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87화 (187/240)

<내 상태창 2개 - 187화>

라그나로크 (2)

“이런, 이런.”

간사한 수염의 오디세우스.

물줄기로 가로막힌 퇴로에 서서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거 원. 들어가 보려고 해도…….”

텅.

영체 상태에서 물을 통과하려고 해도 저절로 튕기는 몸.

위아래를 돌아보며 쯧쯧쯧 소리를 낸다.

“이건 곤란한데.”

“그럼 얌전히 잡혀.”

“히이이익! 영혼신…… 벌써! 아니, 흑뢰는 어쩌고요!”

내가 도착하자 호들갑을 떨며 벌벌 떠는 오디세우스.

흑뢰야 뭐…….

“영혼신이 좋긴 좋군요. 사도들이 죄다 영기발출을 써 대니…….”

내 사도신에게 제압당하고 있는 흑뢰.

내가 선봉에 서서 일단 자르고 시작하니, 그리 크게 반항하지 못하고 썰리고 있었다.

“영혼신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떨거지들이 모였지만, 스킬을 일부나마 전수받는 게 워낙 커서.”

“킬킬. 제 생각에는 다른 대신계에 뒤지지 않을 것 같네요. 이참에 아예 대신계도 싹 접수해 버리지 그러세요?”

뒷말은 빼더라도 확실히 영혼 약탈자 스킬 공유가 메리트가 있어.

사도의 정원에서 SP를 모아 둔 하급신들은 꽤 강력해서, 길을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뭐야. 뭐야. 이건 우리 예측보다 훨씬 세잖아요! 무슨 사도가 그렇게 세! 히이익…….”

손가락을 깨물면서 나에게 삿대질을 하는 오디세우스.

아니, 이 양반 나름 영웅 아니었나?

왜 이렇게 내시 같지?

“저거에 속지 마. 저 자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영웅, 오디세우스다.”

“킬킬. 그렇습니다. 말을 섞지 말고 일단 끌고 가서 고문을 가하죠.”

아르테미스와 하데스가 각자 내 뒤를 따라오며 말한다.

“일단 다리를 자르죠.”

휙.

하데스의 낫이 오디세우스의 다리를 그대로 스친다.

“크윽……!”

썩둑 잘려 나가는 오디세우스의 영체.

녀석도 올림푸스의 신이니 소울 배리어를 쓸 법도 한데, 전혀 방어를 하지 않았다.

“뭐, 그대로 베이게요? 왜 반항도 안 해요. 재미없게. 킬킬킬.”

“어차피 제가 반항해 봤자 하데스님에게 비하겠습니까? 히…… 히이익. 아픕니다. 아파요. 살살 좀 해 주십시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께서 왜 이러실까. 응? 당신이 그렇게 약한 척하니, 더 수상하단 말이죠. 킬킬킬.”

하데스가 낫으로 오디세우스를 난자한다.

입으로는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눈빛은 전혀 변화가 없는 오디세우스.

역시 하데스 말대로, 약한 척만 할 뿐.

본질은 영웅이다.

“네가 아레스에게 받은 임무가 뭐였지?”

“하하. 그걸 제 입으로 말하겠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다.”

영웅 오디세우스.

올림푸스의 신급까지 갈 정도니, 겉모습과는 다르게 지조가 있는 남자겠지.

하데스한테 온몸이 썰리고 있는데도, 잘도 버티고 있고.

일분, 이분 정도가 지나자 오디세우스는 사지가 잘리고 온몸이 난자되었다.

영체 상태가 아니었다면 사방이 피로 물들어, 과다출혈로 죽었을 만큼 심각한 상태.

한데 아프다, 아프다 소리만 지르고, 전혀 임무에 대해 털어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후. 이 녀석을 짧은 시간 안에 입 열게 하는 건 불가능해.

“하데스. 비켜 봐.”

“음? 고문 안 하십니까?”

“시간이 넉넉하면 그러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은 촌각을 다툴 때야. 그냥 오디세우스를 소멸시켜야겠어.”

영검에 영기를 불어넣는다.

오디세우스에게서 시킨 임무가 성공해서 날 제압했다는 거니까.

일단 이 자식을 소멸시켜 놓으면 그 임무가 뭔진 몰라도 수행은 못하겠지.

지지지직.

“으아아아아아아악!”

오디세우스의 영체에 검을 대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비명 소리를 내지른다.

눈이 흰자만 드러날 정도로 희번득해져 가지고, 혀를 턱밑까지 내미는 오디세우스.

아니, 뭔 놈이 엄살이 이렇게 심해.

“어차피 말 안 할 거지? 아레스의 충신으로 죽어라.”

“으아아아아, 잠깐! 잠깐만요. 진짜 저 소멸시킬……?”

“응.”

“으으. 잠깐…… 말…… 말할게요.”

“구라 치는지 어떻게 알아. 그냥 죽어.”

“아. 아. 진짜. 말한다니까. 우리 목표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라고요.”

음?

헤라클레스라고?

“헤라클레스? 그를 왜?”

“그에게서 영체 샘플을 더 채취해야 저희 올림푸스의 영혼계열 스킬 레벨이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큰 전투에 앞서서 전력을 강화시키려고 했지요.”

