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07화>
설득, 회유 (1)
아레스의 사지를 결박하고, 그의 SP를 갉아먹는다.
사방에서 후려치는 촉수.
지금까지 학살당해 온 걸 되갚아 주려는 듯, 매타작이 시작됐다.
퍽! 퍽!
“큭……!”
정말 무식할 정도로 때리기 시작하는 촉수.
촉수의 형상이 문어 다리 같은 느낌이 아니라 검 같은 형상이라 그렇지, 원래의 촉수였다면 참 보기 안 좋을 뻔했다.
두들겨 맞자 원래부터 깨져 있던 갑옷이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투구는 완전히 사라져 잔뜩 지친 표정의 아레스 얼굴이 드러났다.
“영혼신…… 이렇게 모욕을 주지 말고…….”
퍽! 퍽!
내가 딱히 의도한 것도 아닌데 아레스의 입 쪽을 패는 촉수.
이 자식 때문에 여기서 SP 쓴 걸 생각하니 무의식적으로 때리게 되는군.
“큭…… 말을 좀…… 큽……!”
잘생긴 얼굴이 뭉개지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리스 신들은 다들 외모가 짜증 날 정도야.
좀 더 두들기다가, 기분이 조금 풀리자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대가 명예를 아는 이라면, 패자에게 모욕을 주지 말고 그냥 죽음을 내리시오.”
“명예? 몰라, 자식아. 그냥 맞다가 봉인되라.”
쿠구구구구구.
세계의 붕괴가 점차 가속화됐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기가 애매하니, 마음껏 매타작이나 해야지.
전신을 구타하는 촉수.
사방에서 때려 대니, 아레스의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제우스는 아레스가 봉인되기 직전인데도, 딱히 개입할 기미가 없네.
“이렇게…… 봉인이라니…….”
수도 없이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신계의 핵을 놓지 않는 아레스.
손을 자르려고 하니까 아예 핵을 자기 가슴에 박아 버렸다.
질긴 놈.
어차피 인간도 아니라 영체니, 그냥 가슴을 베어 버리면 되는데.
그런 의도로 가슴을 찢고 핵을 찾으려 하니, 그때마다 검은 번개가 번번히 내 촉수를 가로막았다.
이거, 제우스인가?
핵 파편은 지키겠다는 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슴팍을 두드리니, 제우스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아레스. 정말 포기하지 않을 테냐?]
“포기하지…… 윽…… 않을 겁니다.”
[후후후. 멍청한 것…… 그럼 계속 영혼신에게 농락당하도록 하라.]
제우스의 음성이 이를 끝으로 사라졌다.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시에, 아레스가 품고 있던 대신계의 핵이 아주 미세하게 사라진다.
애초의 파편 정도 크기에서, 10% 정도가 떼진 정도.
인간의 수준이었다면 구별을 못했겠지만, 나나 아레스도 다 대신의 반열에 들었기 때문에 사라진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허. 정말…… 가신 겁니까.”
이를 포고 허탈해하는 아레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있는 대신계의 핵 파편을 회수했다.
아니, 이는 제우스의 존재감이 사라졌기에 가능한 일.
아레스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항했어도, 제우스가 아까처럼 파편을 지켰다면 이리 쉽게 회수가 불가능했겠지.
“끝인가.”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아레스의 얼굴.
서서히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SP가 고갈돼서, 봉인되는 건가.
이 녀석, SP가 다 떨어져서 떨어지게 되면…….
이 땅에 봉인되는 거겠지?
이 멸망하는 세상에 두면 이 녀석도 그냥 소멸하는 거 아니야?
제우스는 왠지 아레스의 죽음을 바라는 것 같은데…….
이대로 죽게 둘 순 없지.
“SP 상점.”
SP 상점을 열고 대신용 봉인구가 있나 검색했다.
온갖 물건이 있는 상점이라 그런가, 바로 검색하자 나타나는 대신 봉인구.
“판매자 헤파이스토스는 거르고…….”
저번에 물건 샀다가 뒤통수를 맞은 만큼, 그리스 쪽 신의 판매자들은 다 거른다.
헤파이스토스의 봉인구가 평균가에 비해 거의 30%는 쌌지만, 어차피 SP는 내게 무의미한 수준.
바로 딴 녀석이 만든 걸 구입하고, 이에 아레스를 봉인시켰다.
[대신 ‘아레스’가 봉인구에 봉인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 동안,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은 제우스.
아까 존재감이 사라진 채 그대로다.
대신계의 핵을 차지하려 할 때는 마음껏 힘을 쓰더니, 그거 손톱만큼 가져간 후에는 아들을 그냥 방치하네.
하긴, 아폴론 조질 때부터 아들 잡아먹는 새끼였지.
쿠르르르르.
이제 완전히 한 점으로 축소되어 가는 도교 신계.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으니, 빠진다.
분신을 하나둘 해제하고, 아레스의 봉인구를 들고 있는 녀석만 귀환시켰다.
