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91화>
멸망의 검 레바테인 (1)
“동시에 쳐들어오다니.”
“일단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방어 태세를 갖추어라.”
오딘의 명에 모여 있던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속속들이 사라진다.
로키는 오딘과 같이 남아, 나에게 말했다.
“김지호. 아까 사용했던 신의 권역 스킬, 언제 또 쓸 수 있지?”
“아직 해제하진 않았어. SP 소모가 좀 있긴 하지만, 지금은 계속 유지해야지.”
“오. 그렇다면 혹시 범위는 얼마나 늘릴 수 있지?”
“내 눈이 닿을 정도? 이 아스가르드 전역을 뒤엎을 정도는 되지 않아.”
“그럼 정예를 구성하는 게 낫겠군. 그들과 함께 레바테인을 막아 줄 수 있을까?”
로키의 말에 하늘을 바라본다.
레바테인, 아스가르드를 멸망시킬 검.
근데 워낙 규모가 커서 불의 검은 보이지도 않고, 그냥 하늘에 타오르는 불길만 있었다.
“레바테인의 정확한 위치는 알고?”
“내가 찾겠어. 미안하지만 사도들을 좀 불러 줄 수 있을까?”
“그래. 아스가르드가 없어지면 안 되지. 대신, 외부에 파견 나간 신들…… 부르지 마.”
하늘엔 레바테인의 불꽃과 흑뢰만 가득하다.
올림푸스의 신은 보이지 않는다.
전신 아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영웅신들.
올림푸스의 군대를 이룰 이들은 이 자리에 없다.
하긴, 그들이 직접 공격을 해 오진 못하겠지.
그럼 동맹 조약이 위반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올림푸스의 전력은…….
어디로 갈까?
“김지호. 너…… 아레스가 다른 신계를 동시에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군?”
“그래. 아스가르드가 멸망의 위기에 놓여 모든 신이 귀환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파견 나간 신들이 몸으로 적 공격을 받아 줘야지 동맹 조약이 위반돼서 페널티가 나오는데, 모두가 귀환하면 페널티도 없을 거 아냐.”
“흠…… 파견 나간 신의 전력도 적지 않은데…….”
“중소신계는 이미 끝장났으니 됐고, 대신계와 지구. 이 둘을 지켜 줘. 대신 나도 모든 사도신을 동원하지.”
“그래. 알겠어.”
로키에게서 답을 듣자 사도를 모두 소환한다.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는 사도신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미 전투 준비를 한 상태였다.
“아스가르드에는 멸망의 검이 뜨고, 올림푸스는 중소신계를 멸하고 흑뢰를 파견했다.”
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사도신들이 전의를 다지며 하늘을 바라봤다.
“아스가르드가 멸망하면 결국 제우스를 막을 장치가 사라진다. 사도신에게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오늘은 부탁하겠다.”
“명하십시오. 주신이시여.”
“아스가르드를 지켜 달라.”
“알겠습니다! 아스가르드를 지키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대지를 울린다.
내 생각보다 군기가 더 들어 있군.
“그리고…… 질서의 신기를 가진 이가 있는가? 혹시 남는 신기가 있으면 나에게 팔 수 있는가?”
그러자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던 사도신들.
그중 한 명의 사도신이 앞으로 나선다.
긴 수염의 사나이, 관우다.
“주신이시여. 제 청룡언월도를 바치겠습니다.”
“아니, 이건 관우, 당신의 주무기일 텐데…….”
“주신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이니, 당연히 드리는 것이 도리에 맞겠지요.”
이거 참.
관우에게서 청룡언월도를 뺏다니.
못할 짓을 하는 느낌인데…….
“잘 쓰겠네.”
하지만 전투에 앞서서 검을 업그레이드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바로 영검을 꺼내 관우가 준 청룡언월도를 흡수한다.
[영검이 청룡언월도를 흡수합니다.]
[영검의 진화 조건을 일부 충족합니다.]
[질서 진영의 신기가 더 필요합니다. 적어도 SS등급 이상의 신기를 흡수하십시오.]
SS급 이상으로?
이건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신들이 대부분 S급이니……
아. 그래.
[아르테미스. 너 SS급 신기 없어? SS급이 필요하다네.]
[뭐? 나? 없어.]
[진짜?]
[진짜 없어! 내 활 크리셀라카토스도 S급에 불과해. SS급이 얼마나 희귀한데.]
[알았다.]
미스틸테인이랑 드라우프니르의 파편을 흡수한 건, 운이 좋았던 거였군.
막상 찾으려고 드니까 없네.
흐음.
트라이아나를 지금 당장 흡수하기는 아쉬운데……
“관우. 청룡언월도를 준 헌신, 고맙다. 무기를 주었으니, 굳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도 돼.”
