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10화 (210/240)

<내 상태창 2개 - 210화>

영검 진화 (1)

인벤토리에서 영검을 꺼냈다.

평소와는 달리 전체가 완전히 새하얗게 물들어 있는 영검.

바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영검을 진화시키겠습니까?]

예를 누르자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끝쪽부터 서서히 사라져 가는 영검.

어째 해체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사라지던 영검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새하얀 메시지 창으로 변한다.

그러더니 떠오르는 글.

[영검을 완전히 성장시켰습니다.]

[영체 진화의 실마리를 얻습니다.]

진화?

더 메시지가 나올 거 같아 지켜보고 있자니, 색다른 글씨체가 그 위를 덮었다.

휘갈겨 쓴 글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자였지만, 어째 보기만 해도 무슨 의미인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축하한다. 이 메시지를 본다면, 그대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영혼신이 된 이일 것이다.

슥삭슥삭.

이미 나온 글씨가 지워지더니, 다시 처음부터 작성된다.

-여백이 없으니 짧게 말하겠다. 혼돈의 방식으로 진화하지 마라. 그렇다면, 결국 왼팔에게 먹힐 것이니.

혼돈에 가면 왼팔에 먹힌다니.

혼돈의 절대신 ‘창조주의 왼팔’ 이야기인가?

EX등급을 뛰어넘는, 혼돈 진영의 절대자.

SP 상점의 주인이자, 나와 같은 영혼 계열의 신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기억하라. 혼돈만은 안 된다. 애써 발아한 씨앗을 그에게 헌납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가서는 글씨가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진다.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없어지네.

이 검을 보낸 이의 정체를 알고 싶었는데…….

메시지 창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영검이 EX 등급으로 진화합니다.]

[영검이 영체와 융합되어 사용자의 영체를 진화시킵니다.]

[영검의 진화 방향을 선택해 주십시오. EX 등급으로서의 기본 권능이 주어집니다. 영검의 기본 이름은 선택한 진영으로 정해집니다.]

[질서Order]

[질서 진영의 EX 등급이 될 실마리를 얻습니다. 기본 권능 ‘복종’을 획득합니다.]

[복종]

[사용자가 대상을 복종시킵니다. 복종 대상은 사용자가 속한 행성계의 일원이어야 하며, 사용자보다 등급이 낮아야 합니다. 복종한 대상은 사용자에게 영원히 충성을 맹세하며 종속됩니다.]

질서의 기본 권능은 복종인가.

이건 제우스랑의 전투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입을 다물고 있는 아레스를 실토하게는 만들 수 있겠지만…….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권능은 아니야.

일단 패스다.

[중립Neutral]

[중립 진영의 EX 등급이 될 실마리를 얻습니다. 기본 권능 ‘성장’을 획득합니다.]

[성장]

[사용자의 영체가 성장합니다. 성장을 통해 자신의 영을 보다 더 완전히 제어할 수 있습니다. SP 투자량에 따라 성장의 속도가 달라지며, 성장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영체가 초월합니다.]

성장이라…….

이건 복종보다는 나은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심플한 성능이다.

물론 지금 나는 넘치는 SP에 비해, 자아가 사라질까 봐 전력을 다 못하는 상황이니까.

이거로 영체를 성장시키면 더 나을 수도 있으려나?

흠. 근데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는 미지수란 말이지.

질서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이거도 딱히 눈에 띄는 효과는 없어 보이네.

그럼 아까 메시지 상으로는 절대 고르지 말라고 했던 혼돈.

이건 어떤지나 볼까?

[혼돈Chaos]

[혼돈 진영의 EX 등급이 될 실마리를 얻습니다. 기본 권능 ‘파괴’를 획득합니다.]

[혼돈 진영의 기본 권능이 선구자로 인해서 강화된 상태입니다. 기본 권능이 ‘소멸’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선구자로 인해서 혼돈 진영의 기본 권능이 추가됩니다. 혼돈을 택할 시, 추가 권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추가된 기본 권능이 선구자로 인해서 강화된 상태입니다. 혼돈을 택할 시, 추가 권능의 강화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선구자로 인해서 강화된 상태라고 뜨면서 계속해서 권능이 추가되는 혼돈 계열.

선택하면 알려주겠다고 해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일반 기본 권능이 5개나 추가되어 있었다.

거기에 선구자로 인해서 업그레이드가 된 상태.

아까 메시지만 아니었으면, 그냥 바로 혼돈을 택했을 것 같은데.

사실 지금도 약간 흔들린다.

‘복종’, ‘성장’보다 ‘소멸’이 전투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 같거든.

