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18화>
봉인석 (2)
[아테나. 제우스가 수세에 몰려, 나를 요구하는구나.]
화면 속에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문을 여는 헤라.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버지께서 요구하다니.]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EX등급이 된다고 했는데…… 영혼신이 일을 어그러뜨렸어. 이제 그는 완전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완전을 위해서……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헤라 님. 헤라 님이 필요하다니요. 설마…… 흡수한다는 겁니까?]
아테나의 질문에 헤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됩니다! 그러면 소멸당하실 거예요.]
[아니, 맹약 때문에 그는 날 소멸시킬 수 없을 거야. 내가 제우스의 안에 들어가, 그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겠어.]
[아버지께서는 EX등급에 오르셨습니다. 밖에서도 거스르기는 불가능한데, 그분의 안에서 어떻게 거스르겠어요? 헤라 님.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건…… 위험합니다.]
[이대로 제우스가 붕괴하는 것보다는 나아. 그럼 우리 올림푸스에 미래는 없어. 괜찮아. 잘될 거야…….]
말문을 흐리는 헤라.
그런 헤라를 아테나가 붙잡아 필사적으로 설득해 보지만, 헤라는 요지부동이었다.
휙.
헤라가 결국 말리는 아테나의 손을 뿌리치며, 등을 돌렸다.
[가 볼게, 아테나.]
[헤라 님…….]
[나는 갈 수 밖에 없어. 아테나. 제우스가…… 자신에게 협력하지 않는다면, 혼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거든. 그가 혼돈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사라져.]
[혼돈을 받아들인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웃는 얼굴의 악마’의 제안을 받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사라지는 헤라.
하지만 저 이야기를 듣자, 더 이상 화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테나. ‘웃는 얼굴의 악마’가 제안했다고? 저게 무슨 소리지?”
[저도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혼돈의 군주 중 하나인 웃는 얼굴의 악마가 아버지께 제안한 것이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협력 관계가 아닌, 아예 혼돈 소속이 되면 더 큰 보답이 있다고 했지요.]
“흠…… 혼돈과 완전히 손을 잡은 건가? 그럼 왜 내 경매를 도와주고, 하데스나 헤라클레스는 아레스와의 전쟁 때 날 도왔지?”
[나도 전혀 모르는 이야기요. 혼돈이 우리와 힘을 함께했다니…….]
[우리가 아니죠. ‘제우스’랑 만입니다. 혼돈에 있어서 SSS급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그뿐이냐? 하데스는 내 의뢰를 받아서 미카엘 사냥도 했다고. SP를 좀 주긴 했지만.”
[저도 완전한 사정은 모릅니다. 자세한 건 제우스만이 알겠지요.]
으으으.
제우스가 제대로 혼돈에게 붙게 되면 답이 안 나오는데.
전 우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혼돈 소속인데 뭘로 이겨?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야.
그렇게 제우스랑 관계가 깊었으면, 날 왜 도와줬지?
경매 중개해서 떼돈 벌게 놔둘 이유가 없는데.
“일단 주의하되, 적대하기 전에 사정을 살펴봐야겠군.”
[혼돈의 군주 개인의 일탈일 수도 있소.]
“아니, 그러기에는 제우스가 지닌 혼돈의 신기가 거슬려. 웃는 얼굴의 악마는 결국 혼돈의 군주일 뿐이잖아. SSS급 수준의.”
[그렇습니다. 일반 대신보다는 백이 있어서, 좀 더 강하긴 하지만요.]
“위에서의 재가가 없으면 혼돈의 신기를 어떻게 얻겠어? 저번에 보니 야훼도 신기 만드는 데 시간 엄청 공들이던데.”
[자세한 사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EX급 무구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는 건가.
결국 핵심은 제우스가 혼돈과 끈이 있는 것 같고, 헤라도 집어삼켰고…… 올림푸스의 나머지도 죄다 집어삼키려고 한다는 거군.
[발악하는구나. 영혼신. 그래 봤자 끝은 곧 도래한다.]
올림푸스를 싹 다 털고 나왔을 때, 나에게 음산하게 중얼거리던 제우스의 말이 생각났다.
빈집을 공격해서 밑천이 다 털렸음에도 여유가 있어 보였던 제우스.
혼돈의 편이 되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여유다.
녀석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겠어.
