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09화 (209/240)

<내 상태창 2개 - 209화>

설득, 회유 (3)

“올림푸스의 왕?”

“그래. 아버지 제우스는 원래 이렇게 말했었지. 내가 창조주가 되면, 너와 아레스…… 둘 중 하나가 올림푸스를 책임지라고. 둘의 공헌도를 따져서 더 큰 쪽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준다고 했다.”

“다른 신들은?”

“그들은 왕의 후계로 인정받지는 못했지. 인정받은 것은 나와 아레스, 둘뿐이었다. 결국 둘 다 이런 처지가 되었지만…….”

아레스의 봉인석을 슬쩍 바라보는 아폴론.

두 후계자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군.

“한 명은 제우스한테 힘이 빨리고, 남은 한 명도 버렸으니. 후계자는 그냥 허울뿐인 이야기였나.”

“글쎄…… 한때는 정말로 후계를 정할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SP 수입이 크게 제한되면서, 생각을 바꾼 거겠지.”

제우스의 SP 수입 제한.

나 때문에 시스템 페널티로 받았었지.

그게 아폴론과 아레스한테 불똥이 튄 건가?

“영혼신. 나를 올림푸스의 왕으로 만들어 다오.”

“내가 어떻게 만들어 주냐?”

“그대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다. 세 가지만 해 다오.”

손가락을 세 개 펴는 아폴론.

“첫째로, 천억 SP를 지원해 다오.”

“천억? 겨우 그거로 되겠어?”

“……더 주면 좋고.”

자신만만하던 목소리가 미약해진다.

뭐, SP야 하는 거 봐서 더 지원하면 되니까.

지금의 나한테 천억, 이천억 SP는 만 원 주냐, 이만 원 주냐의 차이다.

“둘째로 제우스를 잡되, 올림푸스는 멸망시키지 말아 다오.”

아폴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올림푸스에서 아테나도 나에게 협력하고 있고, 이미 지금 신들도 많이 죽어 나갔는데…….

제우스만 잡으면 굳이 멸망시킬 필요는 없겠지.

“그거야 뭐. 제우스만 조지면 올림푸스야 상관없지.”

“마지막으로는 아르테미스를 측실로 받아들이고, 나를 올림푸스의 왕으로 임명하겠다고 공표해 다오.”

“뭐? 측실? 뭔 측실이냐?”

“측실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안 드는가? 후궁이라고 정정하지.”

“……내가 왕이냐?”

“야. 갑자기 난 왜!?”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아르테미스가 갑자기 놀라 물어본다.

나도 황당하다.

후궁이라니, 21세기에 무슨 후궁이냐?

“제우스를 없앤다면, 태양계의 주인은 그대가 되겠지. 그렇지 않은가?”

“주인까지야. 그래도 태양계 내에서는 적수가 없겠지.”

“그게 그 말. 누가 감히 창조주를 꺾은 영혼신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와 인척이 되면 그 어떤 신이 나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러니 간단히 말하자면, 제우스를 이기면 내가 태양계 짱 먹을 테니까 동생 덕 보면서 올림푸스의 왕위를 가지겠다는 건가?

아폴론 이 자식…….

지금이 중세 시대도 아니고.

누이 팔아서 왕이 된다니, 자존심도 없나.

뭔 생각인 거야?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하자, 갑자기 메시지창이 떴다.

[대신 아폴론의 영체 SP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신 아폴론의 생각을 읽겠습니까?]

아폴론이 다시 살아난 건 전적으로 내 SP 투자 덕분.

그래서 내가 타 대신계의 신들을 자폭시켰던 것처럼, 생각도 읽을 수 있는 건가?

예를 누르자, 아폴론의 생각이 들리기 시작한다.

“영혼신. 아르테미스가 그대의 정부로는 부족할지 모르나, 후궁의 자리 한편은 차지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아르테미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나머지는 네 몫이겠지.

“왕이 되려면, 그대의 인정이 필요할 터.”

-1천억 SP를 받는다면 나의 힘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공표를 하면 차마 올림푸스를 멸하지는 않겠지.

아르테미스에 대한 걱정.

내가 올림푸스를 멸망시키려 들지 않을까 드는 두려움.

제우스에 대한 원한.

세 가지 감정이 아폴론의 머릿속을 교차하고 있었다.

올림푸스의 왕위에 대한 권력욕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생각보다 정신이 멀쩡하고, 욕심이 없군.

제우스에 대한 원한보다도, 오히려 가족과 고향 올림푸스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대단한데……?

그때 갑자기 말문도 열지 않았는데 들리는 생각.

