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06화>
SP로 압도하다 (4)
“이건가?”
촉수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
살펴보니 푸른색의 보석이다.
크기는 사람만 하다고 해야 할까?
참 깊숙한 곳에 있어서 지금까지 못 발견한 거였군.
“인벤토리.”
인벤토리에 넣으려고 하니까, 메시지가 떴다.
[‘대신계의 핵’은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흠. 그럼 그냥 이 분신 하나는 귀환 보내야겠군.
“거기, 거기 있었구나……!”
내 분신들과 전투를 벌이던 아레스가 이를 발견했다.
촉수로 사방이 뒤덮여 있을 텐데, 금방 파악했군.
“아버지 제우스이시여. 힘을 빌려주소서.”
아레스가 창과 검을 내려놓자, 촉수가 무방비 상태인 그를 노린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촉수.
단번에 뚫릴 것만 같았던 아레스의 몸에 검은 전기가 피어났다.
지지지지직.
촉수도 나름 다 영기에 휩싸여 있는데도,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흑뢰를 막질 못했다.
모조리 타올라 사라지는 촉수.
한 줄기 흑뢰로 변한 아레스가 대신계의 핵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왔다.
“헤임달의 귀환.”
일단 대신계의 핵을 든 분신부터 집으로 보내야지.
한데 바로 귀환하지 않고, 뭔가 버벅대는 분신.
왜 저러나 해서 지켜보니, 아레스가 뿌려 대는 흑뢰로 인해 움직임이 봉쇄되어 있었다.
이런……?
흑뢰가 되었다고 뭐 저리 세져?
저건 좀 확실히 분석을 해야겠는데.
일단 지금은…….
“막아!”
분신들이 죄다 몸을 던졌다.
소울 배리어가 재생은 안 되지만, 그래도 이미 쳐져 있는 건 있으니까, 시간 끌기는 가능하다.
“귀찮게 하는구려……!”
아레스가 질풍처럼 다가온다.
일격에 사라지는 내 분신들.
이때만큼은 무지막지하게 많은 SP도 소용이 없었다.
EX등급의 힘을 받으면 확실히 차원이 다른 건가?
SP 경 단위로 받고 이제 끝이다 했는데, 끝까지 골치아프게 하네.
펑. 펑. 펑.
소울 배리어가 깨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내 얼굴을 한 분신이 일격에 뚫려 사라지고.
촉수로 이루어진 벽도 그대로 뚫린다.
하지만 이렇게 전원을 투입한 것은 결론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온몸이 새하얗게 물드는 분신.
헤임달의 귀환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큭……!”
눈치를 챈 것인가.
투창 자세를 취하는 아레스.
그의 창이 시커멓게 물들며, 한 줄기 뇌전으로 변했다.
그래도 분신들 몸빵이 있으니, 성공……!
[느리구나.]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제우스의 목소리다.
그 소리와 함께 아레스의 창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다.
이를 몸을 던져서 막아 내는 나의 분신들.
하지만 찢기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이런 젠장……?
무사히 도망인 줄 알았더니……!
[소울 배리어를 재생하시겠습니까? EX등급의 공격으로, 재생 시 평소보다 100배에 달하는 SP가 소모됩니다.]
갑자기 뜨는 메시지.
물론 가진 게 SP밖에 없는 나로서는 YES다.
그러자 속도가 느려지는 아레스의 창.
그 뒤로 재생 메시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보석을 최대한 촉수로 멀리 놔두고……!
치지직!
내가 숨겨 두었던 대신계의 핵이 살짝 긁혔다 싶은 순간, 분신이 무사하게 도교의 신계를 빠져나왔다.
서울의 내 집으로 돌아온 분신.
“장난 아니네.”
분신의 몸은 거의 소멸 직전이다.
그대로 아레스의 창에 꿰뚫린 것.
그래도 대신계의 핵을 가지고 오긴 했는데…….
자세히 보니, 윗부분이 살짝 사라져 있었다.
“SP가 아무리 많아도 제우스와 싸우는 건 쉽지 않은 건가?”
소울 배리어도 그냥 뚫어 버리고.
전신 아레스도 흑뢰가 되니까 상대하기는커녕 발목 잡기에도 벅찼다.
SP를 경 단위로 얻고 난 이후에 다 이긴 줄 알았는데…….
1:1로 맞붙으면 아직도 힘든 건가.
“하지만 실마리가 좀 잡히는 것 같은데.”
수많은 분신이 죽으면서 본능적으로 경험이 쌓였다.
계속 허무하게 무너지던 소울 배리어가 마지막 순간에 한 번 재생한 것.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분신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거다.
“아레스한테 더 죽으러 가야겠군.”
수많은 분신을 투입한 결과, 어마어마한 SP를 사용했다.
SP가 별로 안 남아서, 다시 10조를 인출해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SP도 넘치겠다.
지금은 무조건 가서 죽더라도 저 힘의 규명이 우선이다.
“분신 계속 투입 간다.”
완전히 부서져 가는 도교의 대신계.
그곳에서 홀로 무쌍을 펼치고 있는 아레스에게, 자살 부대를 계속 투입했다.
