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89화>
라그나로크 (4)
영검의 진화?
원래는 신급 존재를 죽이며 진화하던 영검.
SS급에 오른 이후로는 진화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이런 메시지가 뜨다니…….
신만 죽이는 게 아니라 신의 무기도 흡수해야 했었나?
흠. 신의 무기…….
아무거나 되는 건가?
흠. 그럼 사도에게 달라고 할까.
“오. 성공했구나! 다행이야. 라그나로크를 막았군.”
“잘하셨습니다. 아레스의 함정을 분쇄하셨군요.”
내가 영검에 관련하여 생각에 잠긴 사이, 로키와 오디세우스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공치사를 하던 둘.
하나 오디세우스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레스의 권능이 발동한 상황이기에, 그가 어떤 수를 더 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레스의 권능. 승리로 향하는 길을 예지하는 건가?”
“예. 함정이 파훼되면 두 번째 수를, 또 다른 수가 파훼되면 세 번째 수를. 그는 언제나 승리로 향합니다.”
“두 번째 수에 대한 정보는 없어?”
“음…… 예. 아직은 없습니다. 아직은…….”
아직은?
그럼 나중에는 생기는 건가.
흠. 올림푸스와 완전 척을 진 오디세우스인데, 내부에 협력자라도 있는 건가.
“뭐 어쨌든, 발두르는 살렸으니 됐어. 라그나로크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누가 누굴 살렸다는 거죠?”
로키와 오디세우스의 대화를 뚫고 들려온 목소리.
화려한 금발의 조각 미남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두르?”
“로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음. 그게…….”
“절 살렸다니요. 무슨 말이죠?”
잠시 나와 오디세우스를 바라보던 로키.
은밀히 메시지를 보낸다.
[이 녀석이랑은 워낙 껄끄러운 사이라, 그의 건물에 무단 침입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미스틸테인도 파괴했겠다, 말해도 되겠지?]
[미스틸테인을 파괴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래. 일단 말한다.]
뭐, 녀석의 일이니 그에 맞춰서 하겠지.
로키가 발두르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하자 발두르는 이를 경청했다.
“……미스틸테인을 영혼신이 때에 맞춰 파괴한 덕에, 라그나로크를 막을 수 있게 되었어.”
“라그나로크를 막았다고요?”
“그래. 그래도 올림푸스의 흑뢰 군단이 쳐들어오는 건 대비해야겠지만 말이야.”
“흐음…….”
발두르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벽을 쓰다듬는다.
이 녀석, 미스틸테인이 있던 곳을 향해 정확히 다가왔네?
“미스틸테인…… 정말 산산조각났군요.”
“그래. 영혼신이 완벽하게 부숴 버렸지.”
“왜 그랬습니까?”
“……뭐?”
쾅!
발두르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태양신의 권능과 흡사한 빛의 힘.
빛에 유형의 힘이 담겨, 순식간에 우리 일행을 밀어낸다.
“심판의 때에 맞추느라 힘들게 만들었는데 말이에요.”
뭐?
이 녀석…….
이 녀석이 미스틸테인을 만들었다고?
스스로를 죽일 신기를……?
“너…… 너 미쳤어?”
“로키. 라그나로크의 끝은 어떻게 되지?”
존대를 바로 그만두는 발두르.
로키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한다.
“라그나로크의 끝…… 설마 너…….”
“세계가 멸망한 후, 새롭게 떠오른 땅에서 죽음에서 부활한 내가 최고신이 되지.”
사아아아아.
어느새 몸이 빛으로 변한 발두르.
빛 가운데에서 검은색의 번개가 몇 줄기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검은빛이 일렁이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우리의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새로이 정립된다면 영혼신에게 진 막대한 부채도 사라지게 될 터.”
“이 자식…… 그거, 흑뢰잖아.”
“약속의 때가 되었다. 빛의 신 발두르, 라그나로크를 이 자리에서 열겠다. 나는 죽지만, 다시 부활하리라. 아스가르드는 멸망하지만,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발두르!”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어머니가 주신 권능, 만물에 대한 불사를 포기한다.”
지지지지직.
빛의 신의 영체가 점점 검은 번개로 물들기 시작한다.
아니, 아스가르드의 대신이 자발적으로 흑뢰가 되려고 하다니…….
