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93화>
멸망의 검 레바테인 (3)
아버지…….
아버지가 왜 여기에?
머리가 정지된 느낌이다.
미카엘의 화신으로 있으셨던 분이 왜……?
“뭐, 아버지라고?”
“네 아버지, 미카엘의 아바타 아니었어?”
나에게 심각하게 묻는 로키와 아르테미스.
하지만 그들의 말이 귓가에 제대로 들어오질 않는다.
대체 왜?
아버지가 여기 있어?
미카엘의 아바타로 대신계에 있어야 할 분이……?
갑자기 아까의 광경이 떠오른다.
우리를 막던 빛의 천사들.
특이한 영창을 하며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지.
[……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저희의 보호자가 되소서.]
그들이 내뱉던 음성.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기도문과도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지.
레바테인을 막기에 바빴고, 설마하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내가 보이냐? 지호야…… 도망쳐라! 미카엘은 아레스와 협상…….]
화르르륵!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불길이 아버지를 덮친다.
이런 젠장……!
구하러 가자!
“김지호, 멈춰!”
내 어깨를 붙잡는 로키.
그 어느때보다 단호하게 나를 꾸짖는다.
“침착해라. 그렇게 준비도 없이 뛰어들다가 어떻게 하려고? 저게 오히려 함정일 수도 있다.”
“큭…….”
로키의 말에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흥분이 가라앉는다.
그래. 아버지와 관련되어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군.
설령 아버지가 맞다고 하더라도, 불바다에 준비 없이 뛰어들 수는 없다.
[지호야…… 크윽…… 너만은…… 살아라!]
고통에 찬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러자 침착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이 급해진다.
어떻게 하지?
아. 그래. 영검.
영검을 꺼내, 불의 세계를 베어 본다.
치지지지직.
영검과 닿은 부위에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나 불의 세계는 굳건하고, 치밀하게 채워진 영력은 조금씩 베여 나갈 뿐.
[영혼 흡수가 발동합니다.]
[SP를 획득합니다.]
“젠장, 젠장!”
검을 휘두르며, 빛의 힘도 같이 앞으로 뻗어 낸다.
하지만 영검에는 미세하게나마 뚫리는 불의 세계가 태양신의 권능은 손쉽게 밀어내고 있었다.
젠장.
빛의 권능으론 못 뚫는 건가?
“흠…… 아무리 저 힘이 강대하다 한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일단 레바테인을 부수는 게 중요해.”
“영혼신을 따라 공격한다. 힘을 집중해!”
내가 공격하는 방향을 따라 맹공을 퍼붓는 신들.
그 집중 공격 덕분일까.
조금씩이지만, 세계가 열린다.
[지호야…… 지호야…… 후. 왜…… 도망을 치지 않느냐. 구할 거면, 바로 들어오던가.]
다급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침착해진다.
아니, 잠깐……?
뭐야.
“아버지…… 가 아니잖아?”
불길이 작은 천사를 덮친다.
아니, 덮친다기보다는 그 주변을 빙빙 맴돌며, 합체하고 있다.
작은 형태의 천사 형상이 급격하게 불어나더니, 영체가 불로 재편된다.
빛과 불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천사.
삽시간에 커다랗게 불어나 불의 세계를 가로막는다.
화르르르르.
우리 눈앞에 드러난 원형의 불의 방패.
내 몸만 한 원형의 방패에는 Quis ut Deus라고 적혀 있었다.
자동으로 해석되는 라틴어.
‘누가 하느님 같으랴?’
누가 감히 하느님과 같을 수 있겠느냐?
신의 뜻을 받아 이교도를 척살하는 대천사의 성스러운 선언.
저 문구를 보자 그의 정체가 떠오른다.
[영혼신. 너와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유감이구나.]
“너…… 설마 미카엘이냐?”
[그래. 하느님의 종, 제4천의 지배자. 천계의 군단장, 미카엘이다.]
미카엘 이자가…… 정말 배신했구나.
분노도 들지 않는다.
