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02화 (202/240)

<내 상태창 2개 - 202화>

대신 승급 (4)

노인신이 내 가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무 급격한 성장 탓일까? 아직 인간을 놓지 못하는구려.”

인간을 놓지 못하다니…….

내가 김지호로서 살고 싶은 게 그렇게 보이는 건가?

“인간을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렇진 않소이다. 어차피 영겁을 살다 보면, 서서히 필멸자로서의 정신은 사라지기 마련. 평화의 시기라면 이대로라도 상관없겠지요. 하지만 적이 있으니 문제요.”

“해결 방법은 없겠습니까?”

“내가 준 SP를 받아들이면 될 것이오.”

노인신이 덤덤히 말한다.

“2.4경의 SP. 어마어마한 양이오. 한 번에 흡수하면 그대의 정신은 마모되고, 완전한 영혼신만이 남을 것이외다.”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까?”

내가 아무리 영혼신이라지만, 2.4경이라는 액수에는 쓸려 나갈 것 같다.

그 어마어마한 SP를 컨트롤하려다가, 김지호는 사라질지도 모르지.

근데 내가 사라지면 지금까지의 일이 무슨 의미겠어?

그래.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나로서 살아본 지는 20년이 조금 더 넘었을 뿐이야.

더 살고 싶다.

이 정신으로 더. 오래도록.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고.

나는, 바퀴벌레처럼 생존해 나갈 거다.

그런 내 결심을 읽은 걸까.

말을 이어 가는 노인신.

“흠, 그대의 표정을 보니 인간으로서의 정신을 남기고 싶어 하는구려. 그럼…… 그래. 그대의 SP 거래소 계좌에 SP를 예금해 두고, 꺼내 쓰시오. 그건 괜찮을 테니.”

“아, 그렇겠군요.”

“하나 그대의 온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창조주와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다들 각자 특출 난 재주가 있으니. 해 볼 만큼 해 보되, 안 되면 모든 SP를 인출하시오. 그러면 모든 상황이 끝나 있을 테니.”

이를 끝으로 창조주를 상대할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노인신.

더 이상 이 화제에 대해서는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거래도 끝났겠다, 지분을 받도록 하지요.”

어느덧 하데스의 손 위에 있는 숫자는 사라진 상태.

그러자 황금돼지가 나타나, 거래를 주관한다.

“그럼 경매 낙찰자님과 함께, 지분 거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래가 진행된다.

SP 거래소에서 만들어진 내 계좌.

그리로 노인신이 건네준 2.4경의 SP가 전송되기 시작한다.

워낙 막대한 양이라 그런가.

전송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주, 주신이시여. 지금 급히, 지구의 상태를 살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갑자기 들어오는 메시지.

지구에서 내 포교를 하고 있는 오디세우스다.

[무슨 일이지?]

[지구에……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전염병?

웬만한 전염병 가지고는 큰일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 오디세우스가 아니지.

[대체 병의 규모가 어떻기에?]

[일이 시작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흠.

지구의 분신으로 포커스를 돌려 봐야겠군.

TV 채널을 돌리듯이, 내 정신을 지구의 분신으로 돌린다.

지구에 있는 내 집.

습관적으로 TV를 켰다가, 아차한다.

굳이 이럴 필요도 없이, 사람들의 혼을 둘러보면 되잖아?

뉴스에서는 모두 긴급 속보가 뜨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사람들이 이유 없이 쓰러지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다급한 음성을 들으며, 혼을 살펴본다.

혼수상태에 빠진 인간의 혼.

다들 영혼 자체가 어디론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이미 혼이 느껴지지 않은 인간도 상당수 있을 지경.

잠시 경매장에 정신을 쏟은 사이, 이런 일이……?

“붙들어 보자.”

날아가려는 영혼을 육체에 붙든다.

하나 내가 막는 속도보다, 사람들이 쓰러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쓰러지면 바로 영혼이 이동하려고 하니, 틀어막기가 힘들 지경.

[주신이시여. 확실한 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술을 먹은 사람 위주로 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술의 종류는 관계가 없으며, 술을 먹지 않았더라도 술을 먹은 이가 주위에 있다면 다들 쓰러지고 있습니다.]

……술?

오디세우스의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온다.

[헌터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혼수상태에 빠진 경우는 없으나, 모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헌터는 상태창에서 자신의 등급이 내려갔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일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정보를 바로 정리해서 가져다주는 오디세우스.

헌터는 그래도 바로 쓰러지지 않는 건가?

불행 중 다행이군.

[언제부터 이 일이 터진 거지?]

[제 감시 체계에 의하면, 2시간 전부터입니다.]

2시간 전이면…….

[헤르메스가 흑뢰가 된 시간과 공교롭게 겹치는군.]

[헤르메스가…… 흑뢰가 되었습니까?]