거기에 아직 개봉이 되지 않은 네 스킬까지.

그 다섯 스킬에 내 SP가 결합한다면, 제우스 제압이 쉬워질 것 같단 말이야.

“에이. 중립 고르자.”

괜히 이리 쫓으려다 범을 부르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제우스 때문에 괜히 혼돈 골랐다가, 혼돈의 절대신에게 집어삼켜지면 그게 무슨 삽질이야.

제우스는 그래도 어떻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혼돈의 신은 무리지.

그래. 중립이야!

세 진화 방향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영검이 띄운 창에는 ……만 뜨고 있었다.

뭐야. 로딩 중이냐?

하염없이 기다린 지 오 분째.

드디어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태양계의 격이 낮습니다. 지구 출신의 신들에게 할당된 EX 등급의 무구는 각 진영당 하나로 제한됩니다.]

뭐 때문에 그렇게 로딩이 기나 했더니, 태양계의 격을 파악하고 있었나?

한 개씩이라니…….

그럼 누가 먼저 골랐으면, 못 고르는 거잖아?

그런 내 생각이 맞다는 듯이 떠오르는 메시지.

[지구 출신의 EX등급 중 하나가 ‘혼돈’을 선점했습니다. 혼돈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지구 출신의 EX등급 중 하나가 ‘질서’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자체적으로 창조하는 중입니다. ‘질서’의 완성도는 33%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용자는 ‘질서’를 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자는 ‘질서’, ‘중립’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혼돈을 선점하고 있다고……?

누구지?

지구 출신의 EX 등급이면…….

제우스. 야훼.

부처도 깨달음에 들었다고 하니, 그도 포함시켜야 하나.

하지만 느낌상 완전히 해탈을 해 버린 것 같고.

제우스나 야훼 중에서 있을 거 같다.

“이거, 골치 아프네.”

제우스가 뭘 지녔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행동 방침이 완전히 바뀐다.

만약에 ‘혼돈’을 지니고 있다면…….

각종 파괴의 권능을 지니고 있을 테니, 싸움은 최대한 피하면서 성장을 충분히 한 후 대항을 해야겠지.

근데 ‘질서’를 만들고 있다면, 그거 완성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할 거다.

질서의 기본 권능, 복종.

자기보다 낮은 등급의 대상을 완전히 복종시키는 권능.

나한텐 별로 쓸모가 없지만, 제우스는 나보다 높은 EX등급이니 문제다.

EX등급과 SSS등급 간에는 등급차가 있으니, 까딱하다간 녀석에게 충성 맹세를 하게 될지도.

“안전하게 질서를 택할까?”

질서를 택하면 복종당할 염려는 없어지겠지.

어차피 나랑 둘이랑 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누가 완성시켜도 날 복종시키려 들 거야.

33%가 100%가 되서 ‘질서’를 완성하기 전에, EX등급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겠어?

최악을 면하기 위해서는 질서가 맞는데…….

“……스쿨드의 예지 능력인가.”

감이 온다.

질서를 택하면 안 된다는 감이.

이거를 선택했다가는 결국 패배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악을 면하려고만 해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건가?”

질서가 안전한 선택인 건 맞는데, 모든 경우에서 최선의 수는 아니다.

제우스가 혼돈을 지니고 있을 때는, 결국 전투에는 쓸모없는 권능을 지닌 질서보단 성장하는 중립이 쓸 만할 테니까.

“반대로, 제우스가 질서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면…… 질서를 택하는 게 맞지.”

결국 반반 확률.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감’이 질서는 야훼가 제작 중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결정이 쉽지 않군.

흠…….

그래.

한번 찔러볼까?

“미카엘과 통신 연결.”

과연 받을까?

지금 한참 하데스의 혼돈 패거리가 천사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일 텐데.

역시 받지는 않는다.

“통신 연결.”

그래도 10번 정도는 시도해 봐야지.

통신이 끊기면 다시 연락하고.

또다시 연락하기를 반복한다.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혼돈을 소유 중이면, 하데스가 공격은 하지 않았겠네.”

아무리 내가 거액의 SP로 꼬셨다 한들, 자기 진영 EX 등급 부하에게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따지면 예지 능력이 맞는 건가?

7번째 연결을 해본 결과…….

[……무슨 일이냐. 영혼신.]

“어. 받네.”

통신 화면에서 나타난 미카엘.

근엄한 빛의 천사가 나를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배신 때린 건 그쪽인데,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네.

