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08화>
설득, 회유 (2)
“아폴론. 나 기억 나냐?”
“……네놈. 영혼신인가. 그때와는 완전히 존재감이 다르군.”
녀석, 기억은 남아 있나보네.
하나 확인해야겠군.
“제우스한테 죽었던 기억도 남아 있냐?”
“큭…….”
내 말에 이를 악 무는 아폴론.
그 모습을 보아하니 제우스에게 죽은 기억도 있는 거 같군.
“어찌하여 날 살려 냈느냐.”
“나랑 협력하자고.”
“내가 너랑……? 나를 기만하느냐? 원수인 너와 무슨 협력을 한단 말이냐.”
“내가 왜 네 원수냐? 먼저 싸움 건 것도 너희고, 더구나 널 죽인 건 제우스인데?”
나는 손으로 아레스의 봉인석을 가리킨다.
“제우스는 널 버렸듯이, 아레스도 버렸어. 그 녀석, 오히려 올림푸스의 대신들이 죽는 걸 방조하는 느낌이야.”
“…….”
“뭐 짚이는 거 없냐?”
아폴론이 대답없이 두 눈을 감는다.
아레스도 그렇고.
뭐 물어보면 침묵을 지키네. 둘 다.
“제우스랑 비밀 유지로 서약이라도 한 거냐? 하지만 널 죽였으니까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것일 텐데.”
“……그렇다만. 확신할 수는 없다. 또다시 영혼 조각이 될 지도 모르지.”
“영혼 조각? 그거 되면 다시 살리면 되지.”
“무슨…… 그게 말처럼 쉽겠는가?”
“자식아. 널 살린 게 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영체를 다시 재구성했을 리가. 분명 SP가 들었겠지?”
“그래. 좀 들어갔지. 1%당 5억씩.”
“1%당 5억이라니…… 어마어마한 소모량이군. 그렇게 많은 SP를 쓴 이유는 분명, 나의 정보를 얻고 싶어서겠지.”
손가락만 한 놈이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이야기한다.
“내가 말했다가 맹약에 위배되어 다시 영혼 조각이 된다면…… 네가 그 SP를 감수하고 날 다시 살릴까? 그렇지 않겠지.”
불신에 잠긴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폴론.
물론 적으로 만난 사이니만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나도 예전처럼 SP가 궁핍했다면 아까워서 다시 살리진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1%당 5억 SP가지고 이러냐? 쯧쯧. 나 SP 많아.”
“그래도 최대 500억을 쓸 대신은 세상에 없지.”
“아니, 그런 신 여기 있어.”
SP 거래소의 지분을 팔아 거액을 챙겼다고 이야기하지만, 자꾸 불신의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폴론.
아오.
조그만 놈이 자꾸 날 어떻게 믿느냐고 뻗대니, 확 주먹을 움켜쥐고 싶다.
이 녀석 때문에 그때 전투에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더 그래.
하지만 제우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신은 지금 이 녀석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믿음이 갈까…… 아, 그래.
“아르테미스.”
[어. 왜?]
“안 바쁘지? 잠깐 우리 집으로 와 봐.”
[알겠어.]
아르테미스 말은 그래도 믿지 않을까?
내가 통신을 끊자, 아폴론이 날 노려본다.
“……녀석이 남자의 집에 저렇게 바로 들어오다니.”
“뭐 그럼 어디서 봐.”
“네놈, 역시…… 그녀를 사도화한 이유가 있구나. 뭘 보여 줄 셈이냐?”
“보여 주긴 뭘 보여 줘. SP가 많은 걸 증언시키려고 데려오는 건데.”
내 말은 이미 들리지 않는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아폴론.
분노한 듯, 손가락만한 영체로 태양의 권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살아난 지 얼마 안 돼서 SP도 없을 텐데 무리하네.
“큭…… 아르테미스를 데리고 무슨 광경을 보더라도, 네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자식.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 또 헛소리하네. 아폴론 말은 신경 쓰지 마. 김지호.”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가 나타나 아폴론을 흘겨본다.
그러더니 마치 보란 듯이 내 팔짱을 끼는 그녀.
이 녀석, 평소답지 않게 왜 이렇게 다가와?
“진짜 아폴론 살려 줬네?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하고 있었구나. 역시 우리 주신이셔. 헤헤헤.”
“뭐, 이제 SP는 넘치잖아. 근데 이 녀석이 뻗대고 있지.”
“아폴론이 워낙 의심이 많아서 그래. 내가 잘 설득해 볼게.”
아르테미스가 손을 뻗자, 아폴론이 이를 피해 훌쩍 뛰어오른다.
“시끄럽다. 아르테미스. 영혼신의 사도가 된 네 녀석 말 따위, 믿을 거 같으냐?”
“아. 살려 주면 고마워해야지. 태도가 왜 이래?”