마침 돌아가려는 아레스.
그의 손에는 대신계의 핵의 파편이 쥐어져 있었다.
아까 창에 살짝 스쳤을 때, 조금 조각났나 보군.
“어딜 가냐?”
휘리리릭.
계속해서 투입되는 내 분신.
아레스를 향해 일제히 촉수를 내뻗는다.
“흠……!”
좀 전처럼 몸을 숨기려 하는 아레스.
저러면 정보를 못 얻겠는데 싶던 순간…….
“오? 저건 숨기지 못하네?”
아레스가 사라진 자리에 대신계의 핵 파편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러면 녀석에게 죽지 못하더라도, 핵만 얻어도 이득이지.
“이런!”
아레스도 이 맹점을 깨닫고, 파편을 지키기 위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향해 포위망을 구축하는 내 분신들.
“그 얼굴, 지겹군!”
사방에 검은 벼락을 뿜어 대는 아레스.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가는 내 분신들이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비해 변화가 생겼다.
[소울 배리어를 재생하시겠습니까? EX등급의 공격으로, 재생 시 평소보다 100배에 달하는 SP가 소모됩니다.]
소울 배리어 재생 메시지가 뜨는 빈도가 늘어난 것.
좋아.
확실히 효과가 있어.
“태양신의 권능.”
빛으로 아레스를 내리쬐며, 공격을 지속적으로 가한다.
물론 내 공격은 닿지는 않는다.
전신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아레스의 무武.
촉수는 물론이거니와, 빛마저도 막아 버리는 초절한 무예다.
그래.
죽여라, 죽여.
순식간에 백이 넘게 사라지는 분신들.
지금까지 아레스 손에 사라진 분신 숫자만 해도 천은 넘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죽어 나간 덕분에, 확실히 변화가 보였다.
[소울 배리어를 재생하시겠습니까? EX등급의 공격으로, 재생시 평소보다 89배에 달하는 SP가 소모됩니다.]
SP 소모 100배가 89배까지 줄어든 것.
뿐만 아니라 이제는 모든 배리어가 한 번은 재생했다.
좋아. 이대로 가면 되겠는데?
쿠르르르르!
그때, 본격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하는 도교의 대신계.
원래 땅속이었던 이 공간도 이제 완전히 분해되어, 허공에서 하늘과 땅이 서로 엉킨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영체로 싸우니까 상관이 없었는데…….
“큭……!”
세계가 점차 붕괴하기 시작하자,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빨아들이는 힘도 강해졌다.
그 중심에는 검은색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양신의 권능으로 뿜어낸 빛마저 빨려 들어가 소멸하는 영역.
“엇, 영체까지……!”
내 공격을 막던 아레스도, 내 분신들도 모조리 그쪽으로 서서히 끌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아. 도교의 신계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거 붕괴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바깥도 우주 같은 암흑 공간이군…….”
세계가 계속해서 붕괴하면서 세계의 끝도 이제 육안으로 관찰됐다.
완전히 어두운 무無의 세계.
그 공간이 궁금하여 분신 하나를 보내 보니……
“으…… 으아아악!”
가자마자 내 통제를 잃고 사라진다.
이 암흑 공간은 대체 뭐지?
오케아노스와도 느낌이 좀 다른데.
일단 닿으면 끝난다는 건 알겠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빨려 들어가도 소멸하는 것 같고, 밖의 암흑 공간에 닿아도 소멸한다면…….
이제 이 공간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겠군?
여기서 아레스랑 내 분신이 공멸하면 그것도 괜찮네.
계속해서 분신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세계에 투입한다.
“하. SP가 얼마나 남아도는 건지!”
더욱 빨라지는 아레스의 공격.
한차례 내 분신을 휩쓸고 난 이후에, 나처럼 귀환을 써서 이 세계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무슨 마법을 쓰기도 하고, 깃발을 꽂으려고 하기도 하고, 포탈을 열려고도 하고.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아레스.
하지만 영기가 가득 담긴 촉수로 녀석을 완전히 포위하니, 그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이대로라면 그쪽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괜찮아. 분신이야.”
“허. 정말 SP 아까운 줄 모르는구려. 이렇게 되면 모조리 쓸어버리고 귀환하는 수밖에……!”
보다 더 강하게 나서는 아레스.
조금 전까지는 공수가 완벽했다면, 이제는 공격에 치우친 모습을 보였다.
지지지직.
아레스의 검이 한번 허공을 베자, 검은 벼락이 멸망하는 세계를 잠식했다.
일제히 깨지는 소울 배리어.
배리어 재생의 기회를 한 번 쓴 분신들은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방어는 포기하고 분신을 후딱 쓸어버린 후에, 이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아레스.
녀석의 방법은 꽤 주효해, 분신의 수가 어느덧 반 이상 쓸려 나갔다.
거기에 확실히 공간이 좁아지니, 분신 소환도 쉽지 않다.
소환을 위해선 포탈을 열어야 하는데, 아레스랑 너무 가까운 곳에서 열었다가 녀석이 포탈에 뛰어들면 낭패를 보니까.