오디세우스에게 그간의 사정을 간략히 이야기한다.

[그럼 저들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 것이겠군요. 술과 관련된 걸 보면, 술과 쾌락의 신 디오니소스의 권능이 개입된 것 같습니다.]

[흠. 디오니소스의 권능이라. 그가 그 정도로 강력한 대신이었나? 이 짧은 시간에 전 지구의 술을 바꿀 정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제우스가 개입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오디세우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술이 문제라는 뉴스가 들려온다.

헌터협회의 성명도 황급히 발표되고, 각국에서도 철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내 핸드폰도 오랜만에 울려서 보니, 긴급 재난 문자가 와 있었다.

[긴급. 술을 마신 후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술을 삼가시고,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지 마십시오. 전염성이 있습니다.]

현재 밤인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대로는 아직 미봉책에 불과하니, 내가 직접 술을 살펴봐야겠어.

냉장고에 보관해뒀던 맥주 한 캔을 꺼낸다.

탁.

캔을 까고 보니, 내 시선에서는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뭔가 맛있어 보인다.

순수하게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지금 갑자기 이러지?

“이상하군.”

곧 그런 감정은 사라졌지만, 그 처음의 끌림은 꽤 강렬했다.

술에 이상이 있다는 걸 모르고, 내가 S급 정도였다면…….

별생각 없이 마셨을 거 같다.

사람들의 혼을 붙들면서 술에 관한 기억만 살펴봤다.

-술 먹으면 죽는다고?

-TV에 나오더라. 다들 쓰러지던데.

-아. 그런데…… 왜 이렇게 먹고 싶지?

-……마시고 싶다.

-…….

혼수상태가 된다니까 참는 모습.

하지만 술에 대한 기이한 열망이 점차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을 알아보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을 관찰한다.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김영희(21).

예전에 술 한 모금 마셨다가 속이 뒤집어진 후, 술이 받는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입도 대지 않는 여자다.

한데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지 않고 계속 서성이는 김영희.

그녀가 서성이는 건 술 코너다.

“으으…….”

눈이 이미 시뻘게진 그녀.

조금 전까지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이제는 눈치도 보지 않고 바로 문을 열어, 소주를 집어 든다.

벌컥. 벌컥…….

그대로 술을 마시더니 푹 하고 쓰러지는 김영희.

충동을 억눌러 보려고 해 봤지만, 아무리 혼을 통해 간섭하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유혹이 그렇게 큰 거였나?

그녀가 쓰러지자마자, 혼이 빠져나오려 한다.

일단 못 나가게 집어 두었지만, 이거…….

이대로 두기만 하면 너무 처리할 인간들이 많아지는데.

다행히 각성자들은 그런 충동에서 좀 자유로운 상태인 거 같지만, 지구인들은 대부분 비각성자니.

이거 참…….

진짜 다 죽자는 건가?

“전송이 모두 끝났습니다. 꿀꿀.”

황금돼지가 경매장에 있는 또 다른 분신을 깨운다.

이제 그럼 불러와야지 싶어서, 그쪽으로 포커스를 옮겼다.

“정말 대단한 지분이구려. 감사하오. 영혼신이시여.”

노인신이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인사한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보고, 말문을 잇는다.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구려.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오?”

“제 적이 활동을 개시한 것 같군요.”

“그대가 막대한 SP를 활용하기 전에, 바로 침공한 것이겠지요. 나 같아도 전력으로 칠 것이외다. 2.4경 SP를 얻었으니.”

2.4경의 SP.

너무나도 막대한 수치라, 감도 안 오는 액수다.

SP 거래소의 내 계좌를 열어 보니…….

[현재 잔액 : 24,000,000,000,000,000 SP]

2.4경이 그대로 들어와 있었다.

수수료조차도 떼지 않고.

“영혼신이여. 가보기 전에 늙은이가 작은 조언을 할까 하오.”

“말씀하시지요.”

“SP를 탕진하겠다는 각오로 써 보시오.”

뭐?

다 써 버리라고?

“그대에겐 SP 거래소라는 무한의 보물고가 있소. 2.4경이 크다고 해도, SP 거래소의 수익으로 금방 채울 거외다. 뒷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다 써 버리시오.”

“다 쓰라니…….”

“쓰는 방법이야 많지. 비각성자는 신으로 만들고, 하급신은 모조리 대신으로 만들고. EX등급으로 만드는 것은 SP만 가지고는 되지 않지만, 이 정도는 가능할 거외다. 그래도 저 SP는 크게 줄지 않을 터.”

노인신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의 모습이 얼굴만 남았을 때, 그가 다시 한번 말한다.

“모조리, 다 써 버리시오.”

그러고 사라지는 노인신.

그가 사라지자 하데스가 바로 자세를 푼다.

“하아. 거참. 이런 걸 왜 나한테 시키는지, 불편해서. 킬킬킬…….”

