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88화 (188/240)

<내 상태창 2개 - 188화>

라그나로크 (3)

“어우. 고마워, 김지호. 이렇게 와 줘서.”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로키.

반가워하는 얼굴로 나를 맞이하며 악수를 청한다.

“다른 대신계는 미적대고 있는데, 우리 채권자께서 바로 구원을 와 주는구나. 네가 알아낸 사실 덕분에 그래도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어.”

“다른 신계는 오지도 않아? 기독교나 불교 이런 쪽은 뭐 해?”

“뭐, 파견하겠다고는 하는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질 않네. 우리가 멸망하면 자기들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로키.

“그건 차라리 다행이군요.”

“너. 신이 되더니 이상한 취미가 생겼냐? 뭐야, 쟨. 모가지만 있어?”

“우리 편으로 전향한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우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나름 이름 있는 영웅이지만, 신들 간의 쟁투에 낄 급은 아닐 텐데.”

“그 말씀대로 저는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찮은 것이 귀는 밝아, 이리저리 정보는 얻어 두었지요.”

머리를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오디세우스.

목만 남았는데, 어째 혼자 잘 둥둥 떠다닌다.

“정보? 어떤 정보?”

“세계수 이그드러실 근처의 건물에 재미있는 장치를 설치해 두었다고 하는군요.”

“세계수 근처 건물에?”

“예. 로키 님.”

“흐음…… 그럴 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로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확실하다고 주장하니, 나를 쳐다본다.

“저놈, 믿어도 돼?”

“일단은 내 사도야.”

“사도라고? 그럼 뭐…… 믿어도 되겠네. 일단 나 따라와 봐.”

그렇게 로키의 뒤를 따라서자 곧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땅에서 하늘 끝까지 뻗은 거대한 나무.

멀리서 봄에도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세계수 이그드러실…… 크긴 크네.”

“그리고 세계수 옆에는 빌딩이 늘어서 있군요. 신계의 모습이 상당히 현대 도시와 닮았습니다.”

쿠우가의 말대로 세계수의 주변으로 빌딩이 여러 채가 늘어서 있었다.

서울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공간이 여유롭게 건설되었지만, 어쨌든 그 건축 양식은 현대와 흡사.

환웅이 그랬던 것처럼, 이쪽 신계도 현대화한 건가?

“요즘은 신계도 현대화해야지 살아남거든. 안 그러면 도태되는 거지.”

“저 건물은 누구의 건물입니까? 세계수의 왼편, 황금빛으로 빛나는 건물 말입니다.”

“저거? 저건 발두르의 빌딩이다. 요즘은 그의 천상궁전에 기거하지 않고, 저기 있다고 하는군.”

“발두르?”

“오딘의 아들이자, 빛의 신이지.”

“발두르…… 저곳입니다. 저기에 올림푸스의 함정이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확신에 가득 찬 음성으로 말한다.

“발두르의 빌딩에?”

“예. 가서 조사해야 합니다.”

“그놈은 좀 껄끄러운데…….”

“왜?”

“라그나로크에 대해선 알아?”

갑자기 나에게 물어보는 로키.

“신들의 황혼,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뜻하는 거 아니야?”

“그 시초가 어떻게 되는지도?”

“그건 모르지.”

“내가 발두르를 죽게 만들어서 시작된 거거든.”

빛의 신 발두르.

원래는 죽을 수도 없는 몸이었는데, 이를 질투한 로키에 의해 유일한 약점을 노려져 죽었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그건 아스가르드 신화 내용이지. 실제 지금 신계에선 죽인 게 아니잖아?”

“그래. 지금은 다들 존재하고 있지. 하지만 라그나로크의 이야기 때문에, 나와 녀석 사이는 좀 껄끄러워. 나야 별로 상관을 안 하는데, 발두르가 일방적으로 날 경계하지.”

“그걸 노린 겁니다.”

“이걸 노렸다고?”

“아스가르드의 신 중, 로키를 경계해도 아무도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인물. 그의 건물 아래에 비상의 수단을 마련했다고 들었습니다.”

“흠…….”

열변을 토하는 오디세우스를 노려보던 로키.

처음에는 사도라고 해서 넘어갔는데, 이제 다시 의심이 생긴 듯한 모습이다.

“저놈, 사도인 증거를 보여 봐.”

“흠. 뭐가 있지.”

“제우스한테 쌍욕해 봐. 창조주한테 욕하는 건 그 세계 신들에겐 금기일 테니까.”

아니, 그런 거로 판별이 돼?

나라님 없을 때 욕하는 거야 원래 자유 아닌가.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역시 로키, 그런 꼼수를 쓰다니.”

하지만 로키의 말에 아르테미스나 쿠우가는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진짜 이 수단이 통하나 보네.

“크. 정말 그거면 되겠습니까? 제우스, 이 개잡놈의 #$!#)!”