기껏 라그나로크를 막은 줄 알았는데, 지가 스스로 죽으려고 하네!
“발두르! 대체 뭘 믿고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 거지?”
“이것은 창조주를 통해 확언된 서약. 신을 뛰어넘은…… 위대한 이를 만나 뵙지 못한 너희들은 모르겠지.”
“서약? 서약을 믿나? 아레스가 중소신계에 한 짓, 모르는 거야? 저들은 서약을 언제든지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어!”
“후후. 그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내가 맺은 서약은 그와는 다른 것. 나는 부활을 확정받았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로키의 말을 받는 발두르.
진짜 알고 있었던 기색이다.
아니, 다른 서약이라고?
약속은 그놈들이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을 텐데?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지?
제우스는 믿을 만한 놈이 아닐 텐데.
이 자식, 제우스가 오딘인 척할 때 세뇌당했나?
음…… 근데 그때는 제우스가 창조주가 아니었을 때인데…….
“이 미친놈…… 아스가르드를 배신하다니……!”
“아니, 아스가르드는 정해진 수순대로 갈 뿐이다. 우리의 운명대로.”
푹.
발두르가 양손을 땅바닥에 댄다.
그러자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흑뢰.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젠장, 뭔 짓을 하려고…….”
“로키. 저거 그냥 놔두면 안 되겠는데? 어차피 죽으려고 하는데, 이상한 짓 하기 전에 제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죽을 생각이 가득한 발두르.
스스로를 흑뢰로 변형시킨 만큼, 결국은 죽을 텐데.
어차피 죽는다면, 그가 아스가르드 안에서 이상한 짓을 벌이기 전에 죽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제압하자!”
“오디세우스. 들어가 있어.”
“예. 무운을 빌겠습니다.”
오디세우스를 역소환하고 또다시 영검을 꺼낸다.
올림푸스 소속의 대신은 아니지만, 흑뢰로 변해 가는 대신.
혼자 상대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구원을 최대한 불러야겠어.
“아르테미스 소환.”
“일 끝났어? 어…… 뭐야, 무슨 상황이야?”
“저 자식을 없애면 돼.”
눈을 깜빡이던 아르테미스.
금방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의 활을 꺼낸다.
좋아. 자세가 되어 있네.
그와 동시에 토르에게도 구원을 요청했다.
[오. 김지호. 출동할까? 음……? 아스가르드네. 좌표는 세계수 근처잖아? 뭐야, 언제 왔어? 아스가르드 왔으면 나부터 봐야지.]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발두르가 미쳤습니다. 빨리 와 봐요.]
콰르르르!
“뭐? 발두르가? 무슨 소리야.”
어느새 내 옆에 도착한 토르.
날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난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발두르 쪽을 가리켰다.
“나는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쟤 왜 저래? 우리 중에 가장 정상인 놈이었는데?”
“나는……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흑뢰로 완연히 물들어 가는 발두르.
찬란하던 외모는 이미 가려져 있었으며, 그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빌딩 지하 바닥만 부여잡았다.
“스스로 죽어서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려고 해요.”
“뭐? 저 미친 자식이……! 왜?”
“상황이 왜 이렇게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지호, 일단 쟤가 적인 거지? 화살 쏜다?”
“그래. 제압하자.”
핑!
아르테미스의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
그와 함께 나도 발두르에게 다가선다.
치이이익.
영검을 내리꽂자 검은색의 보호막이 이를 가로막는다.
이거, 소울 배리어 같은데?
일반 대신이었다면 상대하기가 곤란했겠지만…….
“영기발출.”
영검에 영기발출까지 있는 내 검을 막을 수는 없지.
쾅. 쾅. 쾅!
내가 검을 휘두르자, 따라 공격하는 세 대신.
토르, 로키, 아르테미스까지 그 면면도 화려하다.
하나 나머지의 공격은 검은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가기 일쑤.
아르테미스의 화살은 반으로 꺾여 소멸했으며, 로키의 단검은 박살이 났고 토르의 번개는 보호막에 막혀 소멸했다.
다만 나의 검만은 배리어를 서서히 뚫어 가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영기발출을 써!”
“알았어!”
영기가 깃든 화살이 날아들자 보호막이 파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좋아. 이 속도면……!