이 과정에서도 그저 손을 놓고 있는 제우스.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채, 나는 아레스의 봉인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인벤토리.”
[대신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집까지 무사히 도착한 아레스의 봉인구를 보관하려고 하니, 이런 메시지가 떴다.
아폴론이랑은 다르게 이건 인벤토리에 넣질 못하네.
아폴론은 파편화된 거여서 경우가 다른가?
“일단 여기 두자.”
소파 앞 선반 위에 올려 두고, 이번에 회수한 대신계의 핵과 파편은 다른 방에 놔뒀다.
혹시 옆에 뒀다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분신 하나에게 아레스의 봉인구를 감시하라고 이른 후, 대신계의 핵을 바라봤다.
“이건 어디에 쓰는 거지?”
아레스가 세 신계를 침공한 이유가 아무래도 이것 같은데.
도교 신계로 온 그의 주력은 내 자폭 공격으로 다 쓸려 버리긴 했지만, 다른 신계도 침공했었지.
“아수라. 전황은 어때?”
통신창을 열자 써걱, 써걱…… 썰리는 소리만 들렸다.
몇 차례 화면이 어지러이 움직이더니, 삼두육비의 아수라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일방적으로 학살 중이다. 갑자기 적이 자폭하더니 진형이 완전히 흐트러졌어.]
“그래? 갑자기 적이 세진다거나 그러진 않고? 제우스가 개입한다던지.”
[갑자기 흑뢰가 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무난히 제압 중이다. 적에게 대신급은 없어서 그런가? 네 SP 덕에 오랜만에 신이 나는구나. 하하하!]
그러더니 화면 앵글이 돌아간다.
아수라가 검을 휘두르자 천지가 갈라지며 썰리고 있는 올림푸스의 군대.
SP가 충분하니까 엄청나게 위력적이군 그래.
불교는 괜찮고.
[우리 쪽? 여기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인드라도 쌩쌩한 얼굴로 내 통신에 답했다.
양쪽 다 올림푸스의 대신급 신은 나서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실질적으로 아레스 한 명만 활동한 건가?
물론 디오니소스의 술 문제가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기습 전력이 탄탄하진 않네.
뭐, SP를 빵빵하게 뿌린 게 주효했지만.
“적의 기습은 막았고…….”
이제 문제는 대신계의 핵의 정체.
아무리 지켜봐도 모르겠어서, 여기저기 아는 신들을 통해 연락을 해 봤다.
[대신계의 핵? 그게…… 뭐야?}아르테미스는 아는 게 없었고.
[그거.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오딘이 알지 않을까?]
로키는 자세한 정보가 없는지 오딘을 추천했다.
[대신계의 핵이라…… 대신계를 결성할 때 핵이 형성된다고 메시지를 본 것 같군. 그 이후로는 나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잘 알지를 못하네.]
“그렇습니까? 저들이 기를 쓰고 확보하려고 하더군요.”
[흠. 그래? 왜 굳이 그것을 확보하려고 드는지 모르겠군.]
오딘도 잘 알지 못하네.
거참…… 이거 어디다 쓰는 거야?
혼돈 측에 물어보면 알려나?
하데스에게 통신을 해 보자, 뜻밖에도 그에게서 바로 대답이 나왔다.
[킬킬킬. 대신계의 핵 말씀이십니까? 알고 있지요.]
“오. 알고 있어?”
[예. 저희가 많이 다뤄 봤으니까요.]
“뭐에 쓰는 물건이야?”
[대신계의 핵은 신앙의 총체입니다.]
킬킬거리며 말을 이어 가는 하데스.
[저희가 세계를 ‘정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요. 지구의 케이스처럼 아예 세계를 뒤엎고 새로 일구는 경우와, 문제가 된 대신의 신계를 정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흠. 그래.”
[그중 두 번째, 대신계만 정리하는 방법이 사실 더 많이 쓰이지요. 킬킬, 혼돈의 군주가 대신계를 정벌하여 정리하고, 거기서 대신계의 핵을 회수합니다. 그 후…….]
하데스가 최면을 걸듯이,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대신계의 핵을 조종해서 그 ‘신앙’을 무효로 돌립니다. 세계를 왜곡시키는 대신의 근간, 원흉을 아예 제거하는 거지요.]
“신앙의 총체라더니, 그런 게 가능해?”
[예. 근데 제우스가 그걸 노렸다고요? 킬킬. 그러면 저희처럼 무효로 돌리려고 하는 게 아닌 것 같군요…….]
그래. 무효로 돌리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나서진 않았겠지.
신앙의 총체면…….
이걸 돌려 버리는 것도 가능할까?
도교를 이루던 신앙을 제우스를 믿게 바꿀 수만 있다면, 지금의 도교 신자들이 죄다 제우스 신자가 될 테니까.
내 추측에 대해 말하자, 하데스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킬킬. 저희는 신앙을 퍼뜨릴 뿐이지만, 창조주가 된 제우스라면 그렇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이를 노렸나 보군요.]