“하데스. 돌아왔군.”

“창조주 앞에서 킬킬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넥타이를 푸는 하데스.

피로가 가득 쌓인 얼굴이다.

“뭐, 제우스가 나름 발악을 하려는 것 같은데. 영혼신. 이대로 있어도 되겠습니까? 킬킬.”

“그래. 나도 가야지.”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디 SP를 팡팡 써 보시지요. 가격만 맞으면, 저희도 얼마든지 용병으로 참여할 테니까요. 킬킬킬…….”

그러면서 사라지는 하데스.

나도 여기에 더 이상 있을 필요는 없으니, 지구로 돌아간다.

“일단 인출해 볼까.”

내가 사용가능한 SP가 어느 정돈지 실험해 본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1000억 정도를 꺼냈다.

“이 정도는 괜찮고.”

SSS급 대신이니 이 정도는 괜찮은 거네.

그럼. 바로 열 배로 늘려 보자.

보유 SP에 비례해서 영력이 강해졌는데, 이게 1조를 넘어서니…….

확실히 감각이 다르다.

한 차례 더 절대자가 된 느낌이 든다.

SP가 이 정도 차오르니, 분신에게 시켰던 일들도 더 처리가 잘되고, 지구 인간들의 영혼 컨트롤 속도도 10배 이상 빨라졌다.

“그러면 더 인출하자.”

그렇게 1조씩 인출하다가 10조쯤 되니까 확실히 깨달았다.

아. 이거 더 인출하면 SP에 짓눌리겠다.

이 정도에서 +10, 20%정도가 지금의 내 한계선.

김지호로 살고 싶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결국 10조군.”

일단 10조 운용에 익숙해지면, 한계를 서서히 늘려 나가야겠어.

지구인들의 영혼을 붙들고 있을 때,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신이시여.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술에 대해 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스 하늘에 이상한 빛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인간들이 술에 미쳐 간다는 소식이지만, 그리스의 하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보고를 올린 신에게 자세한 정보를 달라고 하니, 그가 화면을 보내 온다.

“저거…….”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그 위에 새하얀 뇌전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영혼들.

술을 먹고 혼수상태가 된 이들 중 미처 잡지 못한 영혼들이 승천하고 있었다.

딱 봐도 제우스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이대로 놔두면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

일단 막아야 해.

어떻게 막으면…….

-모조리, 다 써 버리시오.

갑자기 노인신의 말이 떠오른다.

-헌터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혼수상태에 빠진 경우는 없으나…….

오디세우스의 보고도 떠오른다.

그래.

헌터는 저 술을 견딜 수 있다고 했지.

그럼, 모든 인간을 헌터로 만들자.

SP를 무한정 투여해서, 지구인을 강제 각성시키는 거다.

70억 인구?

예전에는 많아 보였지만…….

이제는 ‘겨우’ 70억이다.

[사도신들이여. 인간을 강제 각성시켜라.]

그 말과 함께 사도신에게 10억씩 투여하려다, 멈칫한다.

아. 겨우 10억이라니…….

스케일 참 작다.

이래서 노인신이 그렇게 이야기했던 건가?

2.4경 다 탕진할 때까지 써 버리라고.

그래.

사도신 뭐 얼마나 된다고 겨우 10억씩 줘?

SS급까지는 100억, SSS급은 1000억 간다.

한도만 아니었어도 다들 1000억씩 뿌렸을 텐데. 한도가 있군.

[저…… 김지호? SP 잘못 온 거 같은데.]

1000억을 전송하자 아르테미스에게서 오는 메시지.

이를 필두로 여러 신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한다.

[아니. 맞다. 그냥 받아서 맘껏 써라. 다 쓰고 모자라면 또 청구해라. 맘껏 줄 테니.]

분신도 마구마구 만든다.

SP를 펑펑, 어떻게 하면 탕진할까 생각하며 써 버린다.

지구의 지배력도 올리고, 나만의 신계에서 업그레이드 항목이 있으면 보지도 않고 싹 다 올려 버린다.

그러자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 SP.

10조도 막상 쓰려니까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하지만 뭐.

“10조 인출.”

또 인출하면 되지.

10조를 또 쓰고, 또 인출한다.

3번 4번 이런 과정이 반복되었음에도, 계좌는 여전히 튼튼한 상태.

와. 이런 게…… 돈지랄인가?

생전 처음 해 보는 대규모 소비.

뒷걱정은 없다.

SP 거래소 수입에 예금 이자까지 합하면, 이깟 것은 푼돈에 불과하지.

그냥 계속 지르고 지른다.

지금 상황은 올림푸스의 본격적인 행동 개시로 심각한 상태.

한데 이렇게 지르다 보니, 위급한 마음이 사라지고 묘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대신이 된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완전한 충족감.

“하아…… 행복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