“녀석은 근데 왜 침공을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대한 SP를 모으면서. 혼돈의 신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하여간. 그놈의 EX신기. 권능만 많아서…… 내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권능이 풀로 성장해서 5개나 있는 ‘혼돈’.
그에 반해 ‘성장’이라는 권능 하나만 지니고 있는 ‘중립’.
객관적으로 보면 상대가 안 된다니까.
“제우스의 준비가 덜 끝나 아직은 쳐들어오지 않는다지만…….”
직접적으로 안 쳐들어온다고 해도,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도 힘들게 막는 판국.
만약 헤파이스토스나 데메테르의 권능까지 발휘된다면, 인간이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진다.
골치 아프네.
SP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당장 제우스한테 싸우기엔 쓸모가 없다.
아니…….
뭐 쓸모가 없다기보단, 내 그릇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성장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제우스가 줄지 모르겠어.
“김지호 님. 오셨어요?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엘프리안이 다가오다가 날 보고 화들짝 놀란다.
“영력의 힘이 그간 뵙지 못하던 사이에 어마어마해지셨군요.”
“대신으로 승급하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요. SP는 이제 넉넉합니다. 근데 드릴 말씀이라는 게 뭔지?”
“아…… 그게. 여기서 이야기 드리기는 좀 그런데. 장소를 옮겨도 될까요?”
“여긴 엘프리안 님의 영역 아닙니까?”
“원래의 주인을 잊으셨나요? 엄밀히 말하면 빌린 영역이죠.”
그래.
원래는 하데스의 영역이지.
그녀가 말할 게, 그와 관련된 건가.
“좋아요. 어디로 가죠?”
“정령계로 모실게요.”
정령계?
“디아나가 있는 곳이요? 그녀는 잘하고 있나요?”
“예. 원래는 백 년 정도 걸릴 것 같았는데…… 갑자기 SP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서, 일이 좀 더 빨리 진행될 것 같아요.”
엘프리안이 초록빛의 포탈을 연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봉인석을 한 뭉텅이로 들고, 정령계 안으로 들어선다.
오랜만에 디아나를 보는 건가?
정령계 안.
정령계라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녹음이 우거진 숲이었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숲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유기체가 아닌, 반투명한 정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거 하나하나가 다 정령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풍경은 다 숲이네요?”
“이곳이 저의 힘이 미치는 정령계 영역이라 그렇습니다. 제 근원적인 힘과 정체성이 여기 드러난 거죠. 대신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호오…… 이 숲, 꽤 넓어 보이는데.”
힘을 가볍게 발휘하여 주변을 정찰해 보는데, 숲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의 힘으로 둘러봤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상당하다는 뜻인데.
“원래는 더 넓었어요. 제가 힘을 잃어서 이렇게 영역이 축소되었을 뿐이죠. 김지호 님과 디아나 덕에 많이 회복했어요.”
나야 SP를 공급해 줬지만, 디아나도?
내가 의아해하자 작게 미소 짓는 엘프리안.
“그녀가 S급으로의 승급 준비를 하면서, 정령계에 상당한 SP를 사용했거든요. 그러며 이 숲의 세계를 넓혔죠.”
“디아나는 계속 승급 중인가요?”
“예. S급이 되기 위해, 나무 정령을 심고 있죠.”
자신의 영역을 넓혀야 S급이 되는 건가.
SP를 소모해서 되는 거면, 내가 지원해 주면 금방 도달하는 거 아니야?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니, 엘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지금 SP는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에요. 영역을 넓히는 데 있어서 더 이상의 SP는 필요 없습니다. 그녀가 이 세계와 얼마나 동화되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렇군요…….”
“그래도 SP가 충분하니, 90% 이상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나올 거랍니다.”
그렇군.
막상 날짜로 따져보면, S급 승급한다고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어서 길게 느껴졌을 뿐.
어쨌든 금방 나온다니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아까 이야기 드릴 것이…….”
[영혼신. 이 공간, 제우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 같소.]
엘프리안이 말을 하려고 할 때, 봉인석에서 아레스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어? 진짜네.
아까만 해도 봉인석의 색이 잘 안 빠졌는데, 정령계로 오니 색 빠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정령계는 제우스도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장소. 위치 추적이 안 될 겁니다. 맹약으로 인한 연결도 그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죠.]
“호오.”
[이 곳에서 봉인석의 지배를 해제하는 게 낫겠소.]
“이 두 분은……?”
엘프리안에게 지금까지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한다.
