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86화>
라그나로크 (1)
[오랜만입니다. 아르테미스 님.]
간신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사하는 오디세우스.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오디세우스. 네가 여기 무슨 일이지?”
[아레스 님의 명에 따라 신계를 점령하러 왔는데…… 어이쿠. 제가 장소를 잘못 택한 것 같네요.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길은 잘 쓰도록 하지요.]
우리에게 손을 휘휘 흔들며 사라지는 오디세우스.
[도망치지 마라!]
헤라클레스의 거대한 손이 그를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새 그는 사라진 상태였다.
땅으로 향하던 흑뢰도 모두 하늘 위로 후퇴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 딱 봐서 답 안 나올 거 같으니 바로 빼네.”
어차피 길을 이용하는 거니까, 굳이 신계를 점령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거점 삼으면 좋긴 하지만, 안 되도 그냥 통로로 쓰겠다 이거지.
흑뢰가 빠르게 빠져나가니, 헤라클레스가 곧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추격하자, 헤라클레스. 어차피 저놈들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거라, 우리가 길을 틀어막으면 돼.”
[으음…… 그거는 좀 곤란한데.]
“왜?”
[내 영역에 쳐들어온 놈들이야 처리할 수 있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공격해 나가는 건 안 돼서 말이야.]
지켜보자던 혼돈 세력의 방침 때문인가?
그래도 이대로 헤라클레스의 힘을 쓰지도 못하게 되는 건 너무 아까운데.
“야. 그게 그렇게 빡센 제약이야?”
[흠. 그게…… 쉽게 어길 수는 없는 제약이다.]
그래도 시스템의 제약처럼 빡센 느낌은 아닌데?
그런 거면 저거보다 더 강하게 말했을 것 같은데.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조력을 놓치긴 아쉽다.
“지금 아스가르드 넘어가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야. 그놈들이 동맹 조약 핑계로 몸빵 역할을 하니까 지금까지 소강상태로 유지된 거라고.”
[크음…….]
“니 가슴팍에 꽂힌 검 봐. 이대로 복수하지도 못하고 제우스가 창조주 돼서 득세하는 꼴 볼래?”
[상황이 그렇게 용이하지가 않다. 김지호.]
“그래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오케아노스의 길목 틀어막자. 오디세우스가 저렇게 놀리고 가는데, 그냥 여기서 얌전히 틀어박힐 셈이야? 저놈들 그땐 널 공격하기도 했잖아.”
[흠…….]
“킬킬킬. 헤라클레스. 뭘 그리 고민합니까? 덩치가 아깝군요.”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
돌멩이들 부근에서 인기척도 없이 바로 나타난 하데스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하데스.]
“저 하늘 위의 길…… 당신 신계의 영역이라고 주장해도 되지 않습니까? 뭐 어때요. 먼저 공격당했다고 우기면 됩니다.”
[말이 쉽지…….]
“헤라클레스. 우리가 왜 혼돈의 군주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올림푸스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지금 당신의 고민, 본말이 전도되어 있어요.”
[음…….]
“저도 당신을 서포트하겠습니다. 나는 더 명분이 없지만, 그냥 뛰어들 거예요. 이대로 가다간 제우스에게 너무 유리해집니다. 안 그래요?”
하데스의 설득에 잠시 고민에 빠지던 헤라클레스.
곧 결정을 내린다.
[가자.]
“좋아요. 후후. 드디어 결심을 했군요.”
헤라클레스의 거대한 몸이 둥둥 뜨기 시작한다.
그러자 내 쪽을 바라보는 하데스.
“이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영혼신. 당신은 아스가르드로 가시죠.”
“오. 둘로 괜찮겠어?”
“뭐, 안 되면 빠지죠. 킬킬킬.”
킬킬거리며 웃던 하데스.
그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며 나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다.
“영혼신. 오디세우스에 대해 아십니까?”
“아니, 그다지.”
“트로이의 목마도 몰라? 그게 오디세우스 꾀인데.”
아. 그건 알지.
트로이 성 함락 못시키니까 목마 만들어서 적들이 스스로 성 안으로 끌어들이게 했던 거잖아.
그게 오디세우스가 했던 거구나.
“그리스 신화에서 잔꾀에 능하기로는 최고로 치는 영웅입니다. 그런 녀석이 그냥 후퇴하면 될 걸, 왜 굳이 얼굴을 드러냈을까요?”
“유인인가?”
“그럴 겁니다. 왜 그가 유인책을 썼을까? 이에 대해 생각을 해 보십시오. 당신의 발을 묶은 사이에 아스가르드를 완전히 들이칠 것인가. 아니면 혹시 새로운 목표가 있는가?”
“흠…….”
“아레스의 칼날은 지금 아스가르드를 향하고 있지만…… 그가 그렇게 정직한 움직임을 보일까 의문이 드는군요.”
“그래. 알겠어.”
“그래도 그가 저와 헤라클레스의 참전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이 전장은 신경 쓰지 말고 가십시오.”