“아닙니다. 제 미력한 힘이나마 주신의 행보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거참. 말 이쁘게 하네.
일단 SP 100만을 건네준다.
“주신이시여. 이건…….”
“나중에, 전투가 끝나면 제대로 보답하지. 일단 그거로 무기라도 사.”
“예. 알겠습니다!”
관우가 밝아진 표정을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자 혹시나 해서 사도들에게 물어봤다.
“혹시, SS급 신기 있는 사도…… 있을까?”
그러자 모두 내 시선을 피한다.
하. 대신 아르테미스도 없는 게, 이들한테 있지는 않겠지.
내가 아쉬워하자, 옆에서 로키가 묻는다.
“김지호. 그게 중요한 거야?”
“영검의 최종 진화를 위해 필요한데…… 아쉽네.”
“SS급 신기. 질서 진영 거여야 한다고?”
“그래.”
“중립 진영 거라면 좀 구해 줄 수 있는데, 질서라니…… 조건도 까다롭네. 나도 싸우면서 틈틈이 알아볼게.”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콰과광!
하늘에서 불길을 뚫고 검은 벼락이 내리친다.
땅에 부딪친 흑뢰는 곧 인간형의 형태를 이루어, 우리를 적대한다.
“벌써……! 김지호. 최정예를 모아 다시 올게. 그동안 저들을 좀 부탁한다.”
“그래. 사도들이여. 흑뢰를 제압하라.”
나의 명에 일제히 진격하는 사도들.
땅에 떨어진 흑뢰와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아르테미스. 네가 좀 도와줘. 나도 곧 합류하지.”
“알았어. 근데 넌 뭐 하게?”
“난 트라이아나를 조종하려고.”
“그래. 애들 안 죽게 원호하고 있을게.”
쾅. 쾅. 쾅!
전장의 폭발음이 벌써 여러 곳에서 들린다.
빨리 행동해야겠군.
오케아노스의 지도를 띄웠다.
아스가르드로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는 대규모 군세.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3가지 길이 모두 적 군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디세우스를 제압했던 곳은 내가 잠시 길을 틀어막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 여기까지 오질 못했지만, 나머지 두 길은 이미 줄을 서서 들어오고 있는 모습.
“오케아노스의 길에 계속해서 개입할 수는 없나 보지?”
[트라이아나의 권능을 통해, 한 번에 두 가지 길만 막을 수 있습니다. 지속시간은 30분이며, 힘의 재충전까지는 두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 길이라.
그럼, 세 길 중 두 개를 막아야겠군.
한참 진군하고 있는 두 길을 틀어막으면, 적의 수가 좀 줄겠지.
[오케아노스의 길에 개입하시겠습니까? 트라이아나의 권능을 사용할 경우, 트라이아나를 통해 이동할 수 없습니다.]
“개입한다.”
[개입할 장소를 지정해 주십시오.]
트라이아나의 물음에, 한참 진군하고 있는 두 길의 초입을 막았다.
그러자 지도상, 진군이 봉쇄되는 두 군단.
이러면 30분 정도는 흑뢰의 추가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정도는 내 사도나,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막을 수 있겠지.
“문제는 저 레바테인인데…….”
아스가르드를 멸망시킨다는 검.
하늘을 완전히 불태우고 있는데 기세 하나는 흉험하다.
계속해서 불길이 늘어나, 곧 땅까지 침범할 것 같다.
로키가 최정예를 모아 온다는데, 그동안은 시간을 좀 벌어야겠어.
“영혼 분해.”
보고만 있으면 해결이 안 되니 분석을 해 본다.
하늘을 가득 메운 영력.
빛과 불의 기운이 서로 모여, 시너지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근데 이거 제대로 분석하니까…….
“생각보다…… 약한데?”
약하다.
아스가르드를 멸할 불의 검이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기대 이하.
아폴론이 태양신의 힘을 완전히 발휘했던 때보다 약하게 느껴진다.
겉은 하늘을 완전히 불태울 듯 강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실이 없다.
에너지의 방향성도 명확한 타깃을 노리고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늘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번지고 있는 상태.
이게 아스가르드를 멸할 검이라고?
“아르테미스.”
“왜?”
“레바테인, 저거 제대로 각 잡고 보니까 그렇게 안 강해 보이는데? 네가 보긴 어때?”
“저게? 진짜? 난 손도 못 댈 것 같은데. 가까이 가기만 해도 타오를 거 같아.”
하늘을 힐끗 바라보던 아르테미스.
진저리치며 고개를 흔든다.
“저게 정말 강해 보여?”
“예? 예. 하늘의 불은 정말 대처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본능적으로 두렵습니다.”