봉인석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아테나와 아레스라고 하자, 경악한 표정을 짓는 그녀.
“아테나와 아레스라니…… 올림푸스의 두 전쟁의 신을 모두 사로잡으셨다고요? 명망이 높은 두 전신을…….”
“이제 대신급은 이제 상대가 수월합니다. EX급이 문제죠. 사실, 녀석에게 혼돈의 신기만 없었으면 물량 공세로 어떻게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
혼돈의 신기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권능 덕에 SP 무제한 파워가 빛이 좀 바랜 느낌이지.
“혼돈의 신기라뇨?”
“EX급의 무기입니다. 혼돈 쪽에서 제우스에게 제공을 한 것 같은데, 이게 골치가 아프네요.”
“혼돈 측이 제우스에게 제공했다니…… 그럼 제우스는 혼돈과 손을 잡은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쩐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프리안.
그럴 것 같았다는 표정이다.
“뭐 아시는 거 있으세요?”
“하데스의 움직임이 이상해서요.”
원래는 올림푸스, 특히 제우스를 적대하던 하데스.
그건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라, 엘프리안은 하데스 세력의 비호 아래 케브리안에서 세력을 조금씩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제 권속을 습격하기 시작하더군요.”
“완전히 적대한 겁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것보다는…… 하데스의 언데드 군단이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할까? 서로 싸우기도 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려 들더군요. 하데스에게 항의해 보아도 킬킬 웃기만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요.”
“흠. 얼마 전 그를 봤을 땐 멀쩡했습니다만.”
경매장 때나, 미카엘 공격하라고 했을 때만 해도 좋은 협조자였는데.
며칠 만에 갑자기 바뀐 건가.
“아무리 제우스를 증오하는 하데스라고 하더라도, 혼돈 소속인 이상 그를 도울 수밖에 없는 건가. 페르세포네의 파편에 집착하면서 살벌하게 행동하더니.”
[혼돈의 군주는 결국 대신급에 불과하오. 제우스가 혼돈 소속이 되면, 결국 서열상 밀릴 수밖에 없지.]
혼돈…….
무슨 의도를 지닌 거지?
EX급 신기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군주 같은 SSS급 선에서 줄 게 아니야.
이를 다룰 권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혼돈의 최고신, ‘창조주의 왼팔’밖에 없어.
“창조주의 왼팔…….”
그 녀석이 나를 적대하는 건가.
근데 그럴 거면, 애초에 경매를 못하게 했을 텐데.
아니, 그냥 경매장에서 날 제압했으면 일이 더 쉬웠을 거다.
나에게 그 막대한 SP를 안겨 주고는 제우스라는 적을 키워 줬어.
왜 그러는 거지?
나를 그렇게 크게 도와주고, 왜 제우스를?
“혼돈. 무슨 생각이지……? 나와 제우스의 전력을 서로 끌어올린 셈인데.”
나는 무한한 SP로 강해졌다.
올림푸스 신계를 분신으로 멸망시킬 정도로.
SSS급은 이제 얼마나 몰려온다 한들 내 상대가 아니다.
그냥, SP가 차원이 다르니까.
하지만 제우스는 ‘소멸’로 나의 배리어를 뚫을 수 있으며, 절대 방어가 가능한 ‘추방’도 지니고 있다.
꼭 나를 카운터 치는 것처럼 성가신 권능을 가지고 있어.
소멸과 추방에 내성이 생겼다지만, 제우스가 직접 쓰면 아래 급들이 쓰는 것보다 엄청 세겠지.
이에 대한 내성을 더 키우지 않으면, 그냥 죽을 거야.
물론…… 방법이 없진 않다.
나를 놓으면 된다.
손톱만큼 활용하지 못하는 이 어마어마한 SP를 모조리 받아들인다면…….
이거는 확신할 수 있어.
그의 권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2경 SP를 다 받아들이면, 제우스 정도는 제압한다.
그러면 나 김지호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나도 모르는 존재가 대체하겠지.
그래. 완전한 영혼신이.
완전한 영혼신.
지금 전 우주에서 완전한 영혼신이라고 할 만한 존재는 ‘창조주의 왼팔’뿐이다.
그래. 지금은 왼팔 뿐.
그 다음으로 가능성이 있는 건…….
나지.
“……설마. 그걸 원하는 건가?”
왼팔 새끼. 설마.
날 ‘오른팔’로 만들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