끊임없이 다른 대신계와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며, 헤라클레스를 따라 날아가는 하데스.
날아가는 뒷모습이 평소처럼 사이코 같아 보이지 않고, 믿음직스럽다.
지도를 펴 보니, 아스가르드의 지척에서 움직임을 멈추는 적의 군단.
뒤에서는 후속 군단이 계속 움직이는데, 병력을 모아서 들이칠 심산인 것 같았다.
일단 아스가르드로 가야…….
지지직.
시야가 새빨갛게 물든다.
위험감지일 때의 신호.
갑자기 왜 이게……?
아, 미래 예지인가?
[영혼신. 나의 승리다.]
[컥…….]
[역시 오디세우스에게 일을 맡기기를 잘했군.]
강철 갑옷을 입은 전사의 창에 몸이 꿰뚫리는 나.
영체가 산산조각이 나며 희미하게 허물어진다.
3인칭의 시점이라도 내가 죽는 장면을 보다니, 속이 메스꺼워지는 기분이다.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예지인가?
온 신경을 집중하여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눈에 담는다.
강철 전사에게 쓰러지는 나.
그 주위에는 이미 여러 신들이 쓰러져 있었다.
아르테미스를 비롯해, 내 사도신들……
거기에 삼두육비의 신, 아수라에 토르도 끼어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군. 그쪽도 원하는 것을 이제 가져가시오.]
강철 전사가 그리 말하자, 빛이 환하게 빛난다.
그와 함께 점차 사라져 가는 미래 예지의 장면.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장면이 끝났다.
“헉!”
“김지호? 왜 멍 때리고 있어?”
내 앞에서 손을 흔드는 아르테미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저번에 본 미래 예지는 오딘의 몰락이었다면…….
이번엔 나의 죽음.
체감적으로 느끼는 기분이 확 다르다.
“하.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건가……?”
“뭐? 왜 죽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르테미스와 쿠우가가 식겁해서 물어보자, 예지에 관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대번에 심각한 얼굴로 변하는 둘.
“강철 갑옷을 입은 전사에게 쓰러진다니…….”
“그 예지, 맞긴 맞는 거야?”
“스쿨드에게서 얻은 힘이다. 예전에도 오딘이 제우스에게 당하려는 걸 예지해 준 적이 있었지. 변화가 가능한 미래지만, 어쨌든 내가 죽는 미래가 보이다니.”
“네가 죽는다니…… 음…….”
“예지에서 너는 이미 쓰러져 있더라.”
“뭐? 큰일이잖아!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디테일을!”
“나도 몇 초 못 봤다.”
내가 죽었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열 배는 더 호들갑을 떠는 아르테미스.
그에 반해 쿠우가는 외모와는 맞지 않게 침착하게 분석을 하고 있었다.
“주신이시여. 오디세우스 때문이라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쓰러진 신에 아르테미스님이나 토르님은 그렇다 쳐도, 아수라님이 왜 있을까요?”
“흠. 그러게.”
“아수라도에서 싸운 거 아니야? 거기면 아수라가 개입할 수도 있잖아.”
“그럼 토르는?”
“토르는 너 지켜 주기로 했다며.”
“아스가르드가 침공받는 상황에서도 지켜 주나?”
“음…… 그건…….”
고민에 빠지는 아르테미스.
예지가 너무 짧아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문제라는 건 확실하니…….
“일단 오디세우스 놈부터 잡자. 우리도 헤라클레스와 하데스랑 합류한다.”
“그래. 빨리 올라가서 잡아 족쳐 보자. 붙잡고 고문하다 보면 녀석이 받은 임무에 대해 이실직고하겠지. 어떻게 풀려났는데, 벌써 죽을 순 없어.”
“그래. 가자.”
트라이아나에 올라타, 하늘 위로 올라선다.
신계의 하늘을 완전히 벗어나자 드러난 오케아노스의 공간.
마치 우주 공간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헤라클레스와 흑뢰 간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거참. 성가시군……!]
커다란 헤라클레스의 육신을 향해 끝없이 날아드는 흑뢰.
처음에는 번개의 형상이었던 것이, 몇몇은 신의 모습을 한 채 헤라클레스를 공격한다.
휭. 휭.
헤라클레스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흑뢰.
[거. 참. 무서워 죽겠어.]
오디세우스의 목소리가 흑뢰의 가운데에서 들린다.
저 자식.
완전히 도발하고 있네.
[하데스. 이대로라면 상황이 불리할 것 같다.]
헤라클레스의 뒤에서 낫을 휘두르고 있는 하데스.
그의 표정도 잔뜩 찡그려진 상태였다.
“흠. 이 공간…… 힘을 쓰기가 쉽지 않군요. 언데드 소환도 할 수가 없고, 뭔가 귀찮아요. 한데 저들은 영혼 약탈자의 스킬도 쓰고 있으니, 거참…… 잘못 걸렸군요.”
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올라가더니, 전황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
일단 개입해야겠어.
