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01화 (201/240)

<내 상태창 2개 - 201화>

대신 승급 (3)

[꺼져.]

가볍게 답신을 보낸다.

그러자 금방 헤르메스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김지호 님. 잠시 대화 괜찮겠습니까?]

하. 이 새끼들…….

뭐라 떠들어 대는지 한번 들어 보자.

통신을 연결하자, 초췌한 얼굴의 헤르메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의 자신만만하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느낌.

“무슨 용건이지?”

[김지호 님. 제우스 님의 제안은 들으셨습니까?]

“그 개소리 말인가?”

[침착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김지호 님. 그 지분을 주시면 저희는 다시는 지구를 노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노리지 않겠습니다. 완전히 철수하여, 저희만의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간절한 표정으로 간곡히 호소하는 헤르메스.

하지만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얼마나 속아 넘어갔던가?

거기에 제우스의 최종 목적은 SP 거래소 그 자체.

0.9%의 지분을 얻어 SP 수급이 원활해지면, 까다로운 적이 되겠지.

뭐 맹세를 한다고 해도 창조주의 힘으로 계약도 뒤엎을 것 같고.

중소신계의 신들도 그렇게 넘어갔잖아.

“필요 없다.”

[김지호 님. 0.9%의 지분을 팔면 어마어마한 SP를 얻게 될 겁니다. 그걸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수많은 영력을? 김지호 님 개인의 인격이 휩쓸려 버릴 수 있습니다.]

말 자체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굳이 헤르메스의 말에 긍정할 필요는 없지.

“나 영혼신이거든? SP 컨트롤을 두고 날 걱정하냐?”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저희가 물러나면 99%의 지분으로 지구의 유일신으로 군림하실 수 있습니다. 굳이 싸울 일도 없고요.]

“아니, 덤벼. 후환을 남겨 두고 싶지 않으니까.”

헤르메스는 그 후에도 나를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그래도 내가 전혀 받아들이지 않자, 마지막엔 은근히 협박을 곁들였다.

[……이것은 최후통첩이기도 합니다. 이 제안을 거절할 시, 저희 올림푸스는 전력을 다해 당신을 멸할 것입니다.]

“어차피 그럴 거 아니었나? 이제 더 이상의 말은 무의미한 것 같군. 무슨 제안을 하든, 거부하겠다.”

[그렇게 나오시는군요…….]

내 완전한 거절에 헤르메스가 미소를 짓는다.

자포자기한 듯한 얼굴.

그러더니 그의 영체에 변화가 생겼다.

지직. 지지직…….

흑뢰.

그의 몸에서 흑뢰가 발현되고 있었다.

[후후…… 애초에 불가능할 걸 알았습니다. 불가능한 조건을 걸고 행하라고 하다니. 아버지 제우스이시여. 잔혹하시군요…….]

헤르메스의 전신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영체가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하는 헤르메스.

설마 나의 설득을 조건으로 자신의 영체를 건 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제우스의 강권인가.

헤르메스도 분명 제우스의 자식일 텐데, 그의 영체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지지직…….

완전히 사라지는 헤르메스의 영체.

그 자리를 대신한 흑뢰가 퍼지더니, 통신이 종료된다.

헤르메스.

진짜 이렇게 간 건가……?

제우스. 이놈은 자기네 대신 취급이 너무 안 좋은데.

헤르메스도 자식일 텐데…….

이러니 내 판단에 대한 믿음도 더욱 강해진다.

자기 자식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놈은 믿어선 안 되지.

제우스는 내가 꼭 없애야 할 적이다.

[이제 공격이 시작될…….]

헤르메스에게서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한다.

죽기 전에 보낸 건지, 애매하게 끊긴 문자.

본격적으로 침공이 시작되는 건가…….

각 세계에 나가 있는 분신을 한 번씩 점검해 본다.

아직까지는 별 이상이 없는 세계.

“꿀꿀. 주인님. 경매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장소도 대관했습니다.”

통신이 끝나자 튀어나오는 황금돼지.

나에게 낭보를 알려 온다.

“오. 어디로?”

“SP 상점에서 빌려 주었습니다. 한 폐행성에서 거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분신으로 가시지요. 꿀꿀.”

“SP 상점 쪽에서?”

“예. ‘창조주의 왼손’이 이번 거래에 큰 관심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혹시나 다른 EX등급이 외압을 넣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다고 하는군요. 꿀꿀.”

‘창조주의 왼손’이면 혼돈 진영의 최고신이잖아.

대신급인 혼돈의 군주들도 경배하는 존재.

그 녀석을 제일 믿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창조주의 왼손이 수틀리면 끝나는 거 아니야?”

