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11화>
영검 진화 (2)
“아스트라페는 제우스가 지구에서 쓰지 않았나?”
[그건 진본이 아니다. 진본은 주께서 전리품으로 남겨 두었지.]
아스트라페.
제우스가 이를 사용했던 과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기 마크처럼 아파트 뽑힌 곳에 꽂혀 있던 절대 신기.
황금색으로 빛나면서도 미세하게 꼬여 있던 뇌전.
삽시간에 확장하더니, 모든 인류를 싹 쓸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가짜였다고?
그 절대적인 힘은 대체 뭐지.
저래서 SSS급 무기구나 싶었는데…….
[제우스는 종교 전쟁에서 우리에게 패했다. 로마는 우리를 배척했지만, 결국 주께 감화되어 우리를 받아들였지. 아카데미아는 문을 닫게 됐고, 델포이의 신탁도 패배를 인정하며 끝을 맺었다.]
미카엘은 그때를 회상하며 눈을 번쩍였다.
[주께서 세계로 뻗어 나실 때, 가장 큰 대적이었던 올림푸스. 그들을 꺾고 난 이후, 우리는 승승장구했다. 물론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여러 종파가 나뉘어져 전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그들의 신앙은 모두 주의 SP가 되었지. 타 신계와의 경쟁을 따지면, 올림푸스는 가장 성가신 상대였다. 그래서 이들이 굴복하자, 주께서는 크게 기뻐하셨다. 그리고 이를 영원토록 기념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제우스의 아스트라페를 받은 건가?”
[그래. 그는 우리에게 굴종했으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스트라페를 바쳤다. 주께서는 이를 전리품으로써 기념하며, 아끼셨지.]
“흠…… 글쎄…….”
아스트라페.
SSS급 무기인 건 좋지만,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영검이 EX등급으로 진화하려는 판국인데, 쓸모가 있을까 몰라.
제우스 면전에 아스트라페 한번 쏴 주면, 녀석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건 결국 잠시의 만족이니…….
내 태도가 그다지 신통치 않자, 미카엘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스트라페는 단순한 SSS급 무기가 아니다. 제우스의 분신과도 같은 무기며, 뇌신으로서의 제우스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들어 있지.]
“흠. 분신이라는 게 단순히 강조하려고 가져다 붙인 게 아니구나?”
[그래. 주께서 말씀하시길, 아스트라페를 통해 제우스의 근간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셨다. 아무리 그가 EX등급이 되었다고 한들, 뿌리는 어디 가지 않는 법이지.]
호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제우스한테 방어막 무시 공격을 휙휙 받아 왔는데, 아스트라페 분석을 통해서 어떻게든 대항의 수가 생긴다면 쓸 만할 것 같아.
“뭐, 그건 접수할 만하네. 인정.”
[그렇다면 질서는 포기하는 건가?]
“흠. 그쪽 신도 EX등급인데, EX등급 상대할 팁 같은 건 없어?”
EX등급끼리 아는 게 있지 않을까?
내 물음에 미카엘이 금방 대답한다.
[일반적인 EX등급이라면 영혼신, 그대가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고 하신다.]
“엥. 그래? 제우스 부하도 소울 배리어 그냥 뚫어 버리던데. 제우스의 힘을 통해서.”
[주께서는 EX등급이라고 해도 그러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네 말대로라면, 그가 혼돈을 얻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는가?]
“혼돈…….”
혼돈.
권능 5개가 있던 EX등급 무구.
하긴, 첫 번째 권능부터가 이름이 ‘소멸’이잖아.
그것도 ‘파괴’에서 업그레이드된.
그 힘이 추가된 거면, 배리어가 종잇장처럼 뚫리는 게 이해가 된다.
[의문은 풀렸는가? 이제 질서를 포기할 수 있겠지?]
“흠. 이 정보 가지곤 부족해. 여기에다가 너희의 완전한 철수도 추가하자. 니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거 받아들이면, 내가 중립을 택하도록 하지.”
[…… 우리에게는 신자들을 구원할 사명이 있다.]
“그쪽 신자들, 내가 영혼 개변으로 다 바꿔 버릴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러자 또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미카엘.
통신 중인가?
그의 표정이 곧 눈에 띄게 안 좋아진다.
[……주께서는 알겠다고, 받아들이겠다고 하셨다.]
“오. 진짜?”
내 뒤통수도 후려갈기면서 신자 빼낼 것처럼 하더니.
이렇게 금방 포기하네.
그럴 정도로 ‘질서’ 제작이 중한가?
[그래…… 주께서 전면 철수를 명하셨다. 거기에 철수 전, 대신 ‘김지호’의 사탄 지정을 취소하고, 그대를 인정하라고 하셨다…….]
“거기에 아스트라페도 주는 거고?”
[그렇다.]
안 좋았던 표정도 잠시.
