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90화 (190/240)

<내 상태창 2개 - 190화>

라그나로크 (5)

칙. 칙. 치이이익…….

공간이 불타오르더니, 삽시간에 허물어진다.

흑뢰가 번져 나가던 발두르의 빌딩 지하.

어둠이 가득했던 그곳의 풍경이 변하고,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죽어…… 다시 태어…… 아니, 여기…… 여기는 어디지……?”

배리어 뒤에서 의기양양해 있던 발두르.

황량한 대지 위에 푸른 하늘을 보자 당황한 채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히 소환되네. 발두르, 대신급도 아수라도에는 불려 올 수밖에 없는 건가?”

“영혼…… 신……!”

“아수라에게서 이 스킬을 받았을 때만 해도 쓸모가 없는 줄 알았는데, 꽤 용이하게 쓰이잖아?”

“아수라…… 아수라도? 갑자기 그가 왜 나오지?”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발두르.

흑뢰가 돼서 지능이 떨어진 건지, 아수라도에 대해서 모르는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습이다.

“태양신의 권능.”

하늘과 최대한 가까이 붙은 나의 대지.

햇빛을 쓰기엔 최적의 환경이지.

곧 감각이 넓게 퍼지며, 태양빛과 동화된다.

이를 보고 불쾌해하는 발두르.

“이놈…… 나는 빛의 신, 발두르다. 누구 앞에서 감히 빛의 힘을!”

“아. 그래? 그럼 빛 좀 쬐어도 상관없겠네.”

감각을 확장해 빛을 제어한다.

태양빛을 한데 모아, 스포트라이트처럼 발두르를 비춘다.

아수라도가 밤처럼 어두워지고, 빛은 한 군데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발두르를 향해서.

치이익. 치이이이익.

금방 타오르기 시작하는 배리어.

견고하던 배리어가 한 겹 더 벗겨진다.

“아…… 아니. 나의 배리어가……!”

“여기서 죽어도, 라그나로크가 발생할까?”

영검을 들어 발두르에게 다가간다.

“이놈!”

그러자 바로 나에게 흑뢰를 뿌리는 발두르.

빛의 신이라더니, 번개나 뿌리고 있네.

속도는 빠르지만 너무 정직한 공격.

이미 그를 내리쬐는 빛을 통해, 어떻게 날아올지 궤적은 다 파악하고 있다.

“아니……!”

휙.

가볍게 피하고, 그에게 다가간다.

캉! 캉! 캉!

“으. 으으. 으으으!”

배리어는 여전히 단단하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급하지 않다.

녀석을 아스가르드에서 떼어 놨으니. 차근차근 제압하면 될 뿐.

배리어 안에서 흑뢰를 쏘던 발두르.

배리어에 금이 갈 때마다,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푸슉!

“커억!”

[대신 발두르의 힘을 약탈합니다.]

[영력이 오릅니다.]

[SP가 오릅니다.]

흑뢰를 제압할 때는 흡수 메시지가 안 뜨더니…….

대신이라 다른 건가?

어쨌든 주는 힘, 잘 받아먹지.

“으…… 나의 힘, 나의 힘이……!”

발두르의 힘을 흡수한다.

꽤 쏠쏠하게 들어오는 영력과 SP.

이미 영검을 꽂아 제압했으니, SP 소모가 큰 태양신의 권능도 해제하며 그의 힘을 흡수한다.

[대신 발두르의 힘을 약탈합니다.]

[빛의 권능을 얻습니다.]

[태양신의 권능과 본질적으로 같은 권능입니다. 태양신의 권능으로 귀속되어, 그 힘을 강화합니다.]

[이제 태양빛이 없어도 빛을 발해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오.

태양신의 권능을 강화해 줘?

스스로 빛을 뿜어낸다고?

와. 이 녀석. 보물단지구나.

“크…… 크윽…….”

치이이익.

완전히 허물어져 가는 발두르.

그냥 정면으로 싸웠으면 귀찮았을 텐데, 건물에 흑뢰를 뿌린다고 힘을 소모한 덕에 쉽게 제압했군.

힘을 한 차례 더 흡수하고 나자, 녀석의 몸이 완연히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판.

흠. 이 녀석, 죽여도 되나?

‘내가 죽어서 라그나로크를 일으키겠다.’는 게 이 녀석의 핵심 주장이잖아.

그냥 이 정도 힘을 흡수하고, 봉인시켜 버리는 게 낫나?

[김지호. 너 어떻게 된 거야?]

때마침 로키에게서 통신 화면이 뜬다.

“아수라에게 인정을 받아 아수라도를 일부 받았거든. 나의 대지로 소환했지.”

[아, 아수라도를 받았다고? 네가? 수많은 전신이 도전했는데 성공한 건 손에 꼽는데…… 대단한데? 발두르는 지금 어떻게 되었어?]