“그는 자신이 거기에 SP 상점을 거느리고 있어서 SP 거래소는 동시에 갖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꿀꿀. 거기에 자신은 더 이상 SP가 필요 없다고도 했지요.”

“EX등급 애들도 다 SP는 중요시하던데.”

“그는 EX도 뛰어넘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입니다. 시스템을 뛰어넘었지요. 꿀꿀.”

창조주 위에도 등급이 있는 거야?

이름은 창조주의 왼손이면서 창조주보다 세네.

내 기색을 읽었는지 황금돼지가 부연 설명을 해 준다.

“그의 이름, ‘창조주의 왼손’…… 여기서 창조주는 전 우주를 창조한 진정한 창조주를 이르는 말입니다. 겨우 한 세계, 한 행성의 창조주와는 격이 틀리지요. 꿀꿀.”

“허. 그 급이었어?”

“예. 그래도 혹시 모르니, 분신을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꿀꿀.”

그래.

굳이 본체로 갈 필요야 없지.

분신을 소환하여, 감각을 공유한다.

“가자.”

“예. 포탈을 열겠습니다. 꿀꿀.”

포탈로 들어서자, 드러난 곳은 무대 위.

마치 현대 극장에 들어온 것처럼, 관객석이 눈앞에 쫙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사람들.

서로 시끄럽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무대가 고전적이군. 저번 경매 땐 이렇지 않았는데.”

“영혼신이 미개한 세계에서 태어난 모양이야. 그에게 맞춘 무대겠지.”

“그래? 미개한 곳에서 영혼 계열의 각성자가 잘 등장하는 건가?”

“그럴 법해. 완전한 세계에서는 오히려 탄생이 안 될지도 모르지.”

지구의 문명을 미개하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고.

“SP 없다더니. 어떻게 여기까지 행차하셨나?”

“너야말로. SP가 부족하니 분쟁은 멈추자고 그렇게 빈 주제에?”

“빌긴 누가 빌었다고? 허. 황당하군. 경매가 끝나면 손봐 주지.”

원수끼리 만나서 으르렁대는 이들까지.

수백 명이 시장판처럼 체통은 벗어 둔 채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이 사람들…….

아니.

자세히 보니 분신 같은데, 기세가 다들 어마어마하다.

하나하나가…….

대신을 훨씬 상회하는 힘.

아예 차원이 다르다.

겉모습은 각자 다양하고 인간종이 아닌 이들도 많았지만, 다들 하나같이 무지막지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EX등급인가?

한번 쭉 훑어본다.

제우스처럼 보이는 이는 없군.

뭐, 변장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우주의 정점에 이른 창조주를 뵙습니다.”

갑자기 내 옆에 튀어나오는 한 인영.

양복을 멋지게 빼입은 하데스다.

평소처럼 킬킬거리지도 않고, 극도로 예의 바른 모습.

몸짓 하나하나가 절도 있다.

“이제부터 영혼신의 SP 거래소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제 옆에 서 계신 분이 영혼신이십니다.”

하데스가 나를 소개한다.

그러자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저 모습이 영혼신이라고……?”

“후후. 설마. 모습을 바꾼 분신이겠지.”

“아니. 내가 알기론 저 모습이 맞다. 미리 조사했지.”

“뭐? 저런 모습으로 살아가다니. 외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자로군. 인간들은 겉모습에 관심이 많던데.”

“그런 것을 모두 초탈해서, 끊임없이 수련을 했겠지. 그러니 영혼신으로서 대신급까지 올랐을 것이다.”

이것들이 어디서 얼굴을 평가하고 있어.

그래도 어째 이어지는 평가는 호의적인 편이다.

이미 나도 외모에 관해서는 신경을 껐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 하데스의 진행을 기다렸다.

“깨달음을 얻은 영혼신이시여. 송구하지만 제가 감히 질문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SP 거래소에 제한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만…… 그것이 정말로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각성 이후, 모든 제한이 해제되었지요. 제가 마음대로 빼고 쓸 수만 없을 뿐입니다.”

“외람되지만, 영혼신의 이름으로, 여기 계신 창조주들께 증명해 주십시오. 그래야 경매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창조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좀 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선포한다.

시스템에서 받은 메시지까지 띄우고 나자, 극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한도가 없다니.”

“거기에 전 우주에 뻗친 SP 거래소…… 이런 물건은 영겁토록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경매를 시작해라. 빨리!”

“시작해라!”

관객들이 나서서 열화와 같이 요구한다.

다들 완전 몸이 달았네.

“이런 열기는 경매장을 오랫동안 주관한 저로서도 처음 보는군요. 그럼 바로 최초 가격부터 띄우겠습니다.”