금세 딱딱한 표정으로 원상 복귀된 미카엘.
절대신이 명령했기 때문일까, 신자에 대한 미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뭐,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래. 계약을 하도록 하지.]
“일단 물건부터 받고 내가 ‘중립’을 택하는 거로 하자. 제우스 보니까 EX등급은 계약도 제멋대로 파기하더라고.”
[……마음대로 해라. 주께서 물건과 계약서를 내리셨으니, 그리로 가겠다.]
“그래. 와라.”
계약을 위해 미카엘에게 집 주소를 가르쳐 줬다.
이 녀석, 너무 스무스하게 다 OK를 해 주네.
이럴 거면 뭘 더 요구할 걸 그랬나?
성가신 놈들 지구에서 철수시키고, 아스트라페 얻었으면 대충 얻을 거 다 얻긴 한 건데…….
저쪽에서 무조건 들어주겠다는 식으로 나오니 살짝 아쉽네.
번쩍.
마루 쪽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온다.
빛이 난 곳으로 가 보니…….
“…… 너. 왜 그 모습으로 있냐.”
아버지의 외양을 한 미카엘이 서 있었다.
“이 모습? 아아. 네가 가장 친숙한 외양으로 왔다.”
능글능글하게 웃는 미카엘.
하…… 이 새끼.
도발하나?
지금 누구 앞에서…… 진짜 쳐돌았구나.
“아수라도 소환.”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꾼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나의 섬, 아수라도.
“여기는……?”
미카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단 주먹부터 날렸다.
“큭!”
쾅!
얼굴에 한 대 처맞고 그대로 훨훨 날아가는 미카엘.
아버지의 모습으로 저리 날아가니, 기분이 더 더러워진다.
이러면 내가 패륜아가 된 거 같잖아?
저 새끼, 진짜 가만 안 둔다.
“갑자기 공격이라니…… 이놈. 대체 왜 이러는가!?”
“너는, 시발. 그 모습으로 쳐 오고 그렇게 물어보냐?”
“크으윽. 네게 가장 친숙한 모습으로 왔건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 미친놈이네, 이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미카엘.
아버지의 얼굴로 저러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째 모습이 연기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러니까 더 빡치네.
인간의 감정을 아예 이해 못하잖아?
“아…… 설마? 아니, 대신의 반열에 올랐는데…… 아직도 속세의 핏줄에 미련을 둔단 말이냐.”
“당연하지. 니는 애비, 애미도 없냐?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야.”
아무리 아버지의 모습을 했다지만, 이 녀석을 응징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퍽. 퍽.
한 대 칠 때마다 저 멀리 날아가는 미카엘.
바로 접근해서 또 후려패고, 후려팬다.
[영혼신. 아수라도에 왔군. 적인가? 도와줄까?]
미카엘을 한참 패고 있자니, 아수라에게서 오는 통신.
몸이 근질근질한지 참전하고 싶은 기색이다.
“아뇨. 미카엘 이 자식은 저만 때릴 겁니다.”
[아…… 미카엘 그 배신자를 잡았는가? 단번에 소멸시키기 아까워서 응징하는 중인가 보군. 그래. 좋은 시간 보내시게.]
그러며 통신을 종료하는 아수라.
그래. 이번 기회에 이 자식한테 배신당했던 걸 완전히 응징해 버려야지.
쾅! 쾅!
“크…… 큭. 알, 알겠다. 바꾸겠다. 모습을 바꾸마!”
몇 번 튕겨나가더니 스르르 모습을 바꾸는 미카엘.
신성한 느낌의 금발 미남 모습으로 바뀐다.
“잘 바꿨네.”
“후…… 인간계에 그렇게 미련이 있을 줄은 몰랐군.”
내가 공격을 멈추자 그때서야 안도하는 미카엘.
자신의 영체를 바라보며, ‘피해가 크군.’ 하며 중얼거린다.
“그래. 아직 미련 투성이거든? 너한테 맞은 뒤통수도 아직 잊지 않았고 말이야.”
내 기세가 심상치 않자, 급히 손을 뻗는 미카엘.
“그, 그 일은 사과하겠다. 나로써도 어쩔 수 없는…….”
“소멸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좀 맞자. 이 새끼야.”
한 번 발동이 걸렸는데 여기서 끝내기는 아쉽지.
뒷말은 듣지 않고 팬다.
금발 미남들.
제우스, 아폴론, 미카엘.
이쪽 계열 놈들이 평소에 하도 짜증 나게 해서 그런가.
때리는 맛이 각별하다.
쾅! 쾅!
내가 조성했던 아수라도의 땅.
운석이라도 맞은 양, 크레이터와 같은 거대한 구덩이가 곳곳에 파인다.
모두 미카엘이 나가떨어지면서 남긴 흔적.
“큭…… 잠…… 깐. 이러다 봉인…….”