[……혼돈의 존재를 이용하다니. 사악하기 그지없구나. 그렇다고 상황이 바뀔 것 같으냐? 주님의 군단은 불멸. 우리는 죽고 죽어서도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사악한 건 너네지. 이 새끼야. 배신한 주제에 염치도 없네. 너랑 이런 쓸데없는 거로 입씨름할 시간은 없고. 네 주인한테 이 말이나 전해 줘라.”

[뭐? 감히 주를 능멸하려고…….]

“EX등급 무기, ‘질서’.”

[무슨 소리냐?]

태연하게 반문하는 미카엘.

모르는 건가?

녀석도 결국 창조주의 사도신에 불과하니, 모를 수도 있겠지.

“네가 모르면, 주인에게 전해라. 혼돈의 주인은 정해졌고, 질서는 누군가 열심히 만들고 있던데……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네놈…… 무슨 꿍꿍이를…….]

“머리 굴리지 말고 일단 전해 봐. 딱히 대답이 없으면, 그냥 질서 골라야지. 어떤 창조주가 열심히 만들고 만들어서 33% 완성시켰다고 하던데, 중간에 낚아채면 참 기분이 좋겠어. 그지?”

내 말에 미카엘이 입을 다물더니, 가만히 있는다.

내 이야기를 전하는 건가?

통신을 끄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미카엘.

그 모습이 마치 로봇 같다.

“아. 혹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네가 질서의 EX신기를 가진 것과, 내가 제작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혹시 네 주인이 모를 수도 있으니 첨언하자면, 태양계 수준이 낮아서 EX등급의 신기는 각 진영당 하나래. 내가 질서 가지면, 그건 쫑 나는 거지.”

[……주께서도 다 알고 계신다. 그만 이야기하라, 영혼신.]

한숨을 푹 쉬는 미카엘.

눈에 쌍심지를 키던 조금 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영혼신. 주께서 뭘 원하는지 물어보신다.]

“어. 바로 인정하네? 발뺌 좀 할 줄 알았더니.”

[주께서 ‘혼돈’을 택하셨으면, 혼돈에게 습격을 당했겠는가? 그런 전후 사정을 다 파악하고 나에게 통신을 한 것 아니겠는가. 굳이 뻔히 사정을 아는데, 어떻게 발뺌하겠는가?]

뭐 그렇게 철저하게 계산해서 연락한 건 아니었는데.

연락하다 보니 생각이 났을 뿐.

하지만 굳이 저렇게 말해 주는데 부인할 필요는 없겠지.

“뭘 원하냐고?”

나는 그냥 이쪽 진영이 질서 신기를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먼저 저쪽에서 저자세로 뭘 원하냐고 나오네?

EX등급의 신기가 급하긴 급한가 봐.

“그쪽에서 먼저 제시해 봐. 아버지 가지고 장난친 거 잊진 않았지? 내가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는 걸 감안해서 말이야.”

그 일만 생각하면 EX 무기 ‘질서’를 그냥 확 가져가고 싶을 정도.

자꾸 중립을 선택하라는 확고한 감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녀석들의 절망을 위해 질서를 택했겠지.

또다시 통신 중인지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미카엘.

잠시 후 말문을 연다.

[네 사탄 지정을 취소하고, 모든 신자에게 널 믿으라고 하겠다.]

지구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야훼의 신자.

김지호가 신이라는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에는 아주 큰 도움을 주었지만, 대신 신자들이 날 적대하게 되었지.

적대감이 있는 상태라면 각성자로 만들거나 할 때 속도가 느려지니, 나쁜 제안은 아니다.

하지만 저거 하나 가지고 바꾸기에는 택도 없지.

사실 좀 느릴 뿐, 결국 기독교 신자들도 영혼을 주무르는 건 가능하니까.

일이 조금 수월해지는 정도지.

“겨우 그거 가지고? 또 없어?”

[……주께서는 새로운 천지창조로 인해 지구에 거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그걸 감안해 다오.]

“일단 복종의 권능을 지구에서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주께서 ‘질서’를 제작하는 데 몇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33%인데…… 앞으로 수백 년이 더 흐른다면, 지구는 완전히 네 영역이 되어 있겠지. 제우스의 것이 되거나.]

“그렇게 오래 걸려? 그래도 일단 명문화하고. 자. 다음엔 내가 만족할 만한 걸 제시해 봐.”

그러자 얼굴을 잠시 일그러뜨리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미카엘.

생각지도 않는 부수입을 얻게 되는군.

수백 년 동안 제작하던 장기 프로젝트라 그런가.

미카엘은 협상에서 철저히 을의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이건 어떻겠는가. 제우스가 우리에게 항복하면서 바쳤던 그의 신기. 아스트라페를 주지.]

아스트라페?

그거…… 예전에 제우스가 쓰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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