대체 왜?
의문이 먼저 든다.
“미카엘! 대체 무슨 짓이냐!?”
나보다 한발 앞서 성을 내는 로키.
[김지호, 네 덕이다. 네가 아주 잘해 주었다.]
갑자기 나를 치하하는 미카엘.
화가 솟으려 하는 걸 참는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해야 할 국면.
흥분으로 이성을 가리면 안 되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네가 아폴론을 쓰러뜨린 게 결정적이었지.]
“뭐……? 아폴론을……?”
[아폴론이 죽은 후, 아레스는 우리에게 제안했다.]
아레스…… 또 나오는가?
[그는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겠다고 했지. 주님이 있는 장소로.]
“너희의 신은 창조주가 되어, 새로이 천지창조를 하기 위해 떠난 것 아니었나?”
[그래. 하지만 영혼은, 쉽게 만들 수가 없었다. 천지는 창조되었으나, 그 안을 채울 영혼이 필요했지. 지구에서 SP를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어.]
“영혼을…….”
[네가 아폴론을 패배시키자, 아레스는 너의 저력에 크게 놀랐다. 그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배제하려고 했지. 그래서 그는 우리와 접촉했다.]
“뭐……!?”
[제우스의 허락을 얻어, 지구의 결계를 열어 주겠노라고. 주님께 가는 길을 열어 주고, 영혼의 반출도 허하겠다고.]
“네놈……! 배신했구나!”
토르가 이를 갈며 묠니르를 내던진다.
그러자 미카엘의 방패에 그대로 직격하는 망치.
쾅!
몸이 뒤로 튕겨 나가는 미카엘.
불의 방패가 일부 꺼지다가, 다시 재생된다.
하지만 완전히 재생되지는 않고, 가운데가 푹 파인 상황.
Quis ut Deus의 글자가 일부 뭉개진다.
[배신이라니. 나는 주님의 종일 뿐. 그분의 의지에 따를 뿐이다. 애초에 배신은 너희가 먼저 했었지 않는가? 아스가르드의 신이여.]
“크으으. 이 배신자 새끼가…… 죽여 버려!”
“잠깐, 가만히 있어 봐. 토르.”
흥분하는 토르의 어깨를 잡는다.
“영혼신…….”
“내가 질문할 게 좀 있거든.”
[후후. 얼마든지 하라. 네게 많은 도움을 얻었으니, 대답은 해 주지.]
양손을 펼치고 어깨를 으쓱이는 불의 천사.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지?”
[네 아버지는 실망스러웠어. 나는 그의 공, 그의 신실함을 인정했다. 그를 우리의 새로운 에덴Eden으로 인도하고 싶었지.]
“……그런데?”
[주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에덴 동산, 주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네 아버지도 가능할 줄 알았다. 한데…… 최후의 순간, 믿음이 모자랐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타까워하는 미카엘.
“그래…… 그래서 아버지는 어디 있는 거냐? 그 망할 에덴에 없으면.”
[저기 있다.]
미카엘이 가리키는 방향.
태양 같은 구에 꽂혀 있는 대검이 보인다.
멸망의 검 레바테인.
저기에 아버지가 있다고?
“잠깐.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나의 아바타와 관련된 일이다. 거짓은 말하지 않아.]
“애초에, 배신한 네가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것도 이상해. 대체 무슨 생각이지?”
[후후…… ]
로키의 질문에 미카엘은 자신의 방패를 슥 바라보았다.
아직도 재생이 더딘 채 온전치 않은 방패.
[나는 굳이 너희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싸울 필요도 없지.]
“뭐?”
[어차피 아레스가 나에게 길을 여는 대가로 요구한 일은 다 끝냈다. 혹시나 영혼신의 제압할 수 있으면 제압해 달라고, 유인책은 실패했지.]
유인책이라.
아버지의 목소리로 호소하던 걸 말하는 건가.
미카엘 이 자식이……!