“아르테미스. 원호해 줘.”
“알았어.”
“쿠우가. 천천히 따라와.”
“알겠습니다.”
영검을 꺼내고 바로 달려든다.
그런 나와 속도를 맞추어 날아가는 아르테미스의 화살.
자신의 죽음을 들었기 때문인지, 수백 개에 달하는 화살이 나와 발맞추어 돌진해 나간다.
“아니…… 영혼신? 왜 여기에.”
“오디세우스 놈부터 조지고 시작하려고.”
지지지지직.
하데스 근처의 흑뢰를 단번에 제거한다.
영검에 영기발출을 발하니 너무나도 손쉽게 사라지는 흑뢰.
뭐 이런 놈들한테 고전하고 있어?
“거참. 아스가르드가 신경 쓰이는데…….”
“지도 보니 아직 흑뢰는 진군 중이야. 여기를 후딱 제압하고 가면 돼.”
“흠. 뭐 그렇다면야. 고맙게 도움을 받도록 하지요.”
[좋아. 빨리 제압하자.]
헤라클레스의 대답에 희색이 돈다.
녀석, 생각보다 쉽지 않았나보군.
주위를 둘러본다.
어둠의 공간 속에서 끝도 없이 펼쳐진 흑뢰.
나와 아르테미스, 쿠우가가 합류했다지만 이 정도 전력으로는 저 적들을 빠르게 제압하긴 힘들 것 같았다.
[영혼신까지 오시면, 제가 쫌 부담스러운데…….]
흑뢰 가운데서 자신의 얼굴만 빼꼼 내미는 오디세우스.
표정이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어쨌든, 저 자식이 받은 임무 때문에 내가 죽는다는 거지?
여기선 무조건 제압을 해야겠어.
전력을 다한다.
“사도 소환.”
나에게 소속된 사도를 모두 소환한다.
인해전술에는 인해전술로 대항해야지.
각양각색의 신들이 오케아노스의 길에 쏟아져 나온다.
길 저편을 가득 매운 흑뢰엔 수로는 밀리지만, 다들 내 스킬의 일부를 지니고 있는 신들.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전력이다.
“여러분. 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언제든지 써 주십시오. 주신이시여.”
모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소환된 사도신들.
그 면면을 보아하니 듬직하기 그지없다.
“갑시다. 최우선 목표는 오디세우스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얼굴이 드러난 쪽을 향해 돌진한다.
내가 다가가자 나에게 뻗어 오는 흑뢰.
검게 물든 신들의 무리도 나를 저지하려 든다.
“귀찮긴.”
휘리리릭.
삼두육비로 인해 얻은 촉수를 뿌려 사방을 풍차처럼 돌린다.
두두두둑.
영기가 담긴 촉수에 감히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잘려 나가는 흑뢰.
[히이익. 현대인이라더니 징그럽게 촉수가 뭡니까? 아우, 변태.]
“닥치고 잡히기나 해라.”
[히히. 이거 영혼신님 사도들이 좀 세군요? 이 힘으로 아스가르드를 도울 것이지.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왔는지…… 그래도 내 품 안에 들어온 대어, 잡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지지지직.
사방에서 뻗어 나오는 흑뢰.
풍차처럼 돌아가는 촉수에도 끊이지를 않고 계속해서 덤벼든다.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내가 지나온 길에서도 다시 생겨나는 흑뢰.
이 미친 검은 번개는 끝이 없어?
“주신. 저희가 뒤를 받치겠습니다!”
[나도 돕지.]
나에게 집중된 공격을 커버해 주기 시작하는 사도들과 헤라클레스.
후방 걱정을 던 채, 오디세우스 쪽을 향해 돌진해간다.
흑뢰고 신이고 뭐고 깡그리 다 베어 넘기면서.
죽음의 예지를 보아서 그런가.
집중력이 최고조다.
돌진에 돌진을 거듭하다 보니 들리는 음성.
[이런, 이런. 제가 듣던 영혼신이랑은 너무 다른데…… 왜 이렇게 저돌적인가요. 왜 이렇게 강하신가요. 후후. 미천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에게 볼 것이 뭐가 있다고…….]
놀리듯이 말하는 오디세우스.
녀석의 기척이 조금씩이지만 희미해져감이 느껴진다.
이 자식.
도망치는 건가?
그렇게 놔 둘 수야 없지.
저 놈은 꼭 잡아야 한다.
“트라이아나. 퇴로를 차단해라.”
[오케아노스의 길에 개입하시겠습니까? 트라이아나의 권능을 사용할 경우, 트라이아나를 통해 이동할 수 없습니다.]
“괜찮아. 이제 창 타고 이동할 일 없어.”
등에 꽂은 트라이아나가 빛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5초 정도 지난 후 사라지는 빛.
뭐야. 된 거야?
[히이이익. 이게 뭡니까? 아니, 갑자기 홍수라니요!]
됐네.
빨리 족치러 가 보자.