하데스가 손을 펼친다.

그러자 생겨나는 숫자.

1,000,000,000,000,000.

무려 천조. 그것도 최초 시작가.

“천조입니다. 입찰을 원하시는 분은…….”

하데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숫자가 뒤바뀐다.

1이 2로 바뀐다.

바로 두 배로 뛰는 가격.

“장난하냐?”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숫자가 바뀐다.

2가 4가 된다.

그러자 관객석에 있던 창조주들 중 반이 스르르 사라진다.

“4천조……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왔군요. 벌써 반 넘는 분들이 자산이 안 되셔서 탈락하셨습니다.”

“풋. 이 정도도 없이 SP 거래소 지분을 사러 왔단 말이야?”

누군가가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바로 변하는 숫자.

10,000,000,000,000,000.

천조에서 열 배…….

경이냐?

애초에 천조부터 비현실적인 숫자였는데.

경으로 오니 내 일이 아닌 것만 같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기분.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그와 동시에 사라지는 신들.

하나, 하나 스르르 사라지며…….

어느덧 다섯이 남는다.

숫자는 이미 2경을 넘어선 상태.

“2.4경.”

그 한마디에 셋이 사라진다.

와.

남은 두 신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은 잔뜩 굳은 표정.

그에 반해 건너편은 웃고 있었다.

“여기서 전 재산을 쓰셔도 되겠소이까? 시리우스의 주인이여. 그대를 노리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만.”

“흠…….”

“저에게 양보하시지요. 저도 이제는 EX등급에서 벗어나고 싶소이다.”

“당신이 그리 이야기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스르르르.

경쟁하던 둘 중 하나가 포기하고 사라진다.

최종적으로 남은 이는 노인의 외양을 한 신.

관객석에서 일어난 그가 무대로 천천히 걸어온다.

“반갑소. 영혼신이여.”

나를 보고 가볍게 목례하는 노인 신.

하지만 나는 차마 그에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힌다.

영체라서 이제 그런 걸 초월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짓눌려, 꼼짝달싹 못하겠다.

SSS급 대신이 되어서 이제 세상이 다 내 발 아래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신.

뭐지?

이런 게 창조주의 힘인가?

인간 앞에 선 개미와 같다.

EX등급 앞에서는 그저 미물도 되지 않는 대신.

영혼신이라는 특수 클래스인데도, 이런 압박감이라니…….

이렇게 위압을 당한 상태는 좋지 않아.

최대한 힘을 집중해 풀어 보려 한다.

아직 이성은 남아 있으니.

SP를 움직이면…….

“흠? 이런. 이런. 아직은 대신이었는가?”

그때, 노인의 기세가 확 죽는다.

대신 정도로 줄어든 기세.

내가 이겨 내기도 전에, 알아서 힘을 축소시켜 준다.

“후우.”

숨은 어째 돌리게 되었지만…….

경각심이 든다.

이런 게 창조주의 힘이야?

물론 이자가 센 거겠지.

창조주들 수백 명 가운데서 가장 SP가 많은 이일 테니까.

하지만, 제우스한테 아까의 반, 1/10이라도 위압감이 들면…….

쉽지 않을 거 같다.

“표정이 심각하구려.”

“창조주는, EX등급은 확실히 다르군요. 제 적이 창조주라,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헛. 영혼신, 아직 SP가 별로 없는가 보구려. 영혼신이 경각심이 들다니……?”

어이없다는 듯이 웃던 노인.

하데스를 바라본다.

“거래를 시작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위대하신 이여.”

노인신이 숫자에 손을 뻗는다.

그러자 24,000,000,000,000,000로 표기되어 있던 숫자가 순식간에 감소하기 시작한다.

“막대한 지출을 하게 되었소만. 그대 덕에 나도 포기했던 승급을 노리게 되었소. 고맙소이다.”

“EX등급이신데, 거기서 또 위가 있군요.”

“하늘 위에는 언제나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이지요.”

약간은 지친 듯 말하는 노인신.

앞 숫자는 어느새 2에서 1로 바뀌고 있었다.

“창조주가 적이라 하셨소이까?”

숫자가 줄어가는 와중에, 심심한지 나에게 말을 거는 노인신.

“그렇습니다.”

“그도 참. 영혼신을 건드리다니…… EX등급이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구려.”

“예. 제 적이 창조주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보가 제대로 있었으면, 감히 건드리지 못함을 알 텐데. 멍청하긴…… 흠? 호오…… 그래도 당신의 적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구려.”

나를 바라보던 노인신.

대번에 무언가를 파악한 듯, 그리 말한다.

영혼신이라면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면서, 희망이 있다니…….

제우스에게?

“희망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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