“그 녀석, 손톱만큼 가져가긴 했는데. 그래도 활용이 가능할까?”
[킬킬. 그 정도라면…… 저희 급이면 안 되겠지만. 그는 EX등급이니 어떻게든 활용은 할 수 있을 겁니다. 도교 대신계의 핵이라고 했지요? 중국을 한번 지켜보시는 게 좋겠군요. 킬킬…….]
일반적이라면 그 정도 파편의 파편 가지고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지만.
제우스는 EX등급이라는 게 문제.
그의 불가사의한 힘이라면, 도교를 믿는 중국 신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
“스캔한다.”
중국의 일반인들을 쭉 살펴본다.
그들의 영체를 파악하여, 뭐가 변했나 둘러보는 과정.
그렇게 둘러봤지만,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거, 더 쉬워졌는데?”
SSS급 영혼신의 힘을 다 끌어내지 못했던 나다.
끌어내려면 낼 수야 있지만, ‘김지호’라는 자아가 먹혀 버릴 것 같아서 속도를 조절해 왔었지.
그래서 한계치를 설정해 두고 스캔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예전에 설정한 한계치가 100정도였는데, 지금 체감으로는 이게 한계의 반도 안 되는 거 같았다.
“더 빠르게 해 보자.”
영감을 확장시켜, 더 많은 영체를 둘러본다.
전보다 두 배 빠르게 했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네 배 정도 빠르게 하니, 그때가 되어서야 슬쩍 먹히는 감이 있었고…….
5배쯤 되니까 이제 더 이상 빠르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발전…… 했네?”
뭐 때문에 이렇게 확 오른 거지?
그동안의 변화라고는 아레스에게 분신이 학살당한 것 밖에 없는데.
흠. EX등급 공격에도 적응을 하며 소울 배리어가 업그레이드되더니, 이게 이런 분야에서도 나름 경험치처럼 작용한 건가.
13억 중국 인구의 영체를 돌아보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빨라졌지만, 아직까지 딱히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다.
“그 작은 파편으로는 소용이 없는 모양이군.”
일단은 이상이 없군.
흠. 이대로라면 술 먹고 쓰러지는 지구인들의 영혼을 붙잡는 것도 더 빨리 가능하겠어.
제우스 녀석.
오히려 날 도와준 격인데?
그럼 지구 컨트롤은 계속 해 두고…….
“아레스. 들리나?”
아레스의 봉인구에 가서 말을 걸어 본다.
봉인구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영력이 살짝 움직이는 게 감지되었다.
저걸 보면 듣긴 듣는 거 같은데.
“제우스랑 조건 건 게 뭐야? 헤라는 또 왜 나오고?”
[…….]
“야.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제우스야. 올림푸스 다른 신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어. 제우스만 조질 수 있다면, 올림푸스 유지해도 된다고.”
어차피 제우스 빼고 다른 신들이야 위협도 되지 않고.
제일 골치 아픈 EX등급, 그놈만 조지면 되지.
“야. 맹세도 할 수 있어. 난 SSS등급이라서 맹세 아직 먹힌다니까?”
[…….]
“영체의 파동을 보아하니 듣는 거 같은데…… 잘 생각해 봐. 제우스가 아폴론 없애 버린 거 너도 알지? 그 자식 아들이고 뭐고 없다니까? 나는 그 녀석이랑 다르게 딱히 지배욕이 있지도 않아. 너희들 지배하느니, 그냥 SP 거래소 운영하는 게 훨 낫거든?”
[…….]
“올림푸스 왕 자리 너한테 줄 테니, 협력하는 게 어때?”
끝끝내 말이 없는 아레스.
아 자식.
말을 하고는 싶은데 못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영력의 파장도 그대로긴 한데…….
지금 당장 대답을 듣기는 힘들겠어.
녀석의 봉인구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폴론의 영혼 조각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그 녀석 깨워서 물어보면 되겠네.
[아폴론의 영혼 조각 ? 봉인 85% 해제 상태.]
[소유자가 대신이 되어 영혼 조각이 힘을 스스로 회복하는 중입니다.]
[SP를 소모하여 더욱 빨리 봉인을 해제하시겠습니다?]
1%당 5억씩 드는 아폴론의 영혼 조각.
이제 껌값이나 다름없어졌으니, 바로 해제한다.
화아아아아.
손바닥에 쥔 아폴론의 영혼 조각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완연히 태양신의 권능과 똑같은 힘.
조그마한 영혼 조각인데도, 꽤 강렬한 힘에 집이 홀라당 타 버릴 것만 같았다.
“소울 배리어.”
베리어를 치고 나자 배리어 밖으로는 더 이상 빛이 뻗어 나오지 못한다.
그렇게 번쩍, 번쩍하기를 오 분째.
서서히 빛이 걷혀 나가고, 내 손바닥 위에서 꼬물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여기는…….”
내 손 위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존재감.
아폴론이다.
손가락 크기만큼 작아진 아폴론이, 내 손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