[이 정도면 시간도 벌어 주었고. 발두르에게도 힘을 부여해 이 검도 만들었지. 우리는 계약 조건을 지켰다.]
“발두르도 너희가 한 건가…….”
제우스를 믿냐고 할 때 이상하게 웃던 발두르.
그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그쪽에 붙은 것이었군.
[그래. 이제 지구에서 우리의 신도들을 에덴으로 옮길 것이다. 굳이 너희와 싸울 필요는 없지.]
이놈…… 자기는 그냥 쓱 빠져나가겠다는 거냐?
올림푸스와 남은 신들은 개싸움을 하게 두고?
[김지호여. 가기 전에 한 가지 충고를 하지.]
“뭐? 충고? 이 자식이…….”
[인간임을 버려라. 아레스는 영혼신의 저력을 두려워해 우리와 협상했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어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뭐……? 인간성……?
갑자기 무슨 인간성이지?
[명심하라. 상대는 전신이다. 그는 모든 걸 걸고 너를 사냥하려 한다. 너도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오로지 승리만을 노려야 그와 상대할 수 있어.]
미카엘의 날개가 조금씩 사라진다.
그와 함께, 불의 세계도 서서히 영력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계약 시간에 딱 맞는군.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김지호. 정신 차리고 그와 제대로 맞붙어 다오. 우리가 계속 이주할 수 있도록. 하하하하하…….]
미카엘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불의 세계가 걷혀 간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서 있는 빛의 세계도 점차 빛이 사그라진다.
“레바테인의 힘이…….”
“급격하게 사라져 가는군.”
“이 힘의 태반, 미카엘의 것이었는가……?”
“아마 창조주가 된 야훼의 힘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혼자선 이 정도 힘을 내지 못해.”
오딘과 로키의 말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미카엘의 말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내가 승리를 추구하지 않았다고 하는 건가?
모든 수단을 썼어야 했다고……?
“김지호. 길이 뚫렸다. 가자.”
“……그래.”
신들과 함께 검이 꽂힌 구를 향해 간다.
태양처럼 빛나던 그것은 이미 빛이 미약해진 상태.
우리가 다가설 때쯤은 이미 스스로 빛을 내지 않은 채, 유리구슬 같은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저 유리구. 거대한 봉인구 같은데.”
“그래. 안에 떠다니는 것이…….”
커다란 유리구 안에는 희끄무레한 것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잠깐. 이거 설마…….
“영혼 분해.”
이 물건의 정체를 분석한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메시지가 뜬다.
[창조주가 만든 물건입니다. 그는 이를 ‘배교자의 멸혼구’로 명명했습니다.]
영혼 분해로 이렇게 메시지를 받는 건 처음.
창조주가 만든 물건이라 그런 건가……?
배교자의 멸혼구.
이름만 들어도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상상이 간다.
아버지의 혼도 혹시 이 안에 갇혀 있는 건가.
그때, 후속 메시지가 도착했다.
[배교자의 멸혼구를 안전히 해방하시겠습니까? 대가로 영혼신의 SP 70%를 요구합니다. 이 중 최소 요구 수치는 1억 SP입니다. 멸혼구가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깨질 경우, 멸혼구 안의 영혼이 손상되거나 소멸합니다.]
영혼신 SP의 70%……?
딱 나만 타깃으로 삼은 멸혼구.
후술된 문구는 아버지의 영혼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미카엘. 인간성을 버리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멸혼구.
SP를 모두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70%라는 수치를 요구한다.
최소는 1억이라는 제한도 단 채.
아까운 SP지만, 아버지의 영혼을 생각하면 썼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하지만 여기서 이 SP를 쓰게 되면 아레스와의 차후 전투에서 불리해지겠지.
그걸 알기에 미카엘은 나에게 충고를 한 건가?
인간성을 버리라고.
멸혼구를 깨 버리고, 아버지의 영혼을 포기하고 SP를 아끼라고.
……그래.
포기해야 하는가?
