠시.
아버지는 나를 다시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지호야.”
“예?”
“이제부터 어쩔 셈이냐? 다시 내가 봉인되는 게…… 맞겠지?”
“아니, 다시 살아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벌써 봉인이에요. 지구에서 삶을 충분히 즐기셔야죠.”
“네 적인 제우스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지 않느냐? 혹여나 내가 괜히 인질처럼 잡히면 자식 앞길을 방해하는 셈인데, 그럴 수는 없다.”
“하이고. 아버지. 뭔 걱정을…… 제가 다 지원해 드릴 테니까, 지구에서 인생을 즐기세요. 아들 지금 지구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돈이고 권력이고, 모두 드릴 수 있어요.”
지구의 지도자들도 나를 따르기로 한 이상…….
아버지의 편의를 봐주는 거야 쉽지.
이대로 다시 바로 봉인이라니.
아버지한테 너무하잖아.
“아, 아니면 조금 더 노력해서 S급을 노려 보실래요? 저한테 SP는 충분히 있습니다.”
“혹여나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느냐? 그냥 다시 봉인해 다오. 그게 내 마음이 더 편하겠다.”
몇 번을 설득해도 요지부동인 아버지.
아…….
이 모습을 보니 생각이 났다.
아버지, 고집불통이셨지.
거기에 공직 생활을 하면서, 안전 제일주의의 성향을 지니셨어.
그냥 봉인되는 게 안전하니 그러시겠지.
이거 참…….
살리자마자 다시 봉인이라니.
좀 마음이 그런데.
“지호 님. 저도 좀 지금 상황에 대해 알고 싶은데…….”
옆에서 듣던 엘프리안이 관심을 보인다.
지구인들을 죄다 영혼석에 넣어서 피난시킬 거라고 말하니, 이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듣던 엘프리안.
“방법은 어느 정도 마련했어요. 다만, 시간이 정지된 공간에 보관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요? 완전히 정지는 아니지만…… 딱 안성맞춤인 공간이 있네요.”
“그런 곳이 있습니까? 어디요?”
그러자 웃으며 땅바닥을 가리키는 엘프리안.
“여기, 정령계요. 이곳은 시간이 매우 더디게 흐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