“그럼 니들 여기에 헤라클레스가 있는지 알고 온 거야?”

“저야 뭐. 아레스님의 명령에 따라온 거라…… 그냥 저보고 이리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지가 잘린 상황에서도 어깨를 으쓱하는 오디세우스.

그의 말을 들은 아르테미스가 심각한 얼굴로 반문한다.

“전신의 권능인가?”

“전신의 권능이라니?”

“승리를 향한 가장 최적의 길을 보는 권능이야. 그는 본능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알고, 행하지.”

“미래를 본다고도 할 수 있겠죠. 사용하는 데 제약이 많다고 해서, 쓰는 걸 보지 못했는데…….”

승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권능인가.

대신급 되니까 자꾸 골치 아픈 권능을 하나씩 가지고 등장하는군.

아폴론도 그렇고, 아레스도 그렇고.

아르테미스도 달의 권능이 있긴 했지.

“그 권능, 우리가 오디세우스를 잡아도 계속 발휘되는 걸까?”

“킬킬. 당연하지요. 계획대로 되는 전쟁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돌발 사태가 터지고, 변수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지요. 아레스의 권능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승리하는 길을 알려줍니다. 오디세우스를 잡았다고 해도, 또 다른 승리의 길이 보이겠죠.”

“쩝. 알았어. 근데 오디세우스, 헤라클레스를 아무리 유인했다고 하더라도, 흑뢰가지고 그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을 텐데? 영체 샘플은 대체 어떻게…….”

“흑뢰와 싸우기만 해도 됩니다. 그러면 정보가 넘어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도 힘이 꽤 넘어갔겠네?”

“아닙니다. 망했어요. 본격적으로 유인하기도 전에 영혼신 님께서 개입하시는 바람에…… 히히…… 정말 대단한 위용이었습니다.”

양손이 있었으면 손바닥이라도 비볐을 법한 얼굴로 나를 띄워 주는 오디세우스.

진짜 수염과 콜라보를 이루어서 간신 같다.

그래도 저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지.

정보도 얻었으니, 후환을 제거해 볼까.

“정보는 잘 쓰마. 대신, 안 아프게 소멸시켜 주지.”

“잠. 잠깐. 잠깐요! 잠깐, 잠깐. 살려 주세요. 아. 그래. 저 사도로 받아 주세요. 사도가 되면 배신도 못하고, 영혼신님의 영원한 충복이 될 수 있잖아요? 네?”

“음…….”

오디세우스를 사도로?

이놈 너무 빨리 태세 변환하는 거 아니야?

“멍멍! 꿀꿀! 짖으라면 짖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주신님의 영원한 개돼지가 돼서 충성하겠습니다.”

“음…… 오디세우스가 이렇게 목숨에 집착했나?”

“당연하지요. 영생을 살다가 죽게 되었는데! 아르테미스. 당신이 할 말은 아니죠! 대신인데 사도가 되었으면서!”

“큭…… 저 자식. 죽여 버려.”

아르테미스가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딱히 반박을 못하는 게, 그녀도 살려고 사도가 되었으니…….

사도까지 된다고 하니, 잠시 받을까 고민하다가 다시 검을 들었다.

간교한 꾀로 유명한 오디세우스.

아군으로 받아도 찝찝할 거 같아.

그냥 후환을 남기지 말자고.

[영혼신이시여. 아테나 님, 아테나 님한테 이야기 못 들으셨습니까?]

오디세우스의 목에 검이 닿는 순간, 내 눈앞에 메시지가 뜬다.

아테나?

그녀가 갑자기 왜 나오지?

방패 복구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메시지는 없었는데.

[아니, 정말로 메시지를 못 받으셨습니까? 아시는 줄 알았는데……! 저, 절 사도로 꼭 받아 주십시오. 제 목숨이 아까운 것도 있지만…… 제우스에게 반대하는 올림푸스의 신들이 긴박하게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절 못 믿으시겠다면 그냥 사도로 받고 죽이셔도 되니까……!]

제우스에게 반대하는 올림푸스의 신들?

죽기 싫어서 지어 낸 이야긴가 의심스럽지만…….

아테나를 콕 집어 언급한 걸 보니 바로 죽이기가 좀 그렇군.

“흠. 사도로 들어와라.”

“예. 예. 감사합니다. 영혼신이시여.”

그러자 뛸 듯이 좋아하는 오디세우스.

참…… 사도가 된다고 이렇게 좋아하는 신은 또 처음보네.

[오디세우스를 사도로 임명했습니다.]

사도가 되자 오디세우스의 영체가 다시 재생되기 시작한다.

하데스에게서 잘려 나갔던 팔과 다리는 다시 생기기 시작하고, 영체의 찰과상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어 간다.

그렇게 재생되는 몸을 보던 오디세우스.

“오…… 오오……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인가?”

사도가 되자 목소리 톤이 확 바뀌는 오디세우스.

간사한 느낌은 어디로 가고, 영웅의 진중한 톤으로 변한다.

간신 수염은 여전하지만, 뭔가 기세가 달라졌는데?