“명색이 처녀신이었던 여신이 알랑방귀 뀌는 꼴이라니. 내 올림푸스의 일원으로서 부끄럽구나.”
“……뭐?”
“아무리 처녀신을 버리고 영혼신의 여자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마저 굴복하다니. 쯧쯧. 이래서 사도화를 하지 말라고 했거늘…….”
“무슨 소리야! 아직 나 처녀신이거든!”
얼굴이 시뻘게진 채 소리를 빽 지르는 아르테미스.
그러자 아폴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찬다.
“허. 그럴 리가. 남신이 사도가 된 처녀신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아르테미스여. 네가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처녀신에서 벗어나니, 연기도 늘었구나.”
“아. 진짜. 아니라고. 순결하다고. 아주 깨끗하기 그지없다고! 접촉한 것도 이 팔짱이 전부야!”
“피식…… 애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 진짜.”
휙.
아폴론을 주먹으로 확 쥔 아르테미스.
그가 발버둥 치기도 전에 벽으로 던져 버린다.
아니, 저거 던져 봤자 어차피 영체라 통과될 텐데…….
쾅!
하지만 벽에 닿자 굉음을 내며 튕겨 나가는 아폴론.
아르테미스가 친 건지, 벽이 푸른빛으로 코팅되어 있었다.
“이 자식. 뭐 하는 짓이냐!”
“아우. 안 그래도 완벽하게 순결한데, 더 열 받게 하네.”
쾅! 쾅!
아폴론을 공처럼 벽에 마구 던져 대는 아르테미스.
스쿼시 하듯이 벽에서 튕겨 나오는 걸 잡아 계속해서 던져댄다.
“큭…… 이…… 이런다고 속지 않는다…… 타락한 처녀신아…….”
“그래. 그냥 죽어. 죽어.”
아폴론을 감싸고 있던 빛이 점차로 줄어든다.
언제는 아폴론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더니…….
기껏 살려 놨더니 저러다 진짜 죽게 생겼네.
“아르테미스. 멈춰. 진짜 소멸하겠다.”
“하아. 이거 완전 꼴통이야. 누이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씩씩거리면서 물러나는 아르테미스.
아폴론의 영체를 살펴보니, 아까보다 더 작아진 채 있었다.
손가락만 하던 게 손톱만큼 줄어든 상태.
빛도 희미해진 게, 진짜 죽음이 목전인 것 같다.
“아폴론, 거래를 하자. 네가 페널티를 받든 안 받든 상관없이 살려 주겠다.”
그러면서 아폴론에게 SP 거래를 신청한다.
“이게 무슨…….”
“일단 승낙이나 해 봐. 손해 볼 건 없잖아?”
“그건…… 그렇지.”
떨떠름해하던 그가 승낙하자, 열리는 SP 거래창.
거기에 턱 하니 SP를 올려놓는다.
1,000,000,000,000.
1조의 존재감이 휘황찬란하다.
그 숫자를 보고 눈을 껌뻑이는 아폴론.
“어…… 잠깐. 0 숫자가 비현실적이군. 영혼신. 이제 거래창을 조작할 수도 있는 거냐?”
“1조밖에 안 되는 데 뭐가 비현실적이야.”
“그럴 리가…… 거래창에 숫자를 마음대로 넣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러더니 아폴론 측 SP 숫자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310,333.
쭉 올라가더니 여기서 멈춘 SP.
전 재산이 30만대구나…….
거지네. 거지.
“30만이라니. 정말 죽기 직전이었구먼.”
“큭…… 아니. 나는 안 되게 조작한 건가?”
“무슨 거래창을 조작하냐? 헛소리는 그만하고. 이것도 내 재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아르테미스. 저번에 너한테 얼마 줬지?”
“1000억. 내 평생 그렇게 많은 SP는 처음이었어.”
“대신급 사도신에게 가볍게 뿌린 SP가 천억이다. 그 이하는 100억씩 부여했고.”
“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아폴론.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 정도 SP가 있다면, 왜 창조주급으로 올라서지 않지? 아버지 제우스는 네 재산의 극히 일부분만 가지고도 EX등급에 올라섰는데.”
“글쎄다. SP는 넘쳐 나는데 창조주로 올라서는 건 아예 실마리도 잡히지 않아.”
“흠…… 영혼신 클래스라 그런 것인가? EX등급이 안 된다고 해도, 그 SP라면 충분히 아버지를 이겨 낼 수 있을 텐데.”
“소울 배리어를 그냥 뚫던데. SP가 많다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닌 거 같더군. “
”그런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아폴론.
그러다가 금방 계산이 끝났는지, 나에게 말한다.
“사실 나도 많은 부분을 알지는 못한다. 아버지는 일을 비밀스럽게 진행하셨지. 내가 아는 사실은 극히 일부분이다.”