“지금 죽일까 말까 고민 중이다.”

[잠깐. 잠깐. 아직 라그나로크가 일어나지는 않았어. 그냥 봉인 가능할까?]

“큭…… 멍청한 것들. 흑뢰로 몸을 변형한 이상, 나는 결국 소멸한다.”

나와 로키의 통신을 듣던 발두르.

비웃음을 흘린다.

“빛의 신인 내가 사라진 이상, 아스가르드에서 빛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세계수는 시들고, 세상은 타락하겠지. 로키의 자식, 펜리르, 요르문간드, 그리고 헬이 미쳐 아스가르드를 침공할 것이다.”

[이 미친 새끼가 진짜. 야. 그건 라그나로크 속의 이야기지. 지금 우리 신계에서 내 새끼들이 얼마나 인기 좋은지 모르냐? 펜리르는 아스가르드의 마스코트구먼. 네깟 놈 뒤진다고 걔들이 미칠 거 같아?]

자식 이야기에 성을 내는 로키.

뭐 라그나로크처럼 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조져, 말어?”

[아오. 개인적으로는 죽여 버리고 싶지만, 일단은 봉인해 줘.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게 있으니까.]

“큭…… 이미 늦었다. 기쁘게도, 사라지고 있구나…….”

흑뢰로 변했던 그의 몸이 손끝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려 간다.

그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는 발두르.

이거 원, 어차피 죽는 거였네.

푹!

“큭…….”

“어차피 죽는 거, SP나 내뱉어라.”

“영, 영혼신…… 그렇게 약탈해 갔으면서……! 마지막 가는 길까지…….”

“마지막 가는 길이니 다 주고 가야지, 자식아.”

“내 다시 태어나면…… 너를 용서치 않을 것…….”

“병신. 제우스를 믿냐?”

“……큭.”

그러자 뜻 모를 미소를 짓는 발두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채, 영체가 허물어진다.

[하아…… 그래.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죽을 놈이었으니, 네가 힘을 얻는 게 낫지.]

“아스가르드에 변화는 없어?”

[태양빛은 사라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변화가 없어. 내 자식들도 멀쩡하지……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일단 아스가르드로 와.]

“그래. 알겠어.”

로키가 열어 주는 포탈을 통해 다시 아스가르드로 귀환하려는 차.

내 눈에 무언가 특이한 게 들어왔다.

발두르의 영체가 사라진 자리.

그곳에 황금빛 파편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뭐지?

윙. 윙.

갑자기 지 혼자서 빛을 번쩍이는 영검.

검기가 늘어나더니, 저절로 파편으로 향했다.

검기에 파편이 닿자, 스르르 사라지는 황금색 파편.

[영검이 드라우프니르의 파편을 흡수합니다.]

[영검의 진화 조건을 충족합니다.]

[중립 진영의 신기의 흡수가 끝났습니다. 질서 진영의 신기를 흡수하십시오.]

[질서 진영의 힘을 충족할 시, 영검이 SSS단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오. 아까 발두르가 소멸시켰던 드라우프니르인가?

파편으로 남았었다니…….

영검으로 신기를 언제 또 흡수하나 했는데, 엉겁결에 흡수해 버려서 이젠 질서 진영만 남았구나.

“질서 진영의 신기라…….”

스르륵.

등 뒤에 꽂아 두었던 포세이돈의 신기, 트라이아나를 꺼냈다.

올림푸스가 질서 진영이니까, 이것도 질서 진영의 신기일 거란 말이지.

웅. 웅.

영검이 트라이아나를 보자 강하게 빛을 뿜는다.

그러자 트라이아나도 이에 맞서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뭐, 둘이 싸우냐?

SS 급 무기 두개가 SSS급으로 바뀌면 당연히 좋긴 한데……

“흠. 하지만 트라이아나는 오케아노스에 방해 스킬도 써야 하니…… 쉽게 흡수하게 두기가 그렇단 말이지.”

영검이 흡수해서 그 기능을 발휘한다면 모르겠는데 말이야.

영검이 지금껏 흡수한 신기인 미스틸테인, 드라우프니르의 파편의 기능을 딱히 발휘하지 못하는 걸 보면…….

일단은 놔두는 게 최선일 것 같다.

대신 좀 있다가 질서 진영 사도들에게 신기를 한 번 각출해 봐야겠어.

[김지호. 뭐 해?]

“알았어. 간다. 가.”

포탈 안에 들어서자, 수많은 신들이 침통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것은 오딘.

“영혼신. 아들을 죽여 줘서, 고맙네. 아스가르드가 하마터면 어이없게 넘어갈 뻔했어.”