쌍욕을 퍼붓기 시작하는 오디세우스.

걸쭉하게 욕을 구사하는 게, 마치 지금까지 참아 왔던 걸 모두 터뜨리는 것 같았다.

팔짱을 끼며 이 이야기를 듣던 로키.

“애초에 시발, 신으로 잘만 살고 있었는데 지가 창조주 되겠다고 개 오버를 떨어서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야훼한테 처발리고 어디서 쓸데없는 꾀만 부리고 말이야!”

곧이어지는 오디세우스의 마지막 말에 팔짱을 풀었다.

“호오. 믿을 만하네. 그래, 가 보자.”

“뭘 보고 갑자기 믿는 거야?”

“제우스는 야훼한테 트라우마가 있거든. 자기한테 쌍욕하는 거보다 저 이야기하는 걸 백배는 더 싫어할 거야.”

“맞아요. 킥. 그 유리한 국면에서 패배해 놓고는, 부끄러움은 아는지 저 이야기만 하면 성질을 내죠. 좀생이처럼 뭐 하는 짓인지. 기독교, 처음에는 진짜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는데 흥청망청 여신이랑 놀아 재끼다가 처발려놓고선…… 안 그렇습니까, 아르테미스 님?”

오디세우스에게 질문받은 아르테미스.

그녀는 당황하다가 오히려 제우스를 변호한다.

“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 제우스가 야훼에게 무릎을 꿇는 덕분에 우리가 대신계를 유지했잖아? 그래서 대신계의 수장으로서 모두를 살리기 위해 굴욕적인 행동을 불사했고. 그때는 제우스가 존경받을 만했어.”

“그거야 당연히 할 일이죠.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는데 그걸 져 놓고는…… 아이고. 아직도 생각만 하면 화가 나네.”

그러며 제우스에 대한 쌍욕을 멈추지 않는 오디세우스.

로키가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하라고 할 때까지 그의 욕은 계속되었다.

“정신 사나우니 욕은 그만하고. 그 함정, 발두르 자체가 함정인 거야, 아니면 그는 관련 없고 함정만 발두르의 빌딩 지하에 있는 거야?”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냥 지하에 있다고만 알 뿐.”

“그럼 발두르에게 확인 요청을 하기도 애매하군. 녀석이 만에 하나 내통자면 통보하는 게 독이 될 테니까.”

“그렇죠.”

“그럼 몰래 들어가 봐야겠네. 김지호, 네 사도들까지 데려가긴 힘드니 저 모가지 빼고는 역소환시켜 놔.”

“그래. 알았어.”

아르테미스와 쿠우가를 사도의 정원으로 돌려보내자 로키가 우리에게 손을 뻗었다.

“투명화.”

[사기의 신 ‘로키’가 사용자에게 권능을 사용합니다.]

[로키의 투명화는 은폐의 속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SS급 이하의 감지에 면역이 됩니다.]

[로키의 권능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를 누르자 온몸이 투명하게 변한다.

옆을 바라보니 오디세우스의 머리도 거의 대부분이 투명해져 있었다.

원래는 완전히 투명해야 하지만, 사도와 주신의 관계라 그럴까.

녀석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가자.]

투명화를 한 이후부터 메시지를 보내는 로키.

그가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에는 빨리 달리다가, 발두르의 빌딩에 도착하자 행동을 조심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빌딩.

금빛 회전문이 돌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땅으로 간다.]

문을 통해 들어가나 싶더니, 갑자기 몸이 쑥 꺼져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우리를 리드하는 로키.

땅 밑에서 마주한 황금의 벽도 그의 손짓 하나에 문으로 변해 열렸다.

이런 거 잘할 줄은 알았지만 일사천리네.

[지하 어디에 있다는 거야?]

[그건 저도 잘…….]

[쩝. 발로 뛰자. 니네도 뭐 발견하면 이야기해 줘.]

여기서 뭘 발견하라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다.

반짝거리던 황금빛 벽과는 다르게, 안은 어두컴컴한 공동.

불 꺼진 지하 주차장이 이럴까 싶을 정도다.

[흠…… 분명히 발두르의 빌딩 아래에 있다고 들었는데…….]

[애초에 그 정보, 누가 가르쳐 준 거야? 네가 속은 건 아니고?]

[이 정보는 아레스의 참모 본부에 속해 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발두르의 빌딩 지하에 어마어마한 폭탄을 숨겨 놓았다…….’고요. 설마 저 하나를 속이기 위해 참모 본부에서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레스의 참모 본부에 속할 정도면 꽤 머리로 중용된 건데, 왜 배신하고 김지호한테 갔냐?]

딱히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로키는 오디세우스에게 계속 질문하고 있었다.

나도 육안으로 봐서는 모르겠고…….

영혼 분해 스킬을 사용해 본다.

써도 딱히 큰 변화가 없는 풍경.