-한데 영혼신, 아르테미스를 지금까지 그대로 놔두다니…… 정말로 이상하군. 아름답기로 이름 높은 아르테미스인데. 지금도 그 미모는 여전하거늘…… 혹시 여자보다는 남자가 취향인가?

이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균형 잡힌 시각이 아쉽지만, 그리스의 미를 아는 자군. 미소년은 언제나 옳지.

그러면서 짧은 시간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는 아폴론.

수없이 많은 미소년들이 그의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 씨…….

나 여자 좋아하는데.

왜 이런 오해를 하고 있지?

그리스 신들은 미소년도 사랑한 케이스가 많다더니, 이놈도 그런 건가?

-아아. 그에게 진상할 미소년은 모두 사라지고 없구나. 흠…… 차라리 내가……? 한 몸 희생할까. 소년화하여?

그러더니 나를 힐끗 쳐다보는 아폴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아니, 그러느니 다시 죽겠다. 아름답지 못한 이와는 사랑을 나눌 수 없어.

이 새끼가.

지금 외모 품평한 거지?

아르테미스가 했던 것처럼 던져 버릴까 하다가, 녀석이 죽을 거 같아서 참았다.

-그렇다면…… 신들 중에서 생각을 해 보자. 신 중에서는…… 흠. 가니메데?

아폴론의 머릿속에서 추가되는 형상.

금발의 미소년이 술잔에 키스하곤, 제우스에게 잔을 진상한다.

이 잔을 제우스가 받아들여 바로 마시는데, 그 얼굴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허. 이놈들은 뭐 하나같이……

-근데 그 녀석은 이미 제우스한테 먹혔을 테니 없겠고…… 그럼. 다른 녀석들 중에…….

하나둘 미소년들을 떠올리더니, 점점 상상이 더러워지는 아폴론.

지금 눈앞에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데, 뒤에서는 이런 남색이라니.

으으.

더 이상 생각을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역해. 너무 역해!

“세 번째 제안은…… 음. 유보해 두지.”

“그런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납득하는 아폴론.

“뭐가 역시냐.”

“아르테미스가 아직도 처녀신이라는 걸 듣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남성을 좋아하는가?”

“야. 아니거든?”

“애써 부인하지 않아도 괜찮다. 영혼신. 그대는 한 차원 더 높은, 고결한 사랑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를 따르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소년애는 완벽한 사랑이라고 찬양했었지.”

“아. 닥쳐. 난 여자가 좋아.”

“그럴 리가.”

그러면서 아르테미스를 바라보는 아폴론.

네가 정말 여자를 좋아하면, 쟤를 그대로 내버려 뒀겠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 올림푸스 놈들.

진짜 난봉꾼 천지라더니,

“지금은 제우스 상대하기 바쁜데 여자랑 놀아 재꼈겠냐? 다 끝나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라.”

“흠. 알겠다. 그 조건은 유보하도록 하지.”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아폴론.

눈빛이 영 미심쩍어서 생각을 읽을까 하다가, 또 더러운 것을 볼까 봐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 지금부터 그대에게 협력하겠다. SP를 먼저 건네줄 수 있겠는가?”

“그래.”

정보료로 500억.

첫 번째 조건으로 1,000억.

1,500억을 건네주자, 아폴론이 내 손가락에서 훌쩍 뛰어오른다.

그러더니 황금색 빛을 발하더니, 금방 쑥쑥 커져 가는 그의 영체.

눈 깜짝할 사이에 나와 사생결단을 벌였던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으음. 정말 이렇게 간단히 SP를 주다니. 대단하구나.”

“SP는 차고 넘친다. 자. 이제 힘을 회복했으니, 아프로디테의 권능을 어떻게 막을 건지 이야기해 봐.”

“간단하다. 나는 이성理性을 관장하고, 아르테미스는 순결을 관장하지. 둘을 조합하면, 육욕을 없앨 수 있다.”

아폴론이 손으로 원을 그리자, 허공에서 지구가 뜬다.

“일단은 인간들에게 당분간 성교가 불가능하다고 알려라. 음주 사태처럼, 죽을 수도 있다고 머리로 경각심을 주는 거다. 그래야 나의 이성이 파고들기 쉬워진다.”

“그거야 뭐. 한시적으로 참아야 한다고 해야지.”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권능은 겨우 이성적인 생각으로 멈추지 않을 터. 아르테미스의 힘으로 성욕 자체를 아예 쪼그라들게 만들어야 한다.”

“음…… 다들 고자가 되는 거냐?”

“육체적으로 가능은 하다. 정신적으로 욕구를 아예 사라지게 만들 뿐이지. 애초에 애무만 해도 영혼이 빠져나가는데, 성기 작동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치 않아. 의지가 없어야지.”