다른 사도를 붙잡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뭔가 다른 신들에게는 특별함이 느껴지는 건가?
일단은 로키가 정예 불러오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 보자.
“태양신의 권능.”
업그레이드된 태양신의 권능을 사용한다.
빛의 신 발두르가 죽은 이후, 태양빛이 사라지고 있던 아스가르드.
하지만 발두르의 권능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빛을 발해 태양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화아아아.
내 몸에서 새하얀빛이 퍼져 나가자, 옆에 있던 아르테미스가 이쪽을 쳐다본다.
“너…… 힘이 좀 달라졌네?”
“아폴론에 이어 발두르의 힘도 깃들었지.”
“와. 남들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걸, 한 번에 다 집어삼키는구나.”
부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던 아르테미스.
그러더니 의아한 표정이 된다.
“네가 빛을 내니까, 레바테인이 더 이상 공포스럽게 느껴지지가 않아. 불길은 그대론데, 신기하네.”
“그래?”
“예. 저도 그렇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단두대의 밑에서 싸우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하늘의 위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반문에 답하는 또 다른 사도신.
나는 그냥 태양의 권능을 이용해 레바테인과 맞부딪칠 생각이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사도신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있었다.
빛의 힘이 억제 효과가 있는 건가?
좋아.
“하늘의 불을 막자.”
빛에 영력을 담아 하늘의 불꽃을 압박한다.
지상의 빛.
하늘의 불.
원래라면 위치를 바꿔야 할 두 자연 현상이 맞부딪친다.
영력이 담긴 빛과 불은 서로를 강하게 압박하며 밀고 밀리는 싸움을 시작했다.
[‘창조주의 힘이 담긴 레바테인’과 충돌합니다.]
[사용자가 영혼신입니다. ‘위압’ 효과를 받지 않습니다.]
[레바테인이 빛의 신 발두르와 비슷한 특성을 지닙니다. 보다 쉽게 레바테인을 공략합니다.]
보다 쉽게 공략한다고?
근데 SP는 뭐 이렇게 훅훅 빠져나가냐?
[태양신의 권능이 최대 출력으로 발동합니다. SP 소모량이 급증합니다.]
[레바테인에 영혼 약탈이 발동합니다. SP를 획득합니다.]
SP 소모와 획득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나는 메시지창.
하지만 소모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벌써 이백만을 쓰다니…….”
신의 권역도 패시브로 발동해서 그런가?
SP 소모량이 어마어마하다.
쉽게 레바테인을 공략한다더니, 불길의 기세는 쉬이 가시질 않는다.
다만 온 세상을 뒤엎을 것 같던 레바테인의 힘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멈춰 있었을 뿐.
“흑뢰가 약해졌다.”
“주신의 빛에 약화되는 모양이다. 지금 제압하라!”
다만 사도와 흑뢰 간의 전투는 쉽게 풀리고 있었다.
펑!
[으…… 으…….]
사도와 치열하게 맞서 싸우던 흑뢰가 반토막이 난다.
인간의 형상을 한 검은 번개는 서로 다시 붙어 재생하려고 하다가, 내 빛에 닿자 힘을 잃고 불타올랐다.
차례차례 제압당하는 흑뢰.
대지에서의 싸움은 승기를 잡아 가고 있었다.
신들간의 싸움이라 그런지, 기세가 한번 기울어지니까 순식간에 학살극이 펼쳐진다.
“더 적이 내려오진 않네. 트라이아나의 힘을 쓴 거야?”
“그래. 하지만 지속 시간은 30분밖에 안 돼.”
“그럼 그동안 레바테인을 없애야겠네…….”
하늘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레바테인.
내 빛으로 억누르지만, 레바테인의 확장을 멈추게 할 뿐, 제압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양신의 권능을 뿜어내다 보니, 1분당 이백만 SP가 날아간다.
30분간 이렇게 억제만 해도 그냥 육천만 SP가 날아가는데…….
“김지호! 아스가르드의 최정예를 모아 왔어.”
마침 로키가 도착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오딘과 토르.
그 뒤에는 우락부락한 덩치의 전사들과 키 큰 발키리들이 수십 명 도열해 서 있었다.
개중에는 저번에 보았던 프레이야도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네의 빛, 태양신의 힘인가?”
로키의 옆에 있던 오딘이 한 발짝 앞으로 와 물어 왔다.
“태양신의 권능에, 발두르의 빛의 힘도 담겼지요. 그러고 보니, 레바테인의 힘이 빛의 신 발두르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고 시스템에도 나와 있더군요.”
“그래서 그런가…… 덕분에 하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었네. 해서 레바테인의 위치를 알게 되었지.”
“어딥니까?”
“세계수의 위쪽 하늘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