그래도 이왕 들어온 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천장부터 바닥까지 훑어본다.

[제우스가 창조주가 되고, 그래도 시간이 꽤 지났지요. 그가 창조주가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올림푸스의 신들의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습니다.]

[악화된다고?]

[네. 창조주가 되었음에도 SP 수입이 줄었다면서 저희에게 SP를 수거해 가질 않나, 이제는 신들에게 자발적으로 너희가 흑뢰가 되라고 독려하고 있지요. 우리가 스스로 흑뢰가 된다면, 올림푸스 소속이 아니게 되니까 아스가르드를 칠 수 있다고요.]

[허. 그래? 근데 용케 흑뢰가 되지 않았네? 제우스가 강제로 밀어 넣었을 것 같은데.]

[흑뢰가 되면 결국 존재가 소멸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의 사도신도 아니고…… 죽을 거 뻔히 아는데 누가 흑뢰가 된답니까? 제우스가 아무리 EX등급이라도, 신들에게 그런 일을 강제할 수 없어요.]

[강제할 수가 없다…….]

[예. 제우스는 그래서…….]

둘이 떠드는 메시지가 눈앞에서 오고 간다.

메시지가 여럿이 참여하는 대화방처럼 형성돼서, 나는 별말 안 하는데 둘만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너무하다 이겁니다. SP를 주기는커녕 뺏기만 하고. 지구에서는 신앙이 사라져서 SP 보급은 힘들어지고. 계속 회귀할 때 모아둔 적금 깨서 겨우 하루하루 버티는 실정이에요.]

[그쪽도 사정이 좋지만은 않구나?]

[사정 좋은 건 제우스밖에 없을 겁니다.]

현 올림푸스의 소속이라 그런지, 그쪽 상황에 대해 실감나게 설명하는 오디세우스.

그 메시지를 보다 보니 탐색 작업을 아예 못할 것 같아, 아예 시야에서 치워 버린 채 지하 공간을 다시 한번 훑었다.

이쪽도 변화가 없고…….

저쪽도 변화가 없고…….

그냥 여기는 아닌가?

“어?”

영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메시지창을 열려는 순간, 미세한 SP의 흐름이 감지됐다.

그 시작은 황금색의 벽에서부터.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황급히 벽을 향해 다가갔다.

[어. 이 나뭇가지, 아까는 없었는데……?]

황금색 벽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나뭇가지.

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가 화석처럼 벽에 붙어 있었다.

[나뭇가지?]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아. 야, 잠깐. 나뭇가지라고? 그거 혹시 겨우살이야?]

[겨우살인지는 모르겠고.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황금색 벽에서 작게 시작한 나뭇가지.

이게 한 개가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두 개로 갈라지고. 이게 또 네 개로 갈라진다.

그러며 SP의 흐름도 조금씩 강해진다.

[나뭇가지가 점차 늘어난다고 했지?]

[어. 벽에 박힌 채 늘어나고 있어. 지금은 8개 되어 간다.]

[……김지호. 아까 내가 한 말 기억나? 라그나로크의 시작에 대해서.]

[네가 발두르의 약점을 잡아 죽여서 시작되었다는 거?]

[그래. 빛의 신 발두르. 세상 만물의 사랑을 받는 대신. 그가 죽을 것이라는 예언에, 오딘의 아내 프리그는 세상 만물에게 발두르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 내지. 하지만, 빼놓은 것이 있었어.]

순식간에 메시지창을 점령하는 로키의 메시지.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메시지 중 가장 빠른 속도다.

[겨우살이. 프리그는 겨우살이가 너무 약해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겨우살이…….]

[나무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작은 기생식물. 그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화살이 바로 ‘미스틸테인’이다. 라그나로크의 시작을 알리는,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신기神器지.]

미스틸테인.

로키가 메시지로 이를 언급하자, 황금 벽에서 퍼지던 나뭇가지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윽. 이제 나도 보인다…… 저거, 부숴 버려야 해! 녀석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미스틸테인이 완성되게 둘 순 없어!”

“영기발출.”

로키가 은신을 풀고 자신의 단검을 꺼냈다.

나는 녀석에 앞서, 영검을 그대로 벽에 그었다.

치이이익.

꿰뚫리는 황금 벽.

2배씩 늘어가던 나뭇가지가 사선으로 잘려 나간다.

한 번의 베기로는 부족하다.

틈을 주지 않고 검격을 더한다.

치익. 치익. 치이이익.

순식간에 난자되는 황금 벽.

수를 늘려 가던 나뭇가지에게 더 이상 기생할 공간 자체를 만들질 않는다.

그렇게 벽을 완전히 부수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신기 미스틸테인을 파괴했습니다.]

[영검이 미스틸테인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영검이 신기 미스틸테인의 힘을 완전히 흡수합니다.]

[영검의 진화 요구 조건을 하나 충족했습니다.]

[신기를 더 흡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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