“흠. 그래?”
“그렇다. 그럼에도 괜찮다면, 정보료를 받지. 그리고 듣고 난 후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서약해 다오.”
거참 조심스럽네.
그래도 아까처럼 완강한 태도는 아니니…….
그와 서약을 진행했다.
“정보료로는 500억을 주고, 아폴론을 죽이지 않겠다. 다만, 이 SP가 제우스에게로 흘러갈 경우, SP는 박탈될 것이다. 그리고 너도 내 사도가 되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제우스는 적대해 줘야겠다.”
“…… 그래. 당연하지. 아스가르드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나의 목숨을 빼앗았던 아버지다. 당연히 적대해야지.”
시스템에 걸고 맹세가 끝나자, 아폴론이 나에게 말했다.
“정말 내가 가진 정보라고는 보잘것없는데, 500억이나 주다니. 미안할 지경이군.”
“괜찮아. 내겐 500억도 보잘것없을 정도니까. 정보가 쓸 만하면 보너스로 500억 더 주지.”
“…… 허. 대단하구나.”
부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아폴론.
잠시 아르테미스 쪽을 바라보더니, 나에게 질문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지? 아레스가 봉인구에 있는 걸 보면, 대신계 침공은 실패한 것 같고.”
“침공은 잘 막았지. 다만 지구는 술 때문에 난리다.”
“술…… 디오니소스의 권능인가.”
술 이야기를 하자마자 바로 디오니소스 이야기를 꺼내는 아폴론.
뭔가 아는 눈치다.
“그럼 아직은 1단계에 불과하군.”
“다음도 있어?”
“당연하지. 다음에는 아프로디테의 권능을 사용할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권능?”
“그래. 사랑과 미의 권능. 이제 모든 이들은 이성을 더 매력적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주체를 못하게 되겠지.”
“…… 뭐? 뭔 소리야.”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 대대적으로 발정 난단 소리다. 짐승들처럼 말이지.”
아니, 발정 난다니…….
황당하군.
아폴론의 진지한 눈을 보아, 농담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남녀가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술 먹은 것이랑 똑같다. 영혼이 빠져나와, 올림푸스로 귀의하는 거지.”
“허. 한 번 하면 그냥 승천하는 건가……?”
“각성자라면 좀 더 견디긴 하겠지. 그래도 미봉책일 뿐이다.”
와. 금주령에 이어, 성교 금지령도 내려야 하나?
골 때리네.
내가 머리를 벅벅 긁자, 날 보고 피식 웃는 아폴론.
“왜 그리 고민하지?”
“그럼 고민 안 하냐? 술도 지금 겨우 막아 가는 판국인데…… 밤일을 어떻게 막아? 에휴. 남녀를 갈라서 놔야 하나…….”
“남녀를 갈라놓아도 소용없다. 그럼 동성을 사랑하도록 하면 되거든. 아프로디테를 너무 얕보는구나.”
“…… 성교해야만 쓰러지는 게 아니었어?”
“처음에야 그렇지만, 권능이 점점 강해지면 애무만으로도 영혼이 빠져나갈 거다. 인간으로선 극락을 맛보고 승천하는 거지. 만지는 거야 동성도 가능하지 않느냐?”
사랑의 권능도 업그레이드되는 건가?
하긴, 지금도 술의 마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상태.
아프로디테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하. 씨…….
“이건 또 어떻게 막아?”
내가 한탄하자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아폴론.
“막을 수 있다. 조건이 붙지만.”
그러면서 아르테미스를 쓱 본다.
“아르테미스, 정말 처녀신 맞나?”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야. 아폴론!”
옆에서 소리치는 아르테미스.
그러자 아폴론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영혼신은 무한한 SP를 지니고 있고, 아르테미스. 너는 순결의 신이지. 네가 정말 아직도 처녀신이라면, 그 힘으로 아프로디테에게 대항할 수 있어.”
“아……? 그래? 그런 수가 있어?”
“처녀신이 맞다면 가능하다.”
“맞아. 맞다고, 이 자식아. 그만 좀 물어봐.”
이제는 으르렁거리기까지 하는 아르테미스.
후. 안 건들길 잘했네.
“정말인가 보군.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래. 확실히 처녀신이니까 그만 물어보고. 어떻게 그녀의 권능을 사용하면 되지? 그냥 SP만 지원하면 되는 건가?”
“저 권능에 대항하기 위해선 나의 힘이 필요하다. 그건 우리의 계약 조건에 포함되지 않았지. 난 정보를 주기로 한 거니까.”
“너…… 원하는 게 있나 보군?”
“그래.”
아폴론이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툭 쳤다.
“날 올림푸스의 왕으로 만들어 다오. 그럼 너를 전폭적으로 돕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