“후후. 영혼신. 역시 강하군…… 영혼신의 검에 죽어 라그나로크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보호막이 뚫리는데도 웃고 있는 발두르.
아까는 미친놈처럼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말만 읊조리더니, 지금은 또 정신이 말짱해 보인다.
“하지만 문을 열기 전에, 죽어 줄 수는 없지. 창조주의 군대, 천상의 군대를 맞이해야 한다…….”
사아아아아.
보호막의 안에서 황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온다.
빛의 발원지는 팔찌.
이를 본 로키가 비명을 지른다.
“황금 팔찌, 드라우프니르……!”
“드라우프니르여. 9일의 시간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소멸하라. 그리하여 마지막 권능을 발하라.”
발두르의 명에 황금빛 팔찌가 스르르 사라진다.
그러더니 검은 보호막에 흡수되는 황금색의 광채.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착. 착. 착.
보호막이 한 겹, 한 겹 더 생겨난다.
한 겹이 더 겹쳐질 때마다 색이 더 시커멓게 물드는 보호막.
그냥 육안으로 보면 안이 아예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진다.
지지지지직.
그와 동시에 건물 전체에 흑뢰가 퍼져 나간다.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
보호막은 세 배 더 강화되고 흑뢰의 힘도 세 배 더 강해진다.
이를 보자 표정이 굳는 토르.
“드라우프니르…… 9일이 지나면 9개로 불어나는 황금 팔찌. 이런 효과가 있었는가?”
“그래……! 그냥 황금 팔찌만 늘어나면 저게 왜 신기겠어? 크. 저 녀석, 흑뢰를 발하는 것도 세 배, 보호막도 세 배로 늘어났어. 한쪽에 권능을 몰아주지는 않은 거 같은데…….”
“음. 다른 신들도 부르겠다. 상황이 심각하군.”
토르가 구원을 요청하는 사이, 나도 내 스킬을 사용한다.
“신의 권역.”
내 아군에게 영혼 약탈자의 스킬을 부여하는 신의 권역.
쿨타임이 있는 편이라 아껴 쓰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 보니 그냥 놔두면 안 되겠어.
“사도 소환.”
이에 더해 내 사도 중 최정예를 소환하고, 영기발출을 사용한다.
“공격해!”
급하게 소환된 사도신들.
아르테미스의 지휘 아래에 일제히 검은 배리어에 맹공을 퍼붓는다.
“발두르. 네가 어찌……!”
“오딘. 아들놈 좀 어떻게 해 봐.”
“내 메시지도 받지 않는다. 으으…… 발두르. 라그나로크만은 안 된다……! 그 결말처럼 될 리가 없거늘! 한 번 멸망하면 끝이다, 발두르!”
오딘도 왔나?
어차피 뒤는 보지도 않고 무작정 맹공을 퍼붓고 있어서 몰랐다.
이 미친 배리어.
3개로 늘어나기만 한 게 아니라 방어력도 강해졌다.
촉수를 죄다 뿌려 대는데도 공격이 도저히 먹히지가 않는다.
어느새 녀석의 빌딩 지하 안은 완전히 흑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대신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지만, 배리어까지 공격이 닿지도 않고 흑뢰에 막혀 나가고 있었다.
이거 참…….
골치 아프네.
처음에는 쉽게 뚫릴 것 같던 보호막이 드라우프니르를 사용하고 나자 너무 단단해져 있었다.
휙. 휙. 휙.
영기발출을 담은 촉수가 일제히 맹공을 퍼붓는다.
그러나 좀 뚫리나 싶더니 다시 스르르 재생하는 검은 보호막.
방어력 하나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이다.
으으.
이 쓸모없는 촉수 같으니라고.
아수라는 뭐 이런 스킬을…….
아. 잠깐.
아수라가 준 스킬.
최종 버전이 있었잖아?
치이이이익.
맹공을 퍼붓자 한 겹 뚫리는 보호막.
하지만 어둠이 약간 가신 배리어 안에는, 이미 검은 번개로 뒤덮인 발두르가 흉측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곧…… 끝이 나리라. 아스가르드는 새롭게 태어나리라.”
“발두르. 그러지 말고, 널 내 세계로 초대하지.”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
“아수라도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