이대로 한때 미카엘의 아바타였던 분을, 배교자라는 타이틀을 단 채 저 멸혼구 속에서 소멸시키게 놔둬야 하는가?
살기 위해. 승리하기 위해.
내게 가장 의미가 깊었던 가족, 아버지의 영혼을 이렇게 방치한다고……?
“로키.”
“왜?”
“다른 대신계에 연락을 돌려 봐. 침략당한 곳이 있는지. 이제는 통신이 되겠지.”
“그래. 알겠다.”
“나에겐…… 잠깐. 몇 분만 줘.”
“……그래.”
마음의 동요, 흔들림은 금방 멎는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버지의 영혼이 아니라, 미카엘이 직접 아버지의 영체를 잡고 없애느니 마니 했다면…….
더 흔들렸겠지.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니다.
나는 영혼신이다.
영혼을 다루는 것은, 나의 관할에 있다.
이는 창조주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의 전문 분야.
“영혼 분해. 합성.”
구 안의 영체를 파악하고 나눈다.
나의 개입으로 인해 부서지려던 멸혼구는 합성하여 메우고, 계속해서 영체를 찾는다.
그런 과정 속에서 배교자였던 영혼들이 나에게 심적으로 와닿는다.
신에게 배교자로 버림받은 이들.
얼마나 악하기에 그렇게 된 것인가?
“당신들은…….”
하지만 그들은…….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신실하고, 성실했으며, 신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을 전파한 이들이다.
다만.
자신만 구원받기를, 주저하고 살짝 꺼렸을 뿐.
나 혼자 천국으로 승천하려니.
가족이 눈에 밟히고. 친지가 눈에 밟히고.
자식이 눈에 밟혀 차마 천사의 손을, 미카엘의 손을 잡지 못한 이들이다.
그래.
이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단지 에덴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뿐.
하지만 아버지의 영혼은…… 이 중 하나.
이들이 누구보다도 순수한 영혼인 건 알지만, 아버지의 것은 아니다.
“영혼 약…… 후우. 중개.”
아버지의 영혼은 아니다.
그러면 없애야 찾기 쉬웠겠지.
하지만 영혼 약탈을 말하려던 입은, 어느새 중개로 바꾸어 말을 하고 있었다.
“영혼 합성.”
멸혼구를 토대로, 새로이 영혼구를 만든다.
그 안에 배교자들을 넣는다.
쓸데없는 SP의 소모.
쓸데없는 인간성에서 시작된 필요 없는 시간 소모.
그래. 쓸데가 없다.
누구보다도 신을 믿었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했던 이 좋은 사람들은 지금의 나에겐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묵묵히 해 나간다.
미카엘의 충고는 도외시하고.
버릴까 고민하던 인간성을 붙잡은 채.
영혼구를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
이런 이들은…….
그래. 살리고 싶다.
인간으로서.
신으로 믿었던 이에게 버림받은 이들.
누구보다도 착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온 영혼들.
내가 조금만 더, 힘을 쓰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 살릴 수 있는 이들이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안전하게.
모든 감각이 확장된 채 영혼구를 만들고 배교자의 영혼을 넣는 것을 반복한다.
수없이 나누고 나누며, 영혼 중개와 합성, 분해를 반복해서 읊는다.
“영혼 중개.”
“영혼 합성.”
“영혼 분해.”
계속해서 스킬명을 내뱉고, 내뱉다…….
어느 순간부터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말하지 않아도 가능했다.
나의 의지에 따라, 영체가 움직였다.
분해와 합성, 중개…… 이런 스킬명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내 뜻대로 영체가 차근차근 나뉘어 갔다.
“이건…….”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다.
시스템에 속하지 않고 의지대로 발현되는 나의 영혼 계열 스킬들.
스킬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층 더 효율적이고 제한 없이 사용된다.
그래.
이게 나의 진정한 권능.
영혼의 권능이다.
[사용자 ‘김지호’가 시스템의 제약에서 일부 벗어납니다.]
[SSS급으로의 승급 조건이 일부 충족됩니다. 남은 조건이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