어찌 어찌 분신을 충원해 나갔지만, 숫자는 확연히 줄어 있었다.
대신…….
“큭……! 이것이 영혼신의 영기발출인가……!”
녀석의 영체에 닿기 시작하는 촉수.
아레스가 공격 일변도로 나가다 보니, 작게나마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빛과 촉수가 그 부분을 파고드니, 한 촉수가 슬쩍 그의 갑옷을 스친다.
콰직.
순식간에 깨지는 아레스의 갑주.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력과는 달리, 방어력은 약한 편인 것 같았다.
하긴 검과 창만으로도 지금까지는 완벽하게 틀어막았으니까…….
본체에 닿는 건 이게 처음이다.
“마음이 급했구나……!”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한 후, 아레스가 다시 방어에도 신경을 쓴다.
촉수에 살짝 닿았을 뿐인데, 꽤 유효타가 들어간 느낌이군.
그가 이렇게 나오니 분신은 또다시 무럭무럭 신계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세계가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놀아 보자고.”
배리어의 SP 소모량도 이제는 50배까지 떨어진 상태.
어떤 분신은 이제 두 번까지 공격을 막았다.
좋아.
이제 슬슬 분석이 되고 있어.
아스가르드의 흑뢰를 백날 분석하느니, 이렇게 처맞고 죽는 게 훨씬 더 이해가 빠르군.
“같이 죽자. 아레스.”
“같이 죽자. 아레스.”
수백의 분신이 동시에 말한다.
그러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검을 휘두르는 아레스.
하지만 그의 공격은 확실히 아까보다는 못하다.
이대로라면 세계와 녀석을 같이 붕괴시킬 수 있겠어……!
[내 아들 아레스야. 조건을 달지 말고 핵의 파편을 나에게 넘기거라. 그러면 너를 이 공간에서 빼내 주겠다.]
갑자기 들려오는 제우스의 목소리.
대신계의 핵을 파괴할 때는 힘을 실어 주더니, 왜 가만히 지켜보고 있나 의아했건만.
갑자기 핵의 파편을 조건 달지 말고 넘기라고 하다니…….
이 녀석. 아들한테도 딜을 거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저와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후후후. 우리의 약속은 완전한 대신계의 핵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그 조그마한 파편으로 무엇을 하겠느냐? 아레스야. 그래도 내가 널 아끼니 이리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혼신의 분신과 죽을 셈이더냐?]
“그럴 순 없습니다…….”
[네 어미, 헤라가 눈물짓고 있구나. 나보고 자식을 버릴 셈이냐며 비난하는구나. 철옹성 같던 그녀도 역시 너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인가 보구나.]
“어머니. 안됩니다! 아버지께 굴복해서는……!”
헤라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미세한 빈틈이 나타나는 아레스.
둘이 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사정은 모르겠지만, 빈틈을 놓칠 수는 없지.
치이익!
“큭!”
갑옷을 따라 살짝 스치는 촉수.
갑옷이 완전히 뚫리며, 그의 새하얀 살결이 살짝 드러난다.
사람으로 따지면 피부에 살짝 스크래치가 난 정도.
한데 그 공격이 들어가자, 아레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으. SP가……!”
오호. 이번 공격으로 SP가 꽤 사라졌나 보지?
사나운 맹수의 기세가 드디어 꺾였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처맞다가, 드디어 반격의 기회가 온 셈.
일제히 촉수가 뻗어 나간다.
그대로 아레스의 무구와 부딪치는 촉수.
물론 닿자마자 흑뢰에 의해 바로 소멸하지만…….
[네 녀석을 설득하느니, 헤라에게 네 위기를 보여 줘야겠구나.]
제우스가 그리 말하자, 아레스의 무구에 담긴 흑뢰의 힘이 사라진다.
그러자 아레스의 검이 툭 하고 촉수에 부딪친다.
아까 같은 기세는 꺾인 채, 촉수와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아레스의 검.
콰직.
하지만 곧 촉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꺾여 버렸다.
[영검의 기운을 받은 촉수가 SS급 질서의 신기를 파괴합니다.]
[영검의 승급 조건을 충족합니다.]
오호. 이런 부수입이?
영검 승급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레스 제압이 먼저다.
근데 이대로 아레스를 완전히 죽인다면, 뭔가 제우스를 도와주는 느낌이란 말이지?
대충 이야기 돌아가는 걸 들으니, 헤라한테 아레스가 처맞는 걸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제우스 녀석을 그냥 도와줄 순 없잖아?
푹. 푹.
아레스의 몸에 촉수를 꽂되, 영기발출을 끈다.
이러면 영체가 소멸하지 않겠지.
“태양신의 권능 해제.”
거기에 강력한 태양신의 권능을 해제하고, 아레스의 손에 있는 핵 파편을 회수한다.
파편을 쓱 가져가는데도 아무런 간섭이 없는 제우스.
이 자식은 무슨 생각이야?
일단 회수한 분신을 지구로 보내고…….
“영혼신……?”
“일단 봉인당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