아버지의 입에서 아들을 죽여 줘서 고맙단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씁쓰름하다.

오딘의 팔을 붙잡고 울고 있는 여신.

그 외에도 수많은 신들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쩝. 발두르에게서 낌새는 없었습니까?”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네. 발두르는 빛의 신.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모두에게 상냥했지. 그런 녀석이 라그나로크를 스스로 일으킬 생각을 했을 줄이야…… 아비로서 전혀 알지 못했지.”

“그가 건물에 흑뢰를 잔뜩 부여하던데, 대체 뭘 하려고 한 겁니까?”

“나와 보게.”

오딘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자 바닥에 포탈이 생겨난다.

그 아래로 빠지니, 아까 보았던 아스가르드의 세계로 연결되었다.

거대한 세계수.

그리고 그 옆에 황금빛으로 빛나던 발두르의 빌딩.

원래는 그냥 일반 빌딩이었던 게, 모양이 마치 창처럼 변해 있었다.

“원래는 저기에 어마어마한 흑뢰의 기운이 부여되고 있었지.”

“저 창에요?”

“그래. 하늘과 세계수를 노린 것으로 짐작되네.”

“세계수에 하늘이라…….”

둘을 노려서 뭘 하려고 한 걸까?

세계수는 뭐, 세계수니까 중요한 거라고 치고.

하늘은…….

흑뢰 군단은 그냥 하늘에 뭘 쏘지 않아도 자연스레 쳐들어올 테고.

딱히 뭐가 없는데?

“세계수는 아스가르드의 근원. 이그드러실이 손상되면, 아스가르드의 세계 자체가 근간을 잃어버리고 무너진다네.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들의 힘과 SP가 필요하겠지.”

“그럼 하늘은…….”

빛을 잃어 가는 하늘.

아까는 대낮처럼 밝더니, 지금은 석양이 진 것처럼 세상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발두르 녀석.

자기가 죽으면 빛이 없을 거라고 하더니.

잘만 빛이 비추고 있잖아.

근데, 이상하다.

태양은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빛나는 거지?

“하늘은……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이 빛이 심상치 않긴 하네만.”

오딘이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쉰다.

“대체 하늘에 흑뢰를 왜 쏘려고 한 걸까?”

“흠. 애초에 발두르가 죽으면 라그나로크가 일어난다는 거, 실제로도 그렇게 되긴 합니까?”

“발두르는 강한 확신에 차 라그나로크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는 않을 거야. 이 세계는 신화 속의 멸망이 예정된 세계가 아니야. 사람들의 신앙이 모여서 만들어진 대신계지.”

“그래. 내 자식들도 미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 뭐 미쳐 봤자 중급신, 하급신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들이니 토르에게 머리 깨졌겠지만.”

“그래. 라그나로크는 그냥 신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오딘, 로키, 토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 불길이 휘몰아친다.

하늘을 태우는 새빨간 불길.

이는 곧 글자처럼 형태를 이뤘다.

[오딘이여. 나 제우스. 오랜 동맹이자 맹우로서 그대들을 축복한다.]

제우스?

이 녀석이 왜 갑자기…….

[동맹의 일원으로서 주신의 아들, 발두르의 청을 들어주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 그는 신화를 재현하고 싶어 했지.]

화르르르르르.

하늘에 번지는 불길이 점차 커져 간다.

그와 동시에, 글씨를 이루는 것이 불길에서 흑뢰로 바뀌어 간다.

[나 제우스, 처음에는 그 청을 거절했으나…… 그가 목숨까지 거는 바람에 특별히 동맹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원하던 것은 레바테인.]

“수르트의 검……! 아스가르드를 멸망시키는 불의 칼이다!”

로키가 비명을 지른다.

불의 칼.

하늘을 불태우고 있는 저 천화天火가 칼이라고?

“제우스, 이건 동맹 조약 위반이다!”

[아니, 위반이 아니다. 나는 주선만 했을 뿐이니까.]

“뭐……? 주선만 해……?”

[그래. 시스템으로 얽매어 보라. 내가 걸리는지. 하하하하!]

혼란스러워하는 오딘.

불길은 더욱 거세져, 아스가르드의 하늘을 모조리 불태울 기세로 퍼져 나간다.

와. 저런 걸 만들었는데, 동맹 조약 위반이 아니라니.

믿기지가 않는데.

[그럼 아름다운 황혼을 즐기거라. 동맹이여!]

이를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글귀.

글이 끝나자, 불로 뒤덮인 하늘 사이사이로 흑뢰 군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불길 속에서 위용을 드러내는 적의 군단.

“흑뢰까지……!”

레바테인.

하늘을 불태우는 불의 검에, 흑뢰 군단까지.

이게 저들이 구상했던 라그나로크인가?

이 정도면…….

충분히 대처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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