“주신이시여. 헤라클레스에게 빠지라고 하고, 저희는 빨리 아스가르드로 가야 합니다. 대강의 계획은 알고 있으니…….”

[맹약을 어긴 자여. 천벌을 받을 지어다.]

푹!

오디세우스의 가슴팍에서 새하얀빛의 손이 튀어나온다.

지지지직.

오디세우스의 영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전류.

오디세우스의 표정이 고통으로 물든다.

“크…… 크으으…… 제우스. 여기서까지 힘을…… 맹약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는 영원히 그에게 속하는 것인가…….”

새하얀 전류가 사방에 퍼지며, 오디세우스를 집어삼킨다.

조금 전 온갖 호들갑을 떨던 반응과는 달리 침통한 기색으로 이를 악무는 오디세우스.

맹약이라니.

번개를 보아하니 제우스와 맺은 건가?

“영혼 분해.”

적의 힘을 분석한다.

예전에 제우스에게 보았던, 그 힘과 매우 흡사한 전격의 힘.

하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힘이 강하지 않은 편이라, 좀 더 파고 들어가 본다.

“흐음…….”

더욱 분석을 해 보니, 오디세우스의 SP가 스스로 변형되어 제우스의 힘으로 변하고 있었다.

신의 근간을 이루는 SP가 적이 되니,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자멸하는 꼴.

“소울 배리어.”

일단 변형이 되지 않는 곳, 가슴팍과 얼굴을 보호해 본다.

그러자 바깥에서 피어오르던 전격의 힘이 차단되었으나…….

지직. 지지직.

배리어 안쪽에서 전기가 피어오르자, 보호막도 쓸모가 없어진다.

이게 창조신의 권능인가.

스스로의 SP로 스스로 사라지다니.

후우. 방법이 없나?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둬야 하나.

아니. 이대로 제우스에게 또 당할 수는 없다.

흠. 어쩌면…….

“오디세우스. SP 거래를 할 테니, 거래창을 열어.”

“윽…… 큽…… 아…… 알겠습니다.”

올림푸스의 것이었던 SP가 스스로 발화한다면, 내가 준 SP는 어떨까?

오디세우스에게 백만 SP를 투척한다.

“영혼 융합.”

“영혼 중개.”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영혼 계열의 스킬을 모두 총동원한다.

오디세우스의 머리에 나의 SP를 심고, 원래의 것을 머리 아래로 밀어낸다.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오디세우스의 머리 영체는 내 SP가 채우고 있었다.

“아…… 머리는……!”

그러자 머리 쪽에는 자연적으로 전기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 아래의 영체는 이미 제우스의 전기가 죄다 퍼져서, 바로 머리 위로 올라올 기세.

“소울 배리어.”

소울 배리어를 머리에 사용한다.

그러자 제우스의 번개가 올라오다가 툭툭 막힌다.

지직. 지직. 지지직.

[영혼신. 감히 창조주의 맹약을 거스르려 드느냐. 건방지도다.]

“자식이 건방지도다가 뭐냐? 개폼 잡고 있네.”

제우스의 번개가 계속 위를 침범하려 든다.

꽤 강력한 일격.

오디세우스의 SP에서 발현한 것인데도, 내 소울 배리어를 쉽게 깨부수려 든다.

[소울 배리어가 반파됩니다. SP를 소모하여 다시 재생합니다.]

[소울 배리어가 반파됩니다. SP를 소모하여 다시 재생합니다.]

순식간에 뜨는 배리어 재생 메시지.

이쯤 되니 오기가 생겨서, SP를 계속 부여해서 보호막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몇 번을 들이쳤을까.

오디세우스의 몸통에서 발현하던 번개가 드디어 끊겨 간다.

[후후. 겨우 하급신 때문에 터무니없는 무리를 하다니…… 무르구나, 김지호. 하기야 네 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즐겨 둬라. 하하하하하…….]

마지막 웃음과 함께 사라지는 전기.

제우스 자식.

힘 딸려서 사라지는 주제에 정신 승리냐?

그렇다기엔 나도 소모한 SP가 만만치 않았지만……

“끝…… 끝난 겁니까?”

두 눈을 부릅뜨고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오디세우스.

제우스가 사라지자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나에게 반문한다.

“뭐, 네 SP는 모조리 타 버렸지만 말이야.”

“하지만 제 자아는 그대로입니다. 능력, 스킬도 마찬가지구요. 이럴 수가!”

“흠. 그건 네 본질이라. 제우스도 없애지는 못하나 보네.”

“오오. 주신이시여! 제가 정말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단 말입니까?”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오디세우스.

그러고 보니, 팔다리가 잘라졌을 때도.

영검으로 영체가 지져졌을 때도 고통을 호소하긴 했지만 눈물은 본 적이 없었는데.

거참…….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지만 내 사도가 되었는데, 뭐 저리 기뻐한대.

“주신이시여. 주신께서는 저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희라 함은, 제우스를 반대하는 신들을 말하는 건가?”

“예. 제가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 아스가르드로 가야 합니다.”

머리만 남은 오디세우스.

강렬한 눈빛을 발했다.

“그곳에 설치된 함정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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