아폴론이 띄운 지구가 자전한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지구본.

“마침 우리는 해의 신이자, 달의 신. 지구 전역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을 통해 권능을 뿌릴 것이다.”

지구 전역에 24시간 동안 고자빔을 뿌리는 거군.

괜찮네.

올해 출생자는 대폭 줄겠지만, 제우스를 조지기 전의 한시적인 조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부탁 좀 하지.”

“아프로디테의 권능이 막히면, 다음 단계는 역병. 그것은 원래 내가 관장하던 권능이었으나, 저번에 아버지 제우스에게 내 힘이 흡수되었으니 그가 시행하겠지. 그건 내가 막겠다.”

아폴론 이 자식은 권능이 몇 개야?

어쨌든 그 덕분에 2단계, 3단계는 확실히 막을 수 있겠군.

든든하네.

“이 과정에서 혹시 SP가 부족하게 된다면, 지원을 요청하겠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보던 아폴론.

나에게 말한다.

“이제 감옥에서 풀어 주는 게 어떠한가? 아무리 감옥이라 해도 그렇지, 너무 비좁군.”

“여기 내 집이다.”

“……? 내가 덜 회복되었나 보군. 네 말이 집으로 왜곡되어 들린다. 이런 닭장 같은 곳이 집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단언하는 아폴론.

영체를 회복한 녀석의 몸이 워낙 커져서,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니 좁게 느껴질 만도 하다.

“아르테미스. 그냥 새로 짓고 있는 신전으로 보내.”

“어. 알았어.”

“그리고 일 처리 과정 좀 알려 주고. SP 부족하면 언제든지 지원 요청해.”

“응. 아폴론, 가자.”

“영혼신은 아레스를 고문하려나 보군. 알겠다.”

여전히 여기가 감옥이라고 알고 있는 아폴론.

“아폴론. 가서 이야기 좀 해.”

포탈을 연 아르테미스.

아폴론을 사납게 노려보더니, 먼저 포탈에 들어간다.

그러자 어깨를 으쓱인 아폴론.

포탈에 들어서기 전, 나에게 말한다.

“내 누이가 기가 드세 보이지만, 외강내유의 성격일 뿐. 그대라면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하…… 그 이야기는 제우스부터 처리하고 하자.”

“그래. 그게 먼저지. 그럼…… 아레스에 관해서 미리 충고하자면, 그의 의지는 고문으로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다. 특히 그의 어머니 헤라에 관해서는 더더욱.”

헤라를 언급하는 아폴론.

그러고 보면, 제우스도 아레스랑 싸울 때 헤라를 언급했지.

별로 우호적인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제우스가 아레스를 봉인할 때 헤라를 언급하더군. 무슨 관계지?”

“나도 그쪽에 관련해서는 잘 모른다. 헤라는 날 싫어하거든. 아레스의 왕좌를 위협한다고.”

서서히 포탈에 몸을 맡기는 아폴론.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말을 남긴다.

“다만, 그녀는 올림푸스 모든 신들과 제우스 간의 계약을 대행한 주체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레스가 알겠지.”

그 말을 끝으로 포탈이 사라진다.

헤라 건을 알기 위해, 아레스도 설득해야 하나?

녀석의 봉인석을 바라본다.

아폴론과 이야기할 때는 파장이 좀 느껴지는 것 같더니, 지금은 조용한 봉인석.

흠…….

아폴론처럼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데.

“아레스. 너도 아폴론처럼 협력하면 어때? 올림푸스의 왕 자리. 경쟁하게 해 줄게. 아니면 신계 하나 새로 만들어 줄까?”

내 말에도 전혀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봉인석.

몇 번 더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답은 없다.

얘도 아폴론처럼 살려?

그러다가 갑자기 제우스 튀어나오는 건 아니려나.

이 녀석은 흑뢰로 감겼으니…….

제우스를 좀 상대할 만해야 부활시키겠는데.

“제우스…….”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금방 안 찾아지는 게 문제지만.

나와 아레스의 싸움을 복기해 본다.

분신이 펼치던 소울 배리어를 종잇장처럼 뚫던 공격.

내 공격은 죄다 피해 먹히지도 않았었지.

아무리 분신이었다고는 해도, 너무 무력한 싸움이었다.

그냥 숫자로 밀어붙인 거에 불과했을 뿐.

“창조주의 힘, 골치가 아프군.”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인벤토리와 스킬을 한번 쭉 둘러보다 보니, 영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아레스 무기를 부수고 승급 조건을 충족했다고 했지.

“좋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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