“이거 쳐 맞고 봉인된다고? 그런 하찮은 힘으로 감히 날 배신한 거냐? 아오. 이 자식 진짜.”
“컥…… 멈춰라! 아스트라페. 아스트라페를 얻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긴 한데…… 꼭 너한테 받아야 할 이유 있어? 너 말고도 대천사들 많잖아? 가브리엘. 라파엘? 그놈들한테 받아도 되겠네.”
“으으윽……!”
미카엘의 영체가 흐트러진다.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는 하체.
어느덧 상반신만 남아, 애처로이 나에게 끌려 다닌다.
“뭐, 이 정도면 기분이 좀 풀렸네.”
최종적으로 남은 부위는 가슴과 양팔, 얼굴. 날개.
상반신에서도 복부는 사라진 채, 말할 기운도 없이 쳐 맞던 미카엘.
이제 좀만 더 때리면 봉인될 거 같자, 이쯤에서 멈췄다.
“…… 끝났는가?”
힘없이 물어보는 미카엘.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러자 파인 구덩이 속에서 누운 상체를 벌떡 일으켜, 날갯짓하는 미카엘.
십 년은 늙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 살려 줘서 고맙군.”
“기분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몰라. 빨리 물건 주고 철수해라.”
“알았다. 나도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미카엘이 날개 한쪽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열리는 황금색의 포탈.
콰르르르.
천둥소리와 함께 땅에 꽂히는 번개.
예전 제우스가 쓰던 아스트라페와 비슷한 형상인데…….
색이 황금색이 아니라 무지갯빛이었다.
“저거 색이 이상한데? 무지개 같은데.”
“원래 저 색이다. 오색으로 빛나는 영롱한 번개. 아스트라페. 천공의 신 제우스의 절대 신기지.”
“무지개는 일곱 색깔 아닌가?”
“……고대에는 다섯 빛으로 보았다.”
그런가?
뭐, 오색이든 칠색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다음에 나타난 물건은 커다란 석판.
그걸 본 미카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십계명을 기록했던 석판. 이걸 이 계약에 쓰게 될 줄이야…….”
“석판에다 계약하자고? 원시인이냐?”
“십계명도 모르느냐?”
“십계명은 알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런 거 아니야. 근데 이 석판이랑 무슨 상관인데?”
“주의 말씀을 기록하기 위한 특별한 석판이다. 이를 위배하면, 천벌이 일어나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석판에 기록한 모세.
기쁘게 이를 들고 산에 내려왔건만, 유대 백성들이 금송아지로 우상 숭배를 하자 화가 나서 이를 던져 깨 버렸고, 우상 숭배를 하던 이들은 벼락 맞고 죽었다고 한다.
가만 보니 모세 이 양반, 무섭네.
강만 가른 게 아니구나.
“그렇게 쉽게 깨질 정도면 계약 유지 못하는 거 아니야?”
“원래는 깨지지 않는다. 유대의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해서, 십계명을 위배하니 파괴된 것. 그만큼 계약 파기 시 페널티가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녀석의 말을 듣고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나 해서 석판을 살펴봤다.
딱히 봐도 별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군.
내가 석판을 자꾸 분석해 보자, 미카엘이 말한다.
“의심을 품지 마라. 주께서는 너와 엮이고 싶지 않아하시니.”
“나랑? 왜?”
“영혼신이 대신이 된 이상,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폭탄이냐?
그래서 내 전면 철수 요구를 받아들였구먼.
어쨌든 간섭해 오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바라는 바.
“좋아. 계약하자.”
석판에 계약을 진행했다.
먼저 아스트라페를 받고, 천사들이 사탄 지정을 취소하고, 나를 지지한 후에, 철수를 시작.
그러면 내가 중립을 택하고, 천사들은 모조리 철수하기로 했다.
그런 내용이 적힌 한글 석판.
그 끝에 사인을 하자…….
위이이잉.
석판의 한글에서 빛이 들어온다.
[창조주와 계약을 진행합니다.]
[위반시 막대한 페널티를 얻습니다.]
지지지직.
계약이 완료되자 아스트라페가 나에게로 날아왔다.
그대로 몸에 흡수되면서, 메시지가 떴다.
[SSS급 신기, ‘아스트라페’를 획득합니다.]
[‘뇌신’ 스킬이 ‘아스트라페’로 변형됩니다.]
[스킬 등급이 SSS로 오릅니다.]
뇌신 스킬.
예전에 아스트라페의 파편으로 얻었던 스킬이었지.
요즘은 잘 안 쓰긴 하지만…….
SSS등급이 되었으니 한번 실험해 봐야겠군.
그럼 이제, 내가 이행할 차롄가.
영검을 꺼내, 바로 중립을 선택한다.
[영검이 EX급 신기, ‘중립’으로 변화합니다.]
[영체가 변형합